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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주술에 당한 사람이 있으면 바로 후방으로 빼!”
“빈자리는 바로 채우란 말이야. 이 멍청한 놈들아!”
전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했다. 현천문과 남로무사단은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풍부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이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호승렴도 평소와는 달리 긴장한 상태였다.
“말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이런..”
진혁도 처음에는 지휘만 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에 끼어들었다. 다른 것보다 마법을 쓰는 놈들이 섞여 있어서 무척이나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처음에야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뒤섞여 오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법의 효과가 탁월했다. 제대로 돌아가는 진법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상당히 훌륭한 효과를 냈다.
“우아아아!!”
결국, 몬스터들이 물러갔고, 무사들은 무기를 치켜올린 채 소리를 질렀다.
“피해 상황은?”
“우리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하지만 저쪽은..”
진혁의 물음에 제갈벽린이 병사들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냥 봐도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었다.
도검당 쪽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무척이나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
“피해가 심했나 보지?”
“중간중간 살펴봤는데, 일방적으로 밀렸어요. 그나마 이쪽으로 오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사상자가 상당수 있겠죠.”
제갈벽린은 아직도 허둥거리는 장수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치는 꼴이라니.. 병사들이 불쌍하네요.”
“어쩔 수 없지. 이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진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벽린은 그래도 잘 대처하지 않았느냐면서 안도했지만, 진혁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가 큰일이야. 이런 정도라면 앞으로도 별문제 없겠지만, 만약 대형 괴물과 함께 온다면..”
“설마요. 알유나 그런 놈들은 작은 것들을 잡아먹는데..”
진혁의 말에 제갈벽린의 표정도 급격하게 변했다. 말로는 대형 몬스터가 먹잇감과 같이 다니겠느냐고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거였다.
사실 고블린과 오크가 같이 싸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홉 고블린까지. 그리고 전투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꼭 누가 지휘를 하고 있는 듯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건 정말 재앙이야. 그동안 커다란 놈들은 한 마리씩 상대해서 잡을 수가 있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제갈벽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형 몬스터와 중소형 몬스터가 뒤섞여서 공격해 온다면? 도검당 토벌대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전멸할 거다.
진혁도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들이 변했으니까.
***
“이게 사실이오?”
“이런 걸 거짓으로 올릴 이유는 없지 않겠소이까.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무공대사와 현허진인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본 것이 화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도 괴물이 어떠한지 잘 알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괴물이 군대처럼 움직인다면 상대하는 게 훨씬 까다롭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도 다시 따져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렇습니다. 그냥 갔다가는 우리도 낭패를 면치 못하겠어요.”
도검당 토벌대야 그나마 선방을 했지만, 같이 간 병사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을 병력은 아니었다.
원래는 먼저 보낸 도검당과 병사들이 죽거나 실패하면 곧바로 자신들이 나서려고 했다. 두궐륭 대장군의 정예 부대와 함께.
그런데 상황을 보니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하 당주는 처리하기가 쉬워졌군요.”
“그건 맞습니다. 거기서 멀쩡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우리 쪽에 불똥이 튀는 것만 조심하면 되는 건가요?”
둘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만들 궁리를 했다.
“그래도 모르니 일단 하 당주와 병력들을 계속 전진시키게 합시다. 아예 깊숙이 넣어버려서 이참에 끝장을 보는 겁니다.”
현허진인의 말에 무공대사가 흔쾌히 찬성했다.
“현천문과 제갈 세가까지 한 번에 손을 볼 수 있겠군요. 게다가 남로무사단도..”
성흥 상단의 일로 원보 상단에 유감이 많은 무공대사였다. 그런데 남로무사단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성흥 상단이 사주에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나선 거였다.
둘은 각자 맡은 사람들을 만나 도검당과 병력이 계속 전진하도록 손을 썼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전멸하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진혁이 이끄는 도검당 토벌대가 계속해서 엄청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가 맞물린 효과 덕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진혁이 전체 지휘를 맡게 되었다는 거였다.
원래 지휘를 맡았던 장수가 전투 중에 죽어버려서 자연스럽게 진혁이 전 병력을 지휘하게 된 거였다.
“이제는 진법에 좀 적응한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저는 병사들이 따라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제갈벽린이 웃으며 말했다. 병사들과 함께 진법을 펼치는 게 영 불안했는데, 몇 차례의 전투를 거치면서 정말 많이 좋아짐을 느꼈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죽게 될 상황이니까 다들 열심히 해서 그런 거겠지.”
훈련을 통해서 익혔다면 이렇게 단시간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달라붙어서 몇 번의 전투 만에 진법에 적응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도 어설펐지만, 그래도 이제는 진법이라고 부를 정도는 되었다. 그 성과가 몬스터를 격퇴하는 걸로 나타났고.
“하지만 걱정이야. 이곳의 상황을 올리는 데도 계속해서 앞으로 가라는 명령만 내려오니..”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아직은 괜찮지만..”
만약 대형 몬스터라도 한두 마리 껴 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게 뻔했다.
“그래서 말인데.. 계속 앞으로 갈 건가요? 아니면..”
제갈벽린은 말을 흐렸다. 앞으로 계속 나가는 건 죽으러 가는 꼴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명령을 어긴 것이 되고.
“일단은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겠지. 명령이 내려온 대로 진격할 수는 없으니 속도를 조금 늦추도록 하자고.”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 어려움이 많다. 이런 식으로 계속 보고를 올릴 생각이었다. 지금까지고 그래 왔고.
그것만 하면 책을 잡힐 수도 있으니 증거도 함께 보냈다. 여러 몬스터의 시체를 서신과 함께 보낸 거였다.
그렇게 해야 꼬투리를 잡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건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 무언가 다른 방책이 필요했다.
“병력을 더 달라고 할 생각이야.”
“병력을요? 그게 통할까요? 저쪽에서 완전히 마음을 먹고 덤벼드는 건데..”
제갈벽린은 힘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혁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냐. 이미 장수는 죽었지. 그렇다면 군부에서는 만족스러워할 거야.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무능이니 비리니 말은 했지만, 사실은 반대파 숙청이다. 그걸 했으니 병사들까지 희생시킬 이유는 없다.
게다가 너무 많은 병력이 희생되면 군부로서도 문제가 생긴다. 반면에 무림맹에서는 도검당이 더 큰 피해를 입기를 원할 테고.
‘처음에야 같은 목적으로 뭉쳤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지. 그러니 누군가가 조금만 거들어 주면 병력을 보내줄 거다.’
그렇게 해줄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진혁은 다른 사람 몰래 채 공공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화산에 병력을?”
태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채 공공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괴물들이 전과는 달라져 크게 고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채 공공은 알유의 머리 이야기를 꺼냈다. 황실의 체면이 섰다면서 태후가 크게 기뻐했던 그 커다란 괴물의 머리.
“그 괴물을 잡았다고 하는 자를 기억하십니까?”
“그럼. 기억하다마다.”
“하진혁이라는 자이온데 그자가 지금 화산에 있습니다. 괴물을 상대로는 으뜸인 자이지요.”
채 공공은 그런 자임에도 괴물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러 괴물이 뒤섞여서 나오는 바람에 그리된 거라고도 말했고.
“그게 정말인가? 여러 괴물이 한꺼번에 나와?”
태후는 무척이나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태후도 괴물에 관해서는 제법 안다. 괴물은 종류별로 모여 살고, 종류별로 움직인다.
그런데 여러 종류가 함께 움직인다니. 태후는 예전에 괴물에게 습격받았던 일이 떠오르는지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지금이야 화산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사오나, 언제 황궁 근처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러니 이번에 그 대비책을 알아놓을 겸 해서 그쪽에 정예 병력을 보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채 공공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미리 알고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사안이에요.”
“그러하옵니다. 태후 마마.”
태후는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어떤 부대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황제 폐하께서 명하셔서 특별히 만든 부대가 있지 않습니까.”
황궁을 괴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따로 조직된 부대가 있었다. 금군에서 실력이 뛰어난 자들만 차출해서 만든 부대로 지금까지는 공식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었다.
다만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 여러 부대로 파견을 보내 괴물을 상대하는 경험을 쌓게 했다.
“그러니 이번에 그들의 위용을 만천하에 보여주심이 어떨까 합니다.”
“옳거니. 그러면 되겠구나.”
“옳으신 결정이십니다. 화산에서의 일이 알려지면 민심이 동요할 수도 있으니 이 기회에 황실의 위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태후 마마.”
태후는 흡족해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황제의 재가는 자신이 받아낼 터이니.
곧바로 재가가 떨어졌다. 대장군 두궐륭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무공대사가 찾아왔지만,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핑계도 좋았다. 황제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챙기는 일인데 어쩌겠나. 그리고 태후를 찾아간 청광진인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태후의 의중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황실의 금군으로 구성된 부대가 곧바로 화산으로 이동했다. 그건 진혁으로서는 호재였고, 무림맹 세력으로서는 악재였다.
“다시 뵙는군요.”
북진무사 손경백이 진혁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는 금군 토벌대의 일원으로 화산에 온 거였다. 진혁도 반갑기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 괴물들이 이상해졌다는 말에 황제 폐하께서 근심이 크십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리고 괴물들이 좀 이상합니다.”
손경백은 어떤 점이 그러하냐고 물었다.
“이게 그냥 기분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군대처럼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까? 그거 무척 이상한 일이군요.”
손경백은 아직 보지 못한 터라서 뭐라 말은 하지 못했지만, 전투 때 유심히 살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무기들이 무척 좋은 것 같습니다. 역시 금군이라서 다른가 보군요.”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시는 부대이니까요.”
손경백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진혁이 그걸 물어본 것을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금군 토벌대의 무기가 바로 땅딸보의 대장간에서 가져간 무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하다. 이번에 금군 토벌대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녀석이 만든 무기야.’
그렇다면 그 부분을 잘 뒤지다 보면 자신이 찾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진혁은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손경백은 무기 관련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듯했다. 하기야 금의위 북진무사가 그런 걸 챙기는 사람도 아니니 당연한 거다.
진혁은 과연 누가 자신과 같은 사람일지 유심히 살폈다. 어쩌면 금군 토벌대에 찾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