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그렇다면 공중에 떠있는 사탄을 어떻게 사탄을 잡을 것인가?
그수밖에!
그는 결심했다.
악어팀의 전술지휘차량 상부에는 다연장 로켓포(MLRS)와 레일건이 수납되어 있었다. 이중 다연장 로켓포의 경우에는 짧은 시간에 강력한 화력으로 목표를 집중 타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이를테면 악어팀이 울창한 산림지역에서 작전을 펼칠때, 원활한 시야 확보를 위해서 후방에 대기중인 지원조의 도움을 받아 원거리에서 수십발의 로켓을 발사시켜서 해당 지역의 산림을 쑥대밭으로 만들 작정으로 가져왔다.
물론, 이러한 용도 말고도 수십마리 이상의 돌연변이 생물에게 고립되었을시 탈출이 용이하기 쉽도록 다량의 연막탄을 발사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으며, 일정 고도 내에 떠있는 그 어떤 목표물도 타격 가능했다.
하지만 투사체와 발사체를 흡수하는 사탄 앞에서 다연장 로켓포는 논외의 무기였다.
그럼 레일건. 레일건의 경우에는 사탄을 위해서 특별히 가져온 무기다. 기존 개발된 레일건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울트라 레일건'인지라 따로 포탄이 필요없었으며 레이져 광선처럼 플라즈마 빛줄기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일단 빔 라이플 같은 무기는 파괴력의 일관성은 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에너지를 잃는다. 수백미터 공중에 떠 있는 사탄을 맞출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레일건은 다르다.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레일건은 사정거리가 380km나 되었다. 서울에서 쏘면 울산까지 날아간다는 소리다.
그러나 도시 10개를 소리없이 날려버릴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레일건을, 인류가 현 시점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전원 공급 장치 때문이었다. 레일건을 한번 구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필요로했다.
대략 원전 하나정도의 전력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 제네틱스 전지연 박사는 이 문제를 풀었다.
소형 사탄의 심장을 동력원으로 삼아 전력문제를 해결했다. 비록 예상 데이터지만 그 사정거리가 무려 서울에서 달까지의 거리였다.
(38만3000km) 자칫 자기장의 힘과 발사각도라도 잘못잡았다가는 지구가 두동강이 나거나 직선상에 놓인 모든 도시를 파괴할 우려도 있었다. 그야말로 외계인이 쓰는 무기라 칭해도 좋을만큼 오버테크놀로지 기술이었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조차 가뿐히 부숴버릴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레일건이 필요로하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사탄의 심장으로 충당했다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이번에는 발사시 발열량과 발사후 진동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문제였다. 예를 들면 지구에서 달까지 사거리 테스트를 진행했다가는 그 발사 여파로 인해 연구소고 뭐고 인천지역 전체가 날아갈 판이었다.
그럼에도 전지연 박사는 악어팀의 전술지휘차량에 레일건을 탑재했다. 이토록 무서운 칼을 겨우 조그마한 나라 한국이, 그것도 일개 기업이 갖고 있다니 세계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과 UN이 알면 길이길이 날뛸일이었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핵무기처럼 금지조약이라도 생겨나야할 큰일이었다.
그러나 세계최초로 사탄을 잡아낸 만큼 그것을 비밀리에 어찌쓰든 제네틱스 마음이었다. 사탄의 심장이 레일건의 전력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키(Key)라는 사실조차 사탄을 잡아본적 없는 그들은 영영 모를 것이다.
여튼간에 위력은 행성 파괴 수준에서 절반 이하로, 사거리 또한 수십만배 줄어있었다. 유효사거리 30km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력적인 파괴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가적인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일건을 이동 차량에 싣고 다니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무리수가 있었다. 말그대로 대사탄을 상대로 한 최종병기였다.
단 한 번의 발사로 반동 때문에 전술지휘차량을 날려버렸으며, 발사 전부터 발열량이 엄청나서 액체질소를 투입해 냉각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차량 안에 설치된 최첨단 장비들이 녹아내렸다.
따라서 사탄의 심장을 동력원으로 삼는 레일건을 이동 차량에 싣고 다니겠다는 것은 그저 일회용 무기로만 쓰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았다.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차량 안에 탑승해 있던 인원들은 전원 대피가 필수였다.
그걸 알면서도 우주는 비장한 어조로 외쳤다.
“악어 1로부터 모두에게! 레일건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뭐라구?]
[대장...!]
[그걸 사용하면......!]
무전을 들은 팀원들의 한순간 망설임.
‘이대로 레일건을 발사해도 괜찮은 것인가?'
전술지휘차량이 날아가면 이제 지원조의 백업은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찌저찌 저 사탄을 잡아냈다 하더라도 오늘 임무는 여기서 끝이다.
그러므로 팀장인 우주가 레일건을 사용하겠다고 말한 것은, 팀원들을 향해 더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포자기처럼 여겨졌다.
[정말 방법이 없는건가......]
[제발 잡아내면 좋겠다.]
[성공했으면...!]
팀원들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염려와 불안, 그리고 기대와 소망. 그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이거 실패하면 끝이야.]
그들이 레일건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반면에 우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단지 상공에 떠있는 목표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레일건을 사용하는 것 뿐이었다. 이것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손에 잡혀야 뭐를 할것 아닌가!
게다가 사탄이 피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았다. 제아무리 날렵하다해도 마하 10의 속도로 쏴지는 레일건을 어찌 피하리오. 마하10의 속도라 함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단 2분만에 주파하는 속도다.
“결정권을 가진 팀원들은 즉시 레일건을 사용할 권한을 승인해주길 바란다!”
레일건 발사권은 팀장 고유권한이 아니었다. 팀내에서 연봉 상위 3위 이내의 팀원들에게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악어 2로부터. 전 항상 대장님을 응원합니다. 대장님의 생각이 곧 제 생각입니다.]
[악어 3으로부터. 승인합니다.]
팀내 연봉 2위 강미라, 3위 강혜주의 동의를 얻었다.
승인완료.
이어서 우주는 곧바로 후방의 지원조와 정비조에게 대피를 지시했다.
사탄이 잠시 숨을 고르는동안 악어팀은 기만하게, 일사천리로 움직여야했다. 전술지휘차량의 지붕에서 헤치가 열리고 6m나 되는 레일건의 포신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강혜주는 길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발사인증번호를 타닥타닥 재빠르게 입력한뒤 선반밑의 유리덮개를 열고 열쇠를 꽂아넣었다. 둥글고 빨간 레일건 발사버튼이 혀를 내밀듯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다음 사탄과의 거리와 방향, 고도 자료를 위성으로부터 수신받았다.
강혜주는 즉시 그 내용을 레일건에 탑재된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레일건의 포신은 사탄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레일건 발사 준비 완료!”
강혜주가 보고했다.
무전을 통해 우주가 말했다.
[안전장치를 해제하시오.]
“안전장치 해제 완료!”
[플라즈마 생성.]
“발사 스위치를 누릅니다. 발사 시간까지 앞으로 25초.”
꾹.
“발사!”
[악어 3은 즉시 탈출.]
“탈출합니다!”
강혜주는 머리에 쓰고있던 무전기를 냅다 집어던지고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녀의 지원조 동료인 박안나는 레일건 발사 메뉴얼에 따라 일찌감치 차량 밖으로 피신해 있었다.
“혜주 언니 여기예요! 어서 타요!”
혜주가 문을 열고 나오면 정비조는 모두 차량에 탑승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가 내민 손을 붙잡고 뒷칸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전원 탑승 완료!”
“출발합니다!”
차는 곧바로 부우웅!
현장을 이탈했다.
사탄에게서 날개가 생기고 난뒤 레일건 발사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되지도 않았다.
이 모든 행동은 채 1분도 되지않는 시간동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공격조 전원은 사탄이 추락하는 즉시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달려들어 쏘시오!”
[수신 양호!]
[이해!]
일단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맞출수만 있다면 승리를 단언할 수 있다고 우주는 생각했다.
발사까지 초읽기.
우주는 먼곳의 전술지휘차량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플라즈마의 위력이 더해갈수록 레일건의 동체가 그 반동으로 떨었고 전술지휘차량의 내부 온도가 고온으로 급격히 상승하며 차안에 설치된 장비들이 녹아 연기가 나고 낙뢰처럼 스파크가 튀겼다.
그리고 그 직후, 마침내 레일건이 발사되었다.
태양을 이용해 만든 듯한 새하얀 빛줄기가 비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을 갈랐다.
번쩍이며 약동하는 한줄기 빛의 찬연함.
너무나도 장엄했기에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침묵이 흘렀다.
꿀꺽.
우주는 침을 삼켰다.
레일건이 발사되는 순간, 빛줄기는 눈이 따라가지 못할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로 사탄을 덮쳤다.
[된거야 이제...?]
누군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안도의 한숨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엇!?]
하지만 곧바로 또 누군가 화들짝 놀라는 소리를 내며 뒤로 풀썩 자빠졌다.
레일건의 빛줄기가 밀리고 있었다.
[대장 저거 보여!?]
“보인다오......”
우주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올려다본 하늘.
사탄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레일건과 아주 똑같은 빛줄기를 쏘며 응수하고 있었다.
레일건의 굵은 빛줄기와 서로 밀고 밀리는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였으며, 나중에는 레일건이 일방적으로 뒤로 밀렸다.
그리고는 이윽고, 전술지휘차량이 펑 소리를 내며 터지면서 레일건의 빛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주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 폭발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어쩌지 대장?!]
[오 마이 갓! 이제 끝이야!]
[난 죽고 싶지 않아!]
모두가 좌절을 맛보는 가운데, 우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의 방법이 먹히지 않았을 뿐,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었다.
‘막내야 잘봐더라! 이번에야말로 네 도움 없이 사탄을 잡아낼테니까!’
속으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최후의 순간에는 그녀의 힘을 빌어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그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방어조와 공격조는 모두 내 쪽으로 뭉치시오! 빨리!”
상대를 잃은 사탄의 빛줄기는 곧바로 지상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사탄이 뱉는 빔은 거대한 광선검처럼 휘둘러졌다.
“얼른 모여 얼른!”
“뛰어, 뛰어!
우주를 중심으로 전원이 모여들었다.
우주가 방패를 위로 들자 미라와 성일이 서둘러 방패를 쳐들었다. 세 사람이 일제히 방패를 세웠고, 그 뒤로 공격조 전원이 몸을 숨겼다. 사탄의 빛줄기는 이내 그들을 덮쳐왔다.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 상황에서 최대한 짜낸 궁여지책이었다.
이 순간 방패말고 믿을 것이 없었다.
방패는 그런 기대에 부흥하듯 빛줄기를 완벽하게 차단해주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것 같았다.
우주는 투지가 불타오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스톰쉴드 제네틱스로군! 이것마저 막아주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