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0화 (20/285)

20화

<2권>

우주는 자신만만하게 부스에 들어섰다. 더블바렐 샷건에 총알을 집어 넣고 표적지를 조준.

그와 동시에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우주를 보고 제네틱스 직원을 사칭하는 외부인이 아닐까 하면서 신고해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소리쳤다.

“잠, 잠시만요!”

“왜 그러시오?”

“산탄총 종류는 표적지를 바꿔야 해요. 잠시만...”

그녀가 조작대를 건드리자 멀리있는 표적지가 자동으로 내려가며 곧 새로운 표적지가 올라왔다.

우주는 다시 자세를 잡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반동으로 몇발자국 뒤로 후퇴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미간을 좁히며 소심하게 입술을 열었다.

“자세가 매우 좋지 않으시네요. 표적지에는 하나도 안 맞고...”

“뭐 그, 두번째는 아마 다를 거요. 크흠!”

퍼엉!

최대한 집중해서 쏜 두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자세가 안좋다보니까 상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도 문제고, 무엇보다 총에 영점이 전혀 안잡혀 있네요. 임무 수행 전에 꼭 하셔야 되는 일인데.”

갑자기 그녀의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주의 상체를 손으로 직접 만져가면서 그의 자세를 일일이 잡아준다.

“산탄총 종류가 원래 대충 쏴도 잘 맞는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숙련자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기본 자세는 잡아줘야 해요. 여러발의 총알이 한번에 뿌려지듯이 나가다보니 일정 범위의 탄착군 형성도 쉽고 소총과 달리 개머리판을 어깨에 고정 시킬 필요는 없지만서도 문제는 반동이에요. 반동을 줄이는게 제일 중요한 거죠. 자, 이렇게, 이렇게. 그리고 자세를 잡았으면 이제 요기 가늠자를 보시면서 한발 한발 총알을 쏘시고 영점을 잡아보세요.”

총앞에서 그녀는 명강사였다. 수줍게 나오던 목소리도 자신감있고 당당하게 변했다.

우주는 그녀의 깊은 지식에 감탄하면서 그녀가 알려준대로 다시 총을 쏴봤다.

퍼엉.

“오! 드디어 맞췄소!”

“거봐요. 제말대로 하니까 돼죠?”

그녀가 크게 기뻐하는 눈치다. 가지런히 놓인 하얀 이가 매력적이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총을 더 쏘다가 집합 시간이 되어서 우주는 사격장을 나섰다. 그녀 역시 따라 나온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뒷짐지며 따라오던 그녀가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소생은 신우주라 하오.”

“처음에는 외부인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훈련을 겨우 3주만 받고 여길 왔다니 놀랍네요.”

“소생도 훈련을 다 받고 왔으면 좋을뻔했다고 생각한다오. 그게 좀 아쉽긴 하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우주가 물었다.

“처자는 이름이?”

“유하나예요.”

“유하나라... 음, 이름 예쁘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주 씨는 어느팀에 속해 있어요?”

“기계처자가 말하길.”

“기계처자요? 풉.”

“왜 갑자기 웃으시오?”

“기계처자가 아니고 제네틱스 3D 홍보모델인 아이나라고 해요. TV CF에도 많이 나왔죠.”

나란히 걸어가던 우주가 턱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3D모델이라... 그렇군. 그 아이나라고 하는 처자가 임시라고 하던데 일단은 멧돼지 팀이오.”

하나가 박수를 쳤다.

“오, 멧돼지? 저랑 같은 팀이네요!”

“정말이오?”

밤하늘에는 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이 살포시 내려 앉은 시각. 대낮처럼 환한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쳐갔다.

“너 이새끼. 그때 그놈 아니야?”

두 사람이 멧돼지 팀의 집합 장소에 도착했을때다. 열댓명이 모인 가운데,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다가오더니 우주를 알아보고는 손가락질을 했다.

“니가 왜 여기 있어? 엉?”

그에 우주가 인상을 썼다. 지난번 천안에서 우주가 혼을 내줬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버젓이 검정색 슈트를 입고 멧돼지 팀에 있는게 아닌가?

“당신이야말로 어째서 이 자리에 있는 거요?”

“서로 아는 사람이예요...?”

옆에 서 있던 하나가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작게 물었다. 이에 우주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덩치 큰 사내가 침을 딱 뱉으며 껄렁하게 말했다.

“하나 씨가 왜 이 새끼랑 붙어 있쥐? 아앙?”

“그, 그게...”

하나는 금세 기가 죽은 표정으로 사내의 눈치를 보았다.

우주가 덩치 큰 사내에게 말했다.

“난 이 처자를 잘 모르오. 오늘 처음 만났소이다.”

그녀를 보며 이어 말했다.

“고마웠소. 이제 가보시오.”

“아, 저...”

하나가 머뭇거리자 우주가 그녀를 무시하며 지나쳤다.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덩치 큰 사내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감옥에 간 것이 아니었소? 당신만 나온거요?”

“나만? 하하.”

사내가 띠껍게 웃더니 고개만 뒤로 돌렸다.

“야! 여기 봐봐라. 존나 기막힌 인연이 찾아오셨다.”

“뭔데 그래?”

“좋은거라도 있어?”

뒤쪽에서 담배를 태우며 껄렁껄렁하게 서 있던 두 사람이 무리로 부터 빠져나와 이쪽으로 설렁설렁 다가왔다.

이내 우주의 눈앞에 일렬로 선 김정철, 이상득, 유구인.

“하, 이거 그 새끼네.”

“기막힌 인연이 아니고 지독한 인연인데?”

우주가 싸늘한 눈빛으로 덩치 큰 정철에게 물었다.

“경찰이 풀어 줬소?”

“경찰이 풀어주긴, 회사에서 풀어줬지.”

“회사에서 말이오?”

“그래 이 새끼야. 아무튼 너 오늘 잘걸렸다.”

정철이 자신이 메고 있던 K7 기관단총을 풀고 우주를 겨눈다.

쏘는 시늉을 했다.

“쉬잇, 빠앙~! 큭큭, 쫄았냐? 넌 오늘 뒈졌어.”

“아암, 뒤졌지. 피튀기는 복수전을 해보자고. 낄낄.”

세 사람이 우주를 둘러싸고 비웃어 댔다.

우주가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도 정신을 덜차린게요?”

정철이 콧방귀를 꼈다.

“어 그래. 정신을 덜차렸다 새끼야. 참고로 이 팀 대장이 우리와 같은 조폭 출신 형님이걸랑? 넌 오늘 제대로 걸린거야. 각오하라구.”

상득이 말했다.

“오늘 잘하면 우리 팀에서 사망사고 한건 터지겠는데? 큭큭큭.”

구인이 말했다.

“야야, 이러다 시작도 전에 아가 울면서 집에 가겠다. 그만 놀려부려라.”

반갑지 못한 세사람과의 해후를 마치고, 멧돼지 팀 대장 이준필이 나타나서 곧바로 인원 점검 및 브리핑을 시작하였다.

팀장인 이준필은 삐적 마른 외모에 안경을 꼈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브리핑이 끝나고 나서 전원 백공트럭에 탑승할때였다.

문득 준필이 다가와 우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주 씨. 우주 씨는 뒤에 타지 말고, 제 대신 앞자리에 타고 가주십시오.”

“거긴 대장 자리가 아니오?”

의아해 하는 우주에게 준필이 미소를 지어보인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뒤에서 따로 할일이 있거든요. 팀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앞서 김정철, 이상득, 유구인과 마찬가지로 이 이준필이란 사내 역시 품성이 바르지는 못해보였다. 우주가 느끼기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기고 있는 사내인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많은 세월 단체 생활을 겪어본 우주로서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일어혼전천(一魚混全川, 미꾸라지 한마리가 시냇물을 흐린다.) 마냥 딴죽걸고 무리에서 튀어보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팀이 무사히 임무를 끝마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고, 준필의 지시대로 그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이윽고 이번 개척 임무에 참여 하는 차량이 줄줄이 도로 위를 달렸으며, 거대한 철제문을 통과해 레지스트 쉴드로 향했다.

동원된 인원 및 장비는 제네틱스 수라 10팀과 백공트럭 10대, 그리고 굴착기와 트레인, 아스팔트를 깔기 위한 세 종류의 롤러등 각종 중장비가 차량에 실려 있었다.

“아 뿅가네 씨발.”

백공트럭 화물칸 의자에 앉아있던 정철이 슈트의 팔을 걷어부치고 무수한 상처 구멍이 나있는 팔뚝에 주사기를 꽂고 있었다.

뜨뜻함이 제 살갗 안으로 뿌려지는 느낌과 함께 저절로 눈이 감겨져 왔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상득과 구인, 그리고 준필까지. 정제 코카인이 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읍...”

빨아들인지 몇초 되지 않아 기분이 도취되고 강렬한 황홀감이 세 사람의 몸을 지배하였다.

준필이 마약에 취한 나머지 어슴푸레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들 슈트에 부착된 카메라는 껐겠지?”

“껐수다.”

“어.”

“아까 껐지.”

이어 정철이 화물칸에 타고 있던 팀원들을 둘러보며 험상궂은 눈빛으로 인상을 썼다.

“꼰지르기만 해봐 씨발. 전국에 아는 형님동생 다 풀어서 가족, 친척, 친구건 뭐건 장사도 못하게 다 조져버릴라니까.”

화물칸에 타고 있던 팀원들은 그 네 사람을 향해 찍소리도 못했다.

다들 시선을 회피하며 자신의 장비를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기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은 정철이 준필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앞에 탄 새끼 어케 죽일수 없소?”

마약에 취한 준필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밤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방법이야 있지. 그런데 우리팀에서 계집애 하나 자살한지 얼마 안됐잖냐. 그때 걔 몸에 묻은 니들 정액 때문에 돌연변이 괴물들한테 시체까지 던져주고 왔는데, 몇 달뒤면 모를까 이번에도 같은 방법 써먹긴 좀 그렇다. 그때 조사관이 카메라 왜 껐냐고 존내 지랄하더라.”

“그건 다 저 새끼 때문이잖소.”

정철이 상득에게 주사기를 내던졌다.

“에라이, 개새끼야.”

상득이 곧바로 성질을 부린다.

“뭐여 씨발. 너도 그때 실컷 박아놓구 이제와서 밑장빼기냐?”

“난 딱 세번만 휘저어서 맛만 봤을뿐이고, 넌 아주 펄펄 진국을 끓여댔잖아 이 개새끼야.”

옆에서 듣던 구인이 웃었다.

“에휴, 병신들 지랄을 한다. 큭큭.”

“너는 또 왜 처웃어? 후장까지 따버린 씹새끼가. 따지고 보면 다 너 때문이네 이 씹새끼, 에라이 씹새끼야.”

정철이 손바닥으로 옆자리에 앉은 유구인의 이마를 연신 때렸다.

“아우 아퍼, 그만혀.”

“담부터 후장만 따봐 개시키.”

정철이 다시 준필을 마주봤다.

“형님. 아무튼 난 신우주 저새끼. 존나 꼴뵈기 시르니까 어디 안보이게 구석에 짱박아두쇼.”

구인이 비웃었다.

“쫄리니까 그러지 씨발늠. 크큭.”

“그때 너도 처맞았잖아 이 썩을놈아.”

다시금 구인의 이마를 가볍게 연신 때리더니, 이내 음흉한 웃음을 짓고 좌측에 앉은 하나를 바라봤다. 그때까지 그녀는 쥐 죽은 듯이 아무 소리도 못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아이구 우리 이쁜 하나 쒸. 오늘밤엔 나랑 함께 있을꺼쥐?”

정철이 징글맞은 손으로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겁에질린 하나가 울것같은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

“뭐쥐? 이 거부반응은? 혹시 하나 쒸는 내가 싫어?”

“......”

“내가 싫어?”

“......”

그녀가 대답을 안하자 정철이 인상을 썼다.

“싫으냐고.”

하나는 무서운 마음이 벌컥 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대답했다.

“아, 아니요...”

“그렇쥐?”

정철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음흉한 시선으로 하나의 허벅지를 잠시 내려다 보더니 침을 꼴깍 삼키면서 슬쩍 손을 가져다댔다.

그녀가 순간 움찔거린다. 잔뜩 긴장한 탓에 굳어 있는 허벅지를 그가 천천히 어루만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허벅지 안쪽으로 살며시 손이 가는가 싶더니, 점점 사타구니를 향해 깊숙이 들어가는데.

“제발...”

하나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제발 부탁이예요.”

정철이 히죽 웃으며 손을 뺀다.

“여기선 부끄러워서 그래? 이따 좋은 장소에 가서 이어서 하까?”

그때 우측에 앉은 구인이 손에 쥔 크랙(담배형태의 코카인)을 가리켰다.

“이거 흡입하고 하면 애널도 잘열린다더라.”

정철이 돌아봤다.

“꺼져 미친 쉐키야. 우리 하나 쒸가 너처럼 뽕쟁인줄 아냔마?”

“사돈 남말하고 있네. 글고 하나 씨가 너테 대줄것 같냐? 면상도 좆도 구린게. 큭큭.”

“너 나중에 하나 쒸 빌려달라기만 해봐. 절대 안준다 씨발.”

앞에 앉아 있던 상득이 낄낄대며 말했다.

“구인이 저 새끼는 여자 따먹기 전에 좆에 박은 구슬부터 빼라고 해야 돼. 저 새끼가 지나간 곳은 무슨, 아주 구냥 6차선 도로가 깔린 기분이 든다니까.”

“킥킥킥.”

“큭큭.”

“하하.”

네 사람만 재밌다는 듯이 웃어재꼈다.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저녁. 10대의 백공트럭과 함께 수대의 중장비 차량이 도착한 곳은 도로를 깔다만 어느 한적한 숲이었다.

전원이 차량에서 하차하고, 미리 짜여진 계획대로 도로 건설을 위한 인부 수라들과 돌연변이 생물을 방어하기 위한 수라로 나뉘어져 각자 맡은 장소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소속된 멧돼지 팀은 다른 팀들과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 매복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팀장인 이준필은 한 조당 3명씩 7개조로 나누어서 단체로 이동하는 중간중간 각 조에게 매복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지시를 받은 조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제일 뒷줄에서 따라오던 우주에게 조심스레 하나가 다가왔다.

“우주 씨, 부탁이 있어요.”

그녀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잘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부탁하는게 염치없다는 거 알아요. 근데 제발 도와주세요. 꼭 부탁드려요.”

“괜찮으니 사정을 말해보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오?”

“사정을 말하기에는 지금 시간이 없고, 제가 집에서 호루라기를 가져 왔거든요. 혹시나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호루라기를 부를테니 그때 달려와 주시면 안될까요?”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그 눈빛이 너무도 간절했다.

“혹시 저들 때문이오?”

그는 멀리서 떠들어대는 정철과 구인, 상득, 세 사람을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나는 그저 입술을 앙다물기만 할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일도 없는데 괜스레 일이 커지는 것을 우려했을터다.

그녀는 우주의 손을 살며시 두 손으로 붙잡으며 재차 간곡하게 부탁했다.

“꼭 와주실꺼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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