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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그놈이 그놈?
철각패도는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이번에 양의심공까지 사용하면서 진혁과 동시에 한 정소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두 사람을 컨트롤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럭저럭 해 냈다.
게다가 황궁 밖에 현허진인과 무공대사가 있어서 일부러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 진혁이 나와서 객잔 앞을 지나가는 걸 보여주려고.
그리고 보여주었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청광진인이 그 둘과 무슨 이야기를 쑥덕거렸는데, 자꾸만 철각패도를 쳐다보았다.
‘말끔하게 의문이 해소된 그런 표정이 아니었어.’
무언가 의심을 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서 아주 찜찜한 상태였는데, 채 공공이 와서 같지도 않은 말을 하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이 보시오. 아무리 강호의 무인이라고 해도 예의를 지키시오.”
“예의? 그런 건 저기서 여기 훔쳐보고 있는 자들이 잘하니 거기 사람들 하고 얘기를 해보시던가.”
철각패도는 저 멀리 있는 무림맹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쉬운 건 자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실에서 제발 해달라고 엎드려 빌어도 모자랄 판이다.
“난 황실에서 뭐라고 하든 할 거요. 그리고 공짜로 들러붙어서 뭐라도 얻어먹겠다? 그런 짓을 하면 크게 후회하겠지..”
“허어.. 이거야 원..”
채 공공은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이 이런 부류다. 제대로 미친놈.
가장 다루기 쉬운 자는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가 원하는 것으로 살살 꼬드기면 바로 넘어온다. 그것에 미끼에 독이 있는지도 모른 채.
하지만 이놈은 욕심 같은 게 없다.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협박도 회유도 통하지 않는다.
‘정말 백성을 위해서 나서는 건가? 생긴 걸로 봐서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길거리에서 사람들 때려죽이면서 돌아다닐 것처럼 생겼다. 그런데 백성을 위해서 자신의 돈과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나선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
채 공공은 계속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손을 들었다. 철각패도가 원하는 건 한 가지라는 걸 알았다. 정말 철각패도는 괴물을 처치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말 철각패도는 괴물을 처치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야 포인트를 대량으로 얻게 되고, 빨리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소이까?”
채 공공은 고민하다 화약 이야기를 꺼냈다. 토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화약을 지원해 주겠다는 거였다.
화약 이야기가 나오자 철객패도도 조금 태도가 달라졌다. 화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괴물을 상대할 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물건.
“화약이라..”
“대신에 황실에서 토벌에 지원해준 정도로 하면 어떻겠소?”
어차피 감숙이나 사천이면 정말 변방이다. 그러니 생색이나 내고 그걸 잘 활용하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화약의 문제는 민감해서 반대하는 중신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태후는 그 정도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제공하는 화약의 양도 이쪽에서 조절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을 위해 사람도 딸려 보낼테고 하니 이 정도가 적당했다.
“그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 좋소이다. 그리 하지.”
채 공공은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화약이라는 말에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이 자는 정말 괴물을 토벌하려는 거라고.
채 공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스타일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
“가만있어 보자. 분명히 예전 기록들이 있을 텐데..”
진혁은 무림맹 장경각 안에서 책을 찾고 있었다. 괴물 토벌과 관련된 예전 기록을 찾으려는 거였다.
‘분명히 예전에 포탈을 막았을 거야. 그렇다면 그것과 관련이 있는 단서가 있을 거고.’
천하에 가장 서책이 많은 곳은 황실 서고다. 물론 거기도 들어갈 생각이다. 태후와 좋은 관계를 맺었으니 그 정도는 가능할 거다.
그다음으로 책이 많은 곳이 무림맹 장경각이다. 진혁이 이곳을 먼저 온 이유는 도검당주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무림맹 장경각도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도검당주는 아무나가 아니다. 당주 이상은 장경각의 전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는 장경각은 정말 넓었다. 현대의 도서관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옛날 자료는 주로 지하에 있나 본데?”
1층은 일반적인 서적 위주였고, 2층에는 무공 관련된 서적이 있었다. 3층은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 거기에는 상승 무공이나 진귀한 자료들이 있었다.
지하에는 아주 오래된 서책이나 판독이 어려워 분류하기 곤란한 재료들이 모여 있었다. 진혁은 지하로 향했다.
지하도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잡다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무나 갈 수 있었지만, 오래된 자료가 있는 곳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신분패를 제시하시고 여기 방명록에 소속과 신분, 이름을 적으시면 됩니다.”
진혁은 절차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매캐한 냄새. 오래된 책에서 나는 꾸리꾸리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환기도 시키지 않는 건가?”
진혁은 꿍얼거리며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찾다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히 있다고 되어 있는 책이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책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책장에 있어야 할 책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누가 빌려 갔나?”
하지만 알아보니 이곳에서는 외부로 가져나가는 게 안 된단다. 진혁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찾아보았지만, 몇 가지 책은 어딜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꼭 뭔가 있을 것 같은 책들만 보이지 않네?”
이곳에 있던 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누가 몰래 가지고 나갔거나 어디다 숨겼다는 거다. 몰래 가지고 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아니야. 그러기에는 책이 좀 많아.’
여러 번에 나누어 가지고 나갔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내부를 찾아보기로 했다. 안에다 숨겨 놓았을 수도 있으니까.
진혁은 바닥이나 벽까지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 책장이 끌린 것 같은 자국을 발견했다. 진혁은 조심스럽게 책장을 밀었다.
역시나 보이지 않던 서책이 벽 뒤에 있는 공간에 있었다.
“누구지? 여기 들어와서 이렇게 한 걸 보면 분명히 무림맹 사람인데..”
진혁은 책을 전부 꺼내고는 읽기 시작했다.
다양한 내용이 있었다. 예전에도 괴물이 나타났을 때 피해가 몹시 컸던 모양이었다. 그 당시 참혹함을 구구절절 적은 내용도 있었는데, 글인데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지금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점은 또 있었다. 괴물을 없애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들이 없다는 거였다.
군대도 그저 더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정도였고, 무림 방파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고 괴로운 건 백성들이었다.
“제갈세가에서 없어진 책이 이건 것 같은데..”
진혁은 다른 책을 들고 살폈다. 예상한 대로 제갈세가의 책이었다. 거기에는 괴물을 막기 위해 진법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뭐야? 어떤 놈이..”
그런데 결정적인 부분이 뜯어져 있었다. 진혁은 재빨리 다른 책들도 확인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은 전부 뜯겨 있었다.
이럴 거면 책을 왜 숨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자리에 놔둬도 중요한 정보는 알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진혁은 있는 부분에서라도 뭔가 얻을 수 없을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 가장 바깥에 있는 괴물이 약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강하고 커다란 괴물이..
- 하늘을 나는 괴물도 있어서 처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현천문이 아니었다면..
현천문이 큰 활약을 했다는 내용도 보였다. 그리고 괴물을 전부 없앴다는 기록도 보였다.
-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괴물이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모두 혼비백산하여..
- 보이지 않는 문이라고 불렀는데, 문을 막을 방법을 간신히 찾았다. 그건..
이거였다. 포탈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다. 그러니 포탈을 봉인하지 않는 이상 소용없는 일.
당연히 봉인을 했으니 지금까지 괴물이 없었을 거다. 진혁은 책을 계속 읽었다.
- 이상한 옷을 입은 자가 그 방법을 찾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제갈세가와 함께...
거기서 내용이 끊어졌다. 그 뒷장에 내용이 있을 텐데 찢겨 있어서 확인을 할 길이 없었다.
“아우.. 이런 쓰..!”
9회 말 2사 만루, 한 점 차 상황에서 타자가 공을 때렸는데 갑자기 티비가 꺼진 것 같은 느낌.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진혁은 어떤 놈이 빼돌렸는지 알아내서 꼭 확인해야겠다고 이를 갈았다.
“이곳에 들어왔었던 사람의 명단 말입니까?”
“방명록이 있으니 누가 왔다 갔는지 기록이 있을 것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예전 기록의 확인은 감찰 권한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진혁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말. 조금 아쉬웠다.
철각패도 같았으면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진혁은 그럴 수 없었다. 캐릭터가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래도 이 캐릭터는 이 캐릭터대로 쓸모가 있지.’
그런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호법대의 승낙을 받으면 열람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알았네. 그러면 승낙을 받아 오도록 하지.”
호법대라면 무공대사가 수장으로 있는 곳이다. 진혁은 가서 이야기를 하면 승낙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썩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철천지원수도 아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제갈세가의 핑계를 대면 그만이니까.
제갈세가의 책을 찾았는데 누군가 찢어 간 것 같아서 알아보려 한다. 만약 거절하면? 그러면 뭔가 구린 게 있는 거다.
‘그러면 소림에 범인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범인은 소림과는 연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무공대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승낙을 했고, 진혁은 지금까지 다녀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거 너무 많잖아?”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이 들락거렸다. 하기야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방법을 찾아본 사람도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직접 괴물과 싸우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이 있었다.
“접객당주인 아미의 청류사태하고, 전금당주인 왕표.”
그렇게 두 사람이었다. 진혁을 일단 그 두 사람부터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둘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당주나 원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라는 건 용의자의 범위를 줄여가는 방식으로 하는 거다. 하나씩 배제해 나가다 보면 진범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 뜻밖의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혈련을 공격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최근 사혈련의 패악이 심해져 그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사혈련의 패악은 무슨. 사혈련이 요즘 잘 나가니까 한 번쯤 눌러주겠단 소리겠지. 그래야 상단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으니까.
진혁은 탐탁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회의에 참가했다. 그런데 회의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철각패도가 있는 낙양 지부를 공격해야 합니다. 아예 도전장을 내고 승부를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부맹주인 현허진인이 말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철각패도는 왜 공격하는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철각패도를 건드리는 게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당추엽이 말했다.
“알겠지만, 철각패도의 무공은 무척이나 고강하오. 게다가 황실에서 토벌을 맡겼다는 말도 있는데, 조금 곤란하지 않겠소?”
“그러니 도전장을 내고 승부를 보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황실에서도 뭐라 할 수 없지요.”
당추엽은 여전히 문제라는 듯 말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누가 나선단 말이오?”
“화산의 자하검선께서 이번에 나서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작은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더군요.”
현허진인의 말에 다들 웅성거렸다. 자하검선이라면 청광진인과 더불어 무림 최고수 자리를 다투는 원로였다.
진혁은 갑자기 골머리가 아파왔다.
‘하아. 이거 분명히 나도 그 자리에 가야 한다고 할 건데.. 몸 두 개 유지하려면 자하검선하고 붙는 건 좀 무리인데..’
진혁은 어떻게 위기를 타개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