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61화 (61/285)

61화

오렌지로 염색된 긴 머리에 발롱 펌을 한 그 여성은 상당히 도발적인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섹시하면서도 어딘가 험악한 분위기였으며, 광기에 찬 하이에나 같은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였다.

“이거 뭐야. 실물이 훨씬 잘생겼잖아?”

여성은 우주의 눈앞까지 다가오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안녕하세요? 오성그룹 강미라입니다.”

“신우주라 하오.”

두 사람은 서로 악수했다. 이어서 강미라는 들고 있던 권총을 허리 뒤쪽에 꽂아 넣더니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이쪽은 1번 표범. 올빼미와 접촉했다.”

교신 내용으로 보아 제네틱스 측에서 오성그룹에 협조를 요청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온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주는 그녀의 도움으로 더욱 안전하게 23명의 여대생들을 무사히 대피소로 피신시킬 수 있었다.

두꺼운 철판으로 된 대피소 문을 닫기 전, 한 여대생이 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밥 사준다는 약속, 잊지 마세요!”

이후 우주는 인상공업전문대학 정문 앞에 세워둔 자신의 바이크를 되찾으러 가기 위해 미라의 바이크를 얻어 탔다.

“제 우상을 뒤에 태우고 달리다니 참으로 영광이군요.”

“우상?”

우주가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미라는 대답 없이 큭큭 웃기만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뒤에 타고 있던 우주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에이취!”

인상공업전문대학의 정문에 다다르자 바이크는 속력을 줄이며 이내 멈춰 섰다.

우주가 바이크에서 내리더니 얼얼한 코끝을 비비며 말했다.

“이곳까지 태워다 줘서 고맙소.”

“고맙긴요.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자주 본단 말이오?”

미라가 즐거운 듯 입꼬리를 올린 채 대답했다.

“어라? 이야기가 아직 안 갔나 보군요.”

“무슨 이야기 말이오?”

“제네틱스로 이직하는 대가로 우주 씨 팀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옵션을 내걸었거든요.”

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생에게는 팀이 없다오.”

“그건 알아요. 제네틱스는 현재 우주 씨를 위한 팀을 꾸리기 위해서 멤버를 물색 중이랍니다.”

“아…….”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인 그가 몰라서 서운했다기보다는 전보다 한 단계 진급한다는 말이기에 조금은 기뻤다. 연봉도 더 오르려나?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주세요.”

미라는 큭큭 거리더니 마냥 좋은 듯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도를 빼 들더니 아까 우주가 잡았던 돌연변이 범고래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제가 원래 임무 중에 칼을 쓰는 타입이 아닌데, 우주 씨 팬이라서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를 보고 좀 따라해 봤습니다. 한번 봐주실래요?”

제네틱스 미디어는 최근 우주가 초신성 곰을 잡는 마지막 장면만 삭제한 채 금강산에서 활약했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한 시간 30분 분량의 블루레이와 DVD로 만들어 전 세계에 출시했다.

휙, 휙!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어때요?”

푹! 푸욱! 스윽, 삭!

그녀는 손에 쥔 칼로 사정없이 범고래의 사체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뭔가 짜릿한 기분이라도 느끼는지 표정을 히죽거리더니 점점 더 사체를 절단내는 데 정신없이 몰두했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엣!”

푹! 푹! 퍽! 퍽!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던 우주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불렀다.

“미라 낭자.”

“네?”

고개만 돌려 그를 쳐다볼 뿐, 그녀는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칼은 계속 사체를 내려쳤다.

우주는 굳은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

“미라 낭자, 그 사체는 이제 우리 회사 거요. 그렇게 훼손하면 어쩌란 말이오.”

“아 참, 그렇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미라는 당장 손동작을 멈추고 칼을 들어 휙 하고 허공에 털면서 칼날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대로 칼을 얌전히 칼집에 꽂아 넣고는 우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초면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소. 근데 성격이 원래 좀…….”

우주는 손바닥을 아래위로 휘젓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난폭한 면이 있는 것 같소만?”

“예. 제가 좀 잔인한 거 좋아하고 새빨간 피를 보면 흥분을 주체 못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매주 정신과에 다니는 중이기도 하구요.”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으니 깊이 파고들고 싶진 않아서 더 물어보진 않았다.

미라는 떠나기 전 바이크에 올라타며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일할 수 있다니 정말로 기뻐요.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주 씨의 실력은 진짜로 끝내주거든요. 이 시시한 세상에서 요즘 절 가장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우주 씨예요. 하루하루 피곤해도 매일 우주 씨의 동영상을 감상하며 잠드는 게 하루의 낙이랍니다. 만약 이 세상에 우주 씨가 없었다면 전 아마 미쳤을 거예요.”

미라의 표정은 정말로 기쁜 것처럼 보였다. 말투도 매우 밝았다.

반대로 우주는 그 모습이 왠지 섬뜩하게만 보여서 등골이 오싹했다.

“소생도 알고 보면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오. 그리 대단한 것도 없으니 너무 기대는 않는 게 좋소이다.”

무언가 잘못된 환상에 취한 그녀를 위해서 생각해 낸 대답이었다.

우주는 무한한 호의를 보여준 미라를 떠나보낸 후, 자신의 슈퍼바이크에 올라탔다. 버튼을 몇 개 누르자 슈퍼바이크의 계기판에 오색찬란한 불빛이 들어오면서 부르릉 시동이 켜졌다.

동시에 무전기를 통해서 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번 올빼미, 5번 올빼미 들립니까? 아아, 5번 올빼미!

“5번 올빼미 들리오. 이상.”

―왜 이리 늦었습니까? 정말 연락하기 힘드네.

짜증과 불평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나 우주는 퉁명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되었다. 반가운 나머지 흐뭇하게 웃음을 짓는 한편, 무전기에 대고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모두가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전투가 벌어져서 미처 응답을 못 했소.”

―다음부터는 전투 중이라도 제 말에는 꼭 응답하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리하리다.”

―좋습니다.

소라는 한결 화를 가라앉힌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 제네틱스가 신라그룹에 비해 많이 뒤쳐져있고 방송사에서도 우릴 무시하는 발언을 매초마다 계속 쏟아내는 중입니다. 저는 이게 매우 불쾌합니다. 우주 씨, 지금이 바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입니다. 신우주란 존재를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십시오. 응원합니다. 우리 제네틱스가 매순간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맹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미리 써진 대본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우주는 피식 웃었다.

“소생이 몇 번째요?”

―몇 번째라니요?

“다른 팀원들에게 이름만 바꿔서 똑같이 말해 준 건 아니오?”

―아, 아니거든요?

소라가 순간 말을 더듬었다.

우주는 혼자 웃으며 슈퍼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핸들을 잡고 바짝 상체를 숙였다. 그러고 나서 능청스럽게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소생이 이 순간 힘내려면 소라 씨의 본심이 담긴 응원을 들어야겠소.”

안 봐도 뻔했다. 무전기 너머로 소라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같은 시각,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에서는 소라가 재빨리 다중 회선을 끄고 5번 올빼미만 들을 수 있도록 단일 회선으로 연결했다.

그녀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얼굴을 붉히고 낮게 말했다.

―뭐예요? 한두 번 어울렸기로서니 정말 짓궂게 구는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러다 또 오해받고 싶어요?

“소라 낭자와는 오해받아도 괜찮다오.”

부릉, 부르릉! 우주의 슈퍼바이크가 달릴 준비를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서 안 해줄 테요?”

―해요, 하면 되잖아요.

소라는 상황실 눈치를 계속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힘내세요. 제네틱스가 1등 하면 우리 집에 데려가서 라면 끓여줄게요.

“뭐요, 겨우 라면이오? 너무 성의 없소. 그게 뭐요.”

소라는 순간 짜증이 확 솟구쳤다. 이 인간은 어쩜 답답해도 이리 답답한 거지? 요즘 집에서 라면 끓여준다는 소리가 무슨 말인지 정녕 모르나? 이런 건 남자 쪽에서 먼저 알아듣고 여자를 신경 써줘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그녀는 애써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우주 씨만 믿어요. 이번에 우리 회사가 1등 하면 제가 한턱 쏠게요.

무전기 너머에서 우주가 활짝 웃었다.

“정말이오? 소라 씨와 단 둘이서만 먹는 거외다.”

―알았어요.

소라는 심통치 않은 기색으로 무전을 끝마쳤다.

반면에 우주는 신이 나서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 시각, 전국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드롭존 통계 수치는 다음과 같았다.

1위 신라그룹 : 88 / 우연진 : 42, (중략) 김수희 : 182위 제네틱스 : 61 / 차선희 : 22, 추길성 : 19, (중략) 신우주 : 103위 KTS그룹 : 35 / (이름 생략)4위 오성그룹 : 30 / 강미라 : 19, (나머지 생략)5위 가람그룹 : 23 / (이름 생략)작전 지휘 구역.

지휘 구역에 마련된 야외 브리핑장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많은 기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인천 시장이 직접 브리핑장에 나와서 피해 규모와 사상자 현황 등을 전 국민에게 보고하는 중이었다.

보고가 끝난 뒤에는 손을 들어 질문하는 기자, 노트북으로 재빨리 기사를 작성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기자, 혼란스러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생중계로 내보내는 외국기자 등 각양각색의 기자들로 북적북적했다.

한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를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작전 지휘 구역 안에서 러시아와 중국에서 파견된 스카우터들이 모습을 드러내 관심을 모았는데요. 현장에서 포착된 스카우터들은 총 여덟 명으로 중국 기업 레보노, 하이알, 와웨이, 쑤닝, 바이보 중공업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아랄시브, 로즈네프트, 구스타프, 노브고에서 파견한 스카우터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방문은 유망주 신우주를 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요. 신우주는 신입 수라와 회사 간의 첫 계약 기간은 무조건 1년이라는 한국 정부의 규정에 따라 내년 7월부터는 자유계약 자격을 취득하게 돼 국내외 어떤 기업으로든 이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드롭존 안에서의 신우주의 활약은 많은 기대와는 달리 미미하다시피 합니다. 특히 그간 라이벌 관계로 지목되어 왔던 우연진의 현재 활약상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데요. 일부에서는 신우주의 실력이 그동안 거품이 아니었냐 하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앞 도로 한중간에 엎어진 시내버스.

버스 안에는 살색의 원통형 돌연변이 생물이 들어가 있었다. 녀석은 버스를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는지 기다랗고 굵직한 몸을 배배 꼬면서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길이는 수시로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통에 정확한 크기를 분간하기 어려웠고, 유일하게 바로 알 수 있는 굵기는 1m였다.

“개불…….”

우주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다의 정력제 개불에서 진화된 돌연변이. 흐느적거리는 몸뚱이가 마치 남자의 성기와 아주 흡사했다.

그는 버스를 기웃거리다 깨진 유리창에 총구를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개불의 한쪽 옆구리가 터지면서 창문에 녹색 피를 흩뿌렸다. 그럼에도 살아서 꿈틀거렸다.

우주는 다시 총을 쐈다.

퍼엉!

구멍 난 피부를 통해서 휘발유 냄새가 나는 녹색 액체가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죽지 않았다. 이번에는 귀두를 닮은 머리를 정조준 했다.

퍼엉!

우주는 마크를 부착한 뒤 지휘소에 연락했다. 자신의 사냥 통계를 확인했다.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우주는 산탄총을 집어넣고 배낭에서 기관단총을 꺼내서 탄창을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슈퍼바이크에 올라탔다.

부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바이크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는 도로 주변을 배회하던 돌연변이 생물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건물 틈에서 헐레벌떡 기어 나온 두 마리가 뒤뚱뒤뚱 뒤쫓아 오더니 이내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엄청나게 늘기 시작했다.

신우주는 도로에 어지럽게 방치된 차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녀석들을 단체로 몰고 다녔다. 중간에 다른 기업 수라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는 우주를 우르르 뒤쫓아 오는 돌연변이 생물을 보고는 크게 놀라더니 금세 방향을 바꿔 허겁지겁 달아났다.

“저, 저! 신우주 저 미친 새끼!”

마침내 우주를 뒤쫓는 돌연변이가 열 마리가 넘었다. 우주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며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반 바퀴 돌았다.

투다다다다다다다! 투투투투투!

수류탄처럼 폭발 범위가 넓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되도록 자제해야만 했다. 사체가 산산조각 나버리면 회사 측에서 아무런 이득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60발을 다 쏴버렸다.

우주는 슈퍼바이크에서 재빨리 뛰어내렸다. 원을 그리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탄창을 재장전하고 다시 총격을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

녀석들의 공격을 날렵하게 피해가면서 기관단총으로 절반을 사냥했다. 그 이후에는 칼을 뽑아 들었다.

휙, 휙! 스윽, 푹!

우주의 그러한 사냥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위 신라그룹 : 100 / 우연진 : 55, (중략) 김수희 : 222위 제네틱스 : 71 / 차선희 : 25, 추길성 : 21, (중략) 신우주 : 203위 KTS그룹 : 55 / (이름 생략)4위 오성그룹 : 43 / 강미라 : 25, (나머지 생략)5위 가람그룹 : 31 / (이름 생략)방송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위권에서 맴돌던 우주의 사냥 통계 수치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방송국의 앵커가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우주의 사냥 통계 수치를 보며 급하게 소식을 전했다.

1위 신라그룹 : 103 / 우연진 : 56, (중략) 김수희 : 232위 제네틱스 : 88 / 신우주 : 30, 차선희 : 25, 추길성 : 21, (나머지 생략)

“제네틱스 내에서 1등이 뒤바뀌는 순간입니다. 신우주, 드디어 사냥에 불이 붙었나요? 이대로 쭉 기세를 몰아붙이며 우연진을 넘어서는 건가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냥 속도가 빨라진 느낌입니다. 방송사 카메라가 드롭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신우주가 활약하는 장면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못해서 매우 아쉬운 순간입니다.”

선거 방송을 보는 것처럼 널따란 스튜디오 안에는 남녀 앵커를 비롯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신우주가 드롭존이 처음이다 보니까 좀 전까지 애를 먹었던 거구요. 이제는 감을 어느 정도 잡으면서 사냥 속도가 빨라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명 구조 때문에 사냥이 늦어졌을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나이도 어린 수라가 처음부터 저렇게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기도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호날두나 메시 같은 천재가 아닐까요?”

신라그룹 종합 상황 본부.

소민은 넓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무전으로 바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2번, 6번, 10번, 15번, 20번 늑대는 지금부터 사냥 위치를 바꾸겠습니다. GPS에 좌표를 찍어줄 테니 당장 그쪽으로 이동해서 사냥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드롭존 안에서 기업과 기업이 서로 지켜야 할 룰 중에 선점권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돌연변이 생물을 발견했을 시 먼저 선제 타격을 가한 수라와 그의 소속 기업이 해당 괴물에 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정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독점적 권리였다.

소민은 신우주의 사냥 통계 수치가 올라가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선점권을 이용해서 그의 사냥을 방해할 작정이었다.

방법은 쉬웠다. 우주가 한 구역에서 몰이사냥을 하고 있다면 그 주변에 자사의 수라들을 몇 명 보내놓으면 그 뿐이었다.

수적 우위를 앞세워 주변의 돌연변이 생물들을 모조리 자신들이 선점하면 우주는 사냥할 괴물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면서 시간까지 허비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나왔구나, 이 작전. 왜 안 나오나 했다. 후우~”

수희는 방금 전 쓰러뜨린 괴물의 피부에 마크를 붙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바로 제로머신에 올라탔다.

삑, 삑. 삑.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이리저리 버튼을 눌렀다. 다운로딩 화면 다음에 뜬 GPS 화면에 자신이 배정받은 위치가 표시되어 나타났다.

부릉, 부릉. 부르우우웅!

그녀의 제로머신이 달렸다.

목표 지점까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수희의 제로머신은 도로 한가운데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입술을 곱씹으며 눈앞의 것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갑각류.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거대한 로브스터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녀석의 길이는 15m, 그중에서 몸통 길이만 6m였다. 몸통 길이와 비슷한 커다란 집게발을 허공에 들어 올린 그 모습이 매우 위협적이었다. 햇빛을 등에 진 집게발의 그림자가 그녀와 제로머신을 완전히 감쌌다.

수희는 한순간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재빨리 제로머신을 버리고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쿠웅! 아스팔트가 갈라지고 지반이 무섭게 흔들렸다. 제로머신은 완전히 납작하게 찌그러져 망가지고 말았다.

투투투! 투투투투투!

일반인이라면 어림도 못 낼 M249 기관총을 가볍게 들고 그녀는 뛰고 구르고 엎드리며 계속해서 로브스터를 향해 총알을 난사했다.

팅팅팅! 팅팅! 팅!

어깨에 두른 급탄용 탄띠가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튕겨져 나간 탄피는 바닥에 우수수 쏟아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총알이 하나도 안 박혔다. 녀석의 단단한 외골격은 기관총 가지고는 흠집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외골격에 보호받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수희는 측면으로 잽싸게 돌아 뛰면서 로브스터의 눈을 정조준 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팅팅팅팅팅! 티딩!

“이런!”

녀석이 커다란 집게발로 눈을 가렸다. 회심의 일격은 아무 소용없이 모두 튕겨져 나왔다.

“이 녀석을 잡으려면 최소 두 명은 있어야 해. 일단 도망치는 수밖에……!”

수희가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로브스터의 꼬리 아랫부분에 달린 다섯 쌍의 다리가 지네 다리처럼 징글맞게 움직이며 바짝 뒤따라왔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집게발로 집더니 그녀의 등을 향해 휙휙 내던졌다.

쿵! 쿵! 쿠웅!

자동차가 날아와서 앞에 처박혔다. 그녀가 즉각 방향을 틀면 이번에는 그 앞에 전봇대가 날아와 바닥에 꽂히면서 길을 막았다.

계속 아슬아슬하게 곧잘 피해가던 수희는 갑자기 쿵 하고 제 발에 걸려 자빠지고 말았다.

“헉, 헉, 헉……!”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 망연자실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로브스터는 앞다리를 들어 올리듯 상체를 위로 들더니 기쁜 듯이 집게발을 딱딱 거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수희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이 허락된 시간은 한 순간뿐. 하지만 마지막 가는 순간에 떠올릴만한 사람조차 없었다.

‘이런 때 생각나는 사람 하나 없다니. 난 여태 뭐 하고 산 건지…….’

이제와 후회해 봐야 늦었다. 수희는 하는 수 없이 저승 가는 길에도 기관총을 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저 크고 날카로운 집게에 몸이 두 쪽이 나더라도 최대한 악을 쓰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부아아아아아앙!

로브스터 뒤쪽에서 불쑥 바이크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힘차게 질주하던 바이크는 그대로 로브스터의 꼬리를 타고 몸통까지 기어올랐다. 이어서 몸통을 발판 삼아 공중으로 높이 도약하더니 묘기를 선보이듯 기체가 빙글 거꾸로 뒤집혔다.

그 모든 동작이 김수희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녀는 거꾸로 매달린 바이크 조종자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 신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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