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는 표사-130화 (130/150)

0130 / 0150 ----------------------------------------------

이건 뭐지?

분명히 처음 보는 장소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장소. 철각패도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이 있는 부근은 전혀 모르겠는데 조금 떨어진 곳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가만. 여기 개봉이잖아?”

철각패도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골목을 지나 큰길로 나서니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분명했다. 여기는 개봉이었다.

왜? 나는 분명히 낙양에서 몸을 바꾸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철각패도는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만. 저기는 진혁이 몸을 바꾼..”

말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니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앞에 보이는 장소가 진혁이 몸을 바꾼 곳이라는 점이었다.

‘맞아. 조금 전 바로 저기 구석에서 몸을 바꾸었지. 여기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니까.’

낡은 건물만 몇 개 있을 뿐 무척이나 황량한 곳이었다. 철각패도는 새로운 가설을 생각해보았다.

‘평소와 다른 거라면 낙양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철각패도는 진혁이 몸을 바꾼 장소로 걸어갔다. 거기에 서니 바로 정면에 철각패도가 나타난 장소가 보였다.

“그러니까 여기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장소를 보고 있으면 된다는 건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직접 해보면 된다. 철각패도는 곧바로 테스트에 착수했다. 그 자리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팔찌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마음속으로는 진혁의 몸이 거기에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헛!”

진혁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낯선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설이 맞았다. 철각패도가 응시한 그 장소에 진혁의 몸이 나타난 거다.

진혁은 내친김에 몇 가지 실험을 더 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팔찌에 기운을 불러 넣으면 사라졌던 마지막 장소에 다시 나타났다. 눈에 보이는 장소에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 장소에 다른 몸이 나타났고.

하지만 전에 가봤던 장소에 가는 건 불가능. 아무리 가까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에는 나타날 수 없었다.

“이거 약간 애매한 능력인데?”

차라리 원하는 곳 아무 곳이나 갈 수 있으면 정말 대박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곳이라고 하면 딱히 큰 이점은 없어 보였다.

“그냥 아주 멀리 있을 때 한꺼번에 순간이동 하는 정도겠다.”

가끔 도움은 되겠지만 아주 대단한 건 아닌 능력. 조금 아쉬웠다.

“아. 이게 안 보였던 그거였구나.”

3단계로 올라서면서 글자가 깨져서 어떤 능력인지 몰랐던 것. 바로 그게 이동 관련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아우. 진짜 이런 건 좀 고치던가.. 아. 맞다. 관리자는 또 왜 연락이 없지?”

어차피 포인트를 다 모아야 돌아갈 수 있어서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연락을 취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보는 많이 알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그건 급할 건 없는 일이다. 그것보다 지금은 팔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팔찌를 확보해 놓고 다른 일을 진행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이도걸이 죽기 전까지는 여유가 있었는데, 이도걸이 죽고 팔찌가 사라지자 조금 불안해졌다. 철각패도는 곧바로 서예주를 찾아갔다.

서예주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 싶이 하면서 철각패도를 맞이했다. 왜 이제야 왔느냐면서 살짝 타박하는 말투를 내비치기도 했다.

철각패도는 조금 겸연쩍어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투자금과 정산금은 여기 장부에 따로..”

“아니. 투자 원금이나 정산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철각패도의 말에 서예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그런 큰돈이 중요하지 않다니.

“그것보다 황궁에 있다는 팔찌에 관해서 알고 싶은데..”

“아. 그거라면 제가 좀 알아봤어요.”

철각패도가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물건이라 조심스럽게 알아보았다고 했다.

“확실하게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얼마 전에 태후께서 그 물건을 가져가셨다고 해요.”

“태후가?”

이런 젠장이었다. 현재 가장 건드리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하면 황제와 태후를 들 수 있을 거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그 둘은 좀 껄끄러웠다.

‘아니다. 어차피 철각패도로 들어가서 훔치고 아공간에 넣어 놓으면 누가 알아.’

문제는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거다. 철각패도의 무공이라면 황궁 비고에 있더라도 훔쳐날 수 있을 테니까.

“어디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나?”

“태후께 직접 여쭤보는 게 가장 빠르기는 할 건데..”

“태후야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지. 그걸 아는 다른 사람은 없을까?”

서예주는 그런 건 내시나 궁녀들이 잘 알 거라고 말했다. 태후를 곁에서 모시는 궁녀나 태후와 각별한 채 공공 정도라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뜻밖의 정보도 있었는데, 태후가 자신의 물건을 믿고 맡기는 자가 채 공공이라는 거였다. 채 공공이 관리하는 재산과 보물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채 공공이라. 이거 잘하면 쉽게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겠는데?’

채 공공이면 온위립을 통해서 소개를 받거나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가 관리하는 보물 중에 팔찌가 있다면 구경을 좀 하고 싶다고 하면서 슬쩍 빼낼 수도 있겠고.

“채 공공이 태후와 황제를 괴물로부터 구한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네요. 게다가 재물에 전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니 믿고 맡겼겠지.”

철각패도는 요즘 일이 좀 꼬이는 감이 있었는데, 뜻밖의 횡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궁녀를 통해서 정보를 좀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

“그럼요. 제가 도움을 받은 게 얼마인데.. 제가 알아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그래.. 그럼..”

철각패도는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짙은 아쉬움을 얼굴에 드러낸 서예주를 뒤로 한 채. 그런데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뒤를 돌아보았다.

“참. 솜씨가 좋은 대장장이 아는 사람이 있나?”

“대장장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몇 명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철각패도도 아는 자들이었다. 너무 멀리 있거나 다른 이유로 물건을 맡길 수 없는 자들.

서예주는 실망하는 철각패도의 표정을 보면서 잠시 더 생각하더니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최근에 은밀하게 소문이 난 것이 있는데요. 괴물을 베는 보검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있다고 해요.”

철각패도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처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일 확률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도걸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괴물을 베는 보검? 그 대장장이가 누구지?”

철각패도가 다급히 물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별산 근처에 산다는 말이 있어요.”

“흐음.. 대별산 근처라는 거 말고 다른 정보는 없던가?”

“저도 들은 이야기라서.. 아.. 외모가 좀 특이해서 숨어 산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 정도였다. 어떻게 특이하다거나 참고가 될만한 정도는 더 이상 없었다.

“대별산이라..”

그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가서 뒤져봐야 할 것 같았다. 철각패도는 쉽게 생각했다. 사혈련 애들 풀어서 뒤지기로.

‘그래. 내가 굳이 힘들게 찾을 거 없지.’

그리고 그 대장장이에 관한 정보도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사혈련 애들 시켜서.

‘아. 이거 애들 있으니까 편하긴 하네. 전국적인 조직망이 있다는 게 이래서 좋구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대별산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제는 아무리 멀어도 진혁이 땡겨올 수 있으니까.

‘실수로 진혁을 땡기는 실수만 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철각패도는 아쉬워하는 서예주에게 곧 다시 볼 거라고 뻥을 치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저기.. 대장로님.. 명하신 건 알아보았지만..”

사혈련의 간부라는 놈이 와서 죽을상을 쓰며 말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알아낼 수 없다는 말을 하려니 손발이 떨려왔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겠지만, 철각패도의 앞이었다.

간부는 그냥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악당이다. 악당처럼 생겼다는 건 철각패도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는 그냥 보고 있어서 간이 떨리고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말을 하려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됐다. 이제는 더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묵직하고 단호한 음성이 간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간부는 갑자기 몸을 덜덜 떨었다.

분명히 중요한 일이니 다른 일을 모두 제치고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오자마자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건 뭔가?

간부는 상상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본보기로 자신에게 장력을 날리는 철각패도를. 이놈처럼 되지 않으려면 빨리 찾아보라고 호통치면서.

“대장로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알아내겠습니다. 그러니..”

뭐야? 이 이상한 놈은? 지 혼자서 쑈를 하고 있네?

“내가 어디 있는 지 알아냈다. 그러니 더는 소란스럽게 하지 마라.”

“아. 그러셨군요. 역시 대장로님이십니다.”

간부는 세상에서 철각패도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 없을 것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아부를 떨었다.

철각패도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일을 볼 터이니 혹시나 말이 새지 않게 단속 잘하거라. 만약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철각패도는 일어서면서 근처에 있는 바위로 다가갔다.

- 와드드드득!

철각패도는 바위를 잡고는 뜯어냈다. 평평하던 바위는 한 움큼 뜯겨 보기 흉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자 간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신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공. 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으면 두부가 부서지듯 뭉개질 거다. 간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거듭 말했는데, 철각패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철각패도는 허공을 날아가면서 기감을 넓혔다. 그리고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는 건 무척 어려웠다. 철각패도의 몸으로는 마나를 느끼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거 진혁의 몸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하기는 한데, 그 몸을 여기로 가져올 수도 없고..”

대장장이를 가장 먼저 찾은 건 철각패도였다. 그가 대별산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는 마나를 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별산은 괴물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어떤 자들이 무기를 옮기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방향에 문제의 대장장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철각패도는 대별산 근처를 뒤지면서 마나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한참을 뒤진 후에 문제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교묘하게 숨겨진 장소였다. 철각패도도 공중에 떠서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 장소를 발견할 수 없었을 거다.

철각패도는 곧장 대장장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허공에서 떨어지면서 작은 소리를 냈는데, 안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또 왜? 그게 끝이라고 했잖아?”

갑자기 뭔가를 던지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누군가가 씩씩대며 나왔다. 그는 벌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당분간은 일이 없으니 하고 싶은 걸 해도..”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망치를 들고 나오다가 철각패도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굳었다.

“저기.. 누구신지..”

땅딸한 체형의 남자. 키가 작고 몸이 옆으로 좀 퍼져 있었다. 하지만 물렁살이 아니라 근육질에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그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거 드워프 아냐?’

작은 키에 근육질의 땅딸보. 거기다가 수염은 덥수룩하고 망치를 들고 있는 모습. 그가 보기에는 딱 드워프처럼 보였다.

철각패도는 땅딸보에게 이야기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주문을 할 것도 있고 물어볼 것도 있고..”

땅딸보는 어쩔 줄을 모른 채 허둥거리다 결국 철각패도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