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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에서 생긴 일.
진혁은 죽었다.
‘꽤 오랜만이네. 죽은 상태가 된 거..’
도검당과 금군 사람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울부짖고 있는 건 목세강과 현천문 사람들뿐.
진혁은 일단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살아나는 거야 언제든 가능하다. 그것보다는 영혼 상태로 움직여서 여러 정보를 모으는 편이 더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진혁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게 어떤 놈들인지 확인을 할 생각이었다.
‘어떤 새끼들인지 찾아내서 영혼까지 탈탈 털어주마.’
진혁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는 허공에서 무언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가 없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의심이 가는 자가 몇 보였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자.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던 거였다.
진혁은 그자들의 얼굴과 어디 소속인지를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 사이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폭약을 쓴 거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단 말이오.”
온위립이 흥분해서는 흉수를 찾아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진혁도 온위립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평소 흥분을 한 적이 있기는 해도 지금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 다른 현천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눈에서 불을 내뿜을 것처럼 부릅뜨고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를 해서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밝혀내겠소.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할 거외다.”
금군의 교두와 손경백도 크게 분노해서 숨을 거칠게 쉬었다.
“혹시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 수색도 해야 합니다.”
목세강은 진혁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말했다. 현천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면서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교두와 손경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해는 한다. 그들도 진혁이 살아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진혁이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닙니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사주에서 장안으로 돌아올 때였는데..”
왕칠이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살아난 적이 있다면서. 남로무사단 무인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가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진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자 수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목세강은 혐천문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기문둔갑 같은 술법의 일종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저도 분명히 봤습니다. 이번에도 살아 있을 겁니다.”
왕칠은 온위립에게 그런 술법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현천문에는 그런 술법이 없지만..”
현천문에는 술법이 없다. 그 말에 목세강을 비롯한 남로무사단의 무인들은 놀랐다. 진혁이 살아난 것이 현천문의 비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현천문의 술법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사형에게서 배운 것일 거외다. 사형은 여러 방면에 능통했으니..”
온위립은 원덕강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형인 원덕강은 진정한 천재였다. 모든 분야에서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현천문의 무공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술법도 그러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라 생각을 한 거였다.
‘뭐 대충 넘어갈 수 있겠네.. 살아나면 원덕강에게서 배운 비기라고 해야겠어.’
진혁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낮에 봐두었던 수상한 놈들이 있는 곳이었다.
놈들이 있는 곳을 유심히 살피고 있자 아니나 다를까 움직임이 있었다. 놈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은 성공적인 것 같소. 이 정도면 대라신선이라고 하더라도 살아나지 못하지.”
“그럴 거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겠소. 그러면 각자 알리도록 합시다.”
이후로도 이야기를 좀 나누기는 했지만, 놈들은 오래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
일단은 두 무리가 연합해서 일을 꾸몄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니 놈들이 누구를 통해서 어디로 연락을 하는지 알아내면 된다.
진혁은 일단 몸을 바꾸었다.
***
“그러니까 지금 이야기한 자들에 관해서 속속들이 조사를 하라는 말씀이군요.”
흑수 갈맹의 말에 철각패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샅샅이.”
“알겠습니다. 인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철저하게 알아오겠습니다.”
철각패도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따르라는 사혈련주의 명이 있었다. 그가 하는 일에 협조를 하면 무조건 사혈련에 이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조금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철각패도를 사혈련에 잡아놓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철각패도는 사혈련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사혈련주보다도 철각패도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가 없는 사혈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시키실 일은 없으신지..”
“일단은 알아오는 것에만 신경을 써. 놈들은 무당, 소림하고 연관이 되어있는데, 그 증거를 확실하게 잡아 놓으라고.”
흑수 갈맹의 눈빛이 번득였다.
‘드디어 대장로님이 무림맹의 주축 세력을 공격하는구나.’
소림과 무당이라면 무림맹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두 계파를 이끄는 초거대 문파이자 권력의 핵심.
그런 소림과 무당에 관한 증거를 모은다? 철각패도의 성격을 아는 흑수 갈맹은 그가 두 곳을 동시에 치려 한다고 생각했다.
철각패도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일.
“과연 대장로님이십니다. 그 두 곳을 도모하시려는 거군요.”
“어차피 가만히 둘 수 없는 곳이다. 기회를 잡으면 제대로 주물러 줘야지.”
철각패도의 말에 흑수 갈맹은 살이 떨려옴을 느꼈다. 단어만 보면 무섭다고 느낄 만한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 한기가 몸을 타고 들어왔다.
철각패도가 정말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림과 무당이 이번에는 정말 큰 일을 치르겠구나. 그렇게 되면 사혈련의 위세는 더욱 커지겠지.’
흑수 갈맹의 입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위선자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럼 나는 수련을 할 테니 방해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사를 하는 대로 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흑수 갈맹은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철각패도가 최근에 무슨 수련을 그리 열심히 하는지 궁금했다.
“시간만 나면 수련을 하신다고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던가? 새로운 무공을 익히시는 것 같던데..”
철각패도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전부 사혈련의 관심사다. 그런데 최근에 부쩍 수련에 힘쓴다는 정보가 있???다.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보일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는 거였다. 그것도 새로운 무공을 연마하고 있다는 듯한 말을 했단다.
“대단하신 분이야. 아직도 그리 무공에 빠져 계시다니.. 하긴 그러니 지금과 같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었겠지..”
흑수 갈맹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는 그동안 받은 정보를 살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천 지방의 소식이었다.
사천 지방에서 사혈련의 세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사혈련에서 무언가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철각패도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 비슷한 것이 퍼지는 바람에 그리 된 거였다.
“하기야 다들 먹고 살기 힘든 때지. 괴물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그런 상황이니 자신을 보호해 줄 강력한 존재가 절실했다. 그리고 철각패도는 그런 점에서 아주 적함한 인물이었고.
무시무시한 무공을 가진 강력한 무인이었지만, 그건 기득권 세력에게만 해당하는 거였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사혈련의 대장로를 신처럼 떠받든다니. 그건 지금 세상이 얼마나 썩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희망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삶. 그저 강한 놈들에게 빼앗기고 무기력하게 당하는 게 백성들의 일상이다.
“어쨌든 사혈련으로서야 나쁠 것 없지.”
흑수 갈맹은 서류를 뒤적이다 갑자기 눈을 찌푸렸다. 사혈련의 무사들이 약탈을 했다는 내용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허. 이놈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는데도..”
사혈련은 철각패도의 영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야 약탈보다 더한 짓도 많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런 행동이 금기시 되었다.
오히려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있으면 가혹한 징벌을 내렸다. 철각패도가 알았다가는 난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약탈은 배부른 놈들 걸 터는 것만 용인되었다. 흑수 갈맹은 철각패도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기 전에 빨리 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바뀐 걸 모르는 놈들은 죽어야지.”
흑수 갈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놈들은 처단하기 위해서였다.
“흐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
철각패도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철각패도의 몸은 진법 관련된 것에 다소 서툴렀다. 지식은 같아도 육체가 다르고 재능이나 여러 면이 달라서 벌어지는 상황.
처음에는 무척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진혁의 몸으로 잘 되지 않는 걸 철각패도의 몸으로 하면?
그래서 지금의 무공을 철각패도의 몸으로 익혔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지만, 성과가 확실하게 있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슬슬 살아나 볼까.”
조사도 지시했고, 정리할 것도 다 했다. 그리고 너무 오래 죽은 상태로 있으면 곤란하다. 이제 사흘째이니 슬슬 살아나 주면 딱 좋을 시기.
그런데 철각패도가 진혁의 영혼 상태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저기.. 들려요?
뭔가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자? 안테나가 없는 데도 연락이 되네?”
귀여운 녀석이 안테나 역할을 했다. 그게 없으면 연락이 안 된다고 했고. 그런데 지금은 그냥 이야기가 잘 들렸다.
- 아이. 몇 가지 고친 게 있는데 적용이 제대로 된 건지 모르겠네..
관리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갑자기 눈앞에 몇 가지 글자들이 주르륵 보였다.
“어라? 이게 뭐야? 이런 게 원래 보였어야 하는 거야?”
철각패도는 눈앞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글자를 응시했다. 거기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여러 개가 보였는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가장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러니까 돌아갈 때 원하는 거 한 가지를 골라서 가지고 갈 수가 있어?”
이건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저절로 대박 소리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만 갈 수 있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있는 건 당연히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가만. 그런데 뭘 가져갈 수 있다는 거지? 능력? 아이템?”
철각패도는 아공간을 가지고 갈 수 있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엄청난 금은보화를 가지고 갈 수 있으니까.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무공을 가지고 갈 수 있어도 괜찮다. 아니. 여기서 얻은 거 아무거나 가지고 가도 정말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 들리죠? 들려요? 아이. 이거 확인이 안 되네..
관리자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이거 착오가 생겨서 능력이 너무 많이 갔는데..
능력이 너무 많이? 이거저거 많기는 했다. 목숨도 여러 개고 몸뚱아리도 두 개고. 그런데 그게 문제가 생기면서 한꺼번에 부여가 된 모양이다.
- 이거 원래 가야 하는 거 빼고 나머지는 회수를 해야 하는데..
- 어? 그게 무슨.. 허억..
의도한 건 아니었다. 철각패도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소리로 들렸다.
- 아.. 저기 들리시죠?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어떻게 하지? 이대로 갔다가는 관리자가 와서 내 능력을 가져가는 거 아냐? 그럴 수는 없었다. 일단은 관리자를 피하고 봐야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방법을 생각하던 철각패도는 머릿속으로 집중해서 생각하면 그게 들린다는 걸 떠올렸다.
- 치이.. 저기 잘.. 말이 안 들려.. 치이이익.. 무슨.. 치이이..
철각패도는 머릿속으로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상황을 꾸미고는 곧바로 몸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