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05화 (205/285)

205화

<10권>

***

캐비어의 연락을 받은 기연합 부대가 와있었다.

현주는 남은 뒷처리를 그들에게 일임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적 진영에서 벌어진 전투가 거의 끝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성그룹을 주축으로 벌인 작전인 만큼 현장으로 찾아가 응원겸 전투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신속히 떠나고 난 뒤, 기연합 병사들은 정신을 잃은 찬우의 신변을 구속하고 기중기를 사용해서 맹수를 특수차량에 실었다.

모든 일은 순조로웠으며 누구 하나 긴장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병사들은 승리감에 도취돼 일하면서도 신이 났다.

그래서 자객이 껴있는지도 몰랐다.

미라는 병사들이 방심하는 것을 틈타 어둠 속에 녹아들듯 스르르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녀는 오성그룹 직원의 주황색 슈트로 갈아입고 있었으며, 작업모를 푹 눌러쓴 채 병사들 속을 활보하고 다녔다.

우선 맹수가 실린 차량에 다가갔다. 두 명의 병사가 화물칸 뒤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중이라 병사라 칭할뿐이지 그들은 사실 수라이고 회사 직원이었다.

참고로 미라는 전에 오성그룹에 속해 있었기에 주요 간부들 얼굴이나 직원들 이름까지 익히 알고 있었다. 운좋게도 얼굴만 봐도 아는 인물들이 주변에 깔려 있었다.

더군다나 맹수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까지 다행히도 오성그룹 직원들이었다.

미라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두 분, 김방석 작전부장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여기는 제가 지키고 있을테니 서둘러 가보시지요.”

병사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일인데요?”

“어어? 금방 여길 지키라고 하셨는데, 왜 그러시지?”

“자세한건 저도 잘 모르겠고, 아마 적 진영에서 전투 중인 부대의 상황이 무척 안좋은 것 같습니다.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실 계획이신가봐요.”

“이상하다. 방금 전까진 상황이 좋다고 들었는데.”

“나도 들었어. 우리가 다 이겼다고 했는데 왠 말이지.”

“전황을 예측한다는게 쉬운일인가요. 금세 금세 뒤바뀌잖아요. 안그래요?”

“하긴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우린 전투에 투입되는 병력이 아니고 지원만 해주는 역할일텐데.”

“그거야 급하니까 그렇겠죠.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이것저것 따질새가 있나요.”

“그럴수도 있긴 하지만...”

“에이, 일단 가보자구. 저쪽 보니까 다른 병력들도 부장님 쪽으로 모이는 갑네. 이대로 회사로 복귀하는줄 알고 좋아했드니 그게 아니었나봐. 할 수 없지 뭐. 암튼 그쪽은 안가서 좋겠수.”

“예. 여자들은 일단 남아있고, 남자들만 먼저 투입시킬 생각이신것 같아요. 어쨌든 힘내세요. 후방에서 응원하고 있을게요.”

“고맙수다. 가자구. 얼른 가서 장비 착용해야지.”

“내 인생에 전쟁이라니 참.”

병사들은 편히 돌아갈 수 있었는데 전쟁에 참여해서 아쉽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미라는 달래는 미소로 그들을 떠나보내고는 이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안전한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화물칸 뒷문을 열고 슬쩍 올라탔다.

어두 캄캄한 실내에 천으로 씌여진 맹수.

미라는 야간투시경 기능이 있는 안경을 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선글라스와 모양이 같았다.

맹수에 덮인 천을 벗기고 뒷목의 장갑을 열어 모든 전투 데이터가 기록된 메모리 카드를 빼냈다.

그 뒤 자폭장치를 가동시켰다.

맹수에는 본래 자폭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전지연 박사가 맹수 본체에 있는 외부 입력단자에 USB 케이블을 꼽아 작동하는 시한폭탄을 그녀에게 건네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울러 맹수의 동력원은 바닥이 났지만,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수은 건전지가 꼽힌 마더보드는 전원이 살아 있었다.

또 자폭 장치를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따로 가져온 특수 용액을 맹수의 장갑 전체에 뿌렸다. 사탄의 위액을 섞어 만든 액체는 장갑을 순식간에 부식시켰다. 장갑의 표면에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매캐한 냄새가 화물칸에 진동했다.

“후후, 이 정도면 됐겠지.”

미라는 미소를 머금었다. 모든 조치는 이로써 완벽했다.

참고로 미라의 모든 행동은 당연히 소라가 시킨일이었다. 소라는 제네틱스가 망할땐 망하더라도 맹수를 포함해 그와 관련된 극비 자료들을 그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았다.

모두 나중을 대비해서였다. 이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차릴 새로운 회사에서 맹수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파워드 슈트를 독점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미라의 다음 목표는 찬우였다.

포획된 찬우를 가로채서 소라에게 데려가야만 했다.

소라는 자신이 나서서 반역자 박찬우를 포획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아버지 한규만 회장과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입증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지난날의 과오로 실형을 선고 받는다 하더라도 박찬우를 포획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감형을 받을 생각이 있었다. 우주를 만나기 전까진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신세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무죄를 받을 가망성이 낮다고도 예상했다.

한편, 찬우가 잡힌 마당에 무작정 그를 탈취해서는 위험했다. 적당한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미라는 사전에 완구특공대 진영에서 시체 한 구를 가져와서 부근에 숨겨두었었다. 자신과 키와 체격이 비슷한 여성의 시체였다.

미라는 시체를 국방색 천막으로 돌돌 말아서 최대한 가린 채 군수품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병사들 사이사이를 유유히 지나쳤다.

이윽고 찬우를 태운 차량에 당도했다.

군용 지프차.

조수석에 타고 있어야할 지휘관은 없고, 운전병 하나와 그 뒷좌석에 수갑으로 묶인 찬우를 포함해 그 좌우로 무장한 병사 두 명이 더 타고 있었다.

찬우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놓고 대기중인 것을 보니 포로 이송을 위해서 지휘관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딱 적당한때에 왔군.’

미라는 당당히 다가갔다. 그녀의 눈빛은 인정사정 봐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행동이 과감했고 시끄러웠다.

차량 보닛에 시체를 던져놓고, 운전병을 가차없이 때리고 이어 달려드는 병사 두 명까지 순식간에 제압했다.

서둘러 슈트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시체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체를 가렸던 것들을 모두 벗기고 나서 운전석에 앉은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미라는 투명화 능력을 사용해서 몸을 숨겼다. 마치 시체가 차량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부대 밖으로 액셀을 밟아 질주했다.

총소리가 울렸다.

“잡아라!”

“박찬우가 타고 있다! 꼭 잡아야해!”

부대 전체가 난리가 났다.

도주하는 차량을 향해 일제히 총을 발포하며 앞유리가 깨지고 차가 벌집이 되어갔다.

물론 그들의 탄환은 주로 뒷좌석에 곤히 잠들어 있는 찬우 보다는 타이어나 운전석에 있던 미라를 향해 집중됐다.

살을 파고드는 총알이 있을때마다 미라는 즉시 회복하며 총알을 입으로 뱉어냈다. 그녀의 재생 능력은 가히 불사신이라고 칭해도 좋을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총알에 맞은 타이어가 펑크 나자 부대를 벗어난지 채 100미터도 안되서 그대로 차가 뒤집혔다.

전복된 차량.

휑한 바퀴만 맥없이 헛바퀴를 굴렀다.

얼마 지나지않아 기연합의 병사들이 황급히 뛰어와서 대파된 차량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고개를 갸웃했다.

“어, 어디로 갔지? 박찬우가 안보여!”

“그럴리가!”

찬우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오직 그의 동료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체만이 운전석에 남아있었다.

현장 지휘관은 사색이 된 얼굴로 무전기를 꺼내들고 상관에게 즉시 보고했다.

“바, 박찬우가 동료의 도움을 받아 탈주한 것 같습니다!”

박찬우가 도망갔다.

찬우를 잡았던 현주의 공적이 퇴색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반면에 소라의, 도망친 박찬우를 끝까지 추적해 잡았다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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