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그때까지 무너져 내린 잔해 위에 우두커니 서서 소라와 교신을 나누고 있던 우주는 무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으로 갔을 거요.”
“제 생각과 좀 다른것 같습네다. 야스쿠니 특공대니 완구 특공대니 이제 거의 다 궤멸되어 가는 것 같습네다.
발붙일데가 없어지는 마당에 여기 남아있어서 더 뭐하겄습네까? 헤라클레스는 똘마니들에게 맡기고, 마츠다이라를 포함해 한규만이나 한소영 같은 우두머리들은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 하기 위해 인천이나 강원도쪽으로 도망가지 않았겠습네까?”
우주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捕蟬 黃雀在後).”
우주는 재차 말했다.
“이 상황은 확실히 당랑포선 황작재후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오.”
“당낭뽀선 황쟉제우? 그게 무슨 뜻입네까? 내래 한자에는 약해서 이해가 잘 안갑네다. 풀어서 해석 좀 해주시라요.”
“사마귀가 눈앞의 매미를 잡으려다 정작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꾀꼬리를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의 위기를 보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외다.”
“음... 그래도 잘 모르겄습네다. 더 쉽게 좀 풀어주십디오.”
“이 고사를 조금 전 상황에 빗대어 보시오. 간단히 말해, 사마귀는 소생이고, 매미는 마츠다이라였소. 꾀꼬리는 헤라클레스요.”
“꾀꼬리가 잡아먹는다 하면, 우리 모두 헤라클레스에게 몰살 당해 죽는다는 말입네까?”
“그럴거요. 마츠다이라는 필시 헤라클레스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게요. 놈을 찾느라 다른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단 일단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으로 가면 무언가 해답이 나올 것 같소. 분명 그 안에 있으리란 짐작이 가지만, 보기 전까진 확신은 할 수 없소.”
“그 거대한 기계 덩어리를 타고 돌아와서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겁네까? 대통령도 풀어준 마당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파괴만 일삼는다면 그거야말로 무식한 시장잡배나 하는 짓과 뭐가 다르것습네까?”
“그 점이 내가 궁금한거요. 수십년을 기다려왔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마당에 그는 대체 헤라클레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통 속을 알 수가 없소이다.”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든, 일단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보시디요. 저도 살짝 들어보니 대장동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네다.”
“그 전에 차량을 빌려야 할 것 같은데, 이곳 지휘관을 찾아가서 부탁을 해야겠소.”
“그거라면 걱정 마시라요. 내래 이미 부탁을 해두었습네다. 이번에는 헬기로 갈 생각이카니 헤라클레스가 있는 곳에 금방 당도할것입네다.”
***
경기도 하남시.
도심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하남시 일대는 불바다로 변하고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헤라클레스.
63빌딩을 그대로 엎어놓은 듯한 크기의 네 발 달린 거대한 기계로봇은 도심속 불길을 뚫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나갔다.
가공할만한 위력과 크기를 자랑하는 그 앞에 감히 대적할 자가 없어보였다.
그로부터 3km 떨어진 지점.
“빨리 내려라! 빨리, 빨리!”
일반 보병을 태운 육공 트럭은 2대였고, 그 뒤를 기연합의 파워드 슈트 부대를 태운 백공 트럭 3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병사들이 뒷칸에서 정신없이 뛰어내리는 사이, 군복을 입은 한 사내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홀로 골목길에 들어설때였다.
돌연 누군가 뒤에서 그 사내의 어깨를 잡아챘다.
“어디 가는 것이냐! 독단 행동은 금지라고 말했겠지!”
철모를 깊게 눌러쓴 사내는 침착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대위 계급을 달고 있는 자가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렸다.
녹슨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모르는 척 하면 될 것을 뭐이리 일을 열심히 해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마는가?)”
스윽.
푹!
“커억...!”
일본도가 대위의 심장을 꿰뚫고 금세 사라졌다.
무력하게 당한 대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병사들이 황급히 소리를 지르며 내달려왔다.
대위의 숨은 턱턱 막히고 있었고, 보도블럭이 깔린 바닥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범인을 찾을 생각에 주변을 한참 찾아헤맸지만, 대위를 찌른 사내는 이미 저멀리 사라진 뒤였다.
마츠다이라.
마츠다이라는 입고 있던 군복과 군화를 벗어던졌다.
속안에 입고 있던 하오리하카마(18세기 일본의 무사들이 입던 복장)가 펄럭였다.
아울러 허리에 일본도를 차고 게다를 신은 채로 뚜벅뚜벅 걸어나아갔다.
이윽고 헤라클레스의 근처에 당도했을때, 제국주의시대 일본 군복을 차려입은 병사 하나가 그를 마중 나왔다.
그와 함께 헤라클레스에 다가가자 곧바로 배밑에서 원통형 엘레베이터가 수직으로 뻗어 내려왔다.
사방에서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졌지만, 마츠다이라는 그것을 타고 헤라클레스의 내부로 온전히 진입할 수 있었다.
통제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내부에 있던 군인들이 마츠다이라를 향해 일동 힘차게 경례를 붙였다.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십니다!)”
마츠다이라가 경례를 받은 후 말했다.
“(이대로 서울까지 진격한다. 도시를 모조리 파괴시킨다. 갓난 아기조차 남겨둬서는 안될 것이야. 조센징들의 씨를 말릴 생각으로 무참히 파괴하고 짓밟아라.)”
“(하!)”
척.
모두의 손이 동시에 내려가고 그들은 다시 의자에 착석하며 각자 맡은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헤라클레스를 진두지휘하던 부관이 마츠다이라에게 상황보고를 했다.
상황보고가 끝나고, 지휘봉을 잡은 마츠다이라는 일본에 있는 나베 신쥬 총리에게 교신을 시도했다.
곧 거대한 스크린에 나베 신쥬의 얼굴이 비치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게 아니었습니까?)나베 신쥬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마츠다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마시오. 우리는 곧 장대한 꿈을 이루게 될거외다.)”
-(이세종을 붙잡았단 말입니까?)
“(그럴 기회는 있었지만, 상황이 긴박한지라 놓아주었소이다.)”
-(이런 젠장! 그를 놓아주면 어쩌란 말입니까!)나베 신쥬의 언성이 높아졌다.
마츠다이라는 진정하라는 듯이 제스쳐를 취한 뒤 말을 이었다.
“(그를 붙잡았다치더라도 사방이 포위되어 손쓸 방법이 없었소. 데리고 나가기에도 충분치 않았거니와 내겐 시간이 별로 없었소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맹수를 착용한 신진루이와 맞닥뜨릴뻔 했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했지만, 그마저도 신진루이에 의해서 결국 간파당하더군.)”
-(빌어먹을!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일을 이렇게 망쳐놓고 뭐가 그리 좋아서 쪼개고만 있는거요!)마츠다이라는 미간을 좁히며 점점 흥분해가는 나베 신쥬에게 제동을 걸었다.
“(네가 내게 호통을 칠 군번이 아닐텐데? 네 외할아버지인 나베 가스케가 이 사실을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하겠군. 그는 내게 있어 좋은 친구였지. 그리고 그에 대해 너무 잘알다보니 어떤 의미로는 이용해먹기 딱 좋은 친구지. 예를 들어 난징대학살이라든지 그가 자행했던 모든 범죄 행위를 담은 증거자료를 일본 국내에 공개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 그 후손인 자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될까?)”
나베 신쥬는 헛기침을 한 뒤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상황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저로서는 도무지 대책이 안서는 군요.)마츠다이라는 여전히 여유로운 채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우리는 서울을 모두 파괴할 것이다. 자위대와 미군은 지금 바로 출격하길 바란다.)”
-(예?)
나베 신쥬는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미군이 먼저 거부할겁니다! 지금은 50년 전이 아닙니다! 그때야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했지만, 현시대는 대의명분이 없으면 군대를 움직일 수가 없는 그런 시대입니다! IT 산업이 발달해 언론과 국민들의 눈치까지 봐야하는 시대인겁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인 미국은 이 상태로는 절대 군대를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못할 것입니다!)나베 신쥬는 이어 덧붙였다.
-(그러길래 중국과 러시아가 발끈하도록 이세종 대통령을 꼭 붙잡아놓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 국가들이 가만히 있는 이상 미국도 마음대로 군대를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군이 없는 상태로는 우리 자위대도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울을 파괴한다는게 아니겠나.)”
-(서울을 파괴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집니까?)
“(어리석군. 국적불명의 정체 모를 집단에게 대한민국의 수도가 파괴당하면 우리 일본에서는 대한민국 방위를 수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자위대를 파견하면 되는일 아니겠는가. 그대는 진정 레지스트 쉴드가 발생하기 전 양국간 암암리에 체결된 한일 안전보장조약을 잊었는가? 내겐 하시도루가 그토록 알려줬는데 말이야. 유사시 한반도 대응 지침을 기억하게.)”
한일 안전보장조약.
한반도 유사시 집단적자위권(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국가들 중의 어떤 한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나라가 이를 스스로에 대한 무력공격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을 발동해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협약.
북한이 멸망하고 레지스트 쉴드가 생겨난 이후로 점점 무의미 해지고 퇴색되어가는 협약이었으며, 이세종 대통령은 이를 파기하기 위해 최근 일본과 협상을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해 늘 딴청을 부리거나 회피하는 식이었고, 동아시아 지역 안정을 위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해왔다.
-(역시!)
나베 신쥬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요! 제가 무식했습니다! 자위대를 파견하면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가 당연히 불편해 할 것이고 그들도 한반도에 군대를 급파하겠군요! 그러다 우리 자위대가 그들에 의해 공격받으면 미군이 미일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참전하면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다.)”
마츠다이라는 음흉한 웃음을 만면에 지었다.
“(우린 이대로 서울로 가서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정체 불명의 세력이 조센징의 수도 서울을 남김없이 때려 부수고 백성을 학살하고 있다고 대내외에 널리 알려라. 그 후 우리 일본은 한일 안전보장조약을 핑계로 자위대를 움직이면 그 뿐이다.)”
-(탁월하신 계획이십니다!)
“(그럼, 서둘러라.)”
-(하!)
일본 도쿄 총리대신관저.
마츠다이라와의 교신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온 나베 신쥬에게 곧바로 비서관이 뒤따라 들어와서 말했다.
“(총리님. 긴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뭔가?)”
“(총리관저까지 찾아온 한 지질학자가 오늘내로 후쿠시마 해역에서 큰 지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알려왔습니다.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저명한 학자인데다 꽤나 다급해보였습니다.)”
그에 관해 나베 신쥬는 다짜고짜 호통을 쳤다.
“(지금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앞두는 시점에서 그딴게 문제인가! 당장 미국과 핫라인이나 연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