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82화 (182/285)

182화

“신우주의 실력은 현 세계 최고이지. 사실 내가 세운 작전에 그를 투입시켜보고 싶은 소망도 있었어. 어찌보면 최고의 병사나 다름없으니까. 자네의 제안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하네.”

“하시겠습네까?”

지휘관은 잠시 여러모로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이내 밝게 웃어보였다.

“보아하니 909 특임대에서 하달 받은 자네의 임무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잡히는군. 허락, 하겠네. 어떤 연유로 그를 감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약 30분 뒤.

철컹, 철커덩.

문이 열리고 우주가 밖으로 나오자 영애가 대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우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대장 동무가 나오는 조건으로 제가 대신 들어가기로 했습네다. 일단은 저들이 시키는 대로 하십디요. 앞으로 벌어질 작전을 도와 성공만 한다면 저도 바로 나올 수 있습네다.”

우주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게 가당키나 하오? 우린 아무런 죄가 없소. 왜 우리 말을 안믿어준단 말이오? 내 당장 달려가서 다시 설득해보리다.”

영애가 황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안됩네다. 어차피 마츠다이라 일당들이 밖에서 진을 치고 있어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합네다. 그래서 다들 서울로 가지도 못하고 전방주둔지에만 갇혀있다고 하디뭡니까. 그러니 우선 이들을 도와 밖을 먼저 뚫으시디요. 그래야만 대장 동무가 귀가 닳도록 말하던 여성도 만나러 갈 수가 있고 저 또한 나갈 수가 있는 겁네다.

“하긴 길이 막혀 있다면...”

딸칵. 딸카닥.

영애가 들어간지 얼마안되어 곧바로 여러개의 자물쇠가 잠긴다.

우주는 문에 달린 작고 투명한 유리를 통해 안쪽의 영애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금방 꺼내 주리다.”

“예, 꼭 돌아와 주십디요. 반드시 기다리고 있겄습네다.”

“사나이 신우주.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킨다오.”

우주는 주먹을 꽉 쥐어보였다.

“의리! 으이리!”

“그래요 의리 입네다. 의리!”

영애가 따라서 소리치자 우주가 작게 미소지었다.

“고맙소.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소.”

“정말로 고맙거든 제 소원도 함 들어주시디요. 다시 나오거든 그땐 저랑 교합을 하시... 응?”

우주는 영애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영애는 한뺨을 유리에 바짝 붙이면서 떠나는 저 멀리 뛰어가는 우주를 향해 소리쳤다.

“대장 동무! 이야기는 다 듣고 가셔야디요 대장 동무!”

***

자유롭게 풀려난 우주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제네틱스 지사.

자신의 개인 사물함을 찾아가 열었다.

옷 속에 넣어둔 휴대폰.

그것을 집어들고 전원을 켰다.

얼마 안지나 문구가 주르륵 떴다.

[데이터 네트워크 접속을 허용하시겠습니까? 데이터 네트워크 접속 및 GPS정보 전송, 이메일 계정 싱크등 디바이스 특성으로 인한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Gaegle이 향상된 검색 결과 및 기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내 위치 정보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시겠습니까?]

[Gaegle의 위치 서비스에서 익명의 위치정보를 수집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부 데이터는 기기에 저장될수 있습니다. 앱이 실행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정보가 수집 될 수 있습니다.]

허용, 허용. 확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가락 가는대로 허용과 확인을 눌렀다.

휴대폰 부팅이 완료되자 바로 료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신호가 간다.

그러나 받질 않는다.

전화가 끊기자 다시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딸칵.

받았다.

[.......]

“여보시오? 여보시오! 료코! 료코 잘있는게냐!? 여보시오!”

어째서인지 수화기 너머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의 목소리였다.

[하하하.]

“누구냐?”

순간 우주의 두 눈이 커지며 머릿속에서는 료코가 납치되었다는 전개가 펼쳐졌다. 료코의 휴대폰을 납치범이 갖고 있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큰일이다.

“누구냐고!”

-(너와 다시 만나게 될줄이야. 감회가 새롭군.)일본어. 중후하고 무게감이 강한 낯익은 목소리.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마, 마츠다이라......!”

-(잘 기억하고 있군.)

우주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조국을 침략한 왜에 맞서 자신을 희생하는 싸움 따윈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데 또다시 시작이었다.

속에서는 열불이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어째서 네가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것이냐...?)”

-(뻔한걸 묻는군. 그야 료코를 데리고 있으니까다. 그렇잖아도 박찬우란 자가 네놈을 죽였다고는 하는데 그 옛날 널 상대해봤던 나로서는 그 말을 순순히 믿기가 어렵더군. 네놈의 바보같은 생명력은 바퀴벌레보다도 질기니까 말이지. 만약 살아있다면 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줄 알았다.)마츠다이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주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듣는 이로 하여금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료코의 안전이 궁금한 그는 지금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넌 지금 어디에 있지...?)”

-(오우, 오싹하군. 눈앞의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 같아.)말과는 반대로 마츠다이라는 이미 게임의 승자처럼 여유롭게 웃어댔다.

-(그것보다 말이야. 내 말을 먼저 들어봐. 세상은 참 오묘하더군. 알다가도 모르겠어. 100여년 전 가장 신뢰했던 부하가 날 가장 많이 방해하고 기만했던 녀석의 아이를 임신하다니 세상은 참 잔인한 것 같아. 안그런가?)

“(닥쳐라. 난 지금 그딴 잡담이나 듣고자하는게 아니라 네놈의 위치가 어디냐고 묻고 있다.)수화기 너머의 마츠다이라는 피식 웃었다.

-(절박해보이는군.)

그는 이어 말했다.

-(더 절박해지기 위해서 한번 재미있는 놀이를 해볼까? 이 몸이 네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겠다. 나는 곧 청와대라는 곳에 도착한다.)

“(청와대?)”

-(그곳에 옛날 고종 같은 녀석이 있다더군. 아무튼 난 청와대로 갈것이고 료코는 제네틱스 본사라는 곳에 갖혀있다. 자, 여기서 양자택일이다.

날 죽이고 싶거든 청와대로 오고 료코를 구하고 싶거든 제네틱스 본사로 가라. 그런데 어느쪽으로 가든 실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 청와대로 오면 료코가 죽을 것이고, 료코에게 가면 이 나라 수장은 내 칼에 죽고 덩달아 나라의 주권도 사라질 것이다.)우주는 분한 마음에 이를 갈았다.

“(네놈......!)”

-(애국을 위해 개인이 희생할테냐 아니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 나라를 저버릴테냐? 우리의 신진루이는 과연 어느쪽을 선택할까? 난 대충 예상이 가는데 말이야. 애국 막걸리를 거하게 한사발 드시고 매일매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예전의 너라면 답은 간단할 것이다.)우주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말했다.

“(아쉽지만 그 신우주는 죽었다. 난 이제 예전의 신우주가 아니다.)”

-(뭐?)

“(내 선택은 간단하다는 말이다. 료코를 구하러간다.)”

그 말에 기가 차다는 듯이 마츠다이라의 웃음소리가 수화기에 울려퍼졌다.

-(어이가 없군.)

마츠다이라는 전에 없이 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왜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지......?)

“(그건.)”

1년 전. 우주는 천안에서 소라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기 전 승용차 옆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까 당신이 했던 말을 속으로 많이 고민해 봤소. 세상은 많이 변했고, 내가 살던 세상은 이제 여기에 없소. 내 가족과 동료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새로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라고는 그 계집뿐이라니, 세상 일이 참 우습소. 그년을 죽이면 난 정말로 혼자 남게 되고, 만약 그년을 살리면 100여 년 전 목숨 바쳐 해왔던 일들을 전부 부정하게 된다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것이 그년을 살려두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오. 이러니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소. 세상의 이치를 굳이 따지려 하기보다 그저 모든 걸 손 놓고 살고 싶소이다. 어차피 내가 없었어도 조국은 해방이 되었고, 그렇다 보니 100여 년 전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인지 그 의미도 모르겠고 말이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만 바보가 되고 피로만 쌓이는 것 같소.”

여기에 더불어 몇 달 전 소라와 다투던 당시 그녀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내 말이 틀렸어요?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려는 당신을 누가 알아줄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뭐해요? 조국이 당신의 업적을 알아주기라도 한데요? 지금 국회에만가도 친일파 의원이 수두룩하고 하다못해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까지 친일교과서로 싹 바뀌고 있다구요! 당신이 백날 나라를 생각해봤자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아~ 내가 그땐 그랬었지라고 하면서 판잣집에 사는 독거 노인의 회고뿐이라구요!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그렇게 몸바쳐 일했는데도 곁에는 아무도 없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조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애국지사 후손들한테 베벌리힐스에 집까지 지어준다는데!”

다시 현재. 우주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뜻은 변하였지만 널 죽이겠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으니 결코 안심하지 말거라. 료코를 구한 뒤에는 반드시 널 처단하러 갈것이다. 너로 인해 수없이 죽어간 내 동료들의 복수. 그리고 네놈이 왜국으로 팔았던 허소윤이라는 낭자를 위한 복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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