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05화 (105/285)

105화

우주의 뜬금없는 발언으로 장안이 술렁거렸다.

“저게 갑자기 뭔 얘기야?”

기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가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더니 이내 너나 할것 없이 손을 들며 질문을 쏟아냈다.

“신우주 씨,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전세계에는 원전이 수두룩한데 왜 하필 후쿠시마입니까? 명확한 근거 자료라도 갖고 계신겁니까?”

“전문가로 부터 확인된 사항입니까?”

“모, 모두 진정해주십시오.”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사회자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는 소라의 눈치를 살폈다. 소리없이 싸늘, 하다.

“아아, 여기는 신우주 씨 자택 폭발 테러사건에 관한 기자회견장입니다. 따라서 그에 관한 질문만 받겠습니다. 후쿠시마니 원전이니 하는 질문은 무조건 삼가해주십시오. 이후에도 본 기자회견장의 취지와 맞지 않는 질문을 하시는 기자분께는 말씀하시는 도중에 마이크를 끄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후쿠시마 원전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회견장은 이내 조용해졌다.

사회자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을때 다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손을 들고 있던 기자 중에서 한 여기자를 손으로 정중히 가리켰다.

여기자가 일어났다.

마이크가 그녀에게 건네졌다.

“세상일보의 조인선 기자입니다. 이번 신우주 씨의 자택폭발 사건이 항간에서는 사탄을 잡아낸 신우주 씨를 노린 러시아나 중국 요원들의 테러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우주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댔다.

“그건 사실이 아니오. 테러와는 전혀 상관없고 그저 단순히 집에서 쓰던 전자렌지가 폭발을 일으킨 것 뿐이외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일본정부는 당장 후쿠시마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 당신들에게 전세계인의 목숨이 달려있다!”

우주의 말이 앞뒤맥락에 안맞게 후쿠시마 원전 이야기로 다시금 튀자 소라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장내가 또다시 어수선해지자 그녀는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무리짓고 우주와 함께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갑자기 원전 반대 운동가라도 됐어요?”

문이 닫히자 마자 소라가 돌아보며 우주에게 소리쳤다.

우주가 괜한 헛소리를 함으로써 그의 이미지 추락이 염려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전에 그 어떤 말도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저한테 설명을 해보세요. 어째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짓을 벌였는지!”

소라는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우주 씨는 늘 이래요! 매사에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강해 항상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하고, 저와 의논하거나 타협할 생각은 절대 하지도 않아요!”

“낭자!”

“왜요!”

우주는 더할나위 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두 손을 살며시 잡아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한소라는 그의 눈빛을 살폈다. 저 눈빛으로 사기를 친다면 누구라도 당하겠다 싶을 정도로 진중한 분위기가 있었다.

“미리 말을 못해줘서 미안하오. 소생은 사실 후쿠시마 원전에 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할지 말지 그간 고민이 많았소이다.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확신을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오. 때문에 낭자에게도 말 할 수 없었소이다. 얼토당토 않게 들릴테니 말이오.”

“그걸 잘알면서 왜 했어요?”

“그냥 넘기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소.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단 말이오. 그래서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모두가 있는곳에서 말이나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터뜨리고 말았소. ”

“아니 그 전에, 그 황당한 말을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거예요?”

“여동생이 말해주었소.”

“세이비어?”

우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대화도 나누었어요?”

“내가 정신을 잃었을때 꿈속에서 만나서 이야기 했소이다.”

“꿈속? 신빙성이 떨어지잖아요.”

“아니오. 여동생과는 항상 꿈속에서만 만났었소. 지난번 고릴라팀이 전멸하던때도 그렇고, 이번 사탄을 잡을때도 그랬고. 꿈속에서 만난 뒤에는 항상 소생에게 신비한 힘이 생겼었소.”

소라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이 사람이 900억대 연봉자인지 약팔이 장사꾼인지 머릿속에 순간 혼돈이왔다.

하지만 만약 세이비어가 전해준 말이 확실하다면 후쿠시마 원전이 무너진다는 황당무게한 이야기가 사실처럼도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한번 침을 삼킨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담 저랑 상의를 했었어야죠. 그 후에 기자회견을 열어도 상관없을텐데 왜 한마디 말도 없다가 이렇게 일을 저지른건데요?”

“그건......”

우주는 사탄을 잡고 난뒤 결과보고서를 작성할때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소라에게 후쿠시마 원전에 관한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쏙 빼놓고 보고 하지 않았었다.

왜냐, 그에게는 내심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만약에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고 하면 어쩌지?’

우주는 차츰 이 세상에 적응해가고 있었고, 사람보는 눈도 트여가고 있었다. 아니 트인다기보다는 100여년 전에도 요즘 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달라진 것이라고는 세상문물 뿐이었다. 달라진 세상속에 사람들만 그대로 옮겨와 살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다양한 인간군상 본연의 모습이 어디가랴.

소라는 국내 비즈니스계의 거물로서 머리가 명석하고 돈 냄새를 잘 맡는다. 거기에, 예전에는 철수를 바로 내치거나 우주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점, 또 회사의 이익을 위해 조폭 출신의 범죄자를 구제해주고 계속 레지스트 쉴드에 투입한 점 등 실리를 위해서라면 한없이 비정한 면모도 갖추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미래를 안다는 것은 분명 좋은 기회다.

어떤 의미냐 하면, 정말로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주식시장에서는 방사능 오염과 관련된 주들이 크게 오르게 될것이다.

입을 가리는 마스크부터 시작해서 손을 씻을때 사용하는 세정제, 또 방사능 피폭 예방제 ‘요오드화 칼륨’과 방사능으로 인하여 신체에 어떠한 이상이 발생하였다면 그에 대한 의료기구를 생산하는 업체의 주식이 크게 상승할것이다.

그러므로 소라가 방사능 수혜주들을 가만 놔둘리 없을 것이고,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직접 일어날때까지 우주가 아무말도 못하도록 그의 입을 꾹꾹 눌러 막을것 같았다.

‘미안하오 소라낭자.’

우주는 며칠을 고심했다.

한편으로는 소라를 믿지 못하고 설레발을 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달콤한 연인처럼 지내는 마당에 서로 간의 신뢰가 없다는 반증 같았다.

그녀를 믿지 못하다니, 그는 부정하고 싶었다. 애정이 없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철저히 계산적인 관계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날이 늘어만 가는 소라에 대한 죄책감을 못이겨 오늘 기자회견장에서 급하게 터뜨려 버렸다.

우주가 소라의 질문에 대답했다.

“왜 먼저 말해주지 않았냐면은, 잊고 있었소.”

“잊어?”

“그렇소. 그간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거요.”

“기자회견장에서?”

우주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을 잡고나서 보고서 적을때 생각도 안났어요?”

“당시 사탄의 공격에 정신을 잃고 났더니 그 후로 뇌에 조금 손상이 온것 같소. 미처 생각이 안났소.”

“흐음......”

소라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거 큰일이네요. 이따 병원가서 검사라도 받아봐요.”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그리고 여동생이 또 하나 말해준것이.”

침을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나면 전 세계에 사탄이 출몰할거라고 말해주었었소.”

“전 세계에 사탄이......?”

소라는 곧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손뼉을 마주쳤다.

“그거 잘되었네요!”

아까의 서운함은 온데간데 없고 갈색의 눈동자가 한층더 반드르르 빛이나고 있었다.

“뭐가 잘되었다는거요?”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회사 말고 사탄을 잡을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한군데도 없으니 의뢰를 받고 처리 해주는 식으로 사업아이템을 개발하면 딱 좋겠어요.”

“의뢰... 라니?”

“일본 도쿄를 사탄이 공격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걸 누가 잡죠? 일본이 사탄을 잡을만한 능력이 되던가요? 그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제네틱스 뿐이라구요! 미국, 유럽, 심지어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는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우리를 찾게될 거에요!”

“낭자 그러면......”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제네틱스가 잘 나가게 되면 다코오 가문도 돈을 많이 벌게 되잖소?”

“그건 어쩔 수 없죠.”

“안되오. 절대 안되오.”

우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낭자. 그건 절대 아니되는 일이오. 소생이 마츠다이라와 하시도루를 죽인다 하더라도 다코오 가문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한 언제 제 3의 마츠다이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외다. 제네틱스가 전 세계에서 벌어오는 돈을 바탕으로 다코오 가문은 군국주의를 청산하지 않고 헛된 야망을 계속 품게 될거란 말이오.”

소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주 씨 마음이야 저도 잘 알지만 저도 아버지한테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매일 미국에 있는 언니와 비교되는게 얼마나 싫은줄 아세요? 그리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만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이어지는 대화 중에 소라는 호소하듯이 말하면서도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고 떼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우주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절대 허락을 하지 않았다.

“제네틱스에 다코오 가문의 주식이 있는 이상 신세기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절대 사탄을 잡지 않을거요.”

“왜 싫은데요! 지금이 일제시대도 아니고 당신만 잘 살면 되잖아! 그리고 나도 있고!”

소라는 화가 나 답답한지 가슴을 쳤다.

“우주 씨, 이 세상은 이기적인 시대에요. 나라? 애국? 다 필요없어. 나와 내 가족이 잘 살면 그만이야! 사실 당신도 과거에 대한 미련만 버리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수 있는데 언제까지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거에요? 우주 씨야 말로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거 아니에요? 지금은 일제시대가 아니야! 애국심 따위 개나 줘버리란 말이에요! 글로벌한 시대에 국경 따위는 없어!”

그녀의 말에 우주는 화가 솟구쳤다.

“한소라!”

그녀는 지지않고 대꾸했다.

“내 말이 틀렸어요?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려는 당신을 누가 알아줄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뭐해요? 조국이 당신의 업적을 알아주기라도 한데요? 지금 국회에만가도 친일파 의원이 수두룩하고 하다못해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까지 친일교과서로 싹 바뀌고 있다구요! 당신이 백날 나라를 생각해봤자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아~ 내가 그땐 그랬었지라고 하면서 판잣집에 사는 독거 노인의 회고뿐이라구요!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그렇게 몸바쳐 일했는데도 곁에는 아무도 없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조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애국지사 후손들한테 베벌리힐스에 집까지 지어준다는데!”

쾅!

우주는 말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자 홧김에 그만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그녀 말이 맞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제강점기시대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아주 잘살고 있는 반면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하나같이 궁핍한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젠장할...!”

그는 너무도 분한 마음에 이를 뿌드득 갈았다.

***

그날 밤.

온세상이 우주의 후쿠시마 발언으로 인해 들썩거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늘도 어김없이 우주의 육봉은 소민의 꽃잎을 파고들었다.

홀딱벗은 료코와 감미로운 입맞춤을 나누면서도 그의 허리는 연신 소민의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료코의 입술이 떨어지자, 우주는 밑에 깔려있는 한소민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물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달걀후라이 같은 젖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소민 낭자, 신라그룹으로 다시 돌아가 재기하고 싶지 않소이까?”

“시, 싫어요. 난 못해.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두렵단 말이에요.”

“만약 내가 옆에 있어준다면?”

우주가 갑작스레 물어왔다.

쾌락에 취해있던 소민이 번쩍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뜨자 꽃잎이 조여왔다. 이성의 꿈틀거림에 몸이 반응한 것 같았다.

육봉이 기분 좋다.

“관심있소?”

“응!”

소민이 고개를 바쁘게 끄덕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녀가 애당초 대인기피증을 갖게된 원인을 따지자면 우주를 차지하려는 욕심때문이었다. 그러니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귀가 솔깃했다.

“옆에 있어 주겠다는 건, 저와 같이 일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낭자가 따로 회사를 차릴 생각이 있다면 소생이 반을 투자할것이오. 우리 둘이 회사를 세우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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