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바오쮠. 홍콩에서 맨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MPO 홍콩측이 붙인 이름이었다.
“이야아아아아!”
탱커인 서진동이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바오쮠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전까지 일체 움직임이 없던 바오쮠. 높이 17M의 당당하고 거만한 풍모를 한 조각상이 위엄서린 눈동자를 굴리며 서진동을 주시했다.
곧바로 거대한 크기의 언월도가 서진동을 향해 내려쳐졌다.
그와 동시에 서진동은 순발력 있게 방패를 들어올렸다.
쿵!
언월도와 방패가 부딪힌 충격으로 대기가 흔들렸고, 바닥의 먼지가 피어올라 딜러와 힐러진들의 시야를 가렸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자 서진동이 보였다. 그는 바오쮠을 때리러 다시 내달렸다.
서진동이 바오쮠의 두 발목을 때리며 도발력을 쌓는 동안 딜러와 힐러들은 멀찌감치 서서 전원대기했다.
이윽고 도발력 수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공격신호가 떨어졌다.
우주는 왼쪽 두 사람 옆에 서 있는 루이, 나노 슈트를 입은 루이를 흘깃 쳐다보고는 정면을 보며 공격을 시작했다.
먼곳의 전망대에서 VIP석에 앉아있던 류쯔단은 데미지미터기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역시 신우주로군. 시작한지 얼마나되었다고 벌써부터 500만 스태미나라니.}우주 다음으로 2위는 루이였다.
우주가 500만 스태미나를 깎는동안 그는 이제 막 200만을 채우고 있었다.
{제아무리 나노슈트를 입었어도 신우주를 이길 수 없나보군. 그렇다면 나노슈트에 증폭석 다섯 개를 전부 박는다면 어떨려나? 그래도 질까?}증폭석은 2세대 파워드 슈트 한 벌에 5개씩 장착할 수 있다. 1개씩 장착할때마다 데바가 가진 기본 아트만 에너지의 수치를 200%씩 상승시켜준다.
예를들어 현재 우주의 기본 아트만에너지 수치는 2백만.(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했을시의 값.)나노 슈트를 입은 루이의 기본 아트만에너지 수치는 현재 58만.(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했을시 29만. 2세대 파워드 슈트는 윗단계로 올라 갈수록 데바의 아트만 에너지 수치를 200% 증폭시켜준다.) 여기에 루이가 증폭석 5개를 장착하면 아트만에너지의 수치가 나노슈트 포함 총 1200%(기본 수치인 29만에서) 증가하기 때문에 루이의 아트만 에너지 수치는 최종 348만으로 우주를 월등히 뛰어넘게 된다.
이처럼 증폭석은 데바와 기업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그러나 수요가 많은 매머드급 사탄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희소 가치가 있는만큼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개당 1000억. 개인이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증폭석은 기업이 제공해줄 의무가 없고, 데바 개인이 구매해서 장착해야한다. 이는 로얄가드와 똑같다.
로얄가드가 칼과 방패를 자비로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딜러와 힐러는 증폭석을 자비로 마련해야했다. 대신 증폭석을 장착하고 있는 데바는 남들보다 뛰어난 스펙을 인정받고 글로벌 대기업에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페이즈 변환입니다!}
쯔단 MSC의 애널라이저가 소리쳤다.
스태미나가 왠만큼 깎인 바오쮠은 갑자기 언월도를 땅에 거꾸로 꽂은 후 괴상한 주문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우주를 포함해 쯔단MSC 팀원들은 어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눈앞이 밝아졌을땐, 세상이 크게 변해 있었다.
넓은 광장의 북쪽, 고대 중국풍의 거대한 성벽과 우뚝 서 있는 성문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것말고는 사방에 아무것도 없었다. 북쪽을 제외하고는 동서남 방향은 오직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이게 뭐야?}
{뭐지? 뭐지?}
{환상이다! 다들 정신 차려!}
{우린 환상의 세계에 빠진거야!}{어떻게 탈출하는데? 그나저나 바오쮠은 어디갔어?}팀원들 모두 혼란스러워 하는가운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남성 팀원 한 명이 대변이 급하게 마려운지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틀어막고 소리쳤다.
{좌우간 잘됐어! 난 이틈에 똥이라도 싸야겠으니까 알아서들 찾고 있어봐! 어제부터 설사에 걸렸는데 레이드 하면서 참느라 혼났네!}그는 짙은 어둠이 깔린 서쪽 방향으로 부랴부랴 뛰어갔다.
팀원들이 그의 등에다 대고 소리쳤다.
{더러운놈! 냄새 나니까 저 멀리 가서 싸고와!}
{휴지는 있냐?}
{있을 리가 없지. 지 손으로 닦아야지 뭐.}
{하하하!}
팀원들이 잠시 긴장을 늦추며 중국 무인 같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순간 서쪽으로 100M 쯤 넘게 뛰어가던 사내의 머리가 팍 하고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이내 철푸덕 쓰러졌다.
{어?}
돌연 팀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확 사라지며 일제히 표정이 굳었다.
서진동이 급하게 그쪽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는 곧바로 쓰러진 사내의 얼굴쪽으로 다가가지 않고, 본능적으로 다리를 잡아 끌어 자신쪽으로 오게했다.
그리고 헬맷을 벗겼다.
벗기자마자 피비린내와 더불어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사내의 머리가 터져 있었다. 뇌수와 두피가 섞여 바닥으로 질질 흘러내렸다.
서진동이 눈을 크게 뜨며 광장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팀원들쪽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모두 제자리에서 꼼짝하지마!}
한편, 쯔단MSC가 레이드를 하던 란타우 섬. 휑한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바오쮠은 언월도를 거꾸로 내려꽂은 채 다시 조각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바오쮠을 상대하던 쯔단MSC 47명 전원 역시 마찬가지로 선 채로 굳어 있었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으며 마치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병마용갱의 보병처럼 동작이 멈춰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중 한사람이 툭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시각.
헬리캠을 통해 영상으로 시청하고 있던 류쯔단이 의자에서 다리를 꼬우며 살며시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그의 좌우옆자리와 뒷자리에는 홍콩에서 내로라하는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드디어 시작됐군요. MSC 2개를 전멸시켰던 페이즈가.}{신우주가 꼈다고 달라지기나 할까요? 벌써 한 명이 죽었는데.}류쯔단의 옆자리에 앉은 중견 남성배우의 말이었다. 그는 젊은시절 주연을 맡았던 여러편의 영화를 히트시키며 홍콩에서 국민배우라고 칭송받는 사내였다.
류쯔단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달라지든 안달라지든 어차피 우린 광고와 중계권료, VOD 서비스, 이번 레이드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출간, 사망한 직원을 추모하는 영상에세이집 발매 등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내서 돈만 벌면 그 뿐이죠. 우리가 직접 레이드를 뛰는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성공과 실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윗 사람들은 그저 흥미있게 지켜만 보면 되는 겁니다. 만약 이번 MSC가 전멸하면 또 사람을 사다 레이드를 뛰게 만들면 되는거고요. 그렇잖아도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오늘 25명이 사망하면 내일 250명을 새로 채용하면 되는겁니다. 취업난이 참 고맙죠.}{하지만 데바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넉넉치 않습니다.
채용공고를 실시한다해도 수라나 일반인들의 지원이 많을테구요.}{그건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어째서죠?}
{작은 땅을 가진 홍콩에 한해서만 국한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저 위에있는 중국으로만 올라가도 전체 13억 인구 중에 수라가 5억 데바가 무려 3백만명이나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을때까지 평생 고용할 수 있으니 부디 걱정 마시길.}{그렇게나 인원이 많은데 어째서 기업들은 데바와 수라를 반반씩 섞어가며 쓰는겁니까? 이왕이면 전원 데바로 구성한 MSC가 안전하고 빨리 잡고 좋지 않겠습니까?}{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업이 이익을 따지기 때문이죠. 데바 개개인의 몸값이 비싸기에 비교적 저렴한 수라를 섞어 쓰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반반씩 섞어놔도 왠만한 매머드급은 잡히기 때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