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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33화 (33/285)

33화

팀원들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현주가 먼저 그를 반겼다. 비록 무표정에 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살아서 다행이다 라는 듯이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다른 팀원들을 살피러 갔다.

절 안에서 도망쳐 나온 팀원을 비롯해 산 밑에서 화물트럭을 지키던 팀원들까지 스컹크 팀 전원이 모여있었다.

생존자는 모두 17명이다. 그 중에는 우주에게 틈틈이 말을 걸던 40대 남자도 있었다.

“이봐 자네. 그, 옆에 계속 따라다니던 아가씨는 어떻게 됐어? 설마...?”

우주는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끄덕이기만 했다.

남자가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안됐군. 부디 좋은 곳에 갔음 좋겠네.”

그 순간, 지이잉.

남자의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붉은 빛이 일자로 관통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는 표정이며 행동을 일절 멈춘 채, 잘린 신체가 좌우로 쓰러지며 거기서 솟구친 피가 우주의 전신을 흠뻑 뒤집어 씌웠다.

“맙소사!”

깜짝 놀란 우주가 대웅전 쪽을 바라봤다.

팀원들이 외쳤다.

“대, 대장! 부, 불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레이저 광선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길게 하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엎드려 있던 좌불상이 이제는 천천히 제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육중한 거인이 느릿느릿 마침내 허리를 쭉 피며 일어났을땐 높이가 무려 60m는 족히 돼보였다.

“미, 미친거야! 세상이 미쳤어!”

어떤 팀원은 이미 절망에 빠져버린 듯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다가 레이저 광선에 맞아 몸이 두동강 났다.

쿠웅.

불상은 서서히 발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한 발 씩 옮기기 시작하며 이쪽을 향해 레이저 광선 휘둘렀다.

“피해!”

사방에서 들리는 말이라고는 오직 이것 뿐이었다.

거대한 불상을 두고 누가 감히 맞설 생각을 하겠는가. 저런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불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이제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대책을 마련할 여유도 없었다. 피해서 달아나는 것만이 전부였다.

계속 팀원들은 죽어나가고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들은 우왕좌왕 혼비백산 달아나는 가운데, 현주는 신속하게 선택지를 골라야만했다. 그리고 즉시 답을 골랐다. 문득 눈에 들어온 우주의 손목을 붙잡고 이끌었다.

함께 ATV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 뒤에 우주를 태우면서 자신의 배낭을 건넸다.

“가방 안에 부착용 C4폭탄이 6개 있을거야. 그것을 녀석의 발에 부착하겠다.”

우주는 배낭을 뒤져서 폭탄을 한 개 집었다.

“사용법을 말해주시오!”

“폭탄에 있는 테이프를 떼내고 점토를 손으로 주무른다음 목표에 붙이면 된다. 작동은 배낭안에 리모콘도 있을거다. 리모콘에 써진 숫자를 하나씩 누르면 된다. 그럼 간다!”

부우웅!

속도를 최대로 밟으며 불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레이저 광선이 빗발쳤다. 현주의 능숙한 운전 솜씨로 지그재그로 잘도 피하는가 싶더니, 코앞에 닥친 광선을 최대한 피한다는게 그만 핸들을 너무 꺾어버려서 차가 뒤집혀 버렸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불상이 육중한 발을 들어올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뒤집힌 차를 뒤덮었다.

우주는 얼른 차를 반대로 넘겨버리고 그 밑에 깔렸던 현주를 안고 몸을 날렸다.

동시에 쿠웅!

지반이 흔들리며 지진이 난줄 알았다.

“윽, 난 끝났어. 너라도 빨리가...”

“대장! 이렇게 쉽게 죽을 순 없소! 힘내시오!”

조금 전 차가 뒤집히면서 현주의 허리를 짓누른것 같았다. 그녀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심지어 단 몇마디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레이저 광선이 이내 그들을 덮쳤다.

“저리 가라고!”

현주는 허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애써 참아가면서 있는 힘껏 두 팔로 우주를 밀쳐냈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 3초간 레이저 광선이 그녀를 다섯 차례나 오가면서 몸이 육등분 되었다.

“이대로 전멸이란 말인가!”

우주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참을 수 없는 울분이 그를 휘감았다.

‘고릴라 팀에 이어서 또, 또!’

왜 내가 가는 곳마다!

내가 병신이라서?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나 하나 때문에?

그래서 더 발악했는지도 모른다.

포기란 없었다.

한 손에 배낭을 꽉 쥐고 악을 써서 내달렸다.

“내 꼭 저놈을 쓰러뜨려서 모두들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리다! 기다리시오!”

불상의 가랑이 밑에 도착하면서 왼발에 C4폭탄, 하나, 둘, 셋, 오른발에 넷, 다섯, 여섯. 총 여섯개 전부 부착했다.

우주는 현주의 배낭을 어깨에 메고 냅다 절쪽으로 달렸다.

그를 따라 불상이 쿠웅, 쿵.

육중한 몸이 뒤로 돌아선다.

도망가는 그에게 두 눈의 레이저 광선을 휘두르며 느릿느릿 쫓아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우주는 달리면서 리모콘에 써진 숫자를 차례차례 누르기 시작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쾅! 쾅! 쾅! 콰콰콰쾅!

폭탄이 터진 직후, 불상은 두 발목을 잃으며 거체가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지반이 크게 흔들리면서 쿵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두번 들렸다. 불상은 완전히 고꾸라지기 전에 두 팔을 뻗고 무릎을 굽히며 거체를 지탱했다.

네발로 엎드린 모양이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위력적인 폭탄을 사용했어도 두 발만 잃었을 뿐 네 발로 기어서 우주를 쫓아왔다.

우주는 도구로 쓸만한 뭐라도 찾을 생각에 대웅전을 향해 뛰었다.

그를 쫓아 거대한 불상이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흔들리고 훍먼지가 자욱했다.

시체가 즐비한 마당을 지나 대웅전 안으로 뛰어 들어오니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온 레이저 광선이 우주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휘둘러졌다. 붉은 빛줄기가 대웅전을 관통하자 지붕이 폭삭 가라앉았다.

건물의 파편더미가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자욱한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우주는 서둘러 건물 밖으로 피신했다.

그 뒤로도 방향을 불규칙하게 바꿔가며 불상의 공격을 잽싸게 피하면서 도망쳐 다녔다.

몇번인가 반격도 해봤다. 근처로 접근해서 더블바렐 샷건을 쏴봤다. 깡! 깡! 청동으로된 겉표면은 심하게 찌그러지거나 찢어지기만 할뿐 확실하게 쓰러뜨릴 수 있는 수단이 되질 못하였다.

적이 너무 큰 것이다. 입는 피해도 극히 일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손톱 정도 크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압도적인 괴물을 상대로 용케 버티고 있는 우주야말로 정말 엄청나다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우주는 가쁜 숨을 돌릴 생각에 구석에 잠깐 몸을 숨겼다.

C4폭탄이 또 있을까하여 현주가 남기고 간 배낭을 뒤져보았다.

수류탄이 하나 보였다.

“과연 이걸로 될지...”

지이잉!

고민할 틈도 없이 레이저 광선이 엄습해왔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다시금 몸을 피했다.

이후 넓은 절안을 도망치고 도망쳐서 다달은 곳이 헛간이었는데, 그곳에서 우연찮게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곡괭이였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곧바로 좋은 수가 떠올랐다.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던지, 아니면 동료들의 시체를 버리고 완전히 이탈하던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우주는 절 근처에 있던 작은 동굴로 불상을 유인했다.

동굴 입구에 숨어서 기다렸다.

이윽고 네 발로 뒤쫓아온 불상이 안을 들여다 볼생각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동굴 안쪽으로 두 눈이 레이저 광선을 뿜어내려는 찰나, 입구 우측에 숨어있던 우주가 힘껏 두 손으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콰직!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불상의 왼쪽 눈이 파괴되었다.

파괴된 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은 불상이 고개를 위로 처들었다. 그리고 눈쪽에 이미 우주가 매달려 있었다.

곡괭이는 아직 불상의 왼쪽 눈에 찍혀 있는 상태.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매달린 채로 우주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입으로 뽑았다.

그대로 깨진 눈 안으로 던져 넣었다.

텅, 텅, 텅.

수류탄이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빈 깡통에 돌 넣고 흔드는 것처럼 차가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 불상의 배부분에서 콰앙! 수류탄이 터졌다.

하지만 기운 빠질정도로 데미지가 미미했다. 아무런 타격도 줄수 없었다.

때마침 불상의 거대한 손이 자신의 왼쪽 눈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인은 눈에 달라붙은 개미를 잡을 생각이다.

위기를 느낀 우주는, 하다못해 레이저 광선이라도 못쏘게 하자는 생각으로 뻥뚫린 눈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재빨리 더블바렐 샷건을 빼들었다.

남은 오른쪽 눈을 겨냥했다.

퍼엉!

쨍그랑!

폭발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동시에 시야가 흔들렸다.

우주가 감긴 눈을 떴을때는, 사라졌던 스님이 눈앞에 보였다.

스님은 불고 있던 단소를 떨어뜨리며 머리를 감싸쥐고 괴성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아아악!”

이게 뭔일인가 하며, 우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에는 쓰러진 팀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다행히도 모두 사지가 멀쩡했다.

“뭐지?”

우주는 문득 대웅전 너머에 있는 좌불상을 바라보았다.

좌불상은 처음부터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비로운 얼굴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시 스님을 쳐다봤다.

그는 이마에 비지땀을 줄줄 흘리며 분한 눈초리로 우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래 졌수다!”

우주는 어리둥절 했지만, 차츰 상황이 이해되었다. 애초에 스님이 들고 있던 단소가 이곳에 있던 전원에게 환각을 불러온 모양이었다.

“환술이로군...”

우주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급히 몇사람을 찾았다.

하나도, 현주도, 40대 남자도, 모두가 사지 멀쩡한 채로 포근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우주는 그제야 안심했다.

스님은 전방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정부에서 나온 직원들에게 곧바로 인계되었다.

정부는 보통 수라와 다른 그의 특수한 능력을 높게 샀고, 차후 그를 교화시켜 장차 나라에 도움이 되게끔 이끌 생각이었다.

“신우주 씨. 50억 플러스해서 총 150억의 연봉을 받게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연봉이 또다시 올랐다.

단순히 문화재 수거뿐인 임무였지만 뜻밖의 상황을 맞아 홀로 이겨냈다는 점에서 크게 가산점을 받은 듯 했다.

더군다나 연봉 협상대에는 철수가 자신이 고용한 임시 변호사를 데리고 진즉에 도착해 있었다.

고액 연봉자들은 매니저와 변호사를 대동해서 연봉을 협상할 수 있었고, 수라의 연봉이 오르면 매니저의 연봉이 함께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우주 차례가 되자마자 검시관을 상대로 철수가 말을 풀기 시작했고, 이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 검시관은 스컹크 팀원과의 면담을 비롯해 슈트에 부착된 카메라까지 일일이 검사해보는 등 면밀히 조사하고 연봉을 협상지었다.

“밥을 사고 싶은데,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

해산 명령을 받고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팀장 임현주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우주는 잠시 머릿속으로 오늘 일정을 생각해봤다. 집에 가서 밥 먹고 자고 저녁에 일어나서는... 그다지 할일이 없다.

임무가 끝난 당일은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몸이 피곤에 찌들어 정신이 몽롱했다. 대낮에 숙면을 취해서 그런 것도 있거니와, 그런 까닭에 무엇을 하기보다는 대체로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등 가벼운 일로 시간을 때우다 밤 10시 되면 또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제안을 혼쾌히 수락하려는 찰나, 그 옆에서 함께 듣던 철수가 끼어들었다.

“우주 씨는 내일 아침 일찍 SBC와 인터뷰가 있어서요. 저녁에 술마시면 안됩니다. 얼굴 붓거든요. 그리고 오후에는 미용실을 다녀와야 해서 시간이 나질 않을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현주가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우주가 재빨리 한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아니외다. 소생도 밥 한끼 하고 싶소. 오늘 저녁에 만납시다.”

“우주 씨. 오늘 할일도 많고 피곤해서 안되요. 내일 컨디션 좋게 만들려면 오늘 저녁은 쉬셔야죠. 그러다 여드름 생겨요.”

우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철수를 보고 말했다.

“내 사람 좋아하는 거 아시잖소. 김과장이 모르면 누가 알아주겠소? 나보고 매일 일만하다 죽으란 말이오? 세상 사는 재미가 사람 사귀는 재미일텐데 나도 좀 사귀어야 할거 아니오.”

철수는 결국 마지못해 웃으며 허락했다. 그렇게 현주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데 어느새 세 사람 곁으로 다가온 하나가 불쑥 말을 던졌다.

“그 자리 저도 껴도 될까요? 회비 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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