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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3화 (3/285)

3화

“말투가 이상하오?”

“꼭 옛날 사람처럼 말하능게...”

우주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아주머니가 이내 손뼉을 한 번 짝하고 치면서 깔깔거렸다.

“촬영왔구먼! 어디서 찍는디? 이 근방에 찍을만한 곳이 있든가? 드라마 제목이 뭐여? 주연 배우는? 난 김수희가 참하고 좋던디 말여.”

아주머니가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냈으나 우주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투를 보아하니 사극 연습하는겨 총각?”

“사극? 사극이 뭐요?”

“사극을 몰라? 아 그 옛날 드라마 말여.”

“모르겠소 난.”

그렇게만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 낯선 풍경이 그를 짓누르듯 둘러싸고 있다.

문득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곳 천안에는 일본인이 없소?”

“없긴 왜 없어~ 요즘 한국으로 놀러들 많이와서 가끔 우리 식당에도 오고 그려.”

“해는 끼치지 않더이까?”

“해를 왜 끼쳐~ 나야 돈 벌고 좋지 뭐."

우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사색에 빠졌다.

‘어찌된 영문이지? 우리 백성들에게 왜놈은 분명 원수일터인데 아주머니의 표정이 너무나 밝구나. 세상이 대체 어쩌다 이리 바뀌게 된게지?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겐가?’

우주가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올해가 단기 몇년이오?”

그러나 아주머니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막 식당을 나온 세 명의 남성에게 다가갔다.

“어이구, 이봐들. 돈은 주고 가야지 그냥 가게?”

정장을 입은 세 남자가 저마다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킥킥 비웃었다.

“돈이라니? 이 아줌마야 그럼 음식이나 맛있등가.”

“이 사람들 보게. 그래도 돈은 주고 가야지 이렇게 걍 가믄 난 뭘 먹고 살라능겨.”

“그래서 경찰에 신고라도 하시게?”

셋중에서 가장 덩치 큰 사내가 두 손을 바지에 찔러 넣고 아줌마 앞에서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다. 그러면서 왼손 중지에 낀 금반지를 보여주었다.

“뭐유? 뭐?”

“아, 아녀...“

남자의 반지를 본 아주머니가 급히 눈길을 피했다. 왠지 기가 꺾인 모습이다.

그에 우주가 나섰다.

“당신들 뭐하는 거요?”

“하하, 나참. 넌 또 뭐야?”

덩치 큰 사내가 거들먹거리며 우주에게 다가왔다.

“눈 안깔어?”

우주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자 놀란 아줌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렸다.

“아고, 그러지 말어. 이분들 수라여 총각. 그냥 보내드려도 되니께 가만 있도록혀. 아까 은혜는 갚을 필요없으니께.”

덩치 큰 사내가 피식 웃었다.

“아가야, 들었냐? 이번만 함 봐줄테니까 괜히 나서지 말아라. 우리도 사고치기 귀찮으니까 넘어가주는거야,”

그렇게 말하고 사내는 발걸음을 돌리려했다. 하지만 우주가 당당히 소리쳤다.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내고 가는 것이 도리일 것이오! 그냥 간다면 시정잡배나 하는 짓이외다! 당장 돈 내고 가시오!”

사내들은 일제히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덩치 큰 사내가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검지로 우주의 이마를 살짝 짓눌렀다.

“야 이 쉐키야. 이 아줌마랑 떡이라도 쳤냐? 왜 괜히 나서 니이이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아줌마가 사정하듯이 우주에게 매달린다.

“빨리 잘못했다고 혀! 이분들은 일반인이 아니고 수라란 말여. 수라!"

“수라가 뭐란 말이오! 수라는 돈 안내도 괜찮단 말이오?”

“그래 이 씨발놈아!”

덩치 큰 사내가 더는 들어줄 수 없다는 듯이 우주를 향해 커다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우주는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얼레? 이놈보소?”

헛방을 날린 사내가 뻘쭘해하면서도 은근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뒤에 있던 두 사내가 킥킥 웃었다.

“오 제법인데.”

“이 빠가 새끼가 좀 하나봐.”

“빠가?“

빠가라면 왜놈의 말이 아닌가.

“빠가야로우?”

우주는 미간을 좁혔다. 잘못들었는가 싶어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일본말 빠가 말이오?”

덩치 큰 사내가 히죽대며 대답했다.

“그래 이 빠가새꺄. 일본말이다. 어쩔래? 더해줄까? 이 씨다바리같은 새끼야. 내가 다이다이 까서 그 면상에 기스를 콱 내줄테니 각오해라. 나중에 그 몸둥이에다가 공구리 확 쳐불라니까 살아돌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말고. 알았어? 앙?”

쉴새없이 쏟아진 일본 단어를 듣고 우주는 크게 복받쳤다.

‘호, 혹시 이자들은 이완구 같은 매국노들인가!“

그럼 그렇지! 진정 조선인이라면 같은 민족을 괴롭힐리 없을터!

그런 생각이 들자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우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깨 너비로 발을 벌렸다.

“매국노는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뭐라고? 매국노? 푸!”

덩치 큰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뒤에서 구경하던 사내들 역시 마음껏 웃어댔다.

“크하하, 하하하!”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우주. 덩치 큰 사내는 한껏 웃더니 도로 인상을 구긴다.

“딱 보기에 어린 새끼같고 세상물정 모르는 촌놈 같아서 경고해주는데, 아가야 우리는 수라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란다. 수라는 인간보다 힘이 더 세. 내가 진짜로 화가난다면 그때는 니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단 소리야. 알아듣겠어? 아앙?”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험악하게 말했음에도 우주는 여전히 기죽지 않고 당돌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해보시오. 수란지 뭔지 실력이나 봅시다.”

“햐, 이것봐라. 니가 수라쯤 되냐? 공인 반지도 없는 것이 대체 뭘 믿고 까부는데? 아오 진짜, 내가 쫓기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건 오늘 조져버렸다. 존나 짜증나네.”

상당히 열받아 하는 덩치 큰 사내에 비해 우주는 비교적 침착한 얼굴로 대답했다.

“짜증나면 덤벼보시오. 매국노는 맞아도 싸니까!”

순간, 덩치 큰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가 자꾸 기분 나쁘게 매국노, 매국노!”

그 큰 주먹을 다시 뻗었다. 우주는 물흐르듯 그것을 가볍게 피하며 유려하고도 화려한 뒤돌려차기로 사내의 얼굴을 멋지게 가격했다. 그 강도가 어찌나 센지 사내의 육중한 몸이 총알 날아가듯 허공에 튕겨져 날아가더니 건물 벽과 충돌하며 그 아래 쓰레기 더미에 쾅 쳐박혀 버렸다.

“이 새끼가!”

뒤에서 내내 지켜보고만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내가 인상을 마구 구기며 덤벼들었다.

우주는 즉각 한 발을 들더니 지면을 향해 강하게 내려쳤다.

쿠웅! 소리가 나며 평탄했던 보도블럭이 아주 작은 언덕처럼 볼록하게 위로 솟구쳤다.

사내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바닥에 걸려 우주 앞으로 고꾸라져버리는 형세가 되어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우주가 오른발을 머리 높이 쳐들더니, 엎어진 사내의 허리를 향해 그대로 내려찍었다.

“커억!”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곧 기절을 해버렸다.

인도를 오가던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도로를 주행하던 차들도 서행하며 이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 싶었다.

“초, 총각!”

우주가 두 명의 수라를 순식간에 제압하자 아주머니는 놀라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초, 총각도 수라인겨...?”

우주가 고개를 저었다.

“소생은 수라가 아니오. 수라라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음?”

문득 셋중 한 사내가 보이질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가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가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흥! 절대 놓치지 않으리다!”

우주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힘차게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크게 도약하며 그대로 차체 위로 매달렸다.

쾅! 쾅! 쾅!

우주가 주먹으로 수차례 차지붕을 내려쳤다. 그 소리에 놀란 남자는 악셀을 더 세게 밟았다.

“저, 저리가! 떨어지란 말이야!”

곡예를 하듯 이러저리 핸들을 꺾는 바람에 순식간에 도로는 혼잡해졌고, 사방에는 욕설과 함께 크락션 소리가 날뛰었다.

그런 가운데 주먹만으루 연신 차지붕을 두들기던 우주는 그것이 포탄을 맞은것처럼 동그랗게 찌그러지기만 할뿐 뚫릴 생각을 안하자 다른 방편을 모색해야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빠르게 질주하던 차가 갑자기 급제동을 거는 것이었다. 그 탓에 차지붕에 붙어 있던 우주가 본넷 위로 단숨에 튕겨져 날아가면서 수십미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죽어버려어어엇!”

남자는 다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재꼈다. 나가 떨어진 우주를 정면으로 들이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주는 떨어진 충격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달려온 차를 종이 한장 차이로 날렵하게 피하며 도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끼이익! 콰앙!

맹수처럼 질주하던 차는 끝내 교차로에서 좌회전으로 들어오던 5톤 트럭과 충돌해버렸다.

사고가 난 직후 트럭 운전수가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 나왔다. 화물칸과 부딪히는 바람에 다행히 목숨은 건진듯 싶었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남자 역시 숨이 붙어있었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반쯤 풀려 있다.

우주는 심하게 훼손된 차량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밖으로 꺼냈다.

이어서 하늘을 쳐다봤다.

“매국노들이 매맞기에 아주 좋은 날씨로군.”

그때 주변에서 굉장히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차에서 내린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경찰이다! 손 머리 위로 들고 엎드려!”

어느새 출동한 경찰관들이 일제히 우주를 향해 총을 겨눈채 그를 에워쌌다.

천안경찰서 내 조서실.

우주는 수갑에 묶인 채 텅 빈 책상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당초 순조롭게 훈방조치가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경찰측이 우주에 관해서 아무런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또각또각 걷는 소리가 나며 조서실 문이 활짝 열렸다.

대뜸 좋은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안녕하십니까? 한소라 라고 합니다.”

제법 영리해보이는 눈동자가 우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인이었다.

힙이 잘맞는 타이트한 정장바지. 그 위에 회색 두버튼 자켓과 속에 흰 셔츠를 입은 그녀.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긴 머리카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다.

행동거지는 어른스러웠지만, 짙은 화장 속에 가려진 얼굴은 우주와 또래로 보인다. 적어도 한두살 차 위의 연상이겠지.

소라 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가 빈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열린 문밖에는 그녀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등을 돌린 채 복도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죠. 현시대는 2010년. 당신이 살던 시대로부터 정확히 105년이 지났습니다.”

“그, 그럴리가! 그것이 참말이오?”

“정말입니다. 그리고 일본 세력은 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전한 후 1945년 항복을 선언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미, 믿기지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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