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한편, 요즘 각종 매체는 시끌벅적했다.
당연히 신우주 때문이었고, 레지스트 쉴드가 생겨난 이래로 처음 일어난 '동료 수라에 의한 납치 사건'이라고 매일 같이 대서특필했다.
일부 언론은 70년대 일본의 아이돌 '오카다 나나 감금 사건'과 신우주의 납치 사건을 비교해가며, 지금쯤 강미라에 의해 갖은 성폭행을 다 당하고 있을 것이란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우주의 소속사인 아테나 엔터테인먼트 측이 공식 입장을 밝히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일부 언론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며 "지레짐작으로 보도를 낼시 고소하겠다" 고 까지 밝혔다.
아테나 엔터테인먼트 측은 이어 "경찰의 조사결과 강미라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동안 그녀와 사귀어왔던 여성들의 증언도 확보했으니 억측은 자제바란다"며 "신우주를 납치한 이유는 직장 내 불화라기 보다는 그녀가 과거에 앓고 있던 정신병이 도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물론, 강미라의 과거 연인이라는 여성들은 전부 아테나 엔터테인먼트에서 큰 돈을 주고 섭외한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해명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 각종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연예 담당기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신우주와 친한 동료나 지인들을 찾아가 인터뷰 영상을 담기에 급급했다.
방송국에서 연예가 뉴스를 다루는 어떤 여기자가 김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ㅡ 딸칵.
-예, 신우주 매니저 김철숩니다.
“철수 씨. 나 윤기잔데, 이번 한 번만 도와줘. 인터뷰만 해주면 다음 기사는 무조건 신우주한테 좋은 방향으로 써줄게. 응?”
-아, 윤기자님 근데 이거 어쩌죠.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다음에나 도와 드리겠습니다. 죄송하구요. 바뻐서 이만 끊습니다. 그럼.
철컥.
뚜ㅡ, 뚜ㅡ, 뚜ㅡ.
기자가 다시 연락을 해봤으나, 휴대폰은 이미 꺼져있었다.
이번에는 신우주의 코디 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
“안녕하십니까, 강민 씨. SBC 방송국 '연예가 소통'의 윤주미 기자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것은, 신우주 씨나 납치범인 강미라에게 혹시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한번 듣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강미라도 분명히 저희 방송을 어디에선가 시청하고 있을 것입니다. 강민 씨의 짠한 메세지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분명 신우주 씨를 구출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렇죠?
“......”
-그럼 허락하신걸로 알고 잠깐이면 되니까 우선 몇가지 질문에 답해주십시오.
뚜ㅡ, 뚜ㅡ, 뚜ㅡ.
강민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다른 방송국 기자나 언론사 기자들은 김수희의 집앞까지 찾아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귀가 중인 그녀를 가로막으며 긴급하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수희 씨! 같이 드라마를 찍었던 신우주 씨가 납치되었는데 소감 한마디만 말씀해주십시오!”
상당히 귀찮게 달라붙었지만 수희는 별다른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고 얌전히 발길을 멈춰섰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우려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힘든 상황이어도 힘을 내며 조금만 더 버텨달란 말을 해주고 싶고, 부디 무사귀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주 씨를 찾는데 저도 힘을 좀 보태고 싶습니다. 제네틱스 측에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아무런 조건없이 무보수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기자 하나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에? 그게 정말이십니까? 신라그룹쪽에서 승인이 난 사항입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생각이십니까?”
“그는 제 병문안도 와준 사람입니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나름 우주 씨와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럴때 큰 힘이 되고 싶었고, 회사와 관련없는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같은 시각.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에서 료코와 함께 있던 소라가 측근을 통해 수희의 인터뷰를 전해듣고 나서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지었다.
“호오...”
그녀는 지휘석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수희가 현장을 떠나자 기자들은 그 즉시 신라그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신라그룹 비서실에 전화가 빗발치며 이선주 회장의 의중을 묻는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회장 집무실에 출근해 있던 이선주는 보도를 접하며 조금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김수희... 이래서 소민이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은 진즉에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그날 오후.
신라그룹 대변인이 기자들 앞으로 나와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저희 신라그룹은, 이번 신우주 납치사건에 관한 보도를 접하자마자 임직원 일동이 매우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경쟁사의 직원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신우주 씨의 가치는 재화로서 보다는 레지스트 쉴드에서 일하는 수라의 표상으로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이 나서서 그를 지켜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자사 수라인 김수희 씨가 밝힌 인터뷰 내용이 바로 신라그룹의 의지입니다. 제네틱스에 물심양면으로 적극 협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신라그룹은 김수희와 박현아 두 사람을 투입해 샥스핀까지 동원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며, 정부와 제네틱스가 이를 받아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사건은 비단 제네틱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후에도 제 2의, 제 3의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를일입니다. 확실한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며, 모든 기업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할때라고 보여집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 힘을 합쳐 철저한 응징을 가합시다.”
신라그룹의 이러한 공식 기자회견이 있은 뒤, 정부와 제네틱스는 신라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후에 무려 열 개의 국내기업이 '강미라 토벌 작전'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작전의 지휘는 국방부 장관이 직접 도맡았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 국방부 장관이 나선다면 말 다했다. 그만큼 우주는 한국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재였다.
“샥스핀에 신라(The Silla)도 장착시킬까요?”
신라그룹 로봇연구소에서 일하는 남궁철민 박사가 전화를 걸어서 이선주에게 물어보았다.
그에 이선주는 싸늘하게 답하였다.
-분리시키세요. 신라는 아직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될 물건입니다. 그 칼을 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김수희나 박현아가 쓸게 못됩니다.
남궁철민은 안경테를 매만졌다.
“예, 분부대로 하지요.”
한편, 소라는 제네틱스 종합대책상황실로 한성일과 하나를 소집시켰다.
료코가 맹수를 착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그 대신으로 우주와 친한 두 사람을 특별히 선발한 것이다.
“두 분은 악어팀 이전에 스컹크 팀에서 우주 씨와 친분을 쌓으셨었죠? 지금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나요? 없다면 당장 여길 나가tu도 좋습니다. 회사 차원의 불이익은 전혀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소라는 말을 마치고 나서 두 사람의 눈동자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일부러 차가우면서도 강경한 태도로 두 사람에게 각오를 다짐받을 생각이었다.
성일이 먼저 대답했다. 그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근 우주 군이 제 카센타의 VIP 고객이 되었습니다. 제 소중한 고객을 잃을순 없지요. 목숨 바쳐 지켜내겠습니다.”
이어서 하나도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매섭고 좋았다. 어딘가 분한듯 눈빛이 칼날같다.
“강미라를 죽여도 됩니까?”
“네, 물론.”
“우주 씨를 구할 수만있다면 이 목숨, 버리겠습니다.”
소라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굳은 결의를 보였다.
하나의 마음속은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강미라! 니가 감히!’
그때 료코는, 지휘석에 앉은 소라의 옆에서 두 사람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를 세심하게 훑어보는 중이었다.
‘유하나라는 저 계집은 왠지... 서방님과 자주 통화하던 그 계집 같은데, 음...’
***
무인도에 도착한 첫 주는 전혀 밖에 나가지 못했다.
우주는 말 그대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사냥을 나갔던 미라가 돌아올때면 키스는 예사고 시도때도 없이 불타오르는 그녀의 욕정을 위해서 몸을 헌납해야만했다.
그 주에 그는 지독히도 퍼질러 잤다. 두 손 두 발이 다 묶인 상태에서 자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게 없었다.
게다가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음식을 매번 챙겨 먹었지만 문명사회에서 지내던 사람의 식욕이 그리 쉽게 만족될리는 없었다. 먹어도 배가 고팠다. 무인도에서 식량을 구해봤자 별게 있겠는가. 오줌처럼 노린내가 심하게 나는 산짐승 뿐이었다. 더해서 곤충의 유충과 숲에서 채집한 나물로 삼시 세 끼를 때웠다.
미라는 요리를 어지간히도 못했다. 밥을 먹을때면 항상 토가 나오려는 것을 몇번이나 참아가며 입안에 꾸역꾸역 쑤셔넣었다. 오로지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잠도 그런 의미에서 많이 자둔 것이었다.
가끔 그녀가 집을 비운 틈을 타 탈출해보겠다고 애를 쓰기도 해봤지만 전부 허사였다. 한 번은 그런 광경을 들켜 온몸을 테이프로 꽁꽁 싸매진 일도 있었다.
“왜 자꾸 도망가려고만 하는거죠? 저랑 있는게 그렇게 싫은거에요?”
대답, 신우주는 당연히 할 말이 많다.
“낭자가 하는 짓거리는 범죄란 말이오!”
그도 화가나서 지지않고 소리쳤다. 납치된 생활이 일주일이 넘어가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며 온갖 방법으로 능욕까지 당하다보니 그 스트레스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자도 사람이면 그만하고 풀어주시오! 언제까지 이 답답한 곳에 소생을 가둘 속셈인거요!”
그 비통한 외침에는 증오와 원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미라는 얼핏 두려움에 몸서리치면서도 그를 결코 놔줄 수 없다는 의지가 불끈 솟아올라 당당히 대꾸했다.
“괜찮아요 절 실컷 경멸하세요.”
“이걸 풀면 가만 놔두지 않겠소!”
우주는 씩씩거리며 협박을 가했다. 그의 이성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매일 기를 빨려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생기고 일주일 사이에 체중이 무려 5kg이나 줄어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수갑과 밧줄을 풀어 보려고 열심히 몸을 비틀었다. 방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바둥거렸다. 더는 이 상태로 지낼 수 없다.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죄를 지은 수라를 위해서 특수 제조된 수갑이라서 그런지 제아무리 악을 써도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서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았다. 어찌나 발악을 해댔는지 수갑이 걸린 손목과 발목의 피부가 닳아 염증까지 생겨서 피가 맺혔다.
“세상에! 그만해요!”
바닥에 흘러내린 피를 본 미라가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계속 그러면 상처가 번진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긴 마땅한 치료약도 없어서 세균에라도 감염되면 큰일나요. 당신이 죽는걸 전 두고 볼 수 없어요. 수갑과 밧줄을 풀어줄테니 제발 그만하세요. 네?”
“저, 정말이오?”
“풀어줄게요.”
그녀의 대답에 우주가 즉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바라던대로되니 한층 화가 풀리며 머리가 시원해졌다. 그가 따끔하게 저려오는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은색 수갑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풀어주시오.”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
미라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의 상체를 칭칭 휘감은 두꺼운 밧줄을 풀어주고, 이어서 그의 손목과 발목에 걸린 수갑마저 순순히 풀어주었다. 여기까지는 우주가 원하던대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라가 쉽게 자유를 내주진 않았다. 밧줄과 수갑이 풀리는대신 새롭게 개목걸이를 우주의 목에 걸어 침대 곁에 그를 묶어버렸다.
실제 개목걸이가 아닌 수라를 구속하기 위한 특수 목걸이었다. 데바의 특별한 힘을 떨어뜨리는 용도로도 쓰이니 말 다했다.
특수 자기장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우주는 평소의 힘 절반도 쓰질 못하게되었다. 거기에 피곤과 배고픔까지 겹쳐 그는 지금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성기능까지 상실할까봐 이것만은 하기 싫었습니다.”
“이 못된 계집 같으니라구! 당장 풀지 못할까!”
되려 우주의 화만 더 돋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