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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그놈이 그놈?
밖으로 나와 살펴보았지만, 감시를 하는 자들은 없었다. 하기야 철각패도의 눈을 피해서 감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철각패도는 워낙 신출귀몰하다.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언제 나타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철각패도를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는 자가 없는 거다. 그저 철각패도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캐는 정도.
“이거 오랜만에 손맛 좀 보나 했더니..”
아무리 찾아봐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철각패도는 쯧쯧 혀를 차고는 적당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몸을 바꾸었다.
진혁은 개선장군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황도인 북경에 오니 사람들이 환호하고 사방에서 꽃가루가 흩날렸다.
황실에서 이번 업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그럴만했다. 지금까지 토벌과는 달랐으니까.
그저 내려오는 괴물을 막는 것이 지금까지의 토벌이었다면, 이번에는 화산 부근을 완전히 청소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환영 행사를 하는 거야 뻔하지.’
자 봐라. 황실에세 토벌대를 보내 괴물을 전부 없앴다. 앞으로 다른 곳의 괴물도 모두 처치를 할 거다. 이런 홍보를 하는 거다.
그리고 황실의 그런 의도는 잘 먹혔다. 길가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환희와 희망이 가득했다.
이제 곧 괴물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진혁은 말에 탄 채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다시 괴물이 나올 텐데.. 포탈에서 다시 쏟아져 나오면 그때는..’
황실의 권위가 정말 바닥까지 떨어질 거다. 하지만 포탈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괴물이 나타난 이후로 황실의 권위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괴물을 제대로 물리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외세의 침략을 받았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셈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금군에 토벌대도 따로 만들고 괴물을 물리치려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는 거다.
“황궁에는 처음이십니까?”
손경백이 진혁에게 말을 걸었다. 황궁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극소수였다. 현천문의 사람들을 비롯한 큰 공을 세운 몇 명만이 황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정말 위용이 대단하군요.”
현대 문물을 접했던 진혁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적당히 놀라는 척해주었다. 사실 엄청나게 으리으리하기도 했고.
기중기와 같은 기계장비도 없던 시대에 이런 건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는 했다.
“곧바로 알현을 하러 가는 게 아닌가 보군요.”
진혁의 물음에 손경백이 웃었다.
“태감이 와서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줄 겁니다. 무기를 소지했는지도 다시 한 번 살펴볼 거구요.”
황제를 만나는 자리여서 그런지 까다로웠다. 전에 황궁에서 사람이 나와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갔는데 또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사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 황제를 만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너무 짧고 별 이야기도 없어서 허무할 정도였다.
저녁에 있었던 연회도 비슷했다. 솔직한 말로 별로였다. 음악도 지루했고, 춤도 별로였고. 술이나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하아.. 라면에 김치 먹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그래서 진혁은 그냥 고기에다가 소금 간만 살짝 해서 먹는 걸 가장 좋아했다.
‘그것보다 빨리 팔찌 이야기를 들어야겠는데..’
팔찌의 위치를 알아야 달라고 하든, 훔치든 할 것 아닌가. 아직 황궁에 두어 번 더 들어가야 하니 그때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었다.
진혁은 숙소에서 나와 으슥한 곳으로 이동했다. 서예주가 지금 북경에 와 있었다. 그러니 철각패도를 낙양에서 땡겨 올 생각이었다.
진혁은 주변을 잘 살핀 후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몸을 바꾸었다.
진혁이 사라진 앞쪽에 나타난 철각패도는 곧바로 골목을 빠져나와 서예주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태후의 보물창고에 그 팔찌가 있단 말인가?”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래요.”
서예주는 이걸 알아내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황족의 보물 창고가 따로 있는데, 그중 태후의 보물 창고에 가져다 놓았다고 해요.”
“위치나 그런 건 모르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죠. 누구나 다 알면 그게 보물창고겠어요?”
하긴 그렇다. 보물 창고의 위치야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서예주는 채 공공과 두어 명의 내관이 그 위치를 알고 있다고 했다. 물론 당사자는 알 테고.
“그렇다면 태후와 이야기를 해 봐야 하나..”
“태후님과 이야기를 하신다고요?”
서예주가 깜짝 놀라 물었다. 태후가 어디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어지간한 사람은 얼굴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마치 만날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사혈련의 대장로와 태후. 절대로 가까울 수 없는 조합인데 말이다.
“아.. 그냥 해 본 소리다.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사실은 진혁이 태후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태후가 이번 토벌에 공이 큰 사람들을 따로 불러 치하하는 자리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무심코 중얼거리다 보니 그 이야기가 나온 거였다.
“아. 그런 거였군요. 제가 어떻게 자리를 한 번 마련해 볼까요?”
“네가? 태후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가능하겠어?”
서예주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제가 해 볼게요.”
철각패도는 서예주의 얼굴을 응시했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려는 표정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철각패도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자리를 만들 수..”
“정말 괜찮다. 그것보다 상단의 일은 잘 되고 있고?”
“예. 이번에 남로무사단이 토벌대에 참가한 것 때문에 일이 잘 풀렸어요.”
황실에서 원보 상단에 여러 혜택을 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 당주님하고 하는 일이니까 잘 될 줄 알았어요. 전부터 그랬거든요. 하 당주님이 하는 일은 다 잘 풀리는 것 같더라구요.”
철각패도는 살짝 쑥스러웠지만, 얼굴 가죽이 워낙 두꺼워서 표시는 나지 않았다.
“크흠.. 그러면 나는 가봐야겠군. 다음에 또 들리지.”
***
“뭐라? 그게 정말인가?”
무공대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하지만 너무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확실히 보았나? 하 당주가 골목으로 들어간 후에 철각패도가 나오는 것을?”
“확실합니다. 골목 맞은 편에 있던 저희 쪽 사람이 직접 봤습니다.”
우연한 목격이었다. 정보원이 창 밖을 보다가 우연히 진혁을 보게 되어 몰래 살폈다고 했다. 그런데 진혁이 골목으로 들어간 후 철각패도가 그 골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가보았는데 거기는 막힌 골목이었답니다. 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게 확실한가?”
“제가 직접 가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벽만 있고 문은 전혀 없었습니다.”
무공대사는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문이 없다고 해도 확신할 수는 없지. 담을 넘어서 움직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무림인들이야 휙휙 날아다니니 담이나 벽이 문제 될 건 없다. 평소에도 집을 넘어서 다니는 자들도 많으니까.
“그렇지만 도검당주가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지. 평소 그가 하는 행동을 봐서도 그렇고..”
길이 없는 곳이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길이 있는데도 굳이 골목으로 들어가서 담을 넘어서 이동한다?
철각패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원체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파 놈이니까. 하지만 바른 행실로 유명한 도검당주가?
“확실히 뭔가 이상하군.”
무공대사는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가설이 떠올랐다.
“자네 말이야. 혹시 몸을 바꾸는 무공을 들어봤나?”
“몸을 말입니까? 글쎄요? 축골공이라면 들어는 봤지만..”
축골공은 몸을 줄어들게 하는 무공이다. 얼굴을 바꾸는 무공도 있다는 말은 무성했다.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혹시 말이야. 철각패도와 하 당주가 한 사람이라면..”
“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무공대사의 말에 심복이 오히려 더 놀랐다. 상식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대사는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둘이 연관이 있어. 말투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무공대사는 갑자기 종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더니 역시나 무언가 이상하다고 했다.
“둘이 활동하는 장소가 상당히 겹쳐. 게다가 동시에 나타난 적도 없는 것 같단 말이야..”
무공대사는 처음에는 철각패도에 관해서도 조사를 했다. 엄청난 수모를 당해서 그걸 되갚아 주기 위해서.
게다가 사혈련의 대장로가 되더니 점점 무림맹을 압박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조사를 했다. 그러다가 진혁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게 되었다.
철각패도와 고향이 같다는 의심도 들었고, 도검당주로 거론이 되기도 했으니까.
“이것 보라고. 둘이 나타난 시기도 비슷해. 그리고 움직인 경로도 거의 흡사하단 말이야. 이게 우연히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한두 번이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 된다면 우연일 수 없다.
“하지만 사주에 다녀와서는 행보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들이 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한 명은 돈황에서 활동했고, 다른 한 명은 호북이나 하남에 있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무공대사도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문제야. 그것만 아니라면 거의 확실한데..”
무공대사는 혹시 술법을 사용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했다.
“바위가 무너지는 속에서도 살아남았지. 그 정도 술법을 사용할 줄 안다면 축지의 술법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술법 말입니까? 하기야 술법에 능통하다고 하면..”
“그래. 술법 말일세.. 축지의 술법. 변신의 술법.”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어쩐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둘이 같이 나타난 건 딱 한 번이야. 하지만 그것도 둘을 한 자리에서 본 건 아니지. 철각패도가 있는 방에 하 당주가 들어간 거니까.”
소리만 들렸을 뿐, 둘이 있는 걸 직접 본 사람은 없다. 나올 때도 철각패도가 먼저 나왔고, 나중에 진혁이 나왔다.
“가만.. 이게 뭐지?”
무공대사는 자료를 살피다가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두 사람 모두 팔찌를 하고 있어. 오른손목에. 그런데 그 팔찌가 비슷하단 말이지.”
“그렇네요. 정말 비슷한 재질에 색만 조금 다르군요.”
무공대사는 분명히 무언가 있다고 말했다.
“이 팔찌가 만약 법보라면?”
신기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인 법보. 보패라고도 하는데, 서유기나 봉신연의 같은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게다가 좀 이상한 말도 있었지.. 화산의 문승강이란 제자가 한 말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진혁이 원래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말.
“만약 문승강이 그런 비밀을 알고 있었다면..”
무공대사는 음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사람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진실처럼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러니 둘이 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런 의심만 하게끔 하거나, 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정도만 퍼트려도 된다.
사혈련의 대장로와 친분이 두터운 자가 무림맹의 도검당주 자리에 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만약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이면 더욱 좋고. 무공대사의 눈빛이 야릇해졌다.
“원래 흰 옷은 더러워지기 쉬운 법이지. 앞으로 볼만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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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내일 오전이나 점심때쯤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