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67화 (267/285)

267화

<13권>

팀원 개개인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는 바쿠의 디버프는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고 욕망을 부추겼다.

13년 전 싱싱했던 수연의 몸을 탐하지 못했던게 여태껏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한동식은 왠지 지금이 기회다 싶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의문을 품어볼 생각도 안들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한동식은 수연을 지나쳐 곳간 입구쪽으로 걸어가서 바깥에 있는 조원들을 살펴봤다.

네 명의 조원들은 여기저기 대충대충 살피며 사소한 농담 따먹기나 주고받고 있었다.

한가롭고 여유있는 모습이다. 수연을 데려다주고온다면서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될 것 같다.

솔직히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수연을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광경을 그리기 보다는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그녀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사정까지 대략 15분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 잠깐 저짝에 좀 다녀올란다.”

한동식이 수연과 함께 곳간 밖으로 나오자 조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저짝이 어디여?”

“무슨일입니까? 오래걸리세요?”

“두 분이 어디가시는데요?”

“땡땡이냐?”

한동식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뒤에서 따라오던 수연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얘가 내 친군데, 길을 잃었다고 해서말이다. 얘네 팀원들한테 데려다주고 금방 올테니 걱정들 마라.”

“에고, 숙녀분이 혼자다니면 큰일이지. 조심히 바래다 드려라.”

“넵. 알겠습니다 한 과장 님. 여긴 걱정마시고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수연 씨! 전 마길석입니다! 또 봬요!”

“이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레이드 끝나고 동식이랑 다 같이 모여서 술 한잔하죠!”

조원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을 순순히 보내줬다.

“이쪽으로 가자.”

한동식과 수연은 사람이 없는 외딴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입술을 맞추며 굶주려 있던 욕망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마른 지푸라기 위로 벗은 옷가지가 하나씩 떨어지고 마침내 두 사람이 속옷까지 다 벗어던졌을 무렵, 한동식은 우람하게 근육진 가슴을 내보이며 단단하게 발기한 고추를 움켜쥐고 알몸으로 벽에 등을 기댄 채 M자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수연의 그곳에 삽입하려했다.

“내 고추맛이 어떤지 그동안 먹었던 다른 새끼들 하고 비교해봐. 미리 말해두는데 아프고 매섭다. 그런데 기분은 좋을거야.”

한동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연의 시선은 한가운데 우뚝 선 고추로 향했다.

여러개의 작은 구슬들이 귀두 테두리 뒤편에 둥글게 심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귀두의 모양이 마치 해바라기처럼 생겼다.

두 뺨이 붉게 상기된 수연은 가쁜 숨결을 고르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이런 자지는 처음이야. 소자지를 보는 것 같아.”

“이제 처음이 아니게 될거다. 그럼 넣는다.”

한동식의 시선이 그대로 아래로 향하자마자 수연이 재빨리 두 다리를 X자로 교차해 음부를 가렸다.

“아직은 안돼.”

“왜? 혹시 애타게 만들려는 속셈이면 시간없다. 나중에 해라 나중에. 실컷 애타줄테니까.”

“정말로 애 태울 속셈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도 안했겠지. 조금씩 조금씩 녹여먹는 재미가 있으니까.”

“......?”

“그동안 날 따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나봐? 이렇게 쉽게 이용당할줄이야 나도 내심 놀랐어.”

수연이 악마 같은 웃음을 짓고 말하자 한동식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가 인상을 구겼다.

“무슨 말이냐 그게?”

“고작 수라 밖에 안되는 너 같은 놈한테 내 몸을 이렇게 쉽게 바칠줄 알았어? 데바와 수라의 신분 차이를 알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뒀어야지. 아쉽게도 우리 사이는 결국 악연으로 끝날 것 같네. 만약 내가 여기서 소리지르면 어떻게 될까나?”

“이 썅년이...!”

발끈한 한동식이 주먹으로 때릴려는 찰나 수연은 두 다리로 그의 가슴을 힘껏 밀쳐서 뒤로 자빠지게 만든 다음에 창고가 떠나가랴 꺄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같은 시간.

“헉, 헉, 헉!”

어느 집에서는 태평이 부모의 묵인하에 재물로 바쳐진 어린 소녀를 안방에서 겁탈하던 중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듣더니 허겁지겁 옷과 나노슈트를 챙겨 입고 소리가 난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뭔일이야 씨팔!”

마을 외곽에 있는 창고에는 멀뚱멀뚱 구경하는 주민들을 포함해 천하MSC와 신라MSC 팀원들이 일제히 몰려와 웅성거리는 중이었다.

태평은 창고 앞에 몰려든 사람들을 헤집고 안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우주와 차영웅이 어떤 남성을 구석으로 끌고가서 심각하게 이야기중이었고, 입구쪽에는 붉은색 가죽슈트로 대충 알몸을 가린 수연이 흐느끼며 울고 있는 것을 신라MSC 소속 여성 팀원 몇명이 곁에 둘러앉아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있었다.

태평이 순간 발끈하며 수연을 향해 소리치며 물었다.

“뭐야 씨팔! 어떻게 된일이야! 너 이 꼴이 뭐야? 설마, 강간 당했어?”

경쟁상대인 천하MSC에 대해 조금은 반감을 갖고 있던 상황에 이 기가 막힌 광경을 보고 도무지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태평과 수연은 제네틱스 입사동기는 아니지만 동갑이고 절친이다. 울화통이 터졌다.

“천하MSC 이 씨발놈들아!”

구석에 있던 차영웅이 뒤를 돌아보며 점잖게 타일렀다.

“나가 있어. 지금 조사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말해줄테니.”

“조사는 무슨 개뿔! 딱 봐도 알겠네 뭘!”

태평은 씩씩거리며 한동식을 가리키고 소리쳤다.

“저 새끼가 강간한거지! 야 이 씨발놈아!”

“이러지 마시오 태평 형님!”

우주가 서둘러 다그치려했지만 바쿠의 디버프까지 받은 태평이 흥분을 주체 못한 나머지 즉시 아트만 에너지를 발사했다.

태평의 손끝에서 발사된 아트만 에너지가 번개처럼 한동식을 엄습했다.

우주는 잽싸게 뒤돌려차기로 태평의 턱을 차서 뒤로 날려버렸고, 차영웅은 한동식이 빛줄기에 맞기 전에 그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콰앙!

낙뢰처럼 뻗어 나간 빛줄기가 그대로 빗나가며 목재로된 벽을 뚫고 밖으로 새어나갔다.

동시에 밖에서 꺅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굳이 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빗나간 공격에 주변에 있던 누군가 맞은 것이다.

우주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잽싸게 밖으로 튀어나갔다.

“제기랄!”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창고 뒤쪽에서 구경을 하던 마을 아낙네가 태평이 쏜 공격을 맞고 가슴을 관통당해 사망해버렸다.

그 광경을 본 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경악에 찬 얼굴로 일그러지면서 그때까지 호의적이던 분위기가 단숨에 반전되어 연합MSC 팀원들을 향해 적나라한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으악! 이, 이게 뭐야!”

돌연 천하MSC 팀원 중에 한 남성이 겁에 질린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뒤에서 지켜보던 마을 처녀의 목이 길게 늘어나면서 그의 몸을 뱀처럼 칭칭 휘감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헤헤헤! 이히히히히!”

목을 길게 늘어뜨린 마을 처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그리고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마을주민들까지 가세해 자신들의 목과 팔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연합MSC 팀원들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히히히히!”

“에헤헤헤헤!”

“커헉!”

“꺄악!”

길게 늘어난 목으로 똬리를 트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하이테크 슈트를 단숨에 박살내며 천하MSC 팀원 두 사람의 목을 졸라 순식간에 질식시켜 죽여버렸다.

“죽여 씨발! 사정 봐주지마!”

“이렇게 될줄 알았다니까!”

“진작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탕탕!

지지직!

펑!

현장은 곧바로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총성과 비명이 잇따라 울렸으며 동료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연합MSC 팀원들은 수백명에 달하는 마을주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반격을 가했다.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 마을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은 최첨단 무기 앞에서 무릎을 끊었고, 급기야 마을이 초토화가 됐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연합MSC 팀원들은 처음에 살해당한 2명을 제외하고 전원 생존해 있었다.

“다 죽였다...”

뜻하지 않았던 돌발 상황이 이대로 마무리가 되는가 싶었지만, 그들에겐 서로 풀어야할 감정의 골이 남아있었다.

폐허가 된 마을 중앙 공터에 모두가 모인 가운데 태평이 나서서 사람들 속에 숨어있던 한동식을 가리켰다.

“저 새끼도 죽여버릴거야. 너 일루 나와!”

가슴 속에 지펴진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줄 몰랐다.

이는 태평을 비롯해 신라MSC 팀원 대다수가 모두 똑같은 심정으로 이를 바득 갈았다.

“우리 수연이가 천하MSC 새끼들한테 강간을 당하다니!”

“우리도 저쪽년들을 강간해버리자! 그래야 성이 풀리겠어!”

신라MSC 팀원들은 수연을 감싸고 돌면서 천하MSC를 향해서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것처럼 으르렁 거렸다.

마침내 보다못한 차영웅이 나서서 그들을 한곳으로 집합시켰다.

“지금 레이드 도중이란걸 명심들 하게. 천하MSC의 도움 없이는 바쿠를 잡을 수가 없어. 그리고 이태평.”

차영웅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손가락질을 해가면서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괜한 선동으로 팀원들한테 분란조장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태평이 어이없다는 듯이 양손바닥을 피며 웃어보였다.

“형님. 이게 선동이라니요? 제가 없는 일 갖고 이럽니까? 수연이가 강간을 당했다구요. 강간을.”

“정확히 말하면 강간이 아니야. 강간미수다.”

“강간미수나 강간이나 어차피 똑같습니다. 저놈들이 우릴 얕보고 수연이를 건드렸다는게 문제 아닙니까.”

차영웅은 태평의 말을 무시하고 모두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너희는 지금 바쿠의 디버프로 인해서 평소보다 더한 흥분을 느끼고 있다는걸 명심해라.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략에만 신경쓰도록 해. 그리고 저 한동식이라는 자에 처분에 관해서는 레이드가 끝난 뒤 응당한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조치를 취하겠다.”

차영웅이 강압적인 목소리를 해가며 난폭해진 분위기를 대충 수습하려는 그때, 돌연 연합MSC 전원의 시야가 흔들리면서 모두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어, 어떻게 된거지?”

연합MSC 팀원들은 너나할것없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앞에는 거대한 바쿠가 있고, 허공에는 수많은 헬리캠들이 떠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긴 현실 속 레이드 현장이다,

“희한한일이군...”

이렇게 짧은 나락은 차영웅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설마, 마을 주민을 전부 몰살시킨 것이 열쇠였던가?”

우주 역시 나락이 벌써 끝났다는 것에 믿기지 않았지만, 바쿠가 어찌되었는지 확인할 생각에 전방을 쳐다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

“미라 낭자! 탱보시오! 탱! 탱!”

미라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온 것에 다소 얼떨떨해 하면서 조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본진을 살펴보느라 저도 모르게 그만 바쿠를 등지고 서있었다.

바쿠는 그 틈을 놓치지않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로 그녀의 등을 후려쳤다.

퍽!

그와 같은 시각.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는 레이드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중이었고, 캐스터가 해설자를 향해 탄성을 자아냈다.

“(와. 역시 한국MSC는 다르데쓰네. 그동안 수없이 투입되었던 우리 일본MSC 중에서 미처 나락도 구경 못하고 전멸한 팀이 백여개가 넘지데쓰네. 정작 나락을 구경한 팀은 다섯 팀에 그쳤는데 모두 나락에서 전멸했지데쓰네. 나락에서 살아돌아온건 한국MSC가 처음데쓰네. 세계 최고 다운 실력을 보여준다데쓰네.)”

“(에... 우선 수많은 팀들이 나락에 빠지지 못하고 전멸했던건 아마도 딜이 낮아서 그런거라 생각시마스. 레이드가 시작되고나서 나락에 빠지는 순간까지의 그 긴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팀 개개인의 '초당 공격력(DPS, Damage per Second)'이 매우 높아야 된다시마스.)”

“(정확한 분석데쓰네. 그런데데쓰네, 나락이 이렇게 짧다니 좀 이상하다데쓰네. 해설자 분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이오나데쓰네.)”

“(글쎄시마스. 제 추측이지만 어쩌면 맛보기에 불과했던게 아닐지시마스.)”

“(아, 그럼 나락이 또 있다데쓰네?)”

“(어쩌면 틀릴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으로 볼때 그럴 확률도 있을거라 봅니다시마스.)”

다시 레이드 현장.

바쿠에게 한대 얻어맞은 미라는 앞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바쿠는 네 발로 뛰어와 먼지가 풀풀 나도록 그녀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쿵! 쿵! 쿵!

너무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안절부절못하고 안타깝게 지켜보고있는 상황에 박대춘 소령이 무전으로 말했다.

-아, 아. 들립니까? 들립니까?

“잘 들리외다!”

-당황하지 마세요. 탱커에게 힐은 잘들어가고 있고, 약간의 충격은 있겠으나 파워드 슈트도 그렇고 탱커도 현재 무사합니다. 도발력은 충분한 상태이니 지금부터 전원 공격을 재개하십시오. 그리고 나락에서 빠져나온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라가 자신을 짓뭉게려는 바쿠의 발을 방패로 막고, 그것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다시 일어서는 동안 공격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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