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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에서 생긴 일.
도검당 무인들은 무척이나 침울한 분위기였다. 도검당주인 진혁은 그들에게는 우상이자 기둥 같은 존재였다.
자신들처럼 명문 출신이 아니어도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 그런 존재가 죽었다. 그 절망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망감이 점점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진혁이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딱 좋군. 지금 돌아가는 게 가장 극적이겠어.’
진혁은 적당한 위치를 고르고 다시 살아났다. 팔찌의 숫자가 하나 줄었지만, 그거야 이제는 의미 없다.
하지만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거저거 좀 준비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여기저기 좀 상처도 내고..”
귀찮고 아픈 일이었지만, 돌 속에 깔리는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
게다가 큰 상처를 가지고 돌아가는 편이 훨씬 감동이 크다. 진혁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어? 저기...”
진혁은 비틀거리면서 걸어갔고 보초가 진혁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당주님이다! 당주님이야!!”
보초의 소리를 듣고는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보았다. 천천히 비틀거리면서 걸어오는 초췌한 모습의 진혁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죽었던 사람이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믿어지지 않았던 거다.
그러나 진혁이 맞는다는 걸 확인하고는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희망이 다시 살아났다. 자신들의 영웅이 죽음을 떨치고 돌아온 거다.
“당주님!!”
“대사형!!!”
도검당의 각주와 현천문 사람들이 뛰쳐나갔다. 그들은 엉망이 된 진혁을 부둥켜안았다. 그저 팔과 해진 옷가지를 꽉 쥐었을 뿐 말을 하지는 못했다.
감정이 복받쳐 말이 나오지 않았던 거다. 진혁도 말을 하지 못했다.
‘아프다. 이놈들아. 빨리 가서 치료부터 해줘야지.’
진혁은 그들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들은 결사적으로 달라붙었다. 이제 다시는 진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술법이라고?”
“사부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진혁은 적당히 둘러댔다. 몸을 단단하게 하고 땅속을 움직이는 술법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의문보다는 진혁이 살아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만 여겼다.
“치료를 해야 하니 이곳에서 나가는 편이 좋지 않겠소?”
“맞소이다. 내가 보기에도 보통 다친 게 아닌 듯 한데..”
교두와 손경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만 쉬면 괜찮아 질 겁니다. 그리고 제가 빠지면 이런 일을 한 자들에게 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혁은 괴물을 토벌하는 걸 방해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이런 일을 꾸민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히 폭약을 터트린 겁니다. 제가 확실하게 보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조사를 하고는 있는데, 딱히 증거를 찾을 수가 없는 터라..”
다 무너져서 폭약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돌무더기를 전부 들어내면서 조사하면 뭔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무너진 협곡을 다 조사한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증거를 찾을지도 의문이다.
“이곳으로 폭약을 반입한 자나 그것과 관련된 조사를 하면 무언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진혁이 철각패도로 몸을 바꾸고서 조사를 시킨 것도 그거였다. 최근에는 폭약 사용이 예전보다는 자유로웠다. 괴물을 상대할 때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아무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라에서 관리하고 기록을 남기도록 했다. 그러니 그 점을 잘 활용하면 무언가 건질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진혁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안다. 그러니 증거를 찾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감히 괴물을 토벌하던 금군을 상대로 말이야.”
“이건 반역이나 마찬가지요. 잡히면 대역죄로 물어야 합니다.”
만약 트윈헤드 오우거가 함정에 빠지고 병력이 모두 협곡에 들어온 다음에 터졌으면? 그럼 금군도 몰살했을 거다.
“맞습니다. 이건 황실에 알리고 반드시 주모자를 색출해야 합니다.”
진혁은 일부러 상황을 몰아갔다. 이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어야 한다. 괴물을 토벌하려는 황실의 토벌대를 공격한 것이어야 했다.
‘그래야 멸문시킬 수 있으니까.’
철각패도가 찾아가서 쑥대밭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굳이 그럴 게 뭐 있나. 황실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하면 되지.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익은 많이 챙길 생각이었지만, 황실이 움직여서 소림과 무당을 지우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이 알려지자 현허진인과 무공대사는 화들짝 놀랐다.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의 사문이 끝장날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그들은 꼬리를 잘라버리고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토벌대는 재정비를 하고 화산 일대의 괴물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황실에서 지원군을 보냈다.
황실에서는 이번 폭발을 심각한 것으로 보았다. 황실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것으로 판단한 거였다.
그래서 이 기회에 아예 화산 일대를 평정할 생각으로 대규모 토벌대를 꾸려서 보냈다. 덕분에 화산 일대에 있는 괴물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군요.”
금군 교두는 무척이나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중심부에 있는 가장 커다란 무리들을 제외하고는 화산 일대가 평정되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걸 완수한다면 정말 엄청난 업적이 된다.
“도검당주와 무사들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 사실을 황제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니 큰 상이 있을 겁니다.”
교두와 손경백은 다음번에도 함께 괴물을 토벌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거대 괴물은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롭습니다. 당주님 같은 고수가 없으면 잡을 수가 없어요.”
교두는 은근히 황실을 위해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제의 신임을 얻고 있으니 높은 벼슬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사람은 각기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황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하지만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가서 돕겠다고 말했다. 황실에 필요한 게 있으니 좋은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해가 된다. 이번 공로로 적당한 상이나 받으면 그만이고, 팔찌나 얻을 수 있으면 되는 거다.
‘그나저나 서예주가 팔찌의 관한 정보를 빨리 확인해야 할 건데..’
진혁은 가능하면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더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 당주. 준비 끝났네.”
목세강이 다가와서는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드디어 마지막 전투.
자잘한 놈들은 다른 병력들이 알아서 할 거다. 도검당과 금군 토벌대는 대형 몬스터 위주로 상대를 할 것이고.
‘오우거가 다섯 마리에 트윈헤드 오우거가 한 마리라.’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다. 오우거 다섯 마리를 처치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미 계획은 다 짜 놓았다. 한 마리씩 처치하는 것으로. 서로 뭉치지만 못하게 하면 된다.
“가시지요. 정말 끝을 보러!”
장엄한 전투였다. 피비린내가 화산 부근을 가득 메웠다. 녹색 피가 강처럼 흘렀고, 괴물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유일하게 남은 건 트윈헤드 오우거 한 마리. 하지만 그놈도 이미 반쯤은 저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오른쪽 팔은 들지도 못했다. 진혁의 검이 놈의 팔 근육을 갈라놓았기 때문이었다.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 하나도 깨져 있었고, 남은 머리도 눈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다.
“처리하시죠.”
진혁은 마지막을 목세강에게 양보했다. 사부의 복수를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이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그가 가장 적격이었다.
돌에 깔려 죽은 트윈헤드 오우거야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없으니, 남은 놈의 마지막을 맡긴 거였다.
진혁은 조금 물러섰고 목세강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목세강과 트윈헤드 오우거의 마지막 대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진혁만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거대한 포탈이 꿈틀거리고 있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저게 보이지 않는 건가?’
아무도 포탈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포탈은 투명한 막 같은 것에 가려져 있었다. 위치는 산의 중턱이었다.
투명한 막 안에 무척이나 짙은 청색의 커다란 타원. 하지만 이상한 점은 사람이나 물건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거였다.
보이지도 않고 물리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으니 아무도 모를 수밖에.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보였다.
‘현천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니.. 그럼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고, 없앨 수도 없었다.
‘지금 모든 괴물을 다 처치했다고 해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어. 이건 완전하게 토벌을 한 게 아니야.’
분명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혁은 에전 기록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천문, 제갈세가, 그리고 드워프를 닮은 대장장이.
그들을 보면 분명히 이전에도 괴물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괴물을 완전하게 없앴다.
‘그걸 해결할 수 있으면 정말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 그러면 바로 집에 가는 거지.’
지금도 포인트가 잘 들어오고는 있다. 철각패도가 서쪽 지역에서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매일매일 엄청난 포인트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와도 팔찌가 차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적어도 일이 년은 더 걸려야 포인트를 다 모을 것 같았다.
‘일단은 소림과 무당 쪽을 처리하면서 이것과 관련된 자료도 좀 찾아봐야겠어.’
진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세강이 트윈헤드 오우거의 머리에 검을 꽂고 있었다.
목세강의 손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감정이 격해진 듯 얼굴이 상기되었다. 눈시울이 한껏 붉어진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끝이군..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목세강이 검을 뽑자 거대한 몸뚱이의 괴물이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먼지가 사방에 퍼졌다.
그렇게 화산 토벌은 마무리 되었다. 수많은 괴물과 병사의 시체를 남긴 채.
***
“그러니까 폭약이 놈들에게 전해진 증거가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폭약이야 관에서 관리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이다. 폭약 같은 걸 민간에서 마구 사용하도록 하면 큰일 난다. 그걸 가지고 폭도가 되면 그걸 어떻게 막겠나.
그러니 폭약은 나라에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벽력문 같은 폭약을 쓰는 문파? 있을 수도 없다.
혹시 모른다. 천하가 어지러워서 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그런 난세라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어떤 식으로든 기록에 남게 되어 있다.
“수고했다. 그러면 이제는 정말 빠져나가지 못하겠군.”
문제는 꼬리 자르기다. 아랫선에서 잘라버리고 몸통까지는 피해가 오지 않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걸 잘 엮어야 한다. 그래야 한 방에 보낼 수가 있다. 특히나 소림이나 무당 같은 큰 문파를 상대할 때는 그 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원래 있던 곳에서도 거물이나 대기업을 상대 할 때는 꼼짝도 못 할 증거를 잡아야 하지 않나. 그게 아니면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일단은 연결고리 관련된 증거를 더 확보하고, 확보 되면 그자들을 잡아 놓아 놔라.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철각패도는 그렇게 명하고는 다시 몸을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지부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
“최근에 대장로님 뒤를 캐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내 뒤를?”
“예. 그렇습니다.”
철각패도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이 정도 세력을 일구고 유명해졌으니 뒤를 캐려는 자가 좀 있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두는 것도 좋지 않으니 적당히 경고를 하라고 했다. 물론 자신의 손에 잡히는 놈은 상당한 고난을 겪을 거다.
‘그럼 주변에 어떤 놈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볼까?’
철각패도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