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같은 시각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
중년의 작전 본부장과 함께 스크린을 보고 서있던 소라가 통신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말했다.
“5번 올빼미에게 속도 줄이라고 하십시오.”
“전달하겠습니다!”
소라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다시금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직접 하죠.”
뚜벅뚜벅. 그녀는 걸어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아아, 5번 올빼미 들리시나요? 한소라입니다. 맨날 똥차만 타고 다니다가 갑자기 비싼 뿅카 타고 달리니까 좋은가 봐요? 제 명대로 살고 싶거든 빨리 속도 줄이세요. 아셨어요?”
다른 쪽에서 정보 팀장이 작전 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제네틱스 팀, 약 10분 뒤 인천 항구에 진입합니다. 신라 팀보다 3분 차이로 앞섭니다. 그외 다른 기업 팀들은 모두 후방에 뒤쳐져 있습니다!”
신라그룹 종합 상황 본부.
팔짱을 끼고 턱을 어루만지던 소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1번 늑대에게 작전 중 불필요한 행동은 삼가라고 전하세요. 무의미한 경쟁은 그만두고 뒤따라오는 본대와 서둘러 합류하라는 말도 전하시구요.”
“즉시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진과 무전을 교신하던 직원이 쩔쩔매는 표정을 지었다.
소민이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뭐라던가요?”
“싫, 싫다고 전해 달랍니다. 기분 내는 중인데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소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끓어오르는 기분을 애써 짓눌렀다. 잠시 후,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드롭존 상황 발생 시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대원에게는 1차 경고 조치로 세 달간 감봉이라고 전하세요.”
인천.
연진과의 승부는 강제로 중단되었고, 마침내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는 도시가 우주를 맞이했다. 마치 원시시대 공룡들에게 점령당한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거대한 시조새를 닮은 돌연변이 새들이 날아다니는 중이었고 지상에는 악어보다 몇 배나 더 큰 녀석들이 꼬리로 건물을 부숴가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개중에는 단단한 외골격을 자랑하는 갑각류도 보였다. 게와 새우에서 진화한 것들이 육지로 올라와서는 날카롭고 큰 집게발을 딱딱 부딪치며 천지사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진즉에 시민들이 방공호로 대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엄청난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인천에 가장 먼저 도착한 제네틱스 팀은 인천 월드컵 경기장에 작전 지휘소를 설치했다. 이어서 각 기업의 수라들이 속속 도착했다.
군과 경찰은 월드컵 경기장, 문학구장, 문학 컨벤션 센터 이 세 곳을 한 구역으로 지정해서 그 주위로 바리게이트를 치며 일반인들과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또한 각 기업의 작전 지휘소가 그 구역 안에 넓게 포진해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저거 잡아다 양념게장 담가 먹으면 한 달은 쌓아두고 먹겠다. 아우, 군침돌아.”
제네틱스 팀원 중에서 누군가 먼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넋 놓고 구경하는 동안 우주는 슈퍼바이크 옆에서 장비를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배낭을 챙겨 메던 중이었다.
‘최대한 더 많이’.
제네틱스 팀의 구호였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제네틱스 베스트 30명 중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사람이 330억 원이었고 제일 적게 받는 사람이 150억 원이었다. 이들은 제각각 돌연변이 생물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뛰어난 사냥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회사인 제네틱스 역시 그들의 실력을 잘 알기에 베스트 멤버로 발탁했고, 드롭존 안에서 돌연변이 생물을 한 마리라도 더 잡으라며 뭉쳐 다니지 말고 개별적으로 다닐 것을 지시했다. 드롭존 안에서 돌연변이를 많이 잡을수록 회사가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인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는 누가 죽였는지 철저한 검증을 거쳐 그것을 사냥한 수라의 기업이 고스란히 수거해 갈 수 있었다.
또한 레지스트 쉴드 내에서의 생산 활동이 주로 육지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해양 돌연변이 생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어족 자원을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따라서 돌연변이 해양 생물과 관련된 상품은 시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결국 드롭존 안에서 기업과 기업 간의 경쟁을 초래했다.
경쟁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데는 방송사도 일조했다.
방사능으로 둘러싸인 레지스트 쉴드가 아니라 일반인도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인 만큼 드롭존이 발생할 때마다 해당 도시 입구에는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며 파리 떼처럼 꼬여들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목숨을 담보로 카메라맨과 함께 드롭존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취재하는 등 불법을 저지르기도 했다(정부에서는 드롭존 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또 어떤 방송국은 비교적 안전하게 헬리캠(무선 조정이 가능한 소형 헬리콥터에 카메라를 장착한 것) 여러 대를 동원한 비행 촬영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드롭존 안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주 씨는 인상공업전문대학으로 가주십시오. 그곳에 항공운항과 학생들이 미처 방공호로 대피하지 못하고 캠퍼스 안에 숨어있다고 합니다. 빨리 학생들을 찾아서 방공호로 대피시켜 주십시오.
우주는 부가 임무를 받고 월드컵 경기장을 나섰다. 슈퍼바이크에 장착된 GPS로 인상공업전문대학을 검색해서 위치를 찍고 천천히 달렸다.
군대와 경찰이 쳐놓은 바리게이트 앞으로 슈퍼바이크를 몰고 가자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우측 멀리서 차단선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기자들이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중이었다.
“우주 씨, 이쪽 한번 봐주십시오!”
“이리 와서 짧게 소감 한마디만 해주고 가십시오!”
우주는 기자들을 지나쳤다. 아마 자신이 제일 첫 번째로 이곳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인천항으로 향하는 동쪽 출구를 지키고 있던 헌병 두 사람이 우주가 슈퍼바이크를 몰고 나타나자 출구를 가로막았고 있던 장애물을 바로 치웠다.
우주는 그대로 출구를 통과한 뒤 점점 속력을 내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인상공업전문대학으로 가는 길에 돌연 돌연변이 새 한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우주를 뒤쫓아 왔다.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당겨 미끄러지듯 슈퍼바이크를 반대 방향으로 세우고 녀석의 머리를 정조준 했다.
퍼엉!
산탄총에 맞은 돌연변이 새의 이마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우주는 오른쪽 허벅지에 달아놓은 주머니에서 엄지손톱처럼 작은 칩을 꺼냈다. 그것을 바닥에 쓰러진 돌연변이 새의 몸통 아무 데나 부착했다.
삐빅.
아주 작은 구멍에서 녹색 불이 켜지며 마크가 작동했다.
‘마크’란 돌연변이 생물을 어디 소속 누가 잡았는지 명확히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에 이것을 부착해 놓으면 마크는 그 즉시 위치와 정보를 위성으로 전송하고 위성은 다시 각 기업의 상황실을 비롯해 방송국에도 전달한다.
참고로 각 방송사는 이와 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 스포츠 중계권료처럼 사전에 기업 연합회에 돈을 지불한다.
우주가 사체에 마크를 부착하자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TV 화면에는 그 즉시 통계 수치가 떴다.
1위 제네틱스 : 1 / 신우주 : 1
행여나 다른 사람이 잡은 돌연변이 생물의 사체에 자신의 마크를 몰래 부착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무지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드롭존이 완전하게 정리되고 나면 나중에 정부 주도하에 결산이 진행된다. 그때 만약 마크로 구분하기 애매한 상황이 닥칠 땐 첫 번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사체에 박힌 총알이다.
각 기업들은 계약을 맺은 탄환 제조 회사가 저마다 다르다. 설령 같다고 해도 제조 연도라든지 탄환 규격이라든지 더 세부적인 사항을 꼼꼼히 조사하다 보면 어느 회사의 것인지 답은 나오게 되어있다.
그 마저도 어렵다면 슈트에 부착된 카메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까지 있다.
우주가 인상공업전문대학으로 향하는 동안, 사냥 준비를 마치고 뒤늦게 지휘 구역을 빠져나온 각 기업의 수라들이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같은 시간 TV 화면에서는 정신없이 숫자가 뒤바뀌고 있었다.
1위 신라그룹 : 21 / 우연진 : 10, (중략) 김수희 : 32위 제네틱스 : 18 / 추길성 : 5, 차선희 : 5, (중략) 신우주 : 33위 오성그룹 : 8 / 강미라 : 84위 한대그룹 : 5 / (이름 생략)5위 가람그룹 : 3 / (이름 생략)6위 ……
7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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