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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70화 (270/285)

270화

미라가 피 묻은 뼈칼을 심장에서 뽑아내자 힘을 잃은 사내의 상반신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거의 동시에 불쑥 나타난 미라를 보고 크게 당황한 태평과 팀원 한 명이 재빨리 나노슈트를 착용했다.

“어떻게 살아난거야!”

하지만 미라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녀가 먼저 나노슈트를 착용하면서 번개처럼 다른 팀원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내의 목을 움켜쥐고 손아귀힘으로 강하게 목을 조르며 아트만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커허허허헉!”

사내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 씨발년이!”

태평이 황급히 아트만 에너지를 쏘자 미라는 목을 쥐고 있던 사내의 몸을 방패로 삼아 공격을 막았다. 태평의 공격을 대신 맞은 사내는 또다시 와들와들 춤을 추며 정신을 못차렸다.

태평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직접 몸으로 달려들려는 찰나, 미라가 여전히 사내의 목을 쥔 채 뒤로 두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날 죽이고 싶으면 따라와보지 그래.”

미라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팀원 한 명을 데리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태평이 곧바로 쫓아갔지만, 머지않아 눈앞에 보이는 것은 미라가 데리고 사라졌던 팀원의 시체였다.

헬멧은 망가져 있었고 뒤통수에 날카로운 뼈가 꽂힌 채 죽어있었다.

“너 이 씨발년 찾아내면 아주 갈아마셔주겠어!”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정신없이 미라를 쫓다보니 어느새 그녀를 죽였던 지점까지 도착했다.

태평은 새까맣게 탄 미라의 시체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머릿속이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미라를 먼저 잡고보자는 식으로 그곳을 지나쳐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동굴의 끝에는 거대한 애벌레가 서식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잡아볼 생각에 덤벼봤지만 아트만 에너지를 다 소모시켜도 죽지를 않자 태평은 반대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거대한 애벌레로부터 달아나느라 만신창이가 된 태평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라는 어둠속에서 파충류의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바로 나노슈트를 착용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숨을 돌리고 있던 태평을 향해 아트만에너지를 쏴날렸다.

“으아악!”

태평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나노슈트를 전개할 기운도 없어졌는지 착용상태가 강제로 풀려버리는 바람에 맨몸이 되었다.

미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겼네.”

“사, 살려줘...... 크흑...!”

“걱정 마. 또 복제해주겠지. 어차피 넌 클론이잖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먹으로 그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나노슈트를 해제하고 파충류의 모습을 하며 자취를 감췄다.

곧바로 동굴 안쪽에서 등장한 거대 애벌레가 바닥에 흐르고 있는 뇌수를 보더니 꿈틀꿈틀 기어가서 혀를 내밀고 할짝할짝거렸다.

다른 팀원들이 속한 F공간.

영애를 비롯해 천하MSC 팀원 두 사람과 신라MSC 팀원 세 사람이 속해 있었다.

이들은 수십명의 팀원들과 따로 떨어지게된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말싸움만 주고받다가 나락이 끝이났다.

G공간.

소민과 수희를 비롯해 천하MSC 팀원 한 사람과 신라MSC 팀원 두 사람이 속해 있었다. 신라그룹 이선주 회장의 딸인 소민의 중재로 인해 무난하게 양측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함께 탐험을 하다 어느 순간 나락이 끝이났다.

H공간.

천하MSC 팀원 네 사람과 신라MSC 팀원 두 사람이 속해 있었다. 양측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천하MSC 팀원 세 사람이 살아남았고, 다른 세 사람은 살해당했다.

I공간.

현아를 비롯해 천하MSC 세 사람과 신라MSC 두 사람이 속해있었다. 현아가 양측의 싸움을 말리는 도중 갑자기 천하MSC 팀원 한 명이 공격을 당해 쓰러졌고, 그로 인해 싸움이 크게 일어났다. 현아와 천하MSC 팀원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J공간.

연진을 비롯해 신라MSC 세 사람이 속해 있었다. 복제인간인 연진을 비하하던 신라MSC 세 사람은 울컥한 그에게 모두 살해당했다.

J공간을 끝으로 연합MSC 팀원들은 일정 시간이 경과하자 전원 나락에서 빠져나왔다.

나락에서 생존한 팀원들은 천하MSC 16명, 신라MSC 15명으로 총 31명이었다.

처음 50명에서 무려 19명이나 사망해버렸다.

미라는 이번엔 본능적으로 지체없이 바쿠에게 달려들었고, 생존자 중에는 다행스럽게도 리그베다와 힐러가 각각 2명 3명씩 살아남아 미라에게 힐을 줄 수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사망자가 부지기수로 늘어나다니!’

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락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이 바닥에 픽픽 쓰러져 있었다. 몇명씩 흩어진 상태에서 어려운 상대라도 만났 것일까?

어째서?

우주는 쓰러져 있는 연화를 보면서 오픈 채널로 팀 전원에게 물었다.

“이번 나락에 빠졌을때 천하MSC 소속인 박연화 낭자와 같이 있었던 팀원들 있소?”

-......

전원 대답이 없는가 싶더니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내가 같이 있었어.

수연이다.

우주는 절로 그녀와의 대화에 거부감이 들었지만서도, 일단 말을 주고 받았다.

“누님이 같이 있었소? 연화 낭자는 어째서 숨진게요?”

-나락에서 강력한 괴물을 만났는데, 그녀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참 안타까워. 흑흑...

무전기 너머에서 수연이 흐느껴 우는척을 했다.

우주는 반신반의했다.

그녀의 말을 100% 믿기가 애매하다.

갑자기 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지마. 다 거짓말이야. 여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전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과 싸우다 뒈진거야. 동료들한테 개죽음 당한거지. 나도 몇놈 죽였고.

“뭣이?”

순간 무전기 너머에서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들이 귀에 연달아 들려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연진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무슨! 이런 멍청이들!”

우주는 대노했다. 참으로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차영웅과 단 둘이 나락에 빠졌던 우주로서는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른것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연진이 계속 말했다.

-이 나락이라는게 우리끼리 싸움을 붙일 생각인가봐. 그리고 지금 다들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애써 정상인인척 하지만 저마다 마음속에는 아주 악랄하고 사악한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을걸? 천하와 신라 간에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야.

“아...!”

분란을 제때 매듭짓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이 컸다.

‘지금이라도 멈춰야한다!’

우주가 즉각 소리쳤다.

“다들 정신차리시오! 우린 레이드를 하러 온것이지 서로 싸우러 온것이 아니요! 여러분은 지금 바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소! 각자 서로가 본심이 아니다라는걸 기억하시오! 또다시 나락에 빠지거든 그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로 인내하고 참아야 한다오! 참을 인 세 번이면 연봉이 늘어난다는 말도 있소! 이번 레이드를 성공시키면 여러분들의 연봉도 늘어날 것이 아니오이까! 맹목적으로 화만 쫓지말고 차라리 합리적으로 돈을 쫓으시오! 그게 더 본인들에게 이득이외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팀원들의 분노가 여전했고, 개중에서 사람을 죽이는 맛을 알아버린 자들은 또다시 살인이 하고 싶어졌다.

더구나 어떤 한 사람 또한 나락을 빠져나오자마자 죽은 팀원들을 보고 그때부터 살인 의욕이 새롭게 솟구쳐났다.

그자는 바로 차영웅.

차영웅은 데미지 미터기를 주시하면서 연합MSC의 분열보다 전체딜량에 대한 생각으로 걱정이 앞섰다.

이번 나락에서 신라MSC 소속 딜러의 사망자 수는 7명. 천하MSC를 전체 딜량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딜러 20명 중에서 최소 18명은 생존해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뭔가.

딜러가 13명 남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들보다 5배는 더 딜이 잘나오는 태평까지 사망해버렸다. 이래가지고서는 도저히 천하MSC를 이길 수가 없다.

천하MSC는 몇명이 죽든간에 어차피 신우주 혼자 먹여살리는 팀이 아니었던가. 이른바 신우주는 하드캐리다.

(Hard Carry, 다른 팀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질 것 같은 경기를 월등히 잘 하는 한 사람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행위.)우주가 죽지 않는 이상 설상가상으로 차영웅에게는 마땅한 대응책도 없고, 압도적인 딜량을 자랑하는 그를 상대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와중에도 데미지 미터기에서 천하MSC의 전체 딜량 수치는 우려했던대로 가히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신라MSC가 따라잡히는건 시간문제였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나.”

이 시점부로 그는 변하기로 했다. 천하MSC를 꼭 이겨야만했고, 자신의 존재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강박장애다 싶을 정도로 협동레이드에서 지는 것을 싫어했다. 인간에게 지고 복제인간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모든 면에 있어서 인간보다 복제인간이 우수해야만했다.

복제인간으로서 태어나 인권의 반의 반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는 이상 오로지 그것만이 해결책이었다. 그래야만 자신들에게 가치가 생기고 폐기되지 않은 채 영원히 살아나갈 수가 있으니까.

따라서 차영웅은 우주를 상대로도 복제인간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다.

“미안하네 우주군.”

그는 첫번째 나락에 떨어졌을때, 숲속에서 우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우주가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몇가지 돌발변수가 있다고 했는데, 하나 낭자 말고 다음은 무엇이오. 도와줄 수 있으면 내 도와줄테니 내게도 알려주시오.”

“다음? 다음이라, 다음 돌발변수는...”

다시 현재.

차영웅은 살짝 입꼬리를 추켜 올렸다.

“다음 돌발변수는 바로 나였네.”

나락에서 빠져나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연합MSC 전원은 세번째 나락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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