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영상 속의 사내는 말했다.
[각자 필요한 장비를 구비한 후, 레지스트 쉴드로 들어가게되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돌연변이 생물들이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겨줄 것이다. 우리가 위험천만한 레지스트 쉴드로 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남하 하려는 돌연변이 생물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째는 대체 자원이다.]
화면이 바뀌면서 하나의 도표가 나왔다. 앞으로 2050년이면 지구촌 총 인구가 90억명을 넘어서고, 그에 따라 전세계 식량이 곧 바닥난다는 연구 결과였다.
[그러나 걱정 없다. 우선 돌연변이 동물을 보자. 그들의 피는 우리에게 석유가 되며, 그들의 고기는 우리에게 맛과 영양소 가득한 식량이 되고, 그들의 뼈는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벽돌보다 가벼우면서도 내구성도 튼튼하다. 무엇보다 변질이 되질 않지. 추가로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2010년부터 이를 이용한 새로운 우주선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대기권 마찰때 생기는 고열을 무시할 정도의 신소재 우주선을 말이다. 그리고 돌연변이 동물처럼 식물도 아주 유용하다. 식량으로 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혀 오염되지 않은 아주 깨끗한 물을 인간에게 제공해주지. 이것들을 섭취해도 인간의 몸에 방사능은 전혀 축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세포 조직은 의학 기술에서 혁명을 불러왔다. 이것을 봐라.]
화면이 어떤 병실로 바뀐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두 팔이 팔꿈치까지가 없다.
팔이 잘린면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주었다.
[화면에 작게 보이는 사진은 일주일 전 사진이다. 현재 잘린 팔의 단면과 비교해봐라. 보이는가? 저 환자의 팔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 도마뱀의 꼬리처럼 인간의 세포 조직이 원상태로 재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덧붙여 이 놀라운 의학 기술은 짧으면 올해 안에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시술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기쁘지 않은가?]
또다시 화면이 바뀌며 이번에는 박정철이 나왔다.
[이제 우리가 레지스트 쉴드로 가야만 하는 이유 셋째를 알아보자. 그 세 번째 이유는 인류의 구원자라 불리는 세이비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위성으로 찍은 세이비어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우리는 그녀에 관해서 그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레지스트 쉴드가 생긴 이래로 지난 6년간 가까이 다가가본 적이 한 번도 없지. 그래서 혹시나 그 작은 북한 땅을 가지고 지난 6년 동안 정복도 못했느냐며 비웃는 친구가 있다면, 내 그 아메바를 닮은 뇌속에 혁명을 불러 일으켜주겠다.]
화면이 바뀌면서 아주 하얀, 아주 커다랗고 하얀, 사람 모양의 거인을 비추었다. 순백의 피부를 가진 도룡농을 닮은 얼굴에는 길다란 주둥이와 귀까지 길게 찢어진 입과 동그란 눈이 있었으며, 유인원(고릴라, 침팬지류)처럼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팔, 그리고 인간처럼 두 다리로 이족보행을 했다.
형체는 인간과 매우 흡사하지만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괴상한 거인.
이어지는 화면에서는 밝은 달빛 아래 기이한 석고상을 누군가 조각해 놓은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굳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신의 뜻을 거역하는자, 사탄이라고 부른다. 인류의 평온을 방해하니 당연할 것이다. 레지스트 쉴드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은 인류에게 획기적인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지만, 그 중 예외가 바로 이 사탄이다. 또한 수라의 임무가 사명(死命)이라는 오명을 얻게된 이유 역시 바로 이 사탄이라는 녀석 때문이다.]
화면은 석고상처럼 굳은 사탄을 클로즈업 해가며 자세하게 비추었다.
[개체수는 극히 적고, 그 근본이 어떤 동식물로 부터 변이되어 나왔는지 알 수 조차 없다. 여지껏 잡아본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일것이다. 실제로 사탄에 의해 사망한 수라는 수백, 수천명에 달한다. 돌연변이 생물에 의해 사망한 숫자보다 무려 100배나 많은 수치지. 이건 자네들에게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탄을 마주치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자리서 사망이라 봐도 좋다. 이놈 덕분에 우리는 그간 세이비어가 있는 지역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조차 없었지. 그리고 이런 사탄에게 약점이자 특이점이 하나 있는데, 사탄은 밤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지금 보여지는 화면처럼 밤에는 깊은 숙면에 들어간다.]
화면은 다시 박정철을 비추었다.
[그러나 사탄이 숙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세이비어에게 다가가기란 절대 쉽지가 않았다. 우선 거리가 멀어 반나절 만으로는 부족했고, 무엇보다 가는 길 중간 중간 돌연변이 생물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욱 늘어났지. 이제 이해 하겠나? 우리가 왜 못갔는지? 그리고 자네들 중에 혹시 또 이런 생각을 갖게된 사람이 있지 않나? 세이비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전투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우리도 물론 해봤다. 그러나 실패했지. 이건 다음 시간에 자세히 말해주도록 하겠다.]
곧 화면이 바뀌면서 임무 시간표가 나왔다.
[이번에는 유의점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간단하게 설명하고 이번 시간을 마치지. 마지막으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되, 회사에서 정해준 시간만은 꼭 준수해주길 바란다. 칼퇴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회사 규정상 하절기에는 20시, 동절기에는 17시가 임무를 개시하는 시각이고, 임무를 마치는 시각은 하절기에는 04시, 동절기에는 06시다. 이를 명심하고 또 명심하도록.]
필요한 말만 하고 떠나는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동영상이 재생을 멈추었다.
철수가 걸터 앉은 침대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짐과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가 길게 하품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비디오 다 보고 나니까 벌써 오후 6시가 넘었네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내일 물어봐 주시구요 내일 아침 7시 30분까지 올테니 씻고 대기하고 계세요. 식사는 하지 마시구요. 저랑 같이 가요. 어차피 여기 냉장고도 텅텅 비었고 먹을 것도 없겠지만.”
“알겠소.”
우주도 따라서 하품을 했다. 아까 울었더니 좀 졸려왔다. 오늘 본 영상의 내용을 반이나 기억 할련지는 모르겠다. 동영상을 보는 내내 그저 막내 생각만 했다.
짐을 다 챙긴 철수가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각 기업마다 소속 수라들 감시가 무척 심했어요. 기업끼리 서로 뺏고 뺏었거든요. 근데 인권 침해라며 몇명 자살하고 언론에서 떠들다 보니 요즘에는 그런게 많이 없어졌긴 한데, 특별히 누구를 만나야 한다거나 어디 나갈땐 여기 이 벨을 누르셔서 회사에 보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전화기 개통하면 저한테 연락주셔도 좋구요. 본래 이 원룸이나 근방 토지가 전부 우리 회사 소유라서 이 동네에는 최첨단 CCTV가 엄청 많습니다.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을테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서울 지역 벗어나는 것과 다른 기업 스카우터나 헤드헌팅 관련자는 절대 만나서는 안됩니다. 행여나 괜한 오해 생기지 않도록 그 점 참고해주세요.”
현관에서 배웅을 하던 우주가 배를 긁적이다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계약서? 난 그런건 작성 안했소만?”
“어라? 이상하다. 아직 안했어요?”
“그렇소.”
철수는 핑계거리를 찾는 것처럼 눈을 굴리다가 대충 얼버 무렸다.
“아, 그럼 구두 계약했나보네요. 본부장 님이 요즘 꽤나 바쁘셔서 깜빡했나 봅니다. 아시죠? 법적으로 구두 계약도 효력이 발휘됩니다. 그러니 이미 계약된거고 약속을 어기시면 큰일나요. 정식 서류는 내일 제가 회사에서 가져 오겠습니다. 아무튼 전 이만 갑니다. 편히 쉬십쇼!”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우주는 현관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약인지 뭔지 그런것을 따지기 보다...”
번쩍하고 높이 뛰더니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날렸다.
“이만하면 대국의 황제가 지내던 궁과도 다름없지 않은가! 아하하하!”
있을것 다 있고 최고로 멋진 방이었다. 100여년 전에는 항상 일본인의 습격이 두려운 나머지 깊은 산속의 움막 같은 곳에서 지푸라기를 깔고 자거나 했던 그에게는 이게 내 집이라니 정말로 꿈만 같았다.
“이제 왜놈도 없고 두 다리 쭉 뻗고 자보자꾸나!”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우주 씨~ 신우주 씨~”
어제 말한대로 아침 7시 30분에 맞춰 찾아온 철수가 우주가 사는 301호실 문앞에 서 있었다. 대충 말린 젖은 머리에 넥타이도 느슨하게 목에 걸려있고 정장을 차려 입었다.
그가 하품을 하며 문을 다시 두드렸다.
“우주씨~ 접니다 김철수 대리~"
벨을 눌러도 이상하게 반응이 없고 안에서도 이렇다할 기척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손잡이를 잡고 내리면, 그대로 문이 열렸다.
“뭐야. 문 안잠갔나? 어제 잠그는 법 알려줬을텐데.”
철수는 기웃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현관과 주방. 실내는 고요했다.
조용하게 신발을 벗고 불을 켰다. 그런 다음 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진풍경.
“이, 이게 뭔일이람?”
TV며 세탁기, 거기에 의자, PC, 옷걸이 등등 방안의 가구가 문앞에 겹겹이 쌓여져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몇개 들어서 끙끙대며 주방으로 옮긴 뒤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구를 다 입구 쪽에 쌓아놓은 까닭에 침대를 제외하고 방안이 텅비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는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얌전히 자는 중이다.
대체 왜 이래 놓은 것인지, 철수는 의아해하며 자던 그를 흔들었다.
“저기요 우주 씨. 저기요.”
그런데 이게 왠일. 그것은 우주가 아니라 이불을 덮어 사람 모양처럼 볼록하게만 해놓은 것이었다. 이불을 치웠더니 그 안에서 그릇이니 숫가락, 볼펜, 수건 같은 잡동사니가 한가득 나왔다.
“우주 씨는 대체 어디가고 이게 무슨 난리라냐.”
그때였다.
침대 밑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철수의 두 발목을 잡고 힘껏 잡아 당겼다.
순간 철수의 몸이 벌렁 뒤로 자빠지면서 바닥에 뒤통수를 쿵하고 부딪혔다.
그나마 큰 다행인 것은 조금 전 침대에서 걷어낸 이불이 머리를 바쳐주는 바람에 충격을 완화 시켜주었다. 안그랬으면 머리를 맨바닥에 부딪히고 뇌진탕에 걸렸을 것이다.
“아으... 아...”
철수는 나 죽겠다고 신음하며 바닥을 뒹굴렀다. 그런 와중에 침대 밑에서 잽싸게 기어나온 그것은 위에서 철수를 강하게 짓누르며 목에 식칼을 들이댔다.
그가 무서우리만치 섬뜩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누가 보냈지? 마츠다이라가 보냈느냐? 어서 정체를 밝혀라. 당장 말하지 않으면 목을 긋겠다.”
철수가 눈앞의 식칼을 보고 벌벌 떠는 눈으로 대답한다.
“우, 우주 씨 나요. 나 김철수 대리...”
“뭣이?”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우주가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몸을 치웠다.
“김대리가 여긴 어쩐일이오?”
“어제 7시 30분까지 온다고 했잖아요. 아우 아파...”
철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우주를 바라봤다.
“제가 도둑인줄 알았어요?”
“어쩌다 잠이 깊이 들은건지 좀 착각했소이다.”
철수가 작게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방은 또 왜 이렇게 된거예요.”
“사실은 그게, 문득 한밤중에 불안해지지 뭐요. 자객이 날 암살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방호를 쌓아두었소.”
“자객이 여길 왜 오나요...”
우주가 고개를 저으며 씩씩하게 대꾸했다.
“그런 방심이 큰 화를 불러온다오. 예전에 내 동료 하나가 한밤중 일본 닌자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소이다. 자나깨나 철저한 대비는 기본중의 기본.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때가 제일 위험한거요.”
철수는 기가 막혀 웃음도 안나왔다. 뜬금없이 자객이라니. 우주에게 과대망상 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부터 쭉 지켜본 결과 그가 혹시 4차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 문을 잠가놓고 자야 암살자도 못들어오죠. 아까 보니 그냥 열려 있드만.”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열려있었소?”
“닫기만 해선 안되죠.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까지 확인해야지.”
우주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확실히 잠기는 소리는 못들었던것 같소.”
보통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긴 하지만 디지털 키에 관해 어제 설명하면서 자동 잠금 설정을 풀어놓았던 것 같다.
“일단, 대충 정리하고 아침밥이나 먹으러 가죠.”
철수는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하루 빨리 이번 신입 교육을 무사히 끝마치고 실적을 쌓자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 전부였다.
그의 평소 신조는 ‘남은 남, 나는 나, 따라서 귀찮은 것은 사절’ 이다.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만 아니면 개인 취향을 존중하면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아 맞다 옷.”
밖으로 나가기 전 우주가 입은 조선시대 옷이 눈에 걸렸다. 그것 말고는 집에 옷이 한 벌 없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요.”
철수가 집을 나가더니 금세 다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남색 체육복이 들려 있었다.
“어디 가서 가져온거요?”
“우리 집이요. 제가 입던 거예요.”
“집이 여기 있소?”
“예, 옆집 302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