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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에서 생긴 일.
손경백은 진혁과 현천문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였다.
두정풍 장군의 치료를 위해 융중산까지 오가는 동안 정말 질리도록 실력을 확인했다. 그러니 존중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하지만 금군 토벌대는 아니었다.
그냥 금군도 아니다. 금군 중에서도 고수들을 끌어모아서 만든 부대 아닌가. 당연히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제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에 따라주시지요.”
지휘관인 금군 교두가 한 말이었다. 말은 정중하게 했지만, 무척이나 아니꼽다는 표정을 한 채로. 일개 무림인에게 이렇게 정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느냐. 뭐 그런 기색이었다.
만약 황실에서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말조차 꺼내지 않았을 거다. 그냥 명령을 내리고 말지.
“들으셨겠지만, 기존의 괴물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일단 한 번 보시고 나서 결정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진혁은 일단 확인을 하고 어찌할지 의논하자고 했다. 하지만 교두는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도 토벌 경험은 충분합니다.”
교두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괴물과는 숱하게 싸워봤고, 금군의 정예들이 모인 자신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진혁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말로 설득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결론은 변하지 않을 거다.
“여기 지난 전투의 기록을 보시면..”
진혁은 말을 하려는 제갈벽린을 막았다. 어차피 괴물과 직접 싸워봐야 상황을 실감할 거다. 그러니 지금 말로 싸우면서 힘을 뺄 필요가 없다.
‘그래. 고생 한번 해 봐라.’
진혁은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투만 한 번 하고 나면 현실을 깨닫게 될 테니까.
진혁의 생각이 옳았다. 교두는 전투가 시작되자 곧바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괴물이 아니었다. 그가 봐왔던 괴물은 단순했다. 전투 방식이 워낙 단순해서 그걸 잘 이용하면 손쉽게 상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교두의 눈앞에 있는 괴물들은 차원이 달랐다. 괴물들이 전략적으로 움직였고, 금군은 거기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상황이 위급합니다. 어서 명령을..”
부관 역시 당황한 표정. 하지만 교두는 무어라 지시를 내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전황은 무척 좋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고, 금군의 진형은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그나마 금군의 실력 자체가 워낙 뛰어나서 버티고 있는 거지 아니었다면 이미 궤멸했을 거다.
‘예전에 알던 괴물이 아니라니까.’
진혁은 슬쩍 금군 쪽을 쳐다보며 그리 생각했다. 역시나 고전을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피해가 적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두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거다.
‘잘 버티는 것 같으니 조금만 있다가 구하러 가야겠군.’
아슬아슬할 때 구해줘야 한다.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 구해줘야 고마운 걸 안다. 그래야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도 뉘우칠 테고.
진혁은 괴물과 싸우면서도 금군의 상황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리고 정말 더 두었다가는 위험해지겠다 싶었을 때, 움직였다.
“예비대는 금군을 구원해라!!”
도검당 토벌대 중에서 남겨둔 예비대를 먼저 움직였다. 예비대가 안정적으로 방어하자 그 주변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물을 정리한 본대까지 합류하자 전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제야 금군은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전투는 상당수의 사상자를 내고 마무리되었다. 금군으로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막심한 피해였다.
금군 교두는 자존심이 강한 자였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곧바로 진혁과 도검당의 핵심 인물들을 모셔와서는 회의를 했다.
앞으로 괴물들을 상대할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교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괴물을 상대할 방법을 물었다.
그날 이후로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어때? 이제는 좀 감을 잡은 것 같은데..”
진혁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늘 전투에서 금군이 어땠느냐는 것을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아직은 버벅대는 느낌인데요.”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허둥대는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나 주술에 당하면 주변까지 어쩔 줄을 몰라 하더군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잘 적응하는 자도 있었지만, 아직 첫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나 주술이었다. 무기를 들고 싸우다 다치는 거야 흔한 일이었지만, 주술은 듣도 보도 못한 거여서 더 그런 모양이었다.
하기야 갑자기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옆에 있던 동료가 얼어붙어 쓰러지거나 하면 당황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도검당 사람들은 갑옷을 입고 있어서 좀 나은데 금군은 그렇지 않아서..’
갑옷의 효과가 있었다. 놈들의 마법 공격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주었다. 그 조금이 큰 차이를 가져왔다.
게다가 땅딸보가 만든 갑옷과 무기는 그 효과가 더 엄청났다. 덕분에 남로무사단 사람들은 아주 날아다녔다.
+5강 정도 된 무기에 마법 저항이 있는 방어구를 입은 느낌? 진혁은 남로무사단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괴물이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금군은 그런 방어구가 없다. 그래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이대로 간다면 피해가 계속 누적될 거다. 그래서 진혁은 아예 진형을 바꾸자고 건의했다.
“자존심이 강한 자들인데 용케 받아들였군요.”
“계속 죽어 나가니 어쩔 수가 없었겠지.”
가장 선봉에 남로무사단과 현천문 사람들이 자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평소라면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을 금군이었지만,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눈앞에서 죽어 나간 동료들을 숱하게 보았다. 그러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금군의 실력이 좋으니 지금부터는 훨씬 전투가 쉬울 겁니다.”
진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이 화력 지원을 하는 것과 금군이 화력 지원을 하는 건 엄청난 차이다.
기본적으로 실력 차이가 있으니 이전보다 훨씬 전투가 손쉬울 거다. 그리고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가장 신이 난 건 제갈벽린이었다.
“고수들이 많으니 작전의 폭이 넓네요.”
그녀는 이제는 대형 몬스터가 몇 마리 섞여 있어도 상대가 가능할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진혁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미노타우르스나 오우거가 있더라도 소수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듯했다. 그 정도 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고수가 충분했으니까.
일단 진혁과 온위립, 호승렴이 가능했다. 나머지 사제들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지만, 약간 위험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 잠깐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벌어 줄 수는 있다.
남로무사단에서는 목세강이 단연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 말고도 한천위를 비롯한 고수가 두엇 더 있었다.
금군 쪽은 손경백이 가장 고수였고, 그 말고도 서너 명 정도가 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그럼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도 되겠군.”
지금까지는 일부러 외곽을 돌면서 전투했다. 정말로 대형 몬스터가 뒤섞여 나오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약한 놈들만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토벌대는 조금 깊숙한 곳으로 움직였다.
“천위 빠지고 승렴이가 붙어!”
진혁의 말이 떨어지자 한천위가 바로 물러났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던 호승렴이 묵직한 공격을 날리면서 미노타우르스에게 달려들었다.
“쿠워어어어엉!!”
미노타우르스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도검당의 고수들은 미노타우르스를 거의 농락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목세강과 몇 명의 고수들이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쪽도 잘 상대하고 있었다.
오른쪽은 온위립과 손경백, 금군의 고수들이 다른 오우거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제 세 마리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군.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라고 하면 다섯? 아니 여섯 마리가 있더라고 어떻게든 상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트윈헤드 오우거였다. 놈은 차원이 다른 몬스터였다. 이곳에서 트윈헤드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진혁은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려면 트윈헤드 오우거를 상대해야 한다.
‘나하고 문주님, 목세강하고 손경백 정도?’
한천위와 호승렴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세 명도 대가리 두 개 달린 놈과의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오우거를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노는 게 트윈헤드 오우거다.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를 생각하고 상대했다가는 순식간에 골로 갈 수 있다.
‘일단은 내가 나서서 얼마나 위험한지는 좀 보여주어야겠는데?’
진혁은 이번 전투가 끝나면 정찰을 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대형 몬스터가 포함된 무리도 빠르게 잡고 있었다. 금군과 도검당의 손발이 잘 맞아서 어지간한 몬스터 무리는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트윈헤드 오우거만 잡을 수 있으면 이 지역 일대를 평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
‘이번에는 기필코 중심부까지 가서 거기 뭐가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그러니 트윈헤드 오우거가 어디 있는지 확인을 할 생각이었다. 혹시 한 마리가 따로 떨어져 있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화산의 상황을 보아하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괴물들이 전부 무리를 이루어 있었다. 대형 몬스터도 따로 떨어져 있는 걸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트윈헤드 오우가거 있더라도 덜 위험한 무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났지만, 진혁은 정찰을 가지 못했다.
“황실에서 명이 내려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연화봉 쪽으로 진격하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교두는 전공을 자세히 적어서 황실에 올렸다고 했다. 보고를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연화봉 쪽으로 갈 생각도 있었다.
거기에 예전에 트윈헤드 오우거가 있었으니까 가서 확인을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실에서 명이 내려온 건 좀 의아했다.
“마침 잘 되었군. 나도 그쪽으로 갔으면 했는데 말일세.”
목세강이 흥분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로서야 당연한 일이었다. 사부의 원수인 놈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화산파는 그의 사문 아닌가. 사부의 복수를 하고 사문의 성지를 되찾는 것이 목세강의 평생소원이다.
“일단 정찰을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다녀오죠.”
진혁의 말에 목세강이 얼른 나섰다.
“나도 함께 가지. 혼자보다야 둘이 낫지 않겠나.”
혼자 다녀야 편하긴 하지만, 목세강 정도의 고수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게다가 그는 이 근처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도움도 될 테고.
“그러면 수고를 좀 해주시죠.”
교두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교두는 진혁과 도검당 토벌대를 존중해주었다. 함께 싸워보니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교두뿐이 아니었다. 금군 전체가 도검당 토벌대를 존중했다.
같이 싸운 전우이고 뛰어난 무인들이었다. 함께 생사의 고비를 헤쳐나가고 땀과 피가 흐르는 전장에서 뒹군 사이다.
처음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척 가까워져 있었다.
“그런 연화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은 정찰을 내보내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진혁과 목세강은 곧바로 연화봉을 향해 움직였다.
“그놈이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어. 이번에는 끝장을 보게.”
목세강은 이번에야말로 놈을 없애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놈이 거기 있다면 그렇게 될 겁니다. 이번 전력이면 화산 일대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요.”
“그렇게 되어야지. 아니. 그렇게 만들겠네.”
목세강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진혁과 목세강은 연화봉을 향해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에 그놈이 있었다. 연화봉 근처에 가자 놈이 보였다.
거대한 덩치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놈.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움직이는 놈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