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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44화 (14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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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 물리고

“전금당주 왕표!”

괴한은 그가 분명했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자였다.

세간에는 무공을 전혀 모른다고 알려졌고, 돈과 권력에 환장한 놈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진혁의 생각도 그랬고.

마주친 건 무림맹에서 요직에 있는 자들이 모이는 회의를 할 때 정도?

‘그놈이 와서 진을 부수었다? 왜?’

이유는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고. 진을 부수어야 포인트를 얻을 수 있거나 그랬을 거다.

어차피 일어난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었다. 현허진인이야 같은 파벌이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이니 같이 온 것이 이해가 된다.

공동운명체 같은 사이니까. 하지만 호법대주인 무공대사는 왜 같이 온 걸까? 서로 앙숙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굳이 같이 다닐 만한 특별한 사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함께 왔다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네?’

왕표는 무당 라인이다. 그렇다면 마나를 품은 무기들은 무당 쪽에서 사용해야 맞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무기는 소림 쪽에서 사용했다.

뭐지? 왕표가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닌가? 무기를 만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 그것도 있고 땅딸보는 황실의 인물 같다고 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보가 부족하다. 이럴 때는 놈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지.’

정보를 꼭꼭 숨기려고 할 텐데, 그걸 찾으려고 해봐야 힘들기만 한다. 그럴 바에는 아예 들쑤셔서 놈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좋다.

진혁은 곧바로 북경으로 향했다. 이 정보를 황실에 흘리기 위해서였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제가 서책을 확인하고 융중산에도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는데, 사실이었사옵니다.”

채 공공은 확인 과정에서 몇 명의 고수가 희생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후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후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까지 괴물이 나타난 건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누군가가 일부러 저지른 일이다?

“내 이놈들을 당장!”

태후의 표정에 살기가 감돌았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분노가 극에 달한 거였다.

자신과 황제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다치고. 그런데 그게 누군가가 일부러 한 짓이라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후는 바로 무림맹을 전부 뒤져서라도 누가 한 짓인지를 가려내라고 소리쳤다.

“마마. 잠시 고정하시지요.”

“공공! 내가 지금 고정할 수가 있겠소?”

태후의 목소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컸다. 하지만 채 공공은 그리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진을 파괴해서 괴물이 나온 것이라는 걸 증명할 길이 없사옵니다.”

섣부르게 나섰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소림과 무당을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있다. 혹시 놈들이 반발을 할 수도 있어서였다.

반발이란 게 무어겠나. 반역이다. 지금처럼 괴물이 날뛰고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는 반역이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림과 무당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힘도 있다. 군부와도 연줄도 있고, 금력과 권력을 모두 거머쥐고 있으니까.

“놈들들 자극하면 너무 궁지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것보다는 서서히 조여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마.”

“흐음..”

태후는 그러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당장 동창이나 금군을 움직여 모두 잡아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도 황실에서 지낸 지가 수십 년이다. 권력이 어떤 것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민가에 소문을 퍼트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채 공공은 동창의 세력을 이용해서 천하에 소문을 내자고 했다.

괴물이 나타난 것은 누군가가 융중산에 있는 진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걸 부수어 괴물이 다시 나타난 거다.

“이리하면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한 자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황실이 나서면 모양새도 좋고 명분도 확실하옵니다. 마마.”

“확실히 그게 좋기는 하겠군요.”

태후도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듯했다. 확실히 채 공공이 한 대로 된다면 천하의 이목이 진을 파괴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쏠릴 것이다.

그만큼 황실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줄어들 테고. 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놈들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마마.”

그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누군가가 괴물을 일부러 불러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 그놈 때문이라면서 어떤 놈인지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이거 큰일 아닙니까. 우리가 한 일이 밝혀진다면..”

무공대사는 잠시도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다. 세상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 소림은 끝장이다.

“아니지. 증거가 없으니 아니라고 하면..”

“황실이나 다른 곳에서 가만히 둘 것 같소?”

왕표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편하게 있을 때가 아니지 않소이까. 이거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나겠어요.”

무공대사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무공대사였지만, 사안이 너무나도 중대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소림 전체가 몰살할 수도 있는 일이니 차분할 수가 없었던 거다.

“뭘 그리 걱정하시오. 설마 죽기야 하겠소.”

왕표의 말에 무공대사가 확 다가서며 물었다.

“혹시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게요?”

“찾아보면 항상 방법은 있기 마련 아니겠소.”

왕표는 여유만만이었다. 무공대사는 자신이 왜 이 자와 손을 잡았는지 크게 후회했다.

‘악마 같은 자. 이 자의 꼬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데..’

소림을 위해 한 일이었다. 무림맹주의 자리를 무당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당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고, 소림은 정체되어 있었다.

그대로 갔다면 지금쯤 무당의 세상이 되었을 거다. 그래서 왕표의 제안을 수락했던 거다. 과거에 천하를 도탄에 빠뜨렸던 괴물을 다시 불러내기로.

괴물이 나올 곳도 미리 알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오대검파의 한 축인 화산파. 그 화산파가 있는 화산에서도 괴물이 나온다는 거였다.

‘오대검파의 한 축이 무너지고 우리는 미리 대비를 해서 격차를 줄이려고 했지. 하지만..’

왕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주지 않은 거였다. 정말 애를 태우고 또 태우다가 뒤늦게나 무기를 건네주었다.

그 사이 무기를 미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켰고. 무공대사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결과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거다. 무공대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방법이 뭐요?”

“큰 사건이 일어나면 이목이 그리로 쏠리는 법이지.”

왕표는 히죽 웃으면서 뜸을 들였다. 그러다 무공대사가 조급증을 드러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황실에 가장 큰 어른은 태후. 태후는 매년 담자사를 찾는데 그게 얼마 남지 않았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무공대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왜 그리 놀라시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몰라서 그런 건가? 이런 상황에서 어지간한 일이 터진다고 해서 이목이 돌려지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태후는..”

왕표의 입가에 조소가 달렸다.

“어차피 끝장을 볼 수밖에 없소이다. 사실 태후가 모든 결정을 한다는 거야 다 아는 얘기고.. 그러니 이 기회에.”

왕표는 손을 목에다가 대고는 쓱 그었다.

“호위가 있겠지만, 어느 정보 병력인지만 알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거요. 그리고 그걸 사혈련에다가 뒤집어씌우면 되지.”

“사혈련에?”

무공대사는 사혈련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화살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격이 아닌가.

자신들을 노리는 태후를 죽이고, 골칫거리인 사혈련도 무너지게 하고.

“그게 가능하겠소?”

“그거야 우리가 준비하기 나름이지. 그래서 지금부터 이거저거 준비를 할 게 좀 필요하다. 이거요.”

왕표는 사혈련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근거는 감숙과 사천에서 사혈련이 엄청난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거였다.

“감숙은 이미 사혈련의 땅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게다가 요즘 사람들을 모아 훈련을 시킨다고 하더이다. 이거 아주 좋은 기회 아니오.”

괴물을 잡는다는 명목이었지만, 어쨌든 군대를 만드는 일이다. 역모를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니 그런 밑 작업을 하면서 호위가 어떤지 정보를 빼내도록 하시오. 그러면 소림의 고수들과 내가 부리는 고수들을 동원해서 처리하는 거지.”

왕표는 사건이 충격적일수록 좋으니 태후와 호위는 물론이고 담자사 인근에 있는 마을까지 모두 도륙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어.. 어찌 그런 잔인한 일을..”

무공대사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사람을 죽인 적도 있는 무공대사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공을 겨루다가 그런 거다. 아니면 강호의 악적을 상대하다가 죽이게 되었거나.

하지만 이건 무고한 사람들까지 다 죽이자는 소리 아닌가. 무공대사는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손 놓고 있다가 금군이나 동창에 잡혀가던가.”

“그러지 말고 태후로 끝냅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소.”

“장부가 독하지 않으면 큰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소. 이 정도에 흔들려서야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왕표는 단호했다. 협조하든가 아니면 손을 떼던가. 무공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손을 뗄 수는 없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면 우리가 태후를 맡겠고. 나머지는 그쪽에서 처리하는 걸로 합시다.”

그나마 차선책이라고 생각한 게 그 정도였다. 무공대사의 말에 왕표는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케이. 그렇게 합시다.”

왕표는 준비 잘 하라며 무공대사의 어깨를 팡팡 두들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오케..이? 저건 철각패도나 하 당주가 가끔 쓴다는 말인데.. 왕 당주가 발해 출신이었나?’

무공대사는 이제 발해 출신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철각패도에게 당하고 하진혁에게 당했는데, 왕표까지 발해 출신이라니.

무공대사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소림을 위한다고 시작한 일이지만 자신의 대에 소림이 멸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니 무림맹에서도 조사를 해야 합니다.”

진혁은 사람들이 무림맹을 의심한다면서 의혹을 벗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조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굳이 그럴 것까지 있소이까. 그런 허황된 소문에 일일이 반응한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게요.”

현허진인이 반대했다. 무공대사와 몇몇 당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문제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니 섣불리 나서지 말자는 거였다. 어떻게 움직여도 의심은 피할 수 없고, 공연히 새로운 의혹만 생길 거라고.

“이럴수록 철저하게 가려내야 합니다. 우리와 황실이 함께 융중산을 조사한다면 의혹이 풀릴 겁니다.”

진혁은 가만히 두면 무림맹의 권위도 떨어지고 계속 의심받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확실하게 조사를 해서 죄가 없다는 걸 증명하자고 했다.

진혁의 말은 일반 무사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진혁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도검당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황실과 공정하게 검증을 할 사람들을 모셔서 철저하게 조사를 할 겁니다!”

진혁은 현허진인과 무공대사를 차례로 보면서 말했다. 무공대사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도검당주의 권한으로 하겠다니 막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명분이 확실했다. 뭐라고 하면서 막을 건가. 무공대사는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빌어먹을 발해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은 시선을 전금당주인 왕표에게로 향했다. 왕표는 진혁을 쳐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아주 스산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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