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72화 (272/285)

272화

“으악!”

“뭐야!”

지켜보고 있던 팀원 두 사람이 경악하며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목뼈가 부러진 하나의 머리가 힘없이 뒤로 기울어지며 몸도 덩달아 넘어갔다.

“낭자! 하나 낭자!”

우주가 급히 그녀를 끌어안으며 부축했지만 이미 즉사해버렸다.

찢어진 목에 겨우 붙어 있는 머리가 꼭두각시 인형처럼 달랑달랑 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우주는 그녀의 시신을 꼭 끌어 안은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내가 대체 뭐라고! 또다시 이렇게 만들다니이이!”

잘해줄걸! 잘해줄걸! 하고 속으로 크게 뉘우치며 그동안 못해준 것들에 대한 커다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렇게 한동안 가슴아파하던 그는 입술을 꾹 다물며 이내 결심을 굳혔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던 행복을 전해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기필코 바쿠 공략을 성공하겠어!’

우주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낭자를 되살려 주겠소! 그리고 그땐 나도 더이상 피하지 않겠소! 당신이 내게 준 그 이상으로 무한한 사랑으로서 당신의 사랑에 꼭 보답해주리다!”

B공간.

목재로 만들어진 커다란 일본식 배가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있었다.

수연을 비롯해 신라MSC 팀원 두 명, 소민과 현아를 포함해 천하MSC 팀원 두 명까지 총 일곱 사람이 배안에 갇혀 있었다.

현아는 갑판에서 수연을 보자마자 극도로 경계했다.

나란히 서 있던 소민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언니. 저 오수연이란 여자를 조심하세요. 무슨 말을 하던 간에 아무것도 믿지 마세요. 절대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면 안돼요.”

“그럴 생각이야.”

신라MSC 팀원들과 섞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수연은 곧장 웃는 얼굴로 천하MSC 팀원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왔다.

“서로가 무척 경계를 하는듯한데 지금 이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봐요. 같이 힘을 합쳐서 나락을 극복해 나가는게 순서가 아닐까요?”

소민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해가 생길만한 말과 행동은 양측이 조심하기로 하죠.”

“그래요. 생각이 같다니 잘됐습니다.”

수연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소민의 등뒤에 숨어서 어깨너머로 보고 있던 현아에게는 그 표정이 참 얄밉게만 보였다.

수연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우선 제 생각으로는 배안을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세요? 인원을 나눠서 돌아보기로 해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천하와 신라 두 개조로 나뉘어서 다니죠.”

“그러지 말고 두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씩, 이렇게 3개조로 나눠요. 그래야 수색하기가 용이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 저희는 일단 이대로 다니겠습니다.”

“잠시만요. 이렇게 신라, 천하로 나뉘어 다녔다간 패가 갈리고 불신만 가중시킬거예요. 두 개조든 세 개조든 간에 각조마다 양팀의 멤버를 균등하게 섞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좋기는 한데, 소민은 수연을 완전히 적이라고 여긴 이상 그녀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했다.

“괜찮아요. 그냥 이대로 다닙시다.”

수연이 마지못해 떠나가고 난뒤 현아가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소민에게 물었다.

“언니. 왠지 불안해요.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고.”

“걱정하지 마. 신라그룹 회장님이 내 어머니인 이상 저쪽에서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할거야. 나한테 나쁜 이미지를 쌓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디 그러면 좋을텐데...”

현아는 불안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수연은 신라MSC 팀원 두 사람이 모여있는 곳으로 와서 조용히 말했다.

“저 계집애 순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제법 깐깐하네. 방심하지 않을 생각에 다 싫다고 하는 것봐.”

“그래봤자죠 뭐.”

“그래서 누님. 언제 시작하실 계획입니까?”

“우선 선상쪽을 이리저리 둘러보는척하면서 저것들이 갑판 밑으로 내려갈때를 기다려.”

수연은 디스플레이창에 띄워진 입체지도를 쳐다봤다. 배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거리에 육지가 보였다.

나노슈트는 성능면에서 하이테크 슈트보다 모든 점이 우수하다.

반경 5km 내 지형만 볼 수 있는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한 천하MSC 팀원들은 근처에 육지가 있다는 것을 절대로 모를 것이다.

선장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팀원 하나가 조용히 수연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누, 누님. 쟤들 내려갑니다.”

“좋았어.”

수연은 입꼬리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제일 뒤에서 따라가던 천하MSC 팀원의 모습을 끝으로 전원 갑판 밑으로 사라지자 곧바로 그들은 움직였다.

“밑에서 못나오도록 입구를 막아.”

수연은 배에 불을 지를 계획이었다.

배에 불을 지르고 바다로 뛰어든 뒤 육지까지 헤엄쳐서 갈 예정이다. 나노슈트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하는 기능과 방수기능까지 있었다. 또한 물속에서 추진력을 얻어 헤엄을 잘 칠수 있도록 수천개의 나노조각이 모여 등쪽에 프로펠러 장비를 구현해낼 수가 있었다.

“꺄악! 불이다 불!”

“아아악 불이났네! 불이났어!”

“워 불이다아!”

갑판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신라MSC 팀원들은 저마다 소리를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더니 한 명씩 바다로 풍덩 빠져들었다.

수연은 바다로 뛰어내리기 전 나노슈트의 동영상 촬영 기능과 음성 녹음 기능을 끈 채 무거운 짐들로 꽉 막힌 입구를 바라보았다.

“우리 회장님 딸은 내가 죽인게 아니야. 배에 불이나는 바람에 바다에서 익사했을 뿐이지. 크크큭.”

그녀는 곧 바다로 첨벙 빠져들었다.

C공간.

무인도.

해변가에는 차영웅을 비롯해 신라MSC 팀원 세 사람이 천하MSC의 영애 그리고 같은 팀원 한 사람과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차영웅의 압도적인 활약에 힘입어 상황은 곧 종료되었다.

“이 간나새끼들! 이걸로 끝이라 생각치 말라우!”

영애는 패배를 인정하자마자 홧김에 자신의 배를 갈라 할복했다.

D공간.

한적한 시골마을 어느 집.

료코와 수희가 만났고, 두 사람이 주변을 살피러 나갔던 사이 집안에 있던 천하MSC 팀원 세 사람과 신라MSC 팀원 두 사람이 격돌했다.

료코와 수희가 돌아왔을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자신들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해 있었다.

E공간.

함께 갇힌 팀원 중에 미라만 유일하게 천하MSC 소속이었고 무려 다섯 명이 신라MSC 팀원들이었다.

숫적으로 우세했던 신라MSC 팀원들은 자신만만하게 그녀를 힘으로 제압하려했으나 순간 전세가 역전되며 하나씩 하나씩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미라만이 홀로 살아남았다.

그 E공간을 끝으로 세 번째 나락이 끝이났다.

세 번째 나락이 끝이나자 연합MSC 전원이 현실세계로 돌아왔고, 이번 생존자는 천하MSC 10명과, 신라MSC 6명뿐이었다.

세 번째 나락에서는 양팀을 합해 총 15명이 사망했다.

우주는 쓰러진 팀원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암울하군.”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락에 빠졌을때 상대팀원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괴물과 요괴들도 마주치는 족족 잡아죽였기에 그에 비례해서 바쿠의 체력도 줄어들었다.

아울러 디버프를 받은 팀원들이 사망할수록 바쿠의 체력 또한 덩달아 줄어드는 것 같다고 토성이 무전으로 알리기도 했다.

팀원들의 생명력이 바쿠의 체력과 연관이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팀 내부에서 일어난 유혈사태가 바쿠의 공략에 도움이 되고 있었을 줄이야. 참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주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죽어야 산다는 말인가...?”

좌우간 바쿠의 체력은 총 30억 스태미나 중에 20억 스태미나가 깎여져 있었고, 이제 남은 10억 스태미나를 없애기 위해서 후반전에 돌입할 차례였다.

데미지 미터기에서 전체딜량은 천하MSC가 신라MSC를 넘어선지 오래였으며 덩달아 차영웅의 마음도 조급해져만 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이번 나락에서 천하MSC의 팀원 수를 최대한 줄여야만 해.”

이윽고 살아남은 16명의 연합 MSC 팀원들은 또다시 나락에 빠져들었다.

***

A공간 = 우주, 료코, 천하1, 천하2 B공간 = 수연, 수희, 천하3, 천하4, 신라1, 신라2C공간 = 미라, 영웅, 연진, 신라3, 신라4, 천하5, 네번째 나락.

A공간.

후지산. 천하MSC 멤버들로만 구성된 A공간은 별문제 될것이 없었다.

우주와 료코는 눈물겨운 상봉을 마친 뒤 곧바로 팀원들을 이끌고 A공간의 임무를 찾으러 떠났다.

B공간.

원숭이들이 우는 소리로 가득한 울창한 삼림.

수연은 혀를 찼다. 이번에 마주친 상대는 이미 자신에 대한 적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서 잔꾀를 부리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신과 꼭 만나고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수연 씨.”

수연을 발견한 수희는 주저없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B공간에서 양팀의 주장격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며 대치하자 다른 팀원들까지 덩달아 가세했고, 그 험악한 분위기는 금세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으로 번졌다.

“기가 막힌다. 언제는 언니라고 하더니만 이젠 수연 씨네?”

“어디 언니가 언니 같아야죠.”

치열한 전투 끝에 최후에는 수희와 수연만이 남았다.

레이드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개개인의 아트만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특히나 수연은 세 번째 나락 당시 바닷속을 헤엄치면서 상당량의 아트만 에너지를 소모시킨 상태였다.

따라서 그녀는 아트만 에너지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나노슈트를 전개할 여력이 없었고, 휴식을 취하기 전까진 재착용이 불가능했다.

그에 반해 수희는 두 번째 나락과 세 번째 나락을 운좋게도 별다른 전투없이 거쳐와서 그런지 아트만 에너지가 제법 남아 있었고, 그녀가 여유있게 승기를 잡는듯 했다.

“제가 이겼네요.”

높게 자란 대나무숲.

수희는 가죽 슈트만 입은 수연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도망치다 붙잡힌 수연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씩씩 거렸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조금 겁먹은 듯 크게 열려 있는 두 눈은 눈썹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설마, 날 죽일 생각이야? 내가 뭘 잘못했다구...? 내가 너한테 아프게 한게 뭐가 있다는거야 대체...!”

“정말 몰라서 그러는거예요?”

수연은 울먹이며 말했다.

“몰라! 모른다구! 난 그저 천하MSC에 임대 갔던 기억밖에 없어! 그게 다야!”

수연은 다시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수희야... 왜 그래. 우리 한때 친하게 지냈었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내가 그렇게 미웠어? 왜 날 싫어하니 흑흑... 잘못이 없더라도 무릎꿇고 빌라고 하면 빌게. 응? 제발 죽이지 말아줘. 우리 레이드 해야되잖아. 여기서 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레이드도 실패로 끝날거야. 안그러니?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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