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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그놈이 그놈?
갑자기 무림맹에 묘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진혁이 사혈련 사람이라는 소문이었다.
“당주님이 사혈련이요? 에이.. 말도 안 돼.”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었다. 너무나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서 들을 가치도 없다고 치부하면서.
하지만 소문은 계속해서 돌았다. 특히나 철각패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퍼졌다. 철각패도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가 심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증거로 몇 가지가 이야기되었는데, 무척 솔깃한 내용도 있었다.
“원래는 아니었는데, 사주로 가는 길에 철각패도가 목숨을 살려 준 적이 있대요. 그때 포섭이 된 거래.”
“최근에 갑자기 실력이 늘었잖아요. 그게 다 사혈련이 뒤에 있어서 그런 거라네?”
진혁뿐 아니라 아예 현천문까지 소문에 휩싸였다. 마공을 익혀서 갑자기 실력이 늘었다느니, 사혈련에서 비급과 영약을 제공했다느니 하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그걸 이야기하는 자들은 대부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정말 추잡한 짓까지 하는군요. 같은 무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수치스럽습니다.”
제갈중선이 분노를 토해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진혁은 뜨끔했지만, 태연한 척하면서 사람들을 다독였다.
“대다수가 믿지 않는 말입니다. 그냥 헛소문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려고 해도 어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요.”
각주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당주님이 사혈련과 싸운 적이 있느냐고 그럽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나요?”
“맞습니다. 저희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생각을 해 보니 사혈련과는 부딪친 적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철각패도의 영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사혈련을 친다거나 하는 쪽은 생각도 안 했었네?’
괴물을 잡는 것이 워낙 큰일이니 그랬다고 하면 그만이다. 괴물이 날뛰어서 죽게 생겼는데, 사혈련을 견제하는 게 대수인가. 일단은 큰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하지만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놈들이 그런 걸 몰라서 이런 분란을 일으키는 게 아닐 거다.
‘머리가 좋은 놈들이니 이런 소문을 낸 데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이런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놈들이다. 게다가 지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놈들이고.
그리고 놈들이 무얼 꾸미고 있는지 곧 알게 되었다.
“황실에서 이번에도 토벌대를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예. 저번보다 더 큰 규모라고 하던데요?”
일단 북경 인근부터 괴물을 정리하자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이해는 간다. 화산에서 괴물을 싹 정리했으니 황제가 있는 북경 근처부터 안전하게 만들자는 거겠지.
그런데 문제는 사혈련도 참여시키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철각패도를 지명했단다. 가장 무공이 강한 자이니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고 했다.
“흐음.. 다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것인데..”
괴물과의 싸움도 전쟁이다. 전쟁터에 있으면 계속 몸이 축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번에 돌아오면 다들 푹 쉴 것이라고 좋아하고 있었다.
삭신이 쑤시고 기력이 떨어져 있는 걸 잘 먹고 푹 쉬면서 보충하겠다는 생각에 포상금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계속 잘 수 있다. 자다가 갑자기 괴물이 습격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제는 따뜻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술도 마실 수 있고.
그런데 다시 전쟁터로 나가라고 한다면 다들 크게 낙담할 거다. 황실에서 가라고 하면 안 갈 수는 없으니까.
“어디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던가?”
“제가 듣기로는 태후전에서 이야기가 나온 거라고 합니다.”
어차피 황제는 직접 무언가를 나서서 하지는 못한다. 너무 어린 나이였으니까. 대부분의 국정은 대장군 두궐륭과 채 공공의 라인에서 진행된다.
굵직한 사안 같은 경우에는 태후가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고.
‘곤란한데..’
황실에서 아예 지명을 했으니 대놓고 쌩깔 수는 없다. 아니. 철각패도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혈련이 곤경에 처할 거다.
‘사혈련이 곤경에 처하면 그 원망이 철각패도에게 쏟아질 테고, 그렇게 되면 포인트가..’
그러면 안 된다. 하지만 철각패도가 황실에 굽히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건 철각패도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대로 진행된다면 무림맹과 사혈련이 함께 토벌에 참가하게 되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도검당주인 진혁과 철각패도가 같이 전장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건 절대로 막아야 한다.
진혁은 내일 태후를 만나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반응이 어떻던가?”
“크게 동요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검당주의 평소 행실이 워낙 단정했던 터라..”
“그렇겠지.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쉽게 믿지는 않을 테지.”
무공대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실패라는 건 아니다. 소문은 그저 작은 씨앗만 뿌려 놓으면 되는 거다.
그 작은 씨앗이 자꾸 볕을 쬐게 하고 거름을 주고 하다 보면 거대한 나무로 자라는 거다. 그리고 그 작업을 지금부터 하면 된다.
“둘을 같은 장소에 몰아 넣으면 뭔가가 나와도 나오겠지.”
같은 사람이라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러면 그걸 밝혀내면 된다.
그러려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한곳에 몰아넣는 편이 수월하다. 무공대사는 어떤 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밖에서 허겁지겁 사람이 뛰어들어 왔다.
“대주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철각패도가.. 철각패도가 태후와 만나기로 했답니다.”
무공대사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 그게 정말이냐? 아니 철각패도가 무슨 연줄이 있다고 태후와 만난단 말이냐?”
“그게.. 원보 상단의 상단주가 다리를 놨다고 합니다.”
무공대사는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곱게 황실의 명에 따를 거면 굳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거다.
이렇게 태후와 만나기로 했다는 건 무공대사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
“언제 만나기로 했다더냐?”
“그게.. 오늘이랍니다.”
“오늘? 오늘은 분명히 이번 토벌에서..”
이번 토벌에 공로가 큰 자들을 치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자리가 어디 잠깐 하고 끝나던가.
금방 끝낸다면 태후의 체면이 서질 않는다. 별다른 얘기는 없더라도 질질 끌다가 늦게나 내보내 줄 거다.
그러니 어지간했으면 철각패도를 오늘 만난다고 하지는 않았을 거다. 만날 날을 따로 잡지.
“그게.. 그 사람들과 같이 만난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같이 만난다니? 철각패도는 이번 토벌에는 참가하지도 않았거늘..”
엄밀하게 말하자면 같이 만나는 건 아니었다. 치하하는 자리를 갖는 도중에 철각패도를 만나기로 했다는 거였다.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 떠도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혈련도 참가를 하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말을 할 게 있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태후는 거절했단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듣고는 관심을 보였고, 같이 만나는 것을 허락했단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것까지는..”
무공대사는 급히 현허진인을 만나러 갔다. 그 자리에 가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듣고 싶었다. 하지만 태후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토벌에 공로가 큰 사람들을 치하하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아무나 들이지는 않을 터.
“저도 지금 막 들었습니다. 이거 일이 이상합니다. 아니. 그자가 왜 태후를..”
“그 자리에 가서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아..!”
갈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청광진인. 그라면 그 자리라도 슬쩍 낄 수 있다. 무림맹의 원로이기도 하면서 태후와도 각별한 사이니까.
“알겠소이다. 내 연락을 하지요.”
현허진인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
***
태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황실의 위엄을 세워준 자들을 보니 뿌듯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들 헌앙하고 출중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태후의 앞에는 손경백과 진혁, 온위립과 호승렴, 한천위가 자리해 있었다. 이번 토벌에서 가장 공이 큰 다섯 명이었다.
이 자리에는 지휘관은 제외하고 거대 괴물과 직접 싸우는 데 공이 큰 자들을 불렀다. 구석에 청광진인이 있기는 했는데, 그는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다.
“보기만 해도 듬직하구려. 아니 그렇소.”
“니예. 그렇사옵니다. 태후 마마.”
채 공공이 대답했다. 채 공공은 온위립과 현천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 당주라고 했던가요? 풍채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 그렇게 큰 괴물들을 상대했다니. 정말 대단하구려.”
채 공공은 옆에서 하 당주의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르려면 엄청난 고련을 했을 거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저 얻은 능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진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눈물겹게 힘겨운 훈련이 떠오른다는 듯이.
태후는 눈짓을 해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내관들이 무언가를 가져와서 각각의 앞에 내려놓았다.
태후가 직접 내리는 상이었다. 풀어보지는 않았지만, 꽤 값비싸고 귀한 물건일 거다. 그런데 태후는 내관들이 나가자마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렇게 충신들인데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으니 내가 마음이 아픕니다.”
태후가 말을 꺼내자 채 공공이 얼른 받았다.
“만백성과 이 나라를 위하는 길 아니옵니까. 다들 충심이 깊은 자들이니 흔쾌히 나설 것이옵니다.”
채 공공은 이번에 북경 인근의 괴물을 토벌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미 언질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통보하듯 말하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참아야지. 진혁은 이럴 때 나서는 캐릭터는 아니니까.’
진혁이 그리 생각하면서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는데, 채 공공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자를 들라고 하겠습니다. 태후 마마.”
“그러도록 하세요.”
채 공공이 눈짓을 했고, 내관 한 명이 나갔다가 곧바로 들어왔다. 내관의 뒤에는 엄청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철각패도라 하오.”
철각패도는 고개를 약간 숙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철각패도가 이 자리에 왔다는 게 놀라웠고, 태후 앞에서 저딴 식으로 인사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야 누가 태후 앞에서 저런 식으로 건방을 떨겠는가. 하지만 철각패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원래 예를 모르는 사람이니 너무 타박하지 마시오.”
“뭐라? 이 자가!!”
손경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내공을 잔뜩 끌어올리고 당장에라도 철각패도에게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태후 마마가 계신 곳입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겝니까?”
채 공공이 날카롭게 째려보면서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었지만, 사람들은 몸이 울리는 걸 느꼈다. 상당한 내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태후나 황궁 사람들은 제외하고 무인들만 느끼도록 조절을 했다. 사람들은 채 공공도 만만치 않은 고수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당신도 예를 갖추세요.”
채 공공은 철각패도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거 모르오. 정 그걸 강요한다면 이 자리에서 나가리다.”
그 말에 채 공공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황실에서 이렇게 구는 자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고자 내가 불렀습니다. 다른 문제는 얘기를 들어보고 나서 정하도록 하지요.”
태후의 말에 상황이 진정되었다. 북진무사 손경백도 자리에 앉았고, 채 공공도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그래.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가?”
분명히 황실에 큰 도움이 될 이야기라고 했다. 괴물을 토벌하고 황실의 위엄을 드높일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철각패도를 황실에 들이지도 않았을 거다.
“나를 북경 인근에 있는 괴물 토벌에 참여시킬 생각인가 본데. 그리는 못 하겠소.”
“뭐야? 이 자가 정말!!”
채 공공을 비롯한 황실 고수들이 일제히 기세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