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100여년 전 1904년 10월.
“크윽...! 커헉!”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쳤다. 입술과 이에 핏물이 흥건히 묻어서는 주르륵 입밖으로 흘러내렸다.
몸 전체가 구멍이 났다. 허벅지에만 10군데 이상의 칼자국이 나있었다. 걸을때마다 몸이 휘청휘청,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으나 쓰러지지 않았고, 여기저기 칼에 찔린 복부에서는 시뻘건 피가 샘물처럼 샜다.
“겨우 이것밖에 안되었단 말이냐...!”
우주는 자신이 다친 것보다 도망치고 있다는 현실에 화가나 이를 갈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목구멍에서 피가 끓는 소리가 나왔다.
“육씨랄년... 내 이년을, 내 그 계집년을 기필코 처죽여줄테다...! 으으으!”
그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리고 역겹게 올라오는 핏덩어리를 되삼켰다. 사지에서 흐르는 피를 손바닥에 묻혀 옷에 닦았다. 땅에 떨어진 핏자국을 최대한 적게 남기려는 마음에서였다. 추적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꼬끼오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주는 두 눈에 힘을 주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새벽녘 뿌연 안갯길. 나뭇잎이 수북히 쌓인 산길은 사방이 적막했다.
터벅.
터벅.
터벅.
힘겨운 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내어 디뎠다.
한참을 홀로 걷던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철푸덕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안개는 점점 걷히고 대지에는 밝은 태양볕이 내리쬤다.
“멍멍! 멍멍멍!”
누렁이 한 마리가 와서 짖어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쓰러진 우주 곁에서 촐싹맞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러고는 그의 몸에 묻은 피를 맛있게 핥아댔다.
“저리가, 때찌!”
“깨갱!”
허름한 한복차림에 댕기머리를 한 하녀가 개를 발로 걷어찼다.
그녀는 약간 긴장된 눈빛으로 땅에 쓰러진 우주를 내려다보았다.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로 그의 몸을 조심스레 콕콕 찔러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죽은것이냐?”
“......”
“살아 있으면 대답 좀 해보거라?”
“......”
“이보게. 여보시오. 야? 야?”
매양이는 나무막대기로 우주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그는 눈뜰 기색조차 없다.
그녀는 마치 송장을 바라보듯 침을 꿀꺽 넘겼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만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살아있느냐?”
그때 쓰개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쓴 양반가의 여식이 차분히 낙엽을 밟으며 걸어왔다. 이제 한창 여인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18세 소녀는 허소윤이란 이름이 있었고, 얼굴이 선녀처럼 아름다웠으며 백옥 같이 흰 피부 또한 반들반들 윤기가 돌아 양반가 자제들 사이에서 마치 여름철 개구리가 시끄럽게 개굴개굴거리는 것처럼 소문이 자자했다.
“아, 아씨!”
매양이는 그녀가 다가오자 정중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주, 죽은것 같습니다요.”
“음.”
소윤은 누워있는 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굴과 목, 팔과 다리에 흉한 상처가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얼핏 봐서는 산적이 아닐까 싶었지만, 곧은 콧날과 균형 잡힌 입술, 유려하게 이어진 턱선이 왠지 반듯한 성품을 지닌 선비처럼 보였고,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만큼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매양아.”
“네, 아씨.”
“얼른 저 분의 인중에 마른 낙엽을 하나 올려놔 보거라.”
“어째서이옵니까?”
“잔말 말고, 얼른 해보거라.”
“아, 알겠사옵니다, 아씨.”
매양이는 주변에 떨어진 낙엽중에서 작고 얇은 것을 주워다 우주의 인중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콧바람에 낙엽이 하늘하늘 날아갔다.
“다행히도 살아계시는 구나.”
소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중에 매양이의 안내로 허씨 가의 하인들이 찾아와 정신을 잃은 우주를 멍석에 싣고 산을 내려갔다.
허씨 일가는 한양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부친 허균성 대감은 1년 전 관가의 미움을 사게돼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다.
그 해부터 소윤은 모친 유씨부인과 단 둘이 살았다.
때마침 도망가는 노비가 많아 일손이 부족하던 참이었다. 노비들이 쓰던 방이 여럿 비고 있었다.
소윤이 노비방을 하나 골라 그곳에 우주를 눕히게 하고 마을 의원을 불러 매일같이 그를 돌보게 하였다.
어느날 의원이 우주의 놀라운 회복속도에 감탄하며 소윤에게 말했다.
“오오, 놀랐소이다! 내 평생 이런 환자는 처음이오! 최소 석달은 가야할 상처가 일주일만에 아물었지뭐요! 이 자는 필시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분명하오!”
소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참 말이옵니까? 회복이 그리 빠른지요?”
“내 사실 이 자의 맥을 처음 짚었을때 내심 혀를 차며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소만, 날이 갈수록 건강해지는 모습에 하늘이 직접 보살피고 있는건 아닌지 의문이 들정도요. 아니, 아니지. 혹시 이 방이 명당에 세워진 것이 아니오? 땅의 기운을 얻어 병자를 낫게해주는 그런 명당 말이오.”
“명당인지 잘은 모르겠사오나, 전부터 이 방에서 살던 노비들이 자식도 잘 낳고 무척 건강하여 늙어 죽을때까지 잔병치레 하나 없긴하였습니다.”
“허허, 기가 막히로다.”
사실 소윤이 일부러 둘러댄 말이었다. 의원은 긴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껄껄 웃어 보였다. 풍수지리란 역시 대단하다고 믿는 투다.
의원이 떠나간 뒤 그녀는 눈 감은 우주를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그는 평온하게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로 하늘이 내려준 사람일까요?”
그런 까닭으로 소윤은, 그가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곁에 머물며 지켜보고 싶었으나 주변의 눈이 있어 오래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비들이 지내는 곳에 하루에 몇 번씩 자주 찾아오기도 어려웠다.
대신 하루 한 번씩 아침나절에는 꼭 들렸다. 의원이 왕진했을때만 말이다.
의원이 떠나간 저녁에는 매양이를 그 곁에 남게해서 수발을 들게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채에서 걸어나온 유씨부인이 뜻밖에 자그마한 별채에 들어섰고, 우주가 누워있는 방을 가리키며 빗자루로 마당을 쓸던 하인에게 호통을 치듯 물었다.
“저 안에 있는것이 도대체 누구냐?”
자신의 딸인 소윤이 노비들이 사는 별채에 매일 같이 오간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온게다.
긴장한 하인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주, 주인마님, 일전에 아가씨께서 뒷산으로 산보를 가셨다가 주워온 사내이옵니다.”
“주워왔다고?”
“그게, 온몸에 상처를 입고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하옵니다.”
유씨부인의 시선이 녹슨 문고리로 향했다.
그것을 잡아당겨 창호지문을 활짝 열고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우주가 허름한 이불을 덮고 방 중앙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코끝이 거슬릴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풍겨져왔다.
유씨부인이 손으로 코를 막으며 곧바로 문을 쾅 닫았다.
그 뒤에서 있던 하인을 돌아보았다.
“저놈을 어디에 써먹을데가 있다고 주워왔다 하느냐? 어딘가의 노비라더냐?”
“그건 소인도 잘모르겠사옵니다.”
유씨부인은 시원찮은 눈빛으로 하인을 쳐다보더니 이내 펑퍼짐한 긴 치마를 휙 접으며 몸을 돌렸다.
“어서 가서 소윤이를 데려오거라.”
“옛, 주인마님!”
멀지 않은 곳에서 낮닭이 한가로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윤은 안방으로 불려와 유씨부인을 마주하며 앉아 있었다.
“별채에 있는 지 집처럼 누워 있는 놈은 어쩌자고 주워온것이냐?”
“산보를 하다 우연히 발견하였고, 생명이 붙어있는 듯 하여 차마 두고 올 수가 없었사옵니다.”
“거렁뱅이에게까지 오지랖을 부려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네 부친이 괜한 오지랖 때문에 저 세상으로 떠난걸 벌써 잊은 것이야?”
“어머니, 아버지의 삶은 결코 그르지 않으셨사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셨고 손수 모범을 보이시며 저를 교육하셨습니다.”
“시끄럽다.”
유씨부인은 단호히 말을 자른 뒤 방 앞에서 대기하던 하녀를 불렀다.
“게 누구 없느냐.”
유씨부인의 수발을 드는 갓난이가 문밖에서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주인마님. 부르셨는지요.”
“장정 세 명을 시켜 그놈을 당장 뒷산에 버리고 오라 이르거라.”
“알겠사옵니다, 주인마님.”
“어머니! 다시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넌 당분간 방안에서 나오지 말고 있거라. 이 어미의 말을 어겼다가는 하인들을 시켜 네가 아끼는 누렁이를 잡아먹게 하겠다.”
유씨부인의 말은 소윤의 가슴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소윤은 매정한 어머니를 일변 이해하려 들었다. 아버지인 허균성도 가여운 사람들을 돌봐주다 헛되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 딸 역시 지아비 성품을 쏙 빼다 박았으니 어찌 성질이 안나리오. 허씨 같은 호구 집안에 살면서 속터지는 건 오히려 유씨부인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허씨 핏줄의 괜한 오지랖에 단단히 앙심을 품고 있었다.
좌우지간 소윤이 속만 태우는 와중에 갑자기 하인 하나가 안방 문앞으로 허겁지겁 뛰어와서 알렸다.
“마, 마님! 그놈이 깨어났습니다요!”
“뭣이?”
유씨부인은 소윤을 힐끔 본 뒤 다시 말했다.
“그거 잘되었구나. 당장 제 발로 이리 오라 이르거라!”
우주의 몸상태는 꽤 호전되어 있었다. 눈을 뜨자 마자 병석에서 일어나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곧장 안채에 있던 유씨부인 앞으로 끌려갔다.
“어디서 굴러먹다온 놈이냐!”
우주를 보자마자 유씨부인이 대뜸 호통을 쳤다.
우주야 당연히 영문을 몰랐다. 주변에는 몽둥이를 든 하인들이 그를 강제로 무릎 꿇리며 둘러싸고 있었고, 눈앞에는 족히 40은 넘어보이는 중년 여성이 인상을 바락쓰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주는 뻣뻣한 수염이 가득 자란 턱을 들었다.
유씨부인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히 물었다.
“댁들은 누구시오?”
“이것봐라. 누구시오...? 하, 참.”
유씨부인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끈 성을 냈다.
“이 뻔뻔한 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반말을 지껄이느냐! 우리가 다 죽어가던 네놈을 살려줬거늘, 그 은혜를 몰라보는 것이냐!”
유씨부인의 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허소윤이 재빨리 나섰다.
“어머니. 저 자는 그간 병상에만 누워있어서 자세한 사정을 모를 것이옵니다. 제가 알아듣도록 설명을 할테니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소윤이 넌 잠자코 있거라!”
유씨부인은 다시 우주를 내려다봤다.
“어서 대답하거라! 넌 어디서 무엇을 하다온 놈이냐!”
우주는 상황을 종잡을 수 없어 어안이 벙벙했지만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양반이란 존재는 나라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제 몸 지키기에만 급급한 하찮다 못해 쓸모없는 암적인 존재였다. 당시 혈기왕성했던 그의 성질 같아서는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길에서 구걸하며 하루하루 빌어먹던 거렁뱅이외다.”
제 처지를 알기에 거짓말을 했다. 박필모가 만들었던 조직 '조선의 태양'은 그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공중분해되었다.
따라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은 거의 죽거나 료코를 앞세운 일본군에게 붙잡히게 되어 우주로서는 더는 기댈 곳이 없었다.
신분을 속여 도피 생활을 해야할판이었다.
“거렁뱅이? 노비가 아니더냐?”
“노비는 아니오.”
“시치미떼지 말거라! 그럼 온몸에 생긴 그 상처는 무엇이더냐? 주인 몰래 도망치다 생긴 상처가 아니더냐?”
“그건 아니외다. 산길에서 우연히 도적떼를 만났을 뿐이오. 하늘에 맹세코 난 노비가 아니오.”
“딱 봐도 저 자는 노비같지는 안사옵니다, 어머니.”
소윤이 거들었고, 하녀들 속에 섞여서 묵묵히 지켜보던 매양이도 나섰다.
“주, 주인마님! 이 자를 이 집에 머물게 하며 스스로 빚을 갚게 하는건 어떠하신지요?”
“닥치거라! 누가 네게 말참견을 하라 일렀느냐?”
“죄, 죄송하옵니다 주인마님. 잘못하였사옵니다...”
유씨부인이 무섭게 호통을 치자 개가 꼬리감추듯 매양이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그동안 우주를 간호하며 나름 정이 들어있었다. 곤히 잠든 우주의 얼굴을 장시간 빤히 바라보기도 했고, 매일밤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면서 근육진 사내의 몸을 직접 만지다보니 저도 모르게 정분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경고하건데, 잡것들은 이 자리에서 입도 열지 말거라!”
“예!”
“알겠사옵니다!”
유씨부인은 이 집에서 유아독존이었다. 그녀는 하인들을 꾸짖고 나서 우주를 쳐다봤다.
“네 놈의 이름을 말해보아라. 내 직접 관청에 가서 노비장부를 샅샅이 뒤져보겠다. 거짓을 실토했다간 용서를 바라지 말아야 할것이다!”
“신...”
우주는 무심코 말을 뱉다 이게 아니다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다른 이름을 생각해냈다.
“칠복이.”
내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당장 떠오른게 이것 밖에 없었다.
“내 이름은 칠복이요. 신칠복.”
“신칠복?”
유씨부인은 미간을 좁혔다.
바로 성을 냈다.
“네이놈! 그 우스운 이름이야말로 노비 이름 같지않느냐!”
“내 부모가 이리 지은걸 난들 어쩌란 말이오?”
“그놈 참 꼬박꼬박 말대꾸로구나!”
“그럼 앞으로 말대꾸는 안할테니 이 집에서 일 좀 시켜주시오. 하루 세끼만 든든히 챙겨준다면 내 열심히 일하리다.”
“허허, 저놈봐라. 네놈이 방금 그 주둥이로 노비가 아니라고 해놓고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오늘부터 노비할 생각이오. 이 집이면 왠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소.”
“저 뻔뻔스러운 놈이!”
우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이 집에는 나보다 잘난 놈은 없는듯 하오만.”
그는 재기할 기회를 노리며 당분간 지낼 곳이 필요했다. 일본군에게 신원이 알려진 이상 제 마음대로 세상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지금 굴러가는 상황을 보면 이들이 자신을 구해준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조금 전 매양이가 한 말이 그에게 솔깃했다.
‘이 집에 머물며 빚을 갚게 하라고...?’
문득, 몸이 나을 정도로 상당기간 안전했던걸 보면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지내며 당분간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파악하는건 어떨까?’
우주는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힘도 꽤 쓴다오. 무겁거나 힘든 일이라면 뭐든 맡겨주시오. 장정 다섯이 드는것도 혼자 들수 있다오.”
소윤도 또다시 거들어주었다.
“어머니, 가뜩이나 노비도 부족한 마당에 오히려 잘된일이 아닌지요?”
유씨부인은 잠시 입을 닫고 있었다. 우주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1904년 대한제국은 별안간 개화를 해서 그런지 지배층에 저항하며 도망치는 노비들이 많았다. 신분제야 1894년에 일어난 갑오개혁때 진즉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수천년을 이어오던 뿌리 깊은 제도가 하루 아침에 모습을 감추겠는가. 신분제 폐지 이후에도 양반과 노비의 종속적인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양반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법을 피했다. 노비들을 자신의 족보에 올려서 성을 주고 가문으로 편입, 그대로 노비 일을 보게 함으로서 종속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노비들도 제 딴에는 속이 상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해 아무것도 준비 안된 시대에서 노비 신분을 벗어난다한들 무엇을 해서 먹고 살겠는가. 평생 배운것이라고는 노비짓 뿐이거늘.
물론 이에 반발하는 노비도 많았다. 아직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젊은 노비들이었다. 그래서 도망을 쳤고, 하루 아침에 노비 세 명이 사라진 가문도 있었다.
그것은 허씨 가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는 노비가 많아 일손이 부족하던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노비가 생긴다는 것은 집주인으로서 좋은게 아니겠는가.
소윤이 재차 말했다.
“저 사내를 이 집의 머슴으로 삼는건 어떠신지요? 그도 진정 바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잘되었어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유씨부인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 놈의 옷을 당장 벗겨보거라!"
“옛, 마님!”
하인들이 일제히 달라붙어 우주의 상의와 하의를 단숨에 벗겨냈다. 하의에 천 한장만 달랑 걸친 그는 매끈하고 튼실한 근육을 한껏 자랑했다.
“어머, 어머!”
주변에 있던 하녀들이 저마다 부끄러워하며 눈을 가리는가 싶더니, 이마를 가리고 훔쳐보며 실컷 눈요기를 했다.
그 놈 참 실하고 탄탄하다.
유씨부인도 그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사뭇 감탄한 표정을 미처 숨길 수 없었다.
“꼴에 사내라고, 머슴으로 삼으면 쓸만하긴 하겠구나.”
============================ 작품 후기 ============================
뜬금없이 100년전 이야기가 나왔지요.
다음 전개를 위해선 마츠다이라 라는 케릭터를 독자분들에게 미리 알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화 정도 다룰 예정이구...
그때부터 다시 지난화(145화)와 이어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