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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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승줄에 묶여 전방주둔지로 끌려간 우주와 영애.
두 사람은 그대로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히기 전 복도를 지나치면서 누군가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난 죄가 없다고! 풀어줘! 풀어주란 말이야!”
기업 연합 합동부대는 전방주둔지에 세운 모 기업의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감옥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건물 내 여러 사무실들을 감옥으로 개조해 제네틱스 직원들을 죄다 가둬버린 것이다.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방.
새벽인지라 감옥 안은 싸늘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는 깔고 앉을만한 것도 없어서 그곳으로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몸을 오들오들 떨게 할 정도였다.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우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오해가 생긴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구려.”
“저만 믿으시라요. 곧 나갈 수 있을 것입네다.”
영애는 어째서인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은 우주가 순순히 잡혀준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영애는 우주에게 일단 저들과 함께 가자고 했다. 저항 하다 괜스레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니 얌전하게 붙잡힌 뒤, 가서 해명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찌 그리 평온하시오. 소생은 한시가 급한데.”
“내래 평온해 보입네까? 잘못보신거겠디요. 걱정이 이만큼 있습네다.”
영애는 우주 앞으로 다가오더니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자신에게 걱정이 얼만큼 있는지 표현했다.
그것을 보며 우주는 그녀를 괴짜라고 여겼다. 아까 들판에서 실랑이를 벌였을때부터 그녀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장난치는 것 좋아하시오?”
“장난 말입네까? 전 장난치는건 별로입네다. 사람이란게 매사에 진지해야지 어디 가벼워서야 쓰갔습네까?”
우주는 속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영애가 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그 눈빛에는 거짓이란 없고 순수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 테면 백치미.
“이제야 제가 마음에 드시나보지요?”
“...얼토당토 않는 말은 하지 마시오.”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시지 않았습네까. 제가 예쁘니까 그리 쳐다보시는 것이디요?”
“낭자가 예뻐서 쳐다본게 아니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 그랬소. 오해 마시오.”
“좀 솔직해지면 좋을텐데 말이디요.”
“어허, 그럴리 없다니까 그러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영애는 영애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시선을 바닥에 두고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30분쯤 지나 우주가 중얼거리다시피 먼저 말을 꺼냈다.
“저들의 지휘관을 좀 만나고 싶은데.”
영애가 반응을 보이며 물어왔다.
“만나서 뭐라 말씀하실겁네까?”
“당연히 풀어달라고 해야지 않겠소.”
“그것말고 어떻게 설득을 할거냔 말입네다. 아까 지나오면서 보네까 제네틱스 사람들은 전부 갇혔드라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면 적절하게 말을 지어내든 사실을 말하거나 할텐데, 이건 뭐 아무것도 모르니 그것도 고민이오. 자칫 말실수라도 했다간 더 큰 오해만 불러올테니까.”
“그냥 건물을 때려부수고 나가는건 어떻겠습네까? 대장 동무의 힘이라면 이딴 콘크리트 건물이야 고저 누워서 떡먹기, 식은죽먹기 아닙네까?"
“솔직히 그렇게 하고 싶소만, 그럼 아까 낭자의 말은 뭐였소?”
“무슨 말 말입네까?”
“잡혀도 뭔 방법이 있는 것처럼 이야길 하지 않았소. 혹시나 저들과 말이 통할까 싶어 기다리는 중이오.”
“역시 대장 동무는 한 팀을 이끄는 대장이다보니 신중하신 성격인것 같습네다. 보고 배울점이 참 많습네다.”
우주는 약간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칭찬이나 듣고자 하는게 아니오. 우리가 잡힐 당시 낭자가 생각했던게 무엇인지나 말해보시오. 쓸만하다면 내 그대로 따르리다.”
“음......”
영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술을 열었다.
“고저 남조선은 인맥이 최고 아닙네까? 사실 내래 남조선에 귀순했을 당시 다른 동지들과 함께 군장성들과 몇차례 식사를 가진 적이 있었습네다. 그때의 친분으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까 싶어 저들이 말을 걸어오길 기다리는 중입네다.”
“겨우 그것 뿐이오?”
“그것 뿐입네다.”
우주는 고개를 떨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같이 밥 먹은걸 가지고 친분을 쌓았다니.”
“그때 같이 밥을 먹었던 김철영 준장, 박무식 중장, 한태박 대장 등등 영관급 이상 군인이라면 같은 육사 출신이거나 건너건너라도 거진 다 조금씩은 알지 않겠습네까? 조금 전 이곳으로 끌려올때 광장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네다. 지휘관이 누구든 간에 저와 같이 밥을 먹었던 사람들의 후배든 선배든 동기든 하겠디요.”
우주는 그녀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풀려날 가망성이 높은것도 아니오. 그냥 콘크리트나 때려부수는게 더 빠르겠소이다.”
영애는 고개를 저었다.
“저쪽에서 말만 걸어오면 뭐 어떻게든 될것 같습네다.”
“어떻게든 되다니, 안될거요.”
“어떻게든 될겁네다.”
“안되오.”
“꼭 절 데려갈겁네다.”
“그럴리 없소.”
그때였다.
딸카닥. 딸칵.
돌연 열쇠로 수개의 자물쇠가 채워진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총을 겨눈 군인 세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한 사람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영애를 가리켰다.
“거기 너. 따라와라.”
우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영애를 쳐다보았다.
영애는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우주와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가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이것 보시라요. 제 말이 맞지 않았습네까? 남조선은 고저 인맥이 최고입네다.’
전방주둔지에는 평상시에도 군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기업이 사병을 보유하고 무장을 한다는 것부터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기업들에 대한 견제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돌연변이 생물이 전방주둔지를 습격하는 등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민, 관, 군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방주둔지 내에서 위급 상황이 벌어지면 민, 관, 군을 통솔하는 것은 군이었다. 작전의 수립과 결정 모두 군의 통제하에 있었다.
수분 뒤 지휘통제실 내 지휘관 집무실.
영애 앞에 서 있는 50대 지휘관. 그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영애의 주위을 뒷짐을 지고 천천히 돌고 있었다.
양어깨의 견장에서는 별 세 개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909 특임대 소속 리영애 중위라...... 박무식이는 잘있는가?”
영애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중장님께서는 늘 건강히 잘지내시고 계십네다!”
“그 양반 하루에 세갑씩 줄담배를 피워댔는데 끊었는가 모르겠군 그래. 그런데 어쩌다 제네틱스에서 잠입 임무를 맡게 되었지?”
“그것은 상관의 지령을 받아 특수임무를 수행중이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는 극비사항입네다!”
애당초 영애는 붙잡혔을 당시 우주가 모르게 기연합 소속 군인에게 쪽지를 하나 건넸었다. 쪽지에는 자신의 소속과 직책, 직속상관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아울러 그것을 전달받은 지휘관에게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밝힐 요량으로 제네틱스 건물에 있는 개인사물함으로 가서 지갑속에 있는 군인 신분증을 찾아보라고도 하였다.
“극비라면 어쩔 수 없지.”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턱을 어루만졌다.
“알겠네. 909 특임대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최고의 특수부대이지. 모든 것이 베일에 쌓인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봤자 앞으로 내 진급 심사에 도움될 것도 없을거야. 그럼 여기까지만 함세. 이만돌아가도 좋네.”
“감사합네다!”
“그런데 전방주둔지 입구를 막고 있는 적을 소탕하기 전까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거야. 그래서 말인데, 잠시나마 우리를 도와 함께 싸우는 것이 어떠한가? 909 특임대 요원인 자네가 힘이 되어준다면 적의 방어선을 뚫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거란 판단이 드네.”
돌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던 영애는 눈동자만 움직여 지휘관을 바라봤다.
“저도 중장님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여전히 909 특임대의 극비임무를 수행중이고, 또 신분이 밝혀질 우려가 있기에 그것은 어려울것 같습네다. 하지만.”
“하지만?”
“신우주를 이용하십디요. 신우주라면 큰 도움이 될것이라 여겨집네다.”
“신우주라면 제네틱스 소속의 인물이 아닌가. 제 아무리 유명인이라 해도 사상이 어느쪽인지 확실치도 않은 마당에 그를 풀어준다는 것은 위험하네.”
“반란의 가담여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네다. 그의 사상은 친일이 아니라 뼛속까지 애국자인것을 확인했습네다. 제 모든 것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네다!”
“정말로? 흐음...”
지휘관은 벽에 걸린 풍경화를 보며 고심을 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영애를 바라봤다.
“말만으로는 어렵네. 지금 전방주둔지 정문에는 제네틱스 슈트를 입은 수라들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가슴에 달고 있는 자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 신우주도 저들과 한패일지도 몰라. 그의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하지? 자네가 속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영애는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그럼 이걸 보십시오. 저와 신우주는 평양에서 제네틱스 악어팀에게 배신을 당해 조난 당했었습네다. 여기 목덜미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보시면 제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되실거라고 봅네다.”
영애의 말에 지휘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에 달린 영상은 우리가 볼 수 없다네.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저마다 생산활동 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거든. 제네틱스 직원과 그들이 개발한 특수 장비가 없는 이상 지금 바로 영상을 확인하기는 어려울거야. 암호를 파악하는데만 꽤 시일이 걸리지.”
“그럼 우째야 합네까?”
지휘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내게 물어보면 어쩌나.”
영애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우주의 결백을 주장할 좋은 방안을 고심했다.
한순간 그것이 떠오르자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즉시 말했다.
“그렇다면 절 대신 가둬놓으십디요. 그리고 신우주에게는 현재 전방주둔지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적들을 완전히 격파하도록 협력해준다면 절 무사히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입네다. 그가 만약 배신하고 도망친다면 그땐 절 군사재판에 넘기셔도 좋습네다.”
그녀의 결심은 우주를 철썩같이 믿는다기보다는 우주가 찬우에게 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에게 어느 정도 신뢰가 갔다.
“이것으로도 부족합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