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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에서 생긴 일.
“이거 우리 생각하고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 것 아닙니까?”
무공대사는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한 듯 말투가 사나웠다. 하지만 현허진인도 날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도검당주인 진혁이 죽거나 토벌에 실패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일반 무사들이 들썩이는 걸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으니까.
일반 무사들은 대부분 경지는 높지 않지만, 그 수가 많다. 명문 정파라고 불리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인원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다.
그런 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권위가 필요하다. 그런데 진혁이 그걸 흔들어 놓았다.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말씀을 하시지요.”
무공대사와 현허진인. 둘 다 서로를 알고 있다. 쉽게 포기할 사람도 아니고 그냥 당할 사람도 아니다.
저번 무림 맹주 자리를 두고 둘은 피 튀기게 싸웠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대사도 준비한 게 있을 것 아닙니까. 상황이 이러니 서로 힘을 합치는 게 어떻소이까?”
“일단은 도검당주 자리를 찾아오는 게 우선이겠지요.”
둘은 서로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공유했다. 예상대로 둘 다 자신의 수족을 안에 심어놓았다.
“이 정도면 수는 충분한 것 같군요.”
“문제는 방법이에요. 어떻게 해야 놈을 제거할 수 있을지.. 게다가 금군까지 함께 있으니..”
진혁이나 도검당 무사들에게만 타격이 가야 한다. 황제가 아끼는 금군 토벌대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소림이나 무당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진인께서 움직이신 걸 보면 무슨 복안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연화봉으로 향하라는 명이 떨어진 것은 현허진인이 움직여서 그리된 거였다. 무공대사는 사진의 줄을 통해서 그 정보를 입수했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그러긴 했는데..”
일단 위험한 곳으로 몰아야 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그들의 전과만 더욱 빛이 날 테니까. 그래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으로 가도록 했다.
만약 거기에 교충, 그러니까 트윈헤드 오우거가 없으면? 그러면 그걸 잡아서 바치라고 하면 된다.
“마침 손이 좀 필요했는데 잘 되었군요. 대사의 사람을 통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소이다.”
“그렇습니까? 어떤 방법인지 좀 듣고 싶군요. 진인.”
현허진인은 진혁이 교충을 어떻게 상대할지 예측을 해보았다고 했다. 그동안 거대 괴물을 상대한 방법을 바탕으로.
“좁은 곳으로 유인한 다음 처리를 할 것 같더군요.”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한 마리라면 모르겠지만, 주변에 숱한 괴물들과 같이 싸우는 건 피해야겠지요.”
트윈헤드 오우거를 따로 떨어뜨려 놓아야 상대하기가 쉽다. 그러려면 좁은 협곡 같은 곳으로 유인할 거다.
거기에 함정을 파 놓고, 놈을 유인한다. 놈이 들어오면 뒤를 막아 다른 괴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런 다음 홀로 떨어진 트윈헤드 오우거를 잡는다. 이게 기본 전력이 될 것이라는 거였다. 무공대사도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 것을 보니 하 당주와 고수 몇 명이 번갈아 가면서 기운을 빼는 작전을 사용하더군요.”
“그래서 그 시점을 노린다?”
현허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 당주와 도검당의 고수가 주력이 될 거 아닙니까. 금군은 따로 떨어져 있고. 그러니 그 때를 노리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하 당주와 거기 고수들의 무공을 상대할 자라도 있답니까?”
“굳이 무공으로 상대할 게 뭐가 있습니까?”
현허진인은 협곡을 아예 무너뜨리면 된다고 말했다.
“함정을 파고 준비하는 동안 그곳에 폭약을 설치하는 거외다. 그런 다음 적당한 시기를 봐서 터트리면..”
좁은 협곡이다. 양쪽에서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할 거다.
“좋은 작전이군요. 뭘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폭약을 조금 가지고 가기는 했지만, 모자랄 듯싶어서요. 그리고 손도 많으면 일하기가 좋을 테고 말입니다.”
무공대사는 흔쾌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정도 수고를 들여서 골칫덩어리인 도검당주를 제거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일반 무사들이 힘을 갖게 되는 건 모두가 막아야 할 일이다. 기득권 세력인 자신들 전체의 위기니까.
그러니 일단은 그것부터 해결하고 무림맹주 자리는 차후에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건 자신들이 계속 권력을 쥐고 있는 거다.
권력이 자신들 사이에서만 오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번에는 자신이 권력을 쥘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일반 무사들이나 다른 세력이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는 건 자신들의 몰락을 위미한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러면 어떻게 진행할지 맞춰봅시다. 안에 있는 자들에게 연락도 넣고.”
***
진혁은 연화봉 근처에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다. 양쪽으로 깎아지는 듯한 벼랑이 있는 좁은 장소를 발견하고는 거기에다 준비를 했다. 트윈헤드 오우거를 잡을 준비를.
“하 당주. 이번에는 잡을 수 있겠지?”
“그동안 상대해 보셨잖아요. 이번에는 가능할 겁니다.”
진혁의 말에 목세강이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하고 싶었다. 사부의 원수인 놈의 목 두 개를 자신의 검으로 날려버리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래도 제법 근접했을 줄 알았는데..”
허탈함이 묻어나는 목세강의 음성. 정말 죽도록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싸워보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놈은 무지막지했다. 초절정 고수의 경지에 발을 살짝 들인 자신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나저나 자네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야. 자네 경지가..”
목세강은 어렴풋이 느꼈다. 진혁의 경지가 자신보다도 위임을. 아마도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진혁은 일부러 힘겨운 척했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기도 하면서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초절정에 발을 들인 후라서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목세강은 그럴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야 놈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잠시.
“나이도 어린 제가 그런 경지에 올랐을 리가 있겠습니까.”
진혁도 대충 어떤 말인지 안다. 그래도 일단은 부정했다. 그 말에 목세강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진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사람마다 모두 사정이 있는 거지.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진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보면서 화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저놈이 이쪽으로 와야 할 텐데요..”
트윈헤드 오우거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약았다. 유인하는 기색이 있으면 따라오지를 않았다.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야지.”
목세강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준비가 끝났다.
“크워어어어어!!!”
트윈헤드 오우거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가죽을 베고 들어온 검이 살을 헤집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로 배어 나오는 녹색 핏물.
- 콰앙!!
거대한 나무가 땅바닥을 쳤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분노에 찬 공격. 하지만 진혁은 이미 그 자리를 빠져나간 후였다.
놈은 진혁이 도망간 쪽으로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진혁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지금까지 싸우면서 상처를 한 번도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많이 다친 적은 없었다.
적당히 싸우다가 늘 먼저 도망치는 건 인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작정을 한 듯 덤벼들었다.
몸 여기저기가 녹색으로 물들었다. 트윈헤드 오우거는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놈이 뛰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어서 준비해!”
한천위가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괴성에 사람들이 얼어붙었기 때문이었다.
오우거 피어. 강대한 포식자의 울부짖음에 사람들은 혼백이 얼어붙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한천위가 내공을 실어 소리쳤음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이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트윈헤드 오우거가 분노했다는 뜻. 그렇게 놈을 유인하는 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목세강과 손경백이 공격을 했고, 온위립도 거들었다.
놈의 몸에 난 상처는 점점 더 많아졌다. 하지만 놈의 분노는 갈수록 진해졌고, 딱히 지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무시무시하군. 저렇게 상처가 많은 데도..”
놈을 원수처럼 여기는 목세강마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미 놈은 협곡의 초입에 들어섰다. 다른 괴물들은 이미 뒤쪽에서 무사들에 의해 차단당했고.
이제 조금만 더 끌어들이면 놈을 잡을 수 있다. 목세강은 반드시 놈의 목은 자신이 자르겠다고 다짐하면서 트윈해드 오우거를 따라 움직였다.
“크워워억!!”
- 콰아앙!!
트윈헤드 오우거는 괴성을 내지르며 손에 든 나무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바닥과 벼랑에 움푹움푹 자국이 생겼고, 돌덩어리가 사방에 날아다녔다.
진혁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놈을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집중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함정이 나오고 거기가 트윈헤드 오우거의 무덤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놈이 협곡의 거의 중간 정도에 왔을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폭음이 들였다.
- 퍼어어어엉!!!
- 콰아아아아앙!!
양쪽 벼랑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더니 돌무더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야?”
진혁은 깜짝 놀랐다. 양쪽 끝에서부터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누군가가 폭약을 설치하고 터트린 게 분명했다.
협곡 안에는 진혁과 트윈헤드 오우거, 목세강과 현천문의 사람들만 있었다. 나머지는 협곡 근처에 숨어 있었다.
놈이 함정에 빠지고 나면 곧바로 달려오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진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트윈헤드 오우거도 당황한 듯 두 개의 머리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떤 미친 놈이..’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본신의 실력을 드러내면 잘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호신강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속도와 집중력을 최대로 한다면, 그게 아니면 그냥 몸을 바꾸어도 된다.
하지만 자신의 앞쪽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목세강, 온위립, 호승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온미령과 나머지 두 사제도.
‘썩을..’
고민할 새도 없었다. 진혁은 모든 기운을 끌어모았다. 진혁의 검이 엄청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입구 쪽으로 달려!!”
진혁의 목소리가 폭음과 벼랑이 무너지는 사이를 비집고 사람들의 귓가를 때렸다. 그 음성을 듣자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 샤아아아아아악
진혁이 검을 뻗자 갑자기 주변의 소움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검에서 엄청난 빛이 앞을 향해서 곧게 뻗어 나갔다.
그 빛은 떨어지는 바위를 지우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 빛에 닿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사라졌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도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혁의 앞쪽으로 길다란 빛의 지붕이 생긴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 옆으로는 돌과 흙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빛이 지나간 곳 아래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진혁은 사람들이 빨리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모두 빠져나가기만 하면 바로 몸을 바꾸면 되니까. 하지만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커다란 바위가 머리를 강타한 거였다.
‘쓰벌.. 이렇게 또 한 번 죽는..’
진혁은 그렇게 쓰러졌고, 빛의 지붕은 사라졌다. 금군과 도검당 무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들이 듣고 본 것은 협곡이 무너지는 굉음. 그리고 엄청난 먼지와 돌덩어리뿐이었다. 그리고 무너짐이 멈추었을 때, 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애타게 울부짖고 있는 목세강과 현천문 사람들의 소리를.
“하 당주!! 제발!! 제발!!!”
“대사형! 대답해!! 대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