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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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탄을 공략하는 과정을 총 3단계로 나누었다.
그의 팀원들은 단계란 말을 두고 페이즈(Phase)라 부르기로 했으며, 사탄은 체력이 소진될때마다 페이즈를 변환했다.
1페이즈 상태에서의 사탄은 주먹과 발을 사용하는 그저 그런 단순한 기본 공격이 주가되었으며, 2페이즈 상태의 사탄은 양성자를 끌어들이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강력한 주먹 기술을 사용하였다.
우주는 이를 우주날린펀치라고 해서 작전을 설명할때 팀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우주펀치’라 불렀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서 2페이즈 공격은 공식적으로 우주펀치라 명명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페이즈는 사탄이 여섯 마리로 나뉘는 행동이었다.
[이제 2페이즈입니다! 우주펀치 조심하십시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원조가 급히 무전을 타전했다.
그들은 지난 전투기록을 통해서 사탄이 어느시점에서 페이즈를 변환하는지 예상시점을 가늠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이를 알려온 것이다.
[사탄이 서 있는 자리에서 기압의 변화 감지!]
무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사탄이 쳐든 주먹에서는 서서히 검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올려다 보던 우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된 그의 얼굴은 사탄의 주먹에서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른쪽 눈에 착용한 웨어러블글래스에는 우주펀치를 분석하는 정보가 성난 파도처럼 줄지어 올라가는 중이다. 이 순간에 오히려 방해가 될정도로 눈이 핑핑 돌겠다.
저도 모르게 방패를 불끈 쥐었다. 이두박근을 따라 아래로 뻗친 힘줄이 마치 팽팽한 낚싯줄처럼 불거져 나왔다.
그 뒤에 서서 관망중이던 미라도 마찬가지로 긴장한 얼굴이다. 그녀는 사탄의 주먹과 우주의 뒷모습을 수시로 번갈아보았다.
여차하면 튀어나갈 기세다.
그녀가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장님 이리오세요! 제가 대신 맞겠습니다!”
“......!?”
그게 뭔소리람?
미라가 앞으로 한발짝 내디딜려는 찰나, 우주가 버럭 소리질렀다.
“강미라!”
그의 시선은 여전히 사탄의 주먹에 머물러 있었다.
“독단행동은 금지라고 말했소이다!”
순간 미라의 몸이 멈칫했다. 그의 꾸짖음이 그녀의 사지를 옭아맸다.
“하지만...!”
“소생에게 혹시 무슨일이 생기면 그땐 미라 낭자가 전처럼 팀을 지켜주시오!”
그 말은 미라에게 다르게 들렸다.
‘미라 낭자가 다치는 것보다 소생이 다치는 것이 낫소이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오! 절대 오지 마시오!’
부르르 떨고 있는 눈꺼풀, 거세게 물결치는 가슴.
미라는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안타깝고 애타는 심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네 알겠습니다. 꼭 살아주십시오 우상님......!”
높이 30m의 사탄의 머리 위로 검게 물든 하늘.
높게 쳐올려진 녀석의 주먹에는 거무스름한 기운이 회오리처럼 감돌며 파바밧 하고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겼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주먹이 내려쳐졌다.
쾅!
별안간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났다.
우주의 방패와 사탄의 주먹이 세차게 부딪히면서 둘의 격돌은 폭발적인 바람을 불러왔다. 공기의 진동이 주변 숲을 뒤흔들고 공격조에 속해있던 몇 사람은 뒤로 수십미터 날아가버렸다.
여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주가 서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두께 2미터의 지반이 통째로 걷어올려지고 그것들이 상공 100미터 이상의 높이로 솟구쳐 올라갔다가 잠시후 다시 흙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또, 사탄의 주먹과 방패가 충돌했을때 발생한 충돌에너지의 영향은 실로 굉장했다. 1km의 총알속도보다 1000배나 빠른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려쳐진 주먹이 방패에 막혀 급제동이 걸리면서 갖고 있던 운동에너지의 대부분이 열로 변했다.
가열된 공기는 우주가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30m 이내를 열기로 가득채우며 나무나 풀처럼 불이 붙을 수 있는 발화체에서는 죄다 불길이 치솟았다.
그 열기는 우주를 덮치기도 하였지만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 단열효과를 가진 슈트 덕분이다. 뒤에서 지켜보던 미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막아냈어! 막아냈다구!]
뒤에서 지켜보던 누군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우주는 어떻게 된일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충격파에 정신이 얼떨떨했다.
빈틈없이 방패에 숨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천천히 곧게 세웠다.
사방에 흩날리는 먼지 때문에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시선을 들었다.
눈 앞에는 거대한 사탄.
시선을 내렸다. 1m 정도 발이 끌린 자국은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
귀에는 동료들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대장이 버티고 있어!]
[됐어! 이제 됐다구!]
[저 사탄이라는 아새끼는 이제 뒤졌다우!]
사탄의 우주펀치를 막아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사탄의 피부조직을 덧씌운 방패가 효과가 있었다. 방패의 정식 명칭은 '스톰쉴드 제네틱스.'
타이탄 고릴라를 재료로 했던 방패와 달리 이렇게나 끄덕없을 줄이야!
스톰쉴드 제네틱스에다가 당장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좋았어...!”
속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무전기에 대고 크게 외쳤다.
웨어러블 글래스에는 '맹수 손상율 10%' 라는 메세지가 출력되고 있었다.
“정상작동률 90%외다! 충분하다오! 이번에는 깔끔하게 잡아봅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팀원들은 무릎쏴 자세나 엎드려 쏴 자세로 풀자동사격을 시작했다.
우주의 등뒤 50m 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쏴대는 빔 라이플의 빗줄기가 사탄을 향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빔 라이플이 사탄의 피부에 닿을때마다 타고 그을린 자국이 생겨났지만 상처는 금세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사탄의 힘과 체력이 줄어드는 것을 모두가 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 관해서는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정확한 자료가 필요했고, 이 다음 임무부터 제네틱스 측에서 연구분석팀이 파견될 예정이었다.
“좋아, 잘한다! 마구마구 쏴버려!”
미라는 머리위로 빗발치는 빗줄기를 보며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할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그녀도 빔 라이플을 손에 쥐고 있긴했지만 쏠 수는 없었다. 맹수에 지급된 빔 라이플은 크기도 크고 무게도 더 무거운 만큼 없던 기능도 있고 공격력이 상당히 올라가 있는데, 그건 오로지 몸빵 전용 무기였다.
공격조가 들고있는 빔 라이플과는 성능이 매우 달라서 그녀가 사탄을 공격했다가는 사탄이 우주를 안보고 그녀를 쳐다볼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물론 그녀가 능력면에서 우주보다 더 뛰어나다는 가정하에서다.
“하아암...”
미라는 몸이 근질거렸다. 맹수에 타서 몸빵 서는 역할이 정말 지루했다. 우주처럼 대장급이라면 모를까 하염없이 교대를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하품만 나왔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우주의 활약상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랄까?
“흐음......”
사탄이 우주펀치를 날리기 전 극도로 긴장했던 기분이 풀리니 이제는 스르르 잠이왔다. 그녀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열심히 싸우는 중인 우주를 바라봤다.
귀는 꽉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우상님이랑 같이 살았으면......”
산속 깊은 곳으로 데려가서 단 둘이 같이 살고 싶다. 먹을 건 전부 자신이 구해올테니 그는 단지 먹어주기만 하면된다.
단, 그는 밖에 나갈 수 없다. 집에 꽁꽁 숨겨놓고 자신만 감상하고 싶으니까.
미라가 행복한 망상에 빠진와중에 공격조에 섞여있던 한성일이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우주를 호출했다.
[악어 7로부터 1에게. 숲이 불타는 바람에 연기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공격조 본진에서 사탄을 바라봤을때 심한 연기에 시야가 가리는 중이고, 온실가스로 인해 원활한 호흡이 곤란할 정도다.]
[악어 1로부터. 이해했다. 공격조 인원들은 지금 즉시 사격을 멈춰주길 바라오. 이상.]
후방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지원조에서 그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공격조 전원, 즉시 사격 중단하겠습니다.]
무전기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가 흐르고 나자, 15명의 공격조원들은 한몸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사격을 딱 멈추었다.
잘짜여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기는 법을 아는 팀 같았다.
[악어 1로부터 모두에게. 지금부터 자리를 이동하겠다. 공격조는 잠시 대기.]
우주는 쏟아지던 빔이 멈춘것을 확인 한뒤, 빔 라이플을 집어넣고 고주파 블레이드를 꺼내들었다.
고주파의 출력이 상승하기 시작. 블레이드의 표면이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달아올랐다.
그리고 잠깐의 쉴틈도 없이 사탄의 꼬리가 그에게 육박했다.
그는 땅 위에 웅크리고 앉다시피 하는 자세로 아슬아슬하게 피함과 동시에, 고주파 블레이드로 꼬리를 스윽 갈랐다.
치지익 하고 사탄의 살이 익는 냄새가 코를 쑤셨다. 노린내가 심했다.
그렇게 일단 공격을 받아낸 뒤, 그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악어 1로부터 3에게. 우측 300미터. 괜찮은가?]
지원조에게 묻는 말이었다.
전술지휘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두 명의 여성들은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댔다. 5대의 모니터 가운데 한 모니터에는 우주가 말한 우측 300미터 지점의 산이나 언덕같은 지형지물이 수백개의 선으로 3차원 모델링되어 표시되고 있었으며, 근방을 배회하는 돌연변이 생물의 위치까지 관측되고 있었다.
[악어 3으로부터 1에게. 확인 결과 전투장소로 적합하지 않다.]
[악어 1로부터. 이해했다.]
그때 다른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지원조 여성이 말했다.
[악어 25으로부터 1에게. 최적의 위치를 찾았다. 5시 방향으로 300m 이동바란다.]
[악어 1로부터. 수신양호.]
우주는 다시 말했다.
[악어 1로부터 모두에게. 공격조는 이동시 피해의 우려가 있으니 5시 방향 300m 지점으로 먼저 이동하길 바란다오. 그리고 방어조 인원 악어 7(한성일)이 따라가도록 하고 악어 2(강미라)는 남아서 소생과 함께 이동하시오. 추가로 정비조는 B포인트(도착지점)에 견인차량을 대기시켜주시오. B포인트 도착 전에 악어 2와 교대하겠소.]
[악어 5(유하나)로부터. 바로 출동하겠다.]
“드디어!”
미라는 교대란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악어팀의 공격조는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자리를 이탈했다.
맹수를 착용한 성일은 그들의 앞을 봐주며 길을 막는 나무를 통째로 뽑아내는 등 우거진 숲에서 길을 만들며 나아갔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성일에게서 자리를 잡았다는 연락이왔다.
우주는 사탄을 상대하며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고, 미라는 여전히 멀찌감치 서서 관망하며 뒤따라갔다.
“탱, 딜, 힐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한 건 우리 회사가 전 세계 최초 아닐까요? 근데 마치 게임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단 말야.”
B포인트에 먼저 도착한 공격조원 중에서 한 사람이 성일과 나란히 서며 잡담을 꺼냈다.
성일은 저멀리 사탄을 끌고오는 우주를 예의주시하며 대답했다.
“탱, 딜, 힐...?”
“그 왜 있잖아요. 판타지 게임에서 레이드할때 탱커 몇명에 딜러 몇명, 힐러 몇명 나누고 파티가는 거 말이에요. 탱커는 맹수, 딜러는 우리 공격조, 힐러는 꼭 정비조 같단 말야.”
성일이 피식 웃었다.
“난 게임을 안해봐서 잘 모르겠네.”
“게임 안해봤어요? 하튼 사십 넘은 아저씨들이랑은 이래서 대화가 안돼.”
20대 초반의 그 청년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잠시 숨을 돌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20대 후반의 사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에휴, 새끼. 그게 나이랑 뭔 상관이냐. 스무살 처먹은 애들 중에도 게임 안하는 애들 많다. 클럽다니는 애들은 여자 꼬시느라 게임 안하고 박사들은 공부하느라 게임 안하잖아. 그리고 게임에 나이가 어딨어 새꺄. 내가 게임하다 만난 어느 60대 할머니는 아들이 게임해보라고 권해서 같이한다더라.
괜히 너 때문에 성일이 아저씨 서운하시겄다야.”
“서운은 무슨, 그냥 한대 줘패고 싶지. 자네들은 영원히 20대로 살줄 아나? 세월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도 같다네. 내 나이 또래 다 그렇겠지만 몸은 40대긴 해도 마음만은 항상 십팔청춘이라구. 십팔청춘. 에라이 십팔!”
성일이 장난치듯 한 말에 사내와 청년이 웃겨죽겠다는 듯이 웃음을 빵 터뜨렸다. 그리고 주변에 널브러져 앉은 채 귀담아 듣고 있던 다른 팀원들도 다 함께 덩달아 웃었다.
“그런데 봐봐요. 형은 게임 해봐서 알죠? 우리팀 시스템이 게임이랑 똑같죠?”
“글킨해.”
“레지스트 쉴드에서 최초로 탱,딜,힐 역할 분담을 나눈게 대장님이니까, 대장님도 온라인 게임 해봤을려나?”
“에이, 워낙 바쁜 사람인데 할 시간이 어딨겠냐. 김수희랑 드라마 찍기도 바쁠텐데.”
“그럼 이걸 어떻게 생각해냈겠어요?”
“머리 싸매고 구상하다 보니 젤 좋은게 이거니까 쓰는거지.”
“신라의 우연진은 어떻게 했었으려나...?”
“거기도 다를게 있겠어? 신라도 정비사 키우는거 보니 우리랑 비슷하게 갔겠지. 몸빵 서다 고장나면 교대하고, 고치고, 그런 식으로.”
그때 갑자기 청년이 먼 곳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어?”
“왜?”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청년은 황급히 손가락으로 우주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봐요! 저놈 또 우주펀치 시전하는거 아냐? 두번째는 왠지 위험할 것 같은데!”
공격조 모두가 불안한 안색으로 한결같이 우주를 걱정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다보니 어느새 동료를 넘어 가족같은 존재가 된 우주였다.
콰앙!
먼 곳에서 무시무시한 충격음과 함께 나무 수십 그루가 일제히 쓰러졌다. 솟아오른 흙먼지가 연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악어1! 무사한가?! 악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