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11권>
보는 것만으로도 참 기묘했다. 과학으로 발전을 이룬 문명에 왜 저런게 존재하나 싶었다.
게다가 흉측스럽기까지 했으니 여섯개의 눈은 감고 있었으나 정면과 좌우를 쳐다보고 있는 세 개의 머리에 달린 입은 아 하고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길다란 것이 뻗어나와 바닥에 떨어진 뭐라도 주워먹는지 그 주둥이가 바삐 움직였다.
그 입에는 턱이 없고, 빨판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입가에 돌기가 있었다.
현주가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은 바로 우리 옆에 있어. 저 산 너머에 저런게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군.”
매머드급 사탄의 이름은 바즈라(Bajra)였다. 신화속에 그려진 어떤 신의 모습과 외관이 흡사하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렸다.
천하 MSC와 오성 MSC 전원은 사냥 준비를 끝마치자 곧바로 두 대의 수송 차량에 나눠서 올라탔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도로가 놓인 산을 돌아 약 20분 정도를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해안 마을에 도착했다. 어부들이 살던 작은 마을은 텅비었고, 짖어대는 개도 없이 쓰레기만 날리고 을씨년스러웠다.
팀원들은 하나 둘씩 차량에서 뛰어내리며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사탄에게 자동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녀석의 피부는 마치 황금으로 도금이라도 한듯이 찬란하게 빛이났다.
“바즈라를 가까이서 보니까 아까보다 좀 더 떨리네요.”
천하물산 신입사원 이진혁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우주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지난번 우주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까닭에 더욱 믿고 의지 하는 것 같았다.
“사, 사장님은 이런 경험이 수도 없이 많으시겠죠?”
“뭐, 저런건 잡아본적이 없지만 비슷한 경우는 꽤 있긴하오.”
“처음에 긴장 안하셨나요?”
“안했을리가 있겠소. 눈앞에 생전처음보는 해괴망측한 것들이 날뛰어 다니는데 떨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소. 하지만 소생은 내 소중한 동료들을 지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던것 같소이다.”
“저, 저도 꼭 동료들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좀 무섭긴 하지만...”
“염려마시오. 지금은 이렇게 긴장돼도 나중에 잡고나면 속이 무척 후련하고 대단히 기쁠것이오. 그때의 기분을 생각하며 힘내시오.”
“넵!”
뒤이어 지원팀과 의료팀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후방에 대기한다.
지원팀의 경우에는 각종 최첨단 정보 장비들이 보내오는 자료들을 종합 분석해 전장 상황을 넓게 보고, 문제점이 발생했을 시 리더가 신속히 조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의료팀의 경우에는 베다와 리그베다가 가진 힐 기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사지 절단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시 응급차를 이용해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5분 후에 바즈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겠다. 모두 신속히 대열을 갖춰라!”
협동레이드 시에는 양기업의 팀원들을 대표하는 리더를 새로 뽑는다. 이때 양 팀장 간의 실력과 능력 비교는 불필요했다. 주로 물자 지원을 많이 하거나 기업규모가 큰 쪽에서 통합팀장을 맡으며 레이드 도중 문제를 일으킨 상대 기업의 팀원을 그 자리에서 즉시 처분할 수 있는 강한 권한도 갖고 있었다.
이번 협동레이드에서는 현주가 통합팀장이었다.
“이동!”
현주의 호령에 맞춰 하이테크 슈트를 갖춰 입은 24명의 팀원들이 열을 맞춰 이동을 시작했다. 이 중에 데바는 총 13명. 나머지 12명은 비록 수라라고 하여도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꼭 개인화기가 필수로 필요했다. 하이테크 슈트를 활용해 아트만 에너지를 생성해 낼 수가 없기 때문에.
현주와 미라만 있는 탱커진은 선두 그룹에, 우주와 료코, 진혁이 있는 18명의 딜러진은 중미에, 3명의 베다와 2명의 리그베다가 있는 힐러진은 후미에서 따라갔다.
“준비!”
협동팀은 마을을 빠져나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해안가에 발을 디뎠다.
동시에 바닷물에 잠기는 모래사장 위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던 바즈라가 기척을 느끼고 눈을 부릅뜨며 밖으로 내밀고 있던 혓바닥 같은 것이 잽싸게 입안으로 들어갔다.
정면과 좌우를 바라보는 얼굴들은 마치 방해를 받아 기분이 나쁘다는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1시, 3시, 5시, 7시, 9시, 11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여섯개의 팔이 제각각 손목을 빙빙 돌리며 보는이로 하여금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압둘라 자바라하. 압둘라 자바라하. 압둘라 자바라하.]
바즈라는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꼭 불경을 외우는 것 같았다.
20M에 달하는 거체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현주와 미라가 동시에 모래사장을 내달리며 바즈라가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만나서 반갑다! 날 봐!”
“내가 더 섹시하니 날 보려무나! 이 여잔 뚱뚱해서 안예뻐!”
파앙!
바즈라 앞까지 다가선 현주와 미라는 한순간 노란빛의 도발력을 온몸으로 방출하며 각자 자신을 쳐다보게 하려 노력했다.
홀로 선두에 서서 팀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자부심. 자존심 강한 로얄가드이자 탱커끼리의 경쟁이었다.
보통 로얄가드들은 전용 검과 방패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회사측에서 제공해줘야 하는 장비가 아닌 본인이 직접 알아서 구매해야 했다. 천하물산의 미라만 유일하게 돈이 없어 사지못했을 뿐이지 누가 더 좋은 검과 방패를 샀느냐에 따라서 로얄가드의 연봉이 상승하고 취업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로얄가드라는 직업군의 숫자가 다소 적다지만 국내 최고 기업인 신라그룹이나 오성그룹을 희망하는 로얄가드들은 많다. 하지만 모두가 들어갈 수는 없다. 각 기업마다 로얄가드에 배정한 T.O는 최대 네 자리 뿐이고, 이때 면접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자기소개서와 학력, 봉사활동, 토익점수, 어학연수가 아니라 아트만 에너지의 수치와 고가의 무기 그리고 장인이 만든 방패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렸다.
따지고 보면 로얄가드란 직업군은 그들이 희소한 까닭에 원하는 기업이 많으면서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업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기업마다 4~50명씩 보유하는 딜러들처럼 T.O가 많은것도 아니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T.O가 무한대인 베다나 리그베다에 비해 좋은 일자리 찾기란 바늘구멍보다 비좁았고, 검과 방패를 사기 위해서 돈은 돈대로 들었다.
“아쉽게 됐군! 나의 승리다!”
현주는 칼을 사용해가며 미라를 제치고 바즈라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했다.
그녀에게서 방출된 도발력의 기운은 바즈라를 무척 열받게 하며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게 만들었다.
“하하! 마물(魔物)도 역시 예쁜 여자를 알아보는군! 아침에 우주한테 잘보인답시고 안하던 화장을 한 효과가 있어!”
현주의 말에 미라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여유있는 표정으로 바즈라를 향해 말했다.
“여자 잘못만나면 고생한다 너. 나중에 후회할거야.”
정확히 말하면 현주의 아트만 에너지 수치가 미라보다 높았고, 여기에 더해서 무기와 방패까지 가지고 있음으로서 바즈라를 더욱 열받게 할 수가 있었다.
미라는 일단 도발력을 계속 유지한 채로 현주가 쓰러질때를 대비해 부탱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다.
부탱커의 역할은 별거 없다. 메인 탱커와 계속 함께 공격하면서, 도중에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를 돌연변이 생물(잔몹)을 처리하러 잠시 뛰어다니면 된다.
까앙! 깡!
칼로 바즈라의 무릎을 때리니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흡사 청동으로 만들어진 불상을 닮은것 같았다.
[압둘라 자바라하! 압둘라 자바라하!]
바즈라가 한 발을 높이들어서 현주를 깔아뭉갰다. 그러나 현주는 그것을 방패로 막고 발바닥을 찌르고 베고 바즈라의 피부에 기스가 나게 만들었다.
제대로 성질이 난 바즈라는 이번에 활, 화살, 칼, 고리, 방울, 방망이를 쥐고 있던 여섯개의 손 중에서 방망이를 쥔 손으로 그녀를 연신 두들겨 팼다.
퍽! 퍽! 퍽퍽퍽!
퍽퍽 맞을때마다 푹푹 들어갔다. 한대씩 맞을때마다 현주가 모래사장에 조금씩 파묻혔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녀의 키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현주의 힐을 전담으로 맡기로 한 베다이자 예전에 파업했던 한웅철이 그녀에게 큰 힐을 퍼부었다. 현주가 입은 하이테크 슈트는 신성한 기운을 받아 표면의 보호막을 정상수치로 회복시켜 나아갔다.
“더! 더! 더 때려보지 그러냐!”
현주는 신이난 듯 떠들더니 검과 방패를 잠시 집어던지고 배꼽까지 파묻혔던 몸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얼른 검과 방패를 다시 집어들었다.
깡!
깡!
공격 횟수가 늘어갈수록 도발력은 점점 쌓이고 있었다.
그녀가 홀로 도발력을 쌓는 동안 딜러진들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들 틈에 섞여있던 우주는 현주의 안전을 염려해 살짝 긴장한 얼굴이면서도 왠지 설레였다. 머릿속에는 바즈라를 잡고 얻는 순이익을 계산하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부통합팀장으로서 할일은 다했다.
“리그베다님들! 이제 버프 주시오! 슬슬 공격하겠소이다!”
“예!”
먼 곳을 바라보며 주변에 멍하니 서 있던 리그베다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참고로 이들은 베다 보다는 못한 힐량이지만 입에 풀칠할 정도의 힐 기술은 가지고 있었다.
버프의 종류는 리그베다마다 똑같거나 달랐으며 각자 한 종류의 버프만 습득하고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두 종류의 버프만 받을 수 있었다.
오성MSC가 보유한 두 명의 리그베다가 가진 기술은 하나는 스나의 5% 공격력 증가 버프였고, 다른 하나는 사탄의 심신을 약간 지치게 만드는 일명 피로도 증가 디버프였다. 피로도 증가 디버프를 받은 사탄은 몸이 살짝 나른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하품이 나며 졸립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누워서 잘 정도로 심한 졸림 현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피곤함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이 조금 흐려질 뿐이었다.
남성 리그베다 한 명이 스나에게 버프를 돌리는 동안, 다른 여성 리그베다는 저 멀리 바즈라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현재 도발력 수치는?”
우주는 무전으로 후방에서 대기 중인 김토성에게 물었다.
-맥시멈인 100% 중에 현재 80%까지 쌓았습니다! 이 정도면 안정권입니다!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쳤다.
“좋다. 조금만 더 앞으로 이동합니다!”
딜러진들이 바즈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굳은 표정을 하고, 열을 맞추며 가까이 걸어가는 와중에 옆에 있던 진혁이 말을 더듬으며 입술을 열었다.
“사, 사장님. 저 잘할 수 있는거죠? 잘할 수 있으니까 이 자리에 온거죠? 이게 바로 토끼급, 호랑이급을 사냥할때와는 다른 진짜 프로들이 하는 일인거죠? 저도 이제 프로인거죠?"
우주가 옆을 돌아보며 그의 생체리듬을 체크하니 진혁은 체면을 못차릴 정도로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다는 분석까지 디스플레이창에 띄워졌다. 흔히들 하는 속어로 그는 쫄아있었다.
우주는 뭔가 불안한 기분을 느꼈으나 여기까지 데려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집에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오직 그가 마음을 편히 먹도록 최대한 긴장을 풀게끔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주가 나서기도 전에 료코가 먼저 나섰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시대때 부하들을 다루던 방식으로 진혁을 엄격하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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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쉬는 날이네요!
정오까지 퍼질러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