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막...... 막내야!”
막내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해도 막을 수가 없다.
우주는 냅다 뛰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뒤 때로는 엄격한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정한 오빠가 되기도 했던 그였다.
우주는 꽉 껴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널 홀로 남기고 떠나서... 크흑!”
막내 역시 기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바보, 멍텅구리...”
꽃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재회한 막내와의 대화는 굉장히 즐거웠다.
하얀 하늘, 푸른 초원에 우뚝 서있는 오래된 나무 밑에 앉아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우주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막내는 모두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100년 전에 비해 새롭게 바뀐 세상이야기, 서로 증오 관계였던 료코가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이제 둘만의 아이까지 갖기로 했다는 이야기, 연예인으로도 활동한 이야기라든지 곧 새로운 차와 집을 살거라는 등 우주는 마음이 들뜬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던게냐......?”
자신이 봉인되고 나서 막내의 행적을 묻는 우주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그였으므로 꺼내기가 매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꼭 알아야만 했다.
자신이 봉인된 후 죽었을까?
“오라버니.”
“응?”
막내는 옅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이 저멀리 지평선으로 향했다.
“오라버니가 예상하는게 맞아.”
그 말에 우주는 즉시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막내는 천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때 난 죽어버렸어.”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늘 돌봐주던 오라버니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일까나?”
“미안하다. 미안해... 전부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우주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눈물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렸다. 여동생을 외톨이로 남겨둔 것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아픔이고, 아무리 빌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그의 삶을 부정할 정도로 자신을 크게 원망했다.
“내가, 내가 그때 독립운동만 안했어도...!”
“헤헤, 뻥인데.”
“뭐...?”
“농담이었어.”
막내는 귀엽게 혀를 살짝 내밀며 웃어보였다. 그러나 우주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이 못난 오라비를 위로해줄 필요는 없단다...!”
“농담이라니깐. 난 살아있다구~”
“내 꿈속에서 말이냐? 그래봐야 소용없어. 지금 여긴 꿈속일 뿐이고, 잠에서 깨어나면 넌 금세 사라진다는 걸 아니까.”
막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산 사람을 죽일 작정이야? 난 정말로 살아있다구. 그리고 여긴 오라버니의 꿈속이 맞긴 하지만 내가 오라버니를 만나기 위해 만든 세상이야.”
“......?”
우주는 저도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아연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아사 직전에 지구가 살려줬다는 말이야.”
“지구?”
막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지구.”
“우리가 사는 지구?”
“그래 이 지구.”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흐르던 눈물이 멈췄다.
우주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정한 순리대로라면 이해못하는게 당연할거야. 하지만 오라버니 그거 알아? 우리가 사는 지구는 말야. 사람처럼 숨쉬고 살아있어. 사람처럼 고민도 하고.”
“그걸 어떻게 아는게냐?”
“이 순간에도 나와 교감을 나누고 있으니까 알지.”
우주는 무심코 마른 침을 삼켰다.
꿈은 망상.
꿈속에서는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다채롭게 그려진다.
막내가 하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105년을 대체 어떻게 살아온단 말인가. 게다가 지구와 교감을 나눈다고?
“허허...”
이건 분명 꿈이다.
“나 꿈에서 깰래에에에!”
찰싹, 찰싹!
우주가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깨라, 깨라, 깨라!”
찰싹, 찰싹, 찰싹!
“뭐하는 거야!”
막내가 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내 여동생은 허풍이나 하는 그런 소녀가 아니었어!”
“허풍이 아니라고 이 멍청아!”
막내가 크게 다그치자, 우주는 갑자기 발악을 멈추더니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왜? 이제야 정신이 들었어?”
“어떻게 오라비한테 멍청이라고 할 수 있니!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은 이러지 않았다! 역시 이건 꿈이야! 나 꿈에서 깰래에에에!”
찰싹, 찰싹, 찰싹!
“백날 그래봐라. 꿈에서 깨지나. 에휴.”
막내 그저 한숨만 내쉬며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우주 혼자 발광을 하는 것을 한동안 지켜보기로 하면서 제 풀에 지쳐쓰러질때까지 기다렸다.
“......”
우주는 이후 두 뺨이 벌갠 상태로 잔디 위에 뻗어있었다. 일어설 힘도 없는 것 같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막내가 투명한 유리 잔에 담긴 물을 들고 왔다.
“이제 다 했어? 이 얼간이 오라버니 같으라구. 그러니까 호구 소리나 듣지. 자, 마셔.”
막내는 치마를 접고 그 옆에 앉으며 그에게 물을 건넸다.
꿀꺽, 꿀꺽, 꿀꺽.
우주는 상체를 일으켜 남김없이 다 마셨다.
“하아~”
좀 살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보.”
막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그의 뺨에 손을 갖다댔다. 그 순간 붉게 달아올랐던 피부가 순식간에 살색을 되찾으며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아픈 감각이 단숨에 사라지자 우주가 놀란 눈빛을 했다.
“어, 어떻게 한일이냐?”
“신기하지?”
“대, 대단해!”
오랜만에 여동생을 만나니 나이나 지위 따위는 다 잊고 동심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우주는 평소와 달리 많이도 촐싹거렸다.
잠시 뒤 미소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린 우주도 잠자코 귀를 열었다. 생각해보면 막내에게는 어렸을때부터 미지의 힘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물건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신통한 아이였다.
이 아이의 능력 앞에서는 자신의 힘은 그저 보잘 것 없는 보통사람에 불과할 정도였으니까.
“지구는 날 조정자로 선택했어.”
“조정자?”
“그쪽말로는 세이비어일까? 조정자란 인간과 지구 사이에 타협점을 찾도록 도와주는 존재야.”
“타협점이라니, 지구와 인간이 타협할게 뭐가 있다는거냐.”
막내가 작게 웃어보였다.
“있잖아 오라버니. 지구는 지금 인간들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어. 지구라는 별은 자신이 죽어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지.”
“환경오염 때문이냐?”
“맞아. 그래서 지구는......”
그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입에 담았다.
“인류를 청소할 계획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사탄도 지구가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낸 생명체지.”
우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탄을 지구가 만들었다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게끔 태어난 존재야. 식성 좋은 괴물이지.”
“잠깐, 잠깐만. 이해가 안된다.”
우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머릿속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를 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사탄을 만들었다면서 네게는 따로 조정자 역할을 맡긴 이유가 무엇이냐?”
막내는 시선을 앞에 두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날 조정자로 내세운 것이 ‘어머니와 같은 마음’의 지구이니까.”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사람으로 치면 지구에는 두 가지 인격이 있어. 하나는 다정한 어머니와 같은 마음, 또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야.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머니와 같은 마음은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게 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마음 같은 경우에는 별이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는 냉혹한 과정을 일컫는 거야.”
“냉혹한 과정이라면......?”
“대표적으로 46억년 전 지구가 지금보다 무척이나 작은 행성일때, 아버지와 같은 마음은 지구의 부피를 늘이기 위해서 우주를 떠돌던 10개 이상의 소행성을 끌어들여 지구와 대충돌을 일으켰어. 덕분에 지구의 크기가 지금처럼 커진거야. 그리고 8억년 전과 22억년 전에는 대기에 산소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두 차례나 지구를 얼려 버리기도 했지.”
그녀는 이어 말했다.
“자, 오라버니. 인류가 지구에서 살고 있는데 소행성을 충돌 시키거나 지구의 환경을 냉각시킨다면 과연 지구에서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은 마음의 지구는 냉혹해. 그런 일을 거리낌 없이 하지. 우리와 생각이 달라.”
계속 말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은 자신이 공들여 만든 지구를 지킬 생각이야.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존재는 진화 과정에서 태어난 뜻밖의 돌연변이랄까, 아무튼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서 아주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나봐.”
“그래서 사탄을 만든게냐?”
“그래. 사탄 같은 존재는 앞으로 더 많아지고 다양화될거야. 지금이야 레지스트 쉴드 한정으로 활동 영역이 좁혀져 있지만 나중이 되면 전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겠지.”
“그 말은 즉, 사탄이 레지스트 쉴드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다는 얘기냐?”
“응. 곧 그렇게 될거야.”
해맑게 웃으며 말하니 왠지 섬뜩했다.
우주는 긴장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쯤......?”
“언제일까. 몇달 뒤 일본 후쿠시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천재와 인재가 겹쳐 폭발하게 될거야. 그로인해 다량의 방사능이 바다로 유출되고 전세계의 바다는 몇달에 걸쳐 서서히 오염이 되고 말지.”
“그럴리가......!”
“사실이니 믿어. 그때는 지구 전체에 돌연변이 생물이 생기게 될것이고, 덩달아 사탄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거야.”
“어떻게 그걸 다 알고있는게냐?”
“오라버니, 난 조정자야. 멀지 않은 미래를 내다 보는 것쯤이야 간단해.”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우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로군......”
막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에 있는 유채꽃밭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지구는 인류가 대격변에 저항하길 바라고 있어. 단적인 예를 들면 타이탄 고릴라의 뼈로 맹수의 방패를 강화시켰듯이 인류가 레지스트 쉴드에서 얻은 자원으로 더 강해지길 바라고 있지.”
그때 우주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동생을 놔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갈곳을 모르겠는데 급히 가야만 한다는 기분.
막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갈때가 된것 같네.”
“갈때라니?”
“육체가 눈을 뜨려고 하는거야. 아쉽지만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럼 오라버니. 만나서 반가웠어.”
막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했다.
“자, 잠깐만! 잠깐만 막내야!”
“응?”
“레지스트 쉴드의 중심으로 가면 널 만날 수 있는 게냐? 널 다시 데려올 수 있는거야?”
막내는 생긋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있던 다른 손을 펴자 작고 둥근 빛이 순간 번쩍 거리다 사라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힘으로 사탄을 잡도록 해. 사탄에게서 얻은 자원으로 인류의 미래를 지켜줘.”
“힘? 힘이라니, 무슨 힘? 막내야! 막내야!”
급기야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평온하게 웃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은 허상처럼 점점 흐릿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