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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빵이 최고!
사실 사혈련 낙양지부는 엄청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혈련으로서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다는 것을 천하에 공표하게 된 사건이다. 사혈련이 무림맹과 다툴 정도로 강성해졌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도 있고.
무림맹 입장에서야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낙양에서 사혈련을 몰아내고 다시 지부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자하검선이라면 쉽게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차라리 청광진인이면 붙어볼 만할 것 같은데..’
세간의 평은 자하검선과 청광진인이 대등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하검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조금은 꺼려졌다.
‘그래. 굳이 싸울 필요가 없지.’
낙양의 사혈련 지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해도, 그거야 사혈련의 입장에서 그런 거다. 철각패도는 낙양의 사혈련 지부가 통째로 날아가도 큰 상관 없다.
하지만 철각패도가 어디로 도망가는 꼴이 되면 안 된다. 그러면 그의 평판에 금이 간다. 감숙이나 청해, 사천 같이 서쪽 사람들이 철각패도를 신처럼 떠받드는 이유가 뭔가.
그가 공정하게 일을 하고 재물을 나누어주고 먹고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이유다. 하지만 그것보다 절대로지지 않는 무적의 이미지. 불패의 강자.
그런 이미지 때문에 철각패도를 신처럼 모시는 거다. 그런 강력한 신이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바라면서.
‘방법은 간단하지. 남자라면 공격!!’
철각패도는 낙양의 사혈련 지부장을 불렀다.
“공동파 애들이 깝죽거린다는 말이 있어서 거기 정리하러 다녀오마.”
“공동산까지 말입니까?”
“그래. 왜? 그럼 내가 그놈들 걸리적 거리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철각패도의 말에 지부장은 흠칫 놀랐다. 그는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주 다급하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가서 박살을 내셔야죠. 암요.”
철각패도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나섰다.
같은 시각, 진혁은 황궁에 들어가 태후의 보물창고를 구경하고 있었다. 보물창고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래서 팔찌를 찾는 데 생각한 것보다는 시간이 걸렸다.
“어떻소이까? 무척 아름다운 물건들 아니오?”
채 공공이 옆에 바짝 붙어서는 진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군요. 진귀하지 않은 물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물건을 볼 수 있다니..”
진혁은 자신의 집은 무척 가난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채 공공은 자신 역시 어렸을 적에는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맞장구쳤다.
‘아. 그 새끼.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이렇게 옆에 딱 붙어 있으니까 팔찌를 빼돌릴 수가 없잖아?’
아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래서는 팔찌를 빼낼 수가 없다. 원래는 팔찌를 아공간에 슬쩍 넣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진혁은 구경을 하는 척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철각패도를 이곳에 부르기 위해서였다.
철각패도로 양의심공을 사용하는 것이 더 수월하긴 하다. 하지만 진혁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철각패도의 몸으로 익숙해 지니 진혁의 몸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된 거였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저 멀리 구석에 거대한 몸집이 스르륵 나타났다. 채 공공이 무공의 고수였지만,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탄로가 날 테닌까. 진혁은 아주 화려한 목걸이 앞에 섰다. 그리고 하염없이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목걸이 아니오? 이 색색의 보석 하며 거기 새겨진 것 하며..”
채 공공도 황홀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뒤쪽에서는 철각패도가 살금살금 움직였다. 마치 고양이처럼.
덩치는 고양이보다는 호랑이나 공룡이 더 어울리겠지만, 철각패도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팔찌 앞까지 움직였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팔찌를 들고는 아공간을 오픈했다. 그러는 사이 진혁은 슬쩍슬쩍 채 공공을 감시했다.
‘이제 넣고 사라지기만 하면..’
철각패도는 팔찌를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아공간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채 공공이 진혁의 팔을 잡았다.
“아. 보면 좋아할 만한 보물이 있는데..”
진혁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뒤를 돌면 철각패도가 들킨다. 진혁은 갑자기 채 공공의 어깨를 잡았다.
“아니.. 갑자기.. 이게..”
채 공공은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 사이 철각패도는 아공간을 닫고 재빨리 사라졌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향이 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머리가 좀 어지러워져서..”
진혁은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자 채 공공이 진혁을 부축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는 독특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 많으니 무언가가 당주에게 좋지 않게 작용했나 봅니다.”
채 공공은 어서 나가자고 이야기했다. 진혁은 못 이기는 체 채 공공의 부축을 받으며 보물창고 밖으로 나갔다.
“괜찮소? 하 당주.”“예. 덕분에..”
“괜찮겠소이까? 어지러운 게 가시지 않았다면 잠시 차라도 한 잔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아주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데..”
진혁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밖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니 다 나은 듯합니다. 그리고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이거 아쉽군요..”
채 공공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어휴.. 큰일날 뻔했네.. 하지만 팔찌는 입수를 했고..”
이제 포인트만 다 모으면 끝이다. 포인트도 거의 다 모았다. 아홉 칸을 채웠고 나머지 한 칸만 남은 상태다.
- 저기요? 들리시나요?
진혁은 무시했다. 이제 거의 끝나가지만, 능력은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다. 굳이 관리자를 만나서 회수당할 필요는 없는 일.
‘어차피 내 잘못도 아니고 그쪽에서 버그가 나서 생긴 거니까 뭐.’
나중에 몰랐다고 하고는 돌려주면 그만이다.
- 들리는 것 같은 데 대답이 없네? 분명히 연결되었다고 나오는데..
진혁은 찔끔 놀랐다. 무언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뻥이던가. 진혁은 어찌할까 고민했는데, 관리자가 계속 말을 걸었다.
- 저기요? 들리죠?
- 아. 아. 뭐가 이렇게 지직 거리지?
진혁은 잘 들리지 않는 척했다.
- 아. 들리는군요. 아직도 연결 상태가 좋지 않나? 아이. 더 고쳐야 해?
- 음? 이게 소리가 들리다 말다 하네요.
관리자는 아직 손을 더 봐야겠다며 투덜거렸다.
- 그건 그렇고 제가 보니까요. 여러 능력이 중첩되어 있어요.
어쩐지 능력이 좀 풍성하다 했다. 설명이 없어서 그렇지 능력 자체는 아주 괜찮았다. 생명도 아홉 개니까 넉넉했고.
그런데 그게 다 버그 때문에 생긴 모양이었다. 웃기는 일이다. 관리자가 신의 대리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세계에도 버그가 있다니.
- 이거 회수 할 예정인데요. 위치가 어딘지..
- 치이익. 치익 취이이익.. 저기 말이 갑자기.. 치이이익..
진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철각패도로 몸을 바꾸었다.
낙양의 밤거리에 나타난 철각패도는 허공을 날아 공동산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이제는 철각패도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
철각패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밤하늘을 날았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철각패도가 오고 있다니?”
“며칠 전에 장안에 철각패도가 나타났다는 전서구가 왔습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
공동파의 장문인인 영천진인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난주에서 조금 기를 펴나 했는데, 그동안 들인 공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철각패도가 있는 사혈련과 없는 사혈련은 천지 차이다. 다른 장로도 가끔 들리기는 하는데 어차피 오래 있지 않는다.
그래서 슬슬 영역을 넓혀 나가다가 다시 난주를 가져 올 생각이었는데, 철각패도가 돌아온다면 모든 게 끝이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정사 나리가 있지 않습니까. 반역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철각패도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할 겁니다.”
공동파는 감숙성을 다스리는 포정사를 구워삶았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지만, 그만큼 효과는 좋았다.
하지만 그 효과가 철각패도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철각패도가 그런 걸 신경 쓰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철각패도를 따르는 무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하는 소린가? 일반 백성들부터 병사들까지 철각패도를 따르는 자들이 대다수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영천진인도 그게 고민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계속 눌려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포정사를 믿어보지. 정 불리하다 싶으면 그때 손을 떼든가 하면 되겠지.”
영천진인은 일단 철각패도에게 맞서보기로 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바람이었나를 아는 데까지 딱 하루 걸렸다. 공동파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난주에서 내쫓겨야 했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소이까?”
공동파 사람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그동안 야금야금 세력을 넓히고 있었는데, 한 방에 뿌리가 뽑히게 생겼다. 그걸 곱게 넘어가겠는가.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것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더니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뭐가? 불만 있으면 얘기를 해라.”
하지만 공동파 사람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게 철각패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도 막상 철각패도를 보고 나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목이 뽑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니들. 난주에서 깔짝대는 거 어느 정도는 봐 줄수 있다. 같이 먹고는 살아야지. 하지만!”
철각패도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난주가 니들 것인 양 굴지는 마라.”
철각패도의 말에 공동파나 사혈련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상인이나 일반인까지 나와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자기 거라 주장하면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니들이 그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나보다 난주를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 자신이 있을 때 해라!”
결정타였다. 공동파 사람들은 전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는 이유가 뭔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이 버는 걸 내 쪽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이익이 생기는 거 아닌가. 그래서 지금까지는 사혈련이나 무림맹이나 사람들은 상관없었다.
둘 다 똑같았으니까. 자릿세 뜯는 조폭이나 대리점 쥐어짜는 대기업이나 다를 게 뭐가 있나. 당하는 상인은 똑같다. 그저 둘 한테 다 뜯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사혈련이 변했다. 그래서 지금 난주 사람들은 모두가 계속해서 사혈련 아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분탕질을 친 건 없어 그냥 보내주는 것이니 곱게 말로 할 때 꺼지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길 저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공동파 장문인과 관리 한 명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포정사 나으리시다. 고개를 숙여라.”
포정사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얼른 고개를 숙이거나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어허. 이놈이. 무례하구나. 어느 안전이라..”
철각패도는 떠드는 놈의 머리를 잡고서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놈은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갔다.
“아니.. 이게 무슨..”
포정사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얼굴이 하얘지니 백인 뚱보 같았다.
“당신이 포정사야?”
“그렇다.”
“오케이. 그럼 나랑 잠깐 얘기좀 하지.”
철각패도는 포정사의 뒷덜미를 잡더니 아무도 없는 건물의 지붕으로 날아갔다. 공동파의 장문인인 영천진인과 무인들이 철각패도를 막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중으로 뛰려고 내력을 움직였지만, 무언가에 꽉 붙들린 듯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정사를 들고 날아가면서 우리들을 묶어?’
영천진인은 등골이 오싹했다. 이 정도 무공이면 손만 슬쩍 움직여도 여기에 있는 공동파 무인들은 전부 시체가 될 거다.
영천진인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허공을 날아가는 철각패도와 포정사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