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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26화 (1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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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당주가 할 수 있는 일들.

저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불렀다. 거대 문파의 무인들만 부른 게 아니라 주요 직책에 있는 무인들을 전부 다 부른 거였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넓은 실내에 띄엄띄엄 이라도 사람이 있다는 게 전과는 다른 점이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제갈벽린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빠져 있었다. 제갈 세가의 사람은 와 있었지만, 그거야 별개로 쳐야 할 일.

제갈 세가의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중소 방파나 낭인 출신이거나 했다. 다시 말해서 주류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 중에서도 오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분명히 오겠다고 답신을 해 놓고서는 말이다.

‘아마도 압력을 받았겠지. 나에게 협조하지 말라고.’

지금부터 길들이기가 시작되는 거다.

니가 그 자리에 있어 봐야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우리 말을 들어라.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거다.

일단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 모양이다. 이렇게 다들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오신 분들에게는 죄송하군요. 지금 상황이 이래서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말하는 진혁은 담담했는데, 오히려 이 자리에 온 무인들이 불편해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기보다는 공연히 큰 문파에 찍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불안해했다.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대화는 다음에 하도록 하죠.”

진혁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자신도 나왔다. 제갈벽린은 실망하지 말라며 진혁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정심으로 임명이 되면 나아질 거예요. 그때야 아무리 명문이라고 해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테니..”

“상관없습니다. 원칙대로 할 텐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진혁은 전혀 문제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임명이 되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나오지 않겠지. 내가 하려는 일은 방해하려 할 테고.’

그렇게 나와도 상관없다. 거대 문파와는 갈등이 생길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는 생각했던 바다.

임명식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반장 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격식을 갖추어 진행되었다. 무림맹에서 당주의 자리가 어떤 위치인지 잘 알 수 있는 임명식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식이 끝나고 나니 모두가 진혁을 외면했다. 일단은 기를 꺾어놓고 시작하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별다른 감정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날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방식은 이전과 똑같았다. 일시와 장소를 알리고 참석 여부를 물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중요한 사안을 논의할 것이라는 내용이 덧붙여진 거였다.

“이런다고 사람들이 올까요?”

“그냥 원칙대로 하면 됩니다. 원칙대로.”

진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 진혁을 보면서 벽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는데, 당주라는 사람이 너무 무사태평이었기 때문이었다.

“하 당주님은 참 속 편한 사람이네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뭘 그리 고민합니까. 그리고 정도를 걸으면 두려울 게 없는 법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제갈벽린은 그런 진혁의 뒤에 대고 구시렁거렸다.

“유학자 나셨네. 유학자 나셨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진혁이 혹시 포기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거 내가 보좌해야 하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하지만 제갈벽린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없다.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다수가 불참한 거였다. 진혁은 그래도 태평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정식으로 당주 임명을 받은 후라 그런지 전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있었다.

하지만 빠진 사람들의 무게감이 컸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물이면서 다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다들 온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혁은 큰 소리로 말했는데,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주목을 끌고 난 후 진혁은 폭탄선언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세 명의 각주를 뽑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체 인원의 절반이 넘게 참석하셨으니 회의를 진행할 수는 있겠군요.”

각주라고 하면 도검당주의 바로 아래 자리다. 도검당주가 장관이라면 각주는 차관 정도 된다.

진혁의 말에 다들 어언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발언이었는지 제갈벽린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각주로 적당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도검당은 검각, 도각, 철혈각, 이렇게 세 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검각은 무당의 황서군, 도각은 종남의 장세문, 철혈각은 남궁표가 각주를 맡고 있었다.

도검당주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배경 좋고 실력도 인정받는 세 사람. 하지만 이 자리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혁은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새로 뽑겠다고 하고 있는 거였다. 제갈벽린은 진혁의 옆으로 가서는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복화술을 하듯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뭘 하느냐니요. 각주를 새로 선출하고 있는데요?”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요? 아무런 얘기도 없이 갑자기 이러시면 어떻게 하느냐구요.”

진혁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각주 선출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상의하려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는 지난 두 번이나 기회를 주었는데도 오지 않았고, 오늘까지도 불참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제가 알아보니 각주의 임기도 당주와 마찬가지이더군요. 전대 도검당주가 퇴임하는 것과 동시에 각주들의 임기도 끝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그걸 의논하고자 사람들을 불렀다. 하지만 오지 않는데 어쪄냐.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서 뽑을 수밖에 없다.

진혁은 이 내용을 모두에게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표정.

사람들은 모두 진혁의 말을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진혁이 놈들 엿 먹일 방법이 없는지 샅샅이 뒤지다가 발견한 거였다.

“각주의 자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시라도 비워둘 수가 없으니 이 자리에서 선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한 절차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얼굴을 하고 말하는 진혁. 이 자리에 온 무인들은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해는 된다는 표정이었다.

“상황이 좀 그렇긴 하지만 하 당주가 잘못한 건 없네. 계속 모이자고 했는데도 나오지 않은 건 그 사람들이잖아.”

“하기야 방법이 없지. 들어보니 당주는 할 만큼 했구만.”

“맞는 말이야. 아니 뭐 당주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제발 와주십사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할지 물으러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진혁의 편을 들었다. 진혁은 자신들과 별반 차이가 없던 무명의 문파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엄청난 활약을 하고 도검당주의 자리까지 오른 거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진혁은 희망이다. 자신 같은 사람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이정표.

거기다가 그동안 명문정파 놈들에게 받았던 괄시를 떠올렸다. 그 분노까지 더해져서 그런 말이 나온 거였다.

“각주에 어울리는 후보가 있으면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진혁의 말에 무인들은 눈치를 보았는데, 누군가가 한 명을 추천하자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각자 아는 사람을 마구 추천한 거였다.

“그냥 추천하시는 것보다는 이유까지 말씀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혁이 내공을 실어 말하자 장내가 삽시간에 정리되었다. 그리고 정말 추천할 만한 사람들만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명의 각주가 선출되었다. 다들 실력이나 여러 면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은 각주가 되었다는 환희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회의를 열겠습니다. 각주 자리야 급하니 정했지만, 나머지 안건은 보다 많은 분이 계신 자리에서 결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도검당의 무인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들 후다닥 뛰어나갔다. 이 소식을 빨리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아마도 술자리에 가서는 오늘 일에 살을 붙여서 한동안 떠들어 댈 것이다. 다만 각주로 뽑힌 세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세 분은 저와 함께 이야기를 좀 더 하시죠.”

세 사람은 진혁과 함께 남았다. 셋은 무척 쑥쓰러워 했다.

“저기.. 당주님.. 저희가 이거 각주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지..”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여러분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각주가 되신 분들입니다.”

진혁은 자신을 보라고 했다. 이름없는 문파의 제자이고 토벌 전까지는 거의 무명이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당주가 되었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은 좀..”

솔직한 말로 지금 각주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오늘 오지 않은 거대 문파들의 보복이 두려웠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진혁은 자신과 함께 일주일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주님과 함께요?”

“제가 무공의 장단점을 좀 잘 압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가지고 뭘 한단 말인가.

“에이. 뭐 손해 볼 거야 있겠어? 좋습니다. 저는 같이 있겠습니다.”

한 명이 그리 말하자 나머지 두 명도 찬성했다. 당주 정도 되는 고수에게 지도를 받는 기회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 일주일 가지고 실력이 늘까요?”

“그건 보시면 압니다.”

진혁은 활짝 웃었다. 오늘부터 다음 회의까지 정말 제대로 이 사람들을 키워보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말이 안 되지요. 하지만 절차나 규율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회의에 일부러 불참한 사람들은 각주를 뽑았다는 소식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장난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았던 거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자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면서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해댔다.

문제는 자세히 따져보니 의외로 문제가 없었다는 거다. 도검당주 하진혁은 무림맹의 절차와 규율에 따라서 행동했다.

“허. 참.. 이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다음 회의 때 본때를 보여줍시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본때 정도가 아니라 아주 끝장을 봅시다. 당주가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세상 물정이 어떻다는 걸 알려주어야지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칼을 갈았다. 진혁과 세 각주를 아주 밟아버리겠다면서.

“맞습니다. 지금 하급무사들 사이에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그러니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헛된 망상을 품게 해서는 곤란하니까요.”

다들 동의하고 다음 회의 때 어떤 식으로 할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그 시각, 진혁은 세 사람과 함께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기해혈에서 내공을 돌릴 때 억지로 짜내듯 밀면 안 됩니다.”

진혁은 한 명 한 명 맞춤형 교육을 실시했다. 정말 세세하고 빈틈없는 확실한 가르침.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진혁의 말에 무조건 따랐다.

그들도 무공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명의 문파에서 이런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진혁의 가르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소중한 것인지.

“억지로 민다? 음..”

진혁은 상대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칼을 휘두를 때 강하게 휘두른다고 억지로 힘을 주면 자세도 망가지고 강하게 휘두르지도 못합니다. 그런 경험 있으실 겁니다.”

진혁은 세 명이 경험했을 법한 걸 예로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세 사람은 정말 신이 났다.

짙은 안개 속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런 거였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리 해도 잡히지도 볼 수도 없었던 것.

진혁은 그걸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꿈에도 그리던 그런 경지를 말이다. 세 사람은 땀에 흠뻑 젖은 것도 모른 채 수련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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