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13화 (113/285)

113화

***

병원 앞은 수많은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주는 철수를 비롯해 아테나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낸 덩치 좋은 매니저들의 호위 아래 무사히 병원 로비로 들어섰다.

신라병원 특실.

지인들의 면회로 북적거렸던 복도는 차례를 기다려야할 정도였다.

“우주 씨는 이리! 이리 오세요!”

우주도 줄을 섰으나 수희의 매니저가 황급히 나서서 그를 제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름있는 A급 연예인도 줄을 서야할 판에 우주의 네임밸류는 그 이상으로 대단했다.

실내는 마치 호텔 같았다. 이태리제 고급 가구들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고, 옷장이며 TV, 컴퓨터, 티 테이블, 부엌, 샤워실, 화장실 등등 도무지 병실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없는게 없었다.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외다. 늘 걱정했었소.”

우주는 친근한 말과는 다르게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이거 먹을래요?”

화장기 없는 새하얀 피부. 민낯에도 잡티 하나 없는 얼굴에 옅게 쌍커풀 진 눈, 오똑한 코에 작은 입, 김수희는 수수한 환자복을 입었음에도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것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깎아놓고간 과일접시를 우주에게 건넸다.

우주는 접시를 받아들더니 사과를 포크로 하나 찍어먹고는 탁자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다른데 이상은 없소?”

우주는 칠칠맞게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려 일부러 더 그랬다.

“허리가 쑤신다든지, 뒷목이 땡긴다든지 뭐 그런거 말이오.”

“오늘 이것저것 검사해봤는데 몸 전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드라구요. 내일 당장 퇴원해도 좋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것 참 잘됐구려.”

수희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서로 어색하고 썰렁한 공기가 감돌았다.

시끌벅적한 촬영장이 아니라 조용한 방안에 단 둘뿐이어서 그런지 무언가 서먹서먹한 느낌을 줬다.

게다가 항상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다. 위로해주고 챙겨주는 모습은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수희는 머뭇머뭇, 할 말을 찾는 듯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탄을, 잡았다면서요?”

“들었소?”

“네, 인터넷에서.”

우주는 대답대신 시선을 내리며 작게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그녀 앞에서 신나게 떠벌릴 일은 아니었다. 수희는 사탄을 잡다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그녀의 팀에서는 사망자가 다수 나와 팀은 해체되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축하해요.”

우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희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사탄을 잡은 소감이 어때요?”

“그냥, 그렇소.”

“뛸뜻이 기쁜거 아니에요?”

우주는 수희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았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금세 흐를것 같은 눈동자. 사탄이란 단어만 들어도 지난날의 악몽이 떠오를 것이건만, 병문안 온 그를 위해서 분위기가 침체되지 않도록 애써 노력하는 것 같다.

“그것보다야 수희 낭자가 회복되서 뛸뜻이 기쁘다오.”

우주의 말에 그녀는 눈을 껌뻑거렸다.

“정말이에요?”

우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잖아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오. 상황 봐가면서 장난을 쳐야지 지금도 그럴 수 있겠소이까.”

수희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이윽고 말했다.

“둔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제법 눈치는 있네요.”

조금은 시큰둥한 목소리. 그의 친절이 싫지만은 않을텐데,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까부터 목구멍에서 넘어오려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아직도 채팅해요?’ 이 말이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자신이 대갈공주라는 것을 눈치 챌까봐 섣불리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드라마 한다면서요.”

“드라마는 왜 한다고 한거요?”

우주가 배를 하나 집어먹으며 되물었다. 같이 하기 싫은데 왜 하냐고 추궁한다기 보다는 순수하게 그녀의 의도가 궁금했다.

수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랑 하면 싫어요?”

“싫다기보다, 그쪽이 소생을 싫어할텐데 한다고 하니까 예상밖이었소. 좀 놀랐달까.”

“저만 싫다고 해서 그게 되나요. 혼수상태로 지내는 동안 소속사 사장님하고 조현기 감독님 사이에서 얘기가 오고 갔던것 같아요. 그 드라마에 제가 출연하는 댓가로 소속사 식구 3명을 조연으로 챙겨주신다지 뭐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난뒤 조금 눈치를 살피는 듯 헛기침을 두 번 했다.

“크흠.”

“담배피오?”

“예?”

수희는 뭔소리냐는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주는 짓궃게 물었다.

“가래가 껴서 그런거 아니오? 이제 막 몸이 좋아졌는데 그러다 또 상하겠소. 흡연은 적당히 하시오.”

“참나.”

성이 난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언제는 상황봐가면서 놀린다더니 똑같네, 똑같아.”

금세 토라진 얼굴을 지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아픈데는 없는 것 같았다. 우주는 방긋 웃었다.

“표정을 보니 전처럼 건강해 보이는 구려. 다행이외다.”

“같이 있다 속만 터지겠어요.”

그녀의 투정거림에 우주는 픽 웃으며 시계를 봤다. 그녀와의 면회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아 그에게는 10분의 시간만 허락된 상태였다. 면회시간도 19시부터 20시까지 단 1시간 뿐인지라 지인들이 몇분 간격으로 돌아가며 면회하기로 되있었다.

“소생은 이만 가봐야겠소.”

수희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

“벌써요?”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소.”

“잠, 잠깐만요.”

우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고하자 수희가 손짓을 하며 그를 막아세웠다.

“뭐 하나 물어볼게 있어요.”

“뭔데 그러오?”

“소민이.”

그녀의 입에서 불쑥 튀어 나온 이름을 듣자마자 우주는 뜨끔했다. 최대한 티를 안내며 대꾸했다.

“소민? 한소민을 말하는 거요?”

“네 맞아요.”

“그 낭자 이름은 갑자기 왜 꺼내시오?”

“연락이 안되서요. 혹시나 알고 있으신가 해서.”

“소생이 어찌 알겠소.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관련 없다뇨? 지난번에 일로도 만났었잖아요.”

지난번이라면 소민과 한 까페에서 만났을때다. 당시 그 만남이 기사화되어 우주는 때아닌 곤욕을 치뤘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속에서 열불이 났다.

“기사에도 써져있듯이 그땐 그냥 일로 만난거요. 소민 낭자는 소생에게 영입 제의를 했고 난 그걸 거절했을 뿐이오. 그 이야기가 다오.”

“알고 있어요.”

수희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째서인지 소민이한테 연락이 안돼요. 회사를 그만둬서 그런지 회사쪽에서는 행방을 모르겠다고만 말하고, 답답하네요.”

“모든 연락을 끊고, 집에서 방콕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정말로 방콕일까요. 좀 믿어지지 않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전화 안받고 그러는 애가 아닌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혹시 우주 씨는 몰라요?”

“......”

우주는 입을 다물었다. 망설이고 고민했다.

‘소민 낭자 말이오? 어딨는지 아주 자알~ 알고 있소. 거기가 어딘가 하면 바로 우리집이요. 소생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성생활까지 무척 만족스럽게 챙겨주고 있는 까닭에, 그래서인지 우리집에서 전혀 나갈 생각을 안한다오. 그러니 제발 부탁이니 그쪽이 데려가주면 참 좋겠소.’

이렇게 속시원히 떠벌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소민의 현재 정신 상태를 두고 수희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복잡한데다 굳이 필요성을 못느꼈다.

우주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모르겠소.”

수희는 고개를 떨궜다. 처음 이 방에 들어섰을때와 달리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우주는 조심스레 물었다.

“소민 낭자와 많이 친하오?”

정말로 절실하다면 만나게 해줄 수도 있다.

수희는 나직하게 마른 입술을 뗐다.

“전 사실 소민이 때문에 신라그룹에 들어왔어요. 수라를 보유한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그녀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운영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도덕적인 운영방식...?”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기 전에 수라를 사람으로서 대우해주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죠.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을 보면 노동력 착취가 심하거든요. 절대 활동해서는 안될 수라까지 데려다 일을 시키는 기업도 더러 있구요.”

“예를 들면 조폭같은 자들 말이오?”

“잘아시네요. 그들도 그중 하나죠.”

“소생도 한때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한 팀이 된적이 있었다오.”

우주의 대답에 수희는 옅게 웃으며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여우팀이 해체된 상황에 제가 복귀하면 다른팀에 편입되겠죠. 이건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두렵네요. 기존에 알고지내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저 홀로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주 소통을 갖던 소민이가 이제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뭐랄까...”

“애사심이 안생긴다...?”

정곡을 찔렀는지 수희가 싱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꼭 그런건 아닌데, 제가 재계약이 1년 남았는데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에이전트와 상의를 해봐야 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기업이 있다면 옮기고도 싶네요. 가족처럼 지내던 팀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소민이까지 없는 상황에서 신라그룹은 이제 후보랄까요. 솔직히 소민이를 단번에 내친건 너무 심했어요. 사람이 실수를 해도 한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었을텐데, 소민이 어머니의 그런 스타일은 저랑 좀 안맞는것 같아요.”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는 수라 중에서 김수희처럼 경영자에게 불만을 갖거나 반대로 다른 기업의 경영자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서 기업을 이직하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이것은 마치 스포츠와 같다. 구단주나 감독이 바뀌면 기존 선수들에게서 으레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는 일이고, 심하면 이적을 요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과는 별개의 문제다. 새로운 구단주가 친한 선수를 데리고 올수록 이 구단에서 자신이 퇴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심적으로나 팀내 위상이 자꾸 밀려나니 더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신라그룹은 아직 수희의 병문안조차 안왔다. 사막여우팀은 신라그룹의 최정예들만 데려다 꾸려놓은 팀이다. 그만큼 그 팀원들 개개인에게 임원급이 나서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할 터인데, 그들은 사람을 시켜 달랑 꽃만 보냈다.

사실 이선주에게 있어 수희는 지금 버리는 카드였다.

지금은 한소민의 구단이 아닌 이선주가 이끄는 구단이 되었다. 기존 한소민의 색을 지우고 이선주만의 색깔을 칠해야 할때였다. 그렇다 보니 수희는 더더욱 회사에 대해서 거리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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