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90화 (90/285)

90화

“물론이외다. 조만간 날을 잡읍시다.”

[정말 고마워요!]

하나는 크게 기뻐했다.

정확한 날짜는 사탄 공략 이후에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주는 한편으로 박찬우를 대신 내보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두 사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하나 낭자에게 큰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리구요 우주 씨......]

하나의 목소리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말해보시오 낭자.”

[이거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팀을 위해서 생각 해낸건데.]

“괜찮소. 어여.”

곧바로 이어진 그녀의 말은 그의 동작을 멈추게 만들었다.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보는건데...... 전에 우주 씨하고 신라그룹 한소민 하고 둘이 사진 찍힌적 있잖아요? 두 분이 서로 친분을 갖고 계시는 것 같은데...... 최근 한소민이 경영운영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이구...... 이참에 연락 한 번 주고 술자리에서 슬쩍 사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는건 어떨까요?]

우주는 저도 모르게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자신이 소민을 남몰래 데리고 있기에, 타인의 입에서 한소민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뜨끔했다. 납치한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소민이라니, 그럴 이유가 있소이까?”

[있죠. 신라그룹은 사탄과의 전투를 영상으로 녹화해서 갖고 있지 않을까요? 한소민도 그걸 봤을테고, 무엇 때문에 사막여우팀이 전멸할뻔한 위기를 겪은 것인지 슬쩍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경험담은 공유되긴 했어도 실제 전투 영상은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각 회사마다 1급 기밀로 취급되었다. 남들보다 더 앞서갈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니 당연했다.

우주는 휴대폰을 귀에 댄채 침을 조용히 삼켰다.

“알겠소. 검토해보겠소이다. 그리고 이만 끊는게 좋겠소.”

우주는 전화를 끊은 뒤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제네틱스 영상보관소에 남아있는 사탄 공략 영상은 전투 시작 불과 1분만에 사탄의 무자비한 주먹 아래 이렇다할 정보조차 얻지 못할정도로 순식간에 전멸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신라그룹이 갖고 있는 영상은 적어도 다를것이다. 국내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우연진이라는 존재와 샥스핀의 사용기.

파워드슈트는 과연 사탄에게 얼마나 통했을까.

뭘해도 참고할만한 사항이 분명 있긴 할것이다.

그러니 팀을 위해서라면 하나의 조언이 전적으로 옳았다. 사탄과 마주치기 전에 정보를 하나 더 알아갈수록 생존확률은 그만큼 확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성공을 위해서 소민을 이용하는 것만 같은 도의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차영웅의 고릴라팀과 같은 상황을 또 볼것이냐 말것이냐. 아니면 대인기피증 치료중인 그녀를 정말로 순수하게 대할것인가 말것인가.

소민의 지금 상태로 보아선, 우주가 그녀를 섹스로 꼬드기고 신라그룹으로 가서 동영상 하나 빼오라는 것을 시키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말만하면 정말로 들어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고민을 거듭하던 우주는 결국, 생각을 유보했다.

심사숙고해야할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을 관두고 사탄 연구나 할참이었다.

우주는 책상 서랍에서 두툼한 자료 파일을 꺼냈다.

그 순간 분홍색 작은 편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제 김철수가 건네준 김아라의 편지였다.

어느새 잊고 있었다.

당장 펼쳐 보았다.

아저씨께.

다섯 번째 편지입니다.

이번주에 보낸지 얼마 안됐는데 또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 혼자 있는게 무섭습니다. 창밖에는 강한 태풍이 와서 천둥번개가 치고 있거든요.

거센 빗줄기에 창문도 열어놓지 못하겠습니다.

아저씨는 이 시간 무얼하며 보내고 계실까요. 가족과 함께 사시나요?

옆에 누군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댈 가족이라고는 아저씨 밖에 없으니까요.

우주는 편지를 다읽고 나서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답장을 쓸지 말지 고민을 했다.

그는 곧 그 생각을 정리했다.

“좀 더 미루는게 좋겠어.”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으로 사탄 공략을 시도하기로 계획한 날이었다.

본래 사탄 공략은 사탄이 활동하지 않는 밤시간을 이용할 작정이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에서 구한 자료를 참고하고 실제 동영상을 검토해본 결과 그것은 불가능했다.

‘사탄의 숨소리는 아주 고요했다. 우리 쑨다이밍팀이 그 놈을 죽일 생각에 전원 무기를 빼드는 순간, 갑자기 사탄의 몸에 경련 같은 것이 일었다.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그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물흐물 하며 사지가 오므라들었다. 녀석이 자신의 피부를 액체처럼 성질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전원은 공포에 짓눌려 있어서 누구 하나 발포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저 멀거니 바라만 볼 뿐이었고 유일하게 형태를 간직한 눈은 소름끼칠 정도로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뒤이어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땐, 사탄은 이미 저바닥에 나있는 땅속 깊은 구멍으로 온몸이 빨려들어간 상태였다. 조금 전까지 녀석이 서 있던 자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탄은 밤중에 공격을 받게 되면 액체 상태로 몸을 변환시켜 장소를 이탈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제네틱스 역시 영상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우주가 직접 확인한 사항이었다.

따라서 그는 공략 시간대를 조절해야만 했다.

10월 4일 해지는 시각은 오후 06시 10분. 그에 맞게 작전개시시각은 오후 06시 05분으로 정했다.

5분.

정확히 5분 간만 전투를 벌일 작정이었다.

처음부터 잡아내겠다는 객기어린 의욕은 없었다. 그는 되도록 사탄에 관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일단 악어팀이 사탄이란 존재를 몸소 체험해보고 느껴보는게 관건이었다.

그리고 5분 동안 최대한 많은양의 자료를 얻을 수 있길 기대했다.

자료란 예를 들어 이런 것들.

지난번 타이탄 고릴라에 의해 허무하다싶을정도로 무참히 찌그러졌던 맹수의 방패 테스트. 이번에 전지연 박사는 타이탄 고릴라의 뼈를 가공하여 방패에 코팅했다.

0.5톤의 방패는 전보다 0.4톤으로 가벼워졌으며 강도 또한 그 이상으로 단단하고 굳세졌다.

여담이지만 타이탄 고릴라의 뼈가 부족해 맹수의 장갑까지는 코팅을 할 수가 없었다.

또, 신형 무기인 빔 라이플 테스트.

사탄은 투사체를 모조리 반사한다. 그러나 투사체가 아닌 레이저라면 어떨까?

좌우간 우주의 악어팀이 창단된지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팀 내부에 변화가 있었다. 때마침 제작이 완료된 맹수 한 기가 추가되었다는 것과 동료가 두 명이나 늘었다는 점이다.

새로 들어온 동료 한 명은 임현주의 스컹크 팀에 속해 있던 한성일. 하나를 위해 우주의 사진을 몰래 찍어주거나 일전에 초신성 곰 사냥을 도와주었던 인물이다.

“역시 사람은 마음이 맞는 곳에서 일해야지. 자네팀에 소속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네.”

“그러게 정말 잘됐소. 그렇잖아도 한서방이 우리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그동안 건의를 참 많이했었소.”

“이것 참 의리가 으리으리 하구만.”

우주가 일부러 데려온 것도 있지만 알고보니 한성일은 대규모 카센터 사장이었다. 그만큼 기계에 밝고 조작도 능숙했다.

마침 맹수가 하나 남는 가운데, 악어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지원자들에 한해 맹수조작능력을 평가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당시 으뜸은 한성일이었다.

우주는 즉시 맹수-003호기 조작을 그에게 맡겼다.

또 한성일 말고도 새로 합류한 동료는 예전 절에서 만났던 호랑이 눈썹을 가진 스님이었다.

“남조선 아새끼래, 죄다 에미나이(계집아이)처럼 생겨서 그런지 내래 믿음이 안가. 그래서 그리 신용하지 않디만, 내 대장 동무라면 확실히 믿갔어. 내 환영술법을 깨부순건 대장 동지가 처음이가든! 내래 잘부탁한다우!”

스님의 법명은 범룡.

그는 음파를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환상을 불러오게 할 수 있는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 능력을 가진 희귀한 수라였다.

덧붙여 사람들은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수라들을 데바(Deva)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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