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54화 (154/285)

154화

우주는 버겁다고 느낀 순간 더욱 악을 써가며 분발했다.

차후에는 임현주 72점, 신우주 58점이 되었다.

<팀장님. 아까부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열심히 사냥을 하던 와중에 줄리엣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뭐지?”

<누님이란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런것도 모르나?”

우주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기계 따위에게 괜히 음성을 주는 바람에 더 귀찮게 만드는 것 같았다. 100여년 전 사람인 그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기계에 대해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누님은 누나와 뜻이 같다. 누나는 알겠지?”

<누나는 압니다.>

“누나는 알면서 누님을 모르는게 말이 되냐?”

<탑재된 국어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2013년을 기준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총 50만여개의 단어중 제게 저장되어 있는것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사투리 등을 다 포함해 5만개에 불과합니다.>

“왜 그렇게 적지?”

<며칠 전에 이어 오늘 또 한 차례 단어를 입력하던 중 갑자기 드롭존이 발생하여 중단됐습니다.>

그제야 이해했다.

“줄리엣은 아직 미완성품이란 말인가. 좌우간 그건 그렇고...”

드롭존 상황은 오후 2시가 지나며 종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눈에 띄는 돌연변이 생물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으며 한 마리 잡으려면 사방을 기웃거려야 했다. 그러니 임현주를 따라잡으려면 한시가 급하다.

“이제 여긴 사냥감이 떨어졌으니 자리를 옮기겠다.”

<라져댓. 지금부터 입체 지도를 갱신하겠습니다.>

그때 태안 남쪽,

우주가 서 있는 태안군청으로부터 35km 떨어진 안면도에서 사냥 중이던 한성일에게서 무전이 왔다.

담배를 입에 문것 같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역시 자네가 오니까 금방 따라잡는구만. 나랑 길성이가 몇 마리 더 잡아주고, 자네가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우리 회사가 바로 1위로 치고 올라갈거야.

무전기 너머에서는 동시에 총소리도 들려왔다. 줄리엣이 탑재되지 않은 구버전 맹수를 착용한 한성일이 느긋하게 사냥하면서 총을 갈기는 듯 했다.

“한 서방. 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오. 불시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고 각별히 주의해주시오.”

우주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변 건물의 옥상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헬리콥터 안에서 한소라에게 1등한다고 큰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정작 그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일전에 테러를 당해 어이없이 지고만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게나. 오늘은 본부장님께서 특별히 태안 통제실까지 납시었지 않나. 통제실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테러 대비에 만전을 기할걸세. 우린 아무 염려말고 오로지 사냥에만 집중하면 돼.

성일의 말을 귀담아 듣던 우주는 갑자기 입가에 뜻모를 미소를 짓는다.

“만반의 대책을 세웠던 한 서방도 두 달 전 바람피다 형수님한테 결국 걸렸잖소.”

성일이 즉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말이지. 아하하하! 이 친구 참!

우주가 성일과 잡담을 주고 받을 무렵, 그 주위에서 위험한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우주는 몰랐다. 오성그룹이 1위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는지.

2년 전 어쩌다 한 번 1위 한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은 이번 드롭존이 정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1위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간 너무나 막강해서 그저 만리장성처럼 느껴지던 우연진도 이제 없다. 신우주 하나만 처리하면 드롭존 우승은 따논 당상이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갖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혜택으로 기업의 미래는 밝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오성그룹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임현주가 돌연변이 생물을 사냥하는 동안 남은 전력으로 우주를 최대한 훼방 놓을 생각이었다.

“음?”

영화에서 주인공이 당하는 순간은 아주 잠깐, 딱 한순간 방심할때 일어나곤 한다. 드라마나 책이나 노상 그렇다.

지금도 그랬다.

문득 저편에서 피유웅하며 이상한 물체가 연기를 내뿜고 상공을 날았다.

성일과 무전을 주고 받던 우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하늘을 바라보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누군가가 지상에서 RPG-7 같은 대전차 로켓포를 어깨에 둘러메고 쏴 날린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저건 뭐지? 그놈 참 시원하게 잘나는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오던 미사일은 돌연변이 생물을 잡기 위해서 누군가 쏴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뜬금없이 우주의 머리 위에서 터진 폭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형 파동을 방출하며 반경 300m 내에 전자기 펄스를 발생시켰다.

이 파동은 전자기기를 과전류시켜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파손시키는게 목적이었고, 전자기 교란으로 인해서 모든 기계의 정상작동이 어렵게 되면서 방송사의 헬리캠은 단숨에 추락하고 맹수의 블랙박스는 꺼졌다. 그리고 무전도 끊겼다.

-그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줄 아나? 마누라는 변호사까지 대동해서 소장을 접수하지 않나 난 바람피다 이혼하면 돈 다 뺏기니까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야 해서...

성일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치이익 거리는 무전기의 잡음조차 들리질 않았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오며 침묵을 유지했다.

“한 서방?”

우주는 갑작스레 발생한 현상을 의아하게 여기며 성일을 계속 불러봤지만 답이 없다.

“무전기가 고장 났나...”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가 널려 있고, 혈흔으로 엉망진창 된 거리에서 무심코 한 군데를 바라보기만 하던 우주는 곧바로 줄리엣을 호출했다.

“줄리엣, 무전기에 이상이 생긴건가?”

“......”

줄리엣 역시 반응이 없었다.

다시 이름을 불렀다.

“줄리엣?”

“......”

귀를 기울여봤지만 이렇다할 응답이 없다.

“줄리엣?”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맹수는 정상 작동 되는데 줄리엣은 왜 대답이 없는 것일까?

혹시 줄리엣도 고장났나?

우주가 머리를 갸우뚱 할때다.

처음에는 습격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점점 육중한 소리가 들려오며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언덕. 저 멀리 햇살 쬐는 도로에서 별안간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수라들이 일제히 파워드 슈트를 착용한 채 출현했다.

“대체 저들은...”

그들은 도로를 다 차지하며 2열 횡대로 걸어왔다.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우주는 무의식 중에 무기를 찾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샌가 오른손에 고주파 블레이드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들은 기습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너무나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윽고 파워드 슈트 날개를 착용한 오성그룹의 수라들이 히죽 웃으며 코앞에서 멈췄다.

그들은 우주를 반원으로 둘러싸며 조소를 날렸다.

“인마 신우주. 좋게 봐줄때 다리 하나만 내놔라.”

***

태안군에 자리 잡은 제네틱스 작전지휘소.

“뭡니까! 도대체!”

정면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던 소라가 갑자기 성을 내며 호통을 쳤다. 여태 잘보고 있던 영상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지직거리며 끊긴 것이다. 해당 영상은 우주가 착용한 맹수에서 보내오던 영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죠?”

소라는 곧바로 현장 지휘관을 꾸짖었다.

“즈,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또다시 테러라면 각오하세요!”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현장 지휘관이 소라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뛰쳐나가 직원들을 보챘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쫓기며 서둘러 그 원인을 찾아 헤매기에 바빴다.

그러는 사이, 소라는 골똘히 생각하며 하염없이 꺼진 스크린 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손톱을 깨물며 곱씹었다.

생각해보자.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드롭존에서 일어난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테러 대비는 완벽했다. 그런데 왜 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창성을 시켜 따로 테러 대책반을 운영하며 드롭존에 투입시켰고, 정부 협조하에 위성으로까지 감시했다. 게다가 두 달전부터 국내에 입국한 일본인에 대한 검색도 완벽히 해냈고, 하시도루가 여전히 한국에 머물곤 있다지만 이 시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양평에 신축한 별장에서 쉬고있다는 보고까지 받았다.

그런데 왜?

테러에 대비해서 불확실하거나 잠재적인 요소는 철저히 감시했건만, 우주는 이번에 또 누구에게 습격을 받은거지?

그런 의문이 소라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을때였다.

한 직원이 크게 외쳤다.

“E, EMP 탄이 쏴진것 같습니다!”

소라가 미간을 좁혔다.

“이엠피?”

“우주가 서 있던 장소를 중심으로 EMP 탄이 쏴진것 같습니다! 현재 그 구역에서 매우 강력한 전자기파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현장 지휘관이 소라에게 다가와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테러가 아니라 명백한 태클입니다.”

태클. 축구 경기에 빗대어 만들어진 용어였다. 드롭존에서 1위를 한 기업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부여된다. 그로인해 각 기업들은 1위를 차지하기 위에 치열한 승부 다툼을 벌였고, 하물며 반칙도 버젓이 일삼았다.

그 반칙이란게 바로 태클이다. 일례로 축구 경기에서 태클을 당하거든 그것은 감독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태클을 빙자한 반칙을 극복한다는 것은 온전히 선수의 역량에 달려 있었으며, 재수없으면 부상을 당할수도 있었고, 아니면 패널티 킥을 유도하며 팀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드롭존도 축구경기와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들은 재미난 경기를 원했다.

게다가 정부에서도 그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실상 드롭존이 열리는 주기마다 매번 1위를 할것 같은 우수 기업보다는 가끔 밑바닥 주제에 돌풍을 일으키는 기업을 원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뜻밖의 연출은 아주 감동적이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심어줄수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드롭존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는 태클을 재미 차원에서 묵인하고 있었다. 그래야 흥행이 성공했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태클?”

소라가 이를 갈았다. 우주는 지금 테러가 아닌 태클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화가났다. 이건 회사차원에서 손을 쓸수가 없는것이다.

정당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수작이었다. 우주 혼자서 돌파해 나가야할 시련이었다.

“오성그룹 이 개같은 것들이!”

소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EMP 탄은 모든 전자기기를 교란시키고 사용 불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줄리엣은 동작을 멈췄고, 우주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맹수의 장갑이 사탄의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장갑에 가려진 일부분은 전자기파를 흡수해버렸다.

그로 인해 맹수가 작동했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우주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무섭게 말했다.

한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낄낄 대며 대답했다.

“우리가 우승 좀 하게 다리 한쪽만 내놔라.”

“뭣이?”

우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쳤소이까?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소이다. TV 카메라가 이 근방을 배회하고 있다는 걸 잊었소?”

“헬리캠 말이냐? 하하하. 그거 끊긴지 오래다. EMP 탄으로 인해 이 주변에 이제 아무것도 없어. 너와 우리 뿐이지.”

그 말에 우주는 입을 닫았다.

‘그런거였군. 일부러 소생을 노리고.’

침묵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내들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덤비는 이는 사정 봐주지 않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