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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아니.. 저기.. 국법이 있는데 이럴 수 있는 거요?”
땅딸보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괴물이 나타나기 전이라고 해도 국법 같은 게 어디 백성을 지켜주던가.
국법이 제대로 힘을 쓸 때는 상류층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라고. 그것도 괴물이 나타난 이후로는 많이 약해졌지만.
“국법? 그런 건 믿으면 안 된다는 말 듣지 못했나 보군.”
철각패도는 땅딸보를 의자에 콱 앉히고는 자신도 앉을 만한 걸 끌어왔다. 철각패도는 땅딸보의 앞에 앉아서 물었다.
“여기서 무기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던데.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봐.”
“...”
땅딸보는 눈치를 살피면서 우물쭈물했다. 뭐. 쉽게 입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
“입을 열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나도 마찬가지니까.”
“어.. 가만.. 당신은..”
땅딸보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기야 철각패도가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니지.
“사혈련에서 무슨 일입니까?”
“괴물을 베는 검이라는데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어디 사혈련만 그렇겠나. 세상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질 거다. 철각패도는 대장간 내부에 은은하게 퍼져있는 마나의 기운을 느꼈다.
진혁이라고 하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었겠지만, 철각패도의 몸으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나가 짙었다.
“후우.. 얘기를 하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소?”
땅딸보는 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모두 얘기하고 나에게 협조한다고 하면. 대신 일은 서쪽으로 가서 해야 할 거야.”
“흐음..”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철각패도는 품에 가지고 있던 물건을 휙 던졌다.
- 카강!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쇳덩어리가 땅딸보의 발밑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 쇳덩어리를 본 땅딸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 어떻게 이걸..”
역시나 마나를 품은 쇳덩어리라는 걸 알아보았다. 녀석은 마나를 느끼는 대장장이였던 거다. 하지만 드워프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잘 보니 사람인 건 분명했다. 드워프와 닮은 외형을 가진 사람.
“호오.. 게다가 이렇게 풍부한 기운이라니..”
녀석의 눈빛이 달라졌다. 쇳덩어리를 보니 손이 근질근질한 듯했다.
“자. 그러면 우리 이야기를 해 보자고. 나도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쇳덩어리를 보아서인지 철각패도가 사혈련의 대장로라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놈은 순순히 협조했다.
“그러니까 그 기운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집안에 내려오는 물건들이 있어서..”
철각패도는 이 녀석의 가문도 현천문이나 제갈 세가와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확실해졌다. 놈의 가문도 예전에 괴물이 나타났을 때 무언가를 얻은 게 분명했다.
“무기를 만들라고 시킨 자는 누구지?”
“처음에 보기는 했는데, 이름이나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아서..”
그 사람은 처음에 호위무사 몇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쇳덩어리를 던지면서 이게 무언지 아느냐고 물었다는 거였다.
거기 담긴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의뢰인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기를 만들라고 시켰단다.
‘그렇다면 놈도 중급 마나 스톤을 녹일 수 있는 거야.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거지.’
그렇다면 왜 무기를 만드는 걸까? 만약 그놈도 자신처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면 돌아가기 위해서 그러는 걸 거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포인트를? 아니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팔찌를 가져간 건 그놈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 같은 건 없었나?”
“그냥 생각이기는 한데.. 황실의 인물 같다는 느낌이..”
“황실?”
철각패도는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땅딸보는 원래 이곳에서 무기를 만들던 게 아니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 대장장이 일을 했다. 제법 실력이 좋아서 무림인이나 고관대작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거든요. 뭐랄까. 호위하는 무사들이 훨씬 어려워하고 공경하는 것 같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자도 심부름꾼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것까지는..”
하기야 대장장이에게 그런 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철각패도는 일단 이곳에 온 사람들에 관해서 자세히 물었다.
“당분간은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그럴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근처에서 감시를 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서 무얼 만들던 상관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철각패도는 일단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만들라고 시켰다.
“재료는 내가 줄 거고, 감시하는 놈들은 걱정하지 말고.”
감시를 피해서 물건을 전달해 주는 거야 쉽다. 만든 무기도 아공간에 넣으면 그만이고. 문제는 이놈을 빼오는 거였다.
“물건을 다 만들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지.”
철각패도는 직접 놈을 안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게 가장 확실했다. 하지만 땅딸보는 무척 주저했다.
“그게.. 여기서 가져갈 물건들이 많은데..”
가문에 내려오는 물건부터 해서 옮길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그런 건 염려말라고 했다.
“내가 사람 시켜서 다 가져다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아공간이 쳐넣어서 옮기면 그만이다. 그것보다 이놈이 배신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철각패도는 놈이 붙들고 있는 쇳덩어리를 빼앗고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 우드드득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쇳덩어리가 우그러졌다. 철각패도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난 쇳덩어리를 다시 땅딸보에게 던졌다.
“다른 마음이 들면 이 쇳덩어리를 기억해. 그러면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철각패도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재료는 자신이 알아서 여기 가져다가 놓겠다고 하면서.
땅딸보는 다음 날 대장간에 들어갔다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쇳덩어리를 보았다.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르게 이 많은 쇳덩어리를 가져다 놓은 거다.
이렇게 많은 재료를 옮기려면 소리도 났을 법한데 그런 건 전혀 듣지 못했다. 땅딸보는 입을 떡 벌리고는 철각패도를 배신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다.
***
제대로 준비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도검당의 무사들과 남로무사단은 충실하게 훈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갑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림인들이다 보니 갑옷을 불편해했던 거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최대한 간편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화산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말하면서 설득했고, 모두가 갑옷을 입고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는 몸에 익은 듯 보였다.
“처음보다는 훨씬 낫네. 그래도 주요 부위는 방어를 해주니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한천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갑옷이라고 해서 군대의 장수들이 입는 그런 갑옷은 아니었다. 심장과 주요 부위만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변형된 갑옷이었다.
“그런데 정말 진법이라는 게 효과가 있단 말이지?”
목세강이 이야기했다. 그도 진법을 배운 적이 있다. 화산에도 진법이 있으니까. 하지만 특히 괴물을 상대로 효과가 큰 진법이라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거다.
“아마 직접 경험하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그 정도인가? 효과가 뛰어났으면 좋겠군. 요즘 화산 부근이 정말 위험하다고 하니 말이야.”
화산은 목세강의 사문인 화산파가 있던 곳이다. 마음가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계속해서 화산 부근의 정보를 수집한 듯했다.
“시간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토벌은 하더라도 사람이 많이 상하지 않아야지요.”
“그러니까.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이겠나.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살아 있어야지.”
맞는 말이다. 진혁도 가능하면 사상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신경을 쓸 생각이었다.
새로운 무기와 방어구에 진법 훈련까지 받자 무사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도검당 토벌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니. 곱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비하했다. 떨거지들이 뭉쳐봐야 별수 있겠느냐는 식의 말로 비아냥거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훈련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시도는 도검당주인 진혁에 의해서 무참하게 깨졌다.
구파일방의 무사들이 자신들도 훈련해야 하며 훈련장 사용을 허락도 받았다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진혁은 담당자를 전부 불러오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 중간에 누군가가 장난을 쳤다는 걸 알아냈다.
도검당에서 먼저 훈련장 사용을 승인받았다. 그걸 누가 고친 거였다. 진혁과 제갈벽린은 끝까지 조사해서 그 짓을 한 자를 밝혀냈다.
무림맹에서 일한 지 오래된 자였는데, 이 일로 그는 무림맹에서 내쫓겨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검당 토벌대는 훈련을 마치고 화산으로 이동했다.
“이보시오. 하 당주. 정말 괜찮겠소이까.”
도검당과 함께 괴물을 토벌할 군대 책임자는 정말 형편없는 자였다. 들리는 말로는 고관의 자제인데, 무능력해서 늘 골칫거리였다고 했다.
무능력하기만 하면 괜찮은데 고집도 세고 돈과 여자도 좋아했다. 그런 자가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직 초입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조금 더 가야 괴물이 나오니 어서 가시지요.”
진혁은 이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뒤에 숨기만 할 테니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공연히 작전을 세울 때 이상한 짓만 안 하면 된다.
이런 자들이 가장 골치 아플 때는 뭔가 아는 척하면서 작전을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할 때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도 있었다.
‘까불면 철각패도 땡겨와서 없애버리지 뭐. 어차피 군부에서도 죽으라고 여기 보낸 건데.’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수는 계속 투덜거렸다. 진혁도 참다 참다 슬슬 짜증이 터지려고 하는데, 그때 무언가가 느껴졌다.
“다들 멈추고 주변을 경계하라!”
조금 이상했다. 전해 받은 정보로는 괴물이 나오려면 아직도 상당한 거리를 가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주변에 괴물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를지 몰라도 진혁은 그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이 온 현천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현천문과 남로무사단이 중심이 되어 주변을 살폈다. 제갈 세가는 그러는 사이 도검당 무사들과 함께 진법을 펼쳤다.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모습을 장수와 병사들은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정말 오합지졸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오합지졸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전달받은 정보조차 믿을 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군부에서 정보를 받았는데, 이것도 중간에 누가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아니면 조사했던 때하고 상황이 달라졌던가.
둘 다 토벌대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정보가 틀리면 고치면서 나가면 되는 거고, 장난을 친 거면 잡아서 족치면 된다. 다신 그런 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아마도 놀이나 고블린 정도겠지. 가장 외곽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이상합니다. 여러 괴물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뒤섞여?”
괴물들은 주로 무리를 이루어서 생활한다. 오크는 오크끼리 고블린은 고블린끼리. 여러 종족이 함께 생활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유일한 예외라고 한다면 마나 폭발이 일어났을 때다. 그때는 종족을 가릴 것 없이 함께 뭉쳐서 미쳐 날뛰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괴물이 뒤섞여 있다? 진혁은 자신이 직접 움직여서 확인을 해보았다.
“어? 뭐지?”
정말이었다. 오크와 고블린, 그리고 홉 고블린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싸우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마치.
“그냥 부대를 이룬 것 같잖아?”
진혁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