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도중에 이세종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러시아의 어떤 정치가는 일부다처제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나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네.”
“그렇습니다 각하. 게다가 모국에서 시집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러시아 여성들은 국외로 눈을 돌려 해외 남성들과 결혼하는 사례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나라의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시대 또한 한 나라의 인구수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인구가 증가해야 할 판에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니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부다처제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하겠지요. 제가 만일 러시아 국회의원이라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일부다처제를 강력히 추진하고 말것입니다.”
우주가 말을 마치자 이세종 대통령이 곧바로 웃었다.
“재밌는 말이군. 그래.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겠네. 전세계에 사탄이 출몰하게되면 앞으로 남성인구가 줄어들게 되고 일부다처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관대해진다는것이지?”
“그렇습니다.”
우주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대답하자 이세종 대통령은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창밖을 바라보던 이세종 대통령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중인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책상으로 걸어갔다.
서랍을 열어 서류철을 하나 꺼내더니 우주에게 다가가 그것을 건넸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이세종 대통령은 머리를 긁적이며 픽 웃었다.
“자네의 일부다처제 소망을 이뤄줄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네. 자네를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고, 자칫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지. 잔소리를 하는 마누라가 수십명이 된다면 정말로 끔직할테니까 말이야.”
이세종 대통령은 다시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며 편하게 앉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우주가 서류철을 열어 서류의 제목을 확인했다.
909 울트라 프로젝트.
이세종 대통령이 깍지를 끼며 말했다.
“오늘 오전에 기획보고서가 하나 올라왔었다네. 그게 이거야. 사실 난 가당치도 않다며 폐기를 할 작정이었지만, 자네의 생각을 들어보니 실현불가능한것도 아닌것 같구만. 한번 천천히 훑어보게나.”
차분한 눈으로 서류를 훑어보던 우주는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넘겨보기 시작했다.
착, 착, 착!
침바른 종이를 넘길때 나는 소리 빼고는 방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을수 없었다.
우주는 다 보고 나서 서류철을 조용히 덮었다.
실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기가 막혀 말이 안나왔다.
그의 표정을 살펴본 이세종 대통령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먼저 물었다. 얼굴 표정을 통해 대답을 미리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는것 같다.
“어떤가? 할 수 있겠나?”
우주가 즉답했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째서? 자네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그저 전투병기를 양산하겠다는 심보가 아닙니까?”
이세종 대통령의 목소리는 우주와 달리 비교적 차분했다.
“아니지. 혹시 사랑이 없어서 거절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저 실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그녀들의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어떤가. 그 계획대로만 한다면 다른 일반 여성들과 데이트할 시간과 돈도 아낄 수 있고, 멸문한 가문을 재건하는데 정말 손쉬울 것이라 생각하네. 게다가 자네가 해준다면야 내 꼭 법을 바꾸도록 노력하겠네.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도록 말이지.”
909 울트라 프로젝트.
정부는 데바로 각성한 강미라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내용인 즉슨, 909 특임대의 여성들에게 우주의 아이를 임신시킴으로서 국가 소유의 데바를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수라와는 다르게 초능력을 사용하는 데바는 이 시대의 국가경쟁력이었다. 비윤리적이고 인권 문제를 야기시킬 것을 빤히 알면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을 고려해볼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프로젝트의 미래를 더욱 밝게 했던 것은 의외로 여성 참가자의 수가 많았다.
이세종 대통령에게 기획보고서가 올라오기 전, 909 특임대 소속 미혼 여성대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그 내용은 이랬다.
1. 당신은 신우주와 사랑없는 섹스를 할 수 있습니까?
예 / 아니오
2. 당신은 신우주의 아이를 임신해도 괜찮습니까?
예 / 아니오
3. 신우주가 함께 살자고 하면 사랑없이도 살 수 있습니까?
예 / 아니오
등등, 909 특임대 소속 여성대원들은 100이면 90, 약 90% 정도가 신우주처럼 잘나가는 남자의 아이를 갖길 원했으니 말 다했다.
기획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높은 경쟁율 속에서 첫 실험대상자를 20명으로 간추렸다.
그리고 특별히 선정된 20명의 여성이 신우주의 아이를 임신함으로서 데바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 909 울트라 프로젝트가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핵심 목표였다.
“낮선 여자와의 섹스가 싫다면, 인공수정도 가능하네만.”
“그건 더욱 싫습니다!”
흥분하는 우주에 비해 이세종 대통령은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정하게나. 나도 폐기 시킬 생각이었네. 인권 문제도 있고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었어.”
미소를 띄우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 알아두게. 자네 혹시 자네와 나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있나?”
“국익을 위해서 제게 잘해주신 것이 아닙니까?”
이세종 대통령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그건 큰 오산이지. 우린 대한민국이란 회사를 차리고 동업을 하는게 아니야. 특별한 애국심을 갖고 나라를 생각해서 자네의 뒤를 봐주는게 아니란 소리지. 하물며 동업관계가 아름답게 끝나거나 오래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네. 언젠가는 한쪽이 욕심에 눈이 멀어 배신을 하고 말아. 아, 잠시만 기다려 주게.”
그가 일어섰다. 책상으로 가 수화기를 들었다. 사람을 시켜 양주와 잔을 가져오게 했다.
이윽고 방으로 술이 들어오자 이세종 대통령은 우주에게 술을 한잔 따라주면서 말했다.
“내가 원하는건 동업이 아니라 상호간의 실질적인 도움이라네. 각자 갖고 있는 재능을 서로 주고 받는것이란 말이지. 기독교 말로 '달란트'라고 할까. 굳이 예를 들자면 자네가 일부다처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내 도움이 절실하다고 해보게. 그리고 난 자네에게 909 울트라 프로젝트에 참가할 것을 요구했고 자네는 그걸 받아들였다고 치지. 바로 이런게 서로의 재능을 주고 받은게 아닐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고 또 그만큼 당당히 원하는 걸 받는 것. 쉽게 말해 거래라고 하지. 거래엔 선도 악도 없다네. 필요에 의해서 친구가 될 수 있고 때론 적이 될 수도 있는게야. 생각해보게. 내가 왜 굳이 자네의 편의를 봐주고 강미라의 죄까지 덜어줬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국익을 위해서?”
“아니겠지요.”
“그래 아닐세.”
우주가 그에게 술을 따라주고 이어서 두 사람은 건배를 했다.
잔이 부딪히며 짠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술잔을 쭈욱 들이키고 나서 이세종 대통령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