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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는 거다.
게다가 무당은 마지막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무당의 장로라는 자가 은밀히 접촉을 와서 거래를 제안했다.
“솔직히 말해서 무림맹의 당주 자리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도검당주의 자리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위치라고 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무림맹은 복마전이었으니까. 추악하고 야비한 술수가 판을 치는.
현천문의 누가 도검당주가 되든 간에 결코 순탄한 길을 걷지는 못할 거다. 놈들이 그걸 가만히 두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진혁은 그걸 이미 각오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나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무당의 장로가 한 말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 세력이 약하지 않습니까? 그건 온 문주께서도 느끼고 계실 겁니다.”
“분명히 제자의 숫자가 많은 방파는 아닙니다.”
진혁의 말을 무당의 장로는 냉큼 받았다.
“그렇습니다. 실력으로야 누가 뭐라겠습니까. 하지만 실력만으로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요. 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는 현천문에서 누가 도검당주를 하든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거기다가 이런 큰 단체나 무리를 이끌어본 경험도 없지 않습니까. 조직을 이끈다는 게 어디 생각만으로 되는 겁니까?”
사실 이 점을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무공이야 검증이 되었지만, 조직을 이끌어 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그러니까 누가 그런 조건을 내걸래? 분명히 무림맹이 내건 조건은 무력이었다. 그건 자만이었다.
어차피 소림이나 무당에서 미는 후보 중에서 될 거니까 다른 조건은 필요 없다. 이런 자만 때문에 저지른 실수.
그런 조건을 내걸 때 설마하니 그게 자기들 목을 옭아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크흠.. 그러니 말입니다.”
장로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방안에는 진혁 밖에 없었음에도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일단 검각이나 도각의 각주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기서 경험도 쌓고.. 당주는 그 이후에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것이 순서이고 순리이라고 말했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듯이. 진혁은 그저 웃길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장단을 맞춰주었다. 진혁은 원래 그런 예의 바른 캐릭터니까.
쓰불. 이래서 캐릭터 잘못 만들면 개고생이라니까.
“한 번에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겁니다. 계단을 한 개씩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르겠지만요. 세상은 그런 겁니다.”
무당의 장로는 당주 자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진혁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지금 니들이 하지 그러냐? 하여간 나중에 뭐 해준다는 그런 놈치고 정말 해주는 놈을 내가 보질 못했다.’
진혁은 잠시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많았다. 주로 돈 빌려 갈 때 저런 말을 했다. 개중에 상당수는 연락을 끊거나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했고.
그런 놈들하고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 어차피 계속 알고 지낼 필요가 없는 놈들이니까. 그런데 무당의 장로는 그런 진혁이 고민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계속 말을 떠벌였다.
“도검당주를 거절하면 그 겸손함을 모두 칭찬할 겁니다.”
“이미 원칙을 정해놓았는데 그거 가능하겠습니까?”
무당의 장로는 그 말을 질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완곡하게 거절한 건데 말이다.
“그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무당의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협조만 한다면 황서군이 당주가 될 것이라 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도검당주는 무조건 현천문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고.
뻔히 보이는 수작. 하지만 만약 권력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잘 먹힐 만한 수작이었다.
진혁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는 원칙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게 가장 옳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때 물러서면 될 것 같습니다.”
진혁의 말에 장로는 몇 차례나 더 설득하려고 했다. 아마도 진혁의 나이가 어리니 어떻게든 말로 구워삶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원리원칙만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자도 대충 눈치를 챘다. 말로 설득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그러자 그는 슬쩍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군요. 사실 제가 이렇게 온 것은 개인적으로 하 소협이 너무 안타까워서 온 겁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법을 찾자고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온 것은 무당에서 나선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무당이 이런 일로 움직였다고 하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개인적인 거 좋아하네. 이 새끼 이거 실망하는 표정 봐라.. 이게 잘 되면 큰 걸 받기로 했나 보지?’
이놈들은 지금 나이가 어리다고, 배경이 없어서 우습게 보고 있는 거다. 지들이 잘 구슬리면서 뭐라도 하나 주면 좋아할 줄 알고.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가진 게 없다고 해서 니놈들에게 무시당해도 되는 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는 니놈들 정신이 썩어 빠진 거야.
자기들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자들. 내가 도검당주가 된다고 해도 어차피 한 번이고 다음에는 또 자기들이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지?
“저는 원칙에 충실할 뿐. 그 외의 것은 작은 거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다들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더군요.”
웃으면서 살짝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티가 난다. 원칙에 충실한 자이니 이런 제안을 했다고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캐릭터 잘못 봤어.
***
“그래. 어떻더냐?”
황제의 호기심어린 물음에 북진무사 손경백이 답했다.
“무위가 대단하고 심지가 굳은 자들이었습니다.”
“호오.. 그래?”
황제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라고 시켰다. 특히 괴물과 싸울 때 어땠는지를. 손경백은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정말 놀라운 무공이었습니다.”
“너랑 비교하면 어떠하냐?”
“호승렴이라는 제자까지는 제가 감당할 수 있겠지만, 문주와 대제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황제는 크게 놀랐다. 손경백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으로 황실 최고수가 바로 손경백이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몇 있기는 하지만, 다들 노회한 자들이다. 그 수도 다섯을 넘지 않을 것이고.
“너의 실력이면 무림에서도 맞수를 찾기 어렵지 않더냐.”
“그 둘은 대문파의 장로급 이상입니다. 게다가..”
손경백의 그들의 심성과 성품이 올바르고 굳건했다고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폐하께서 가까이에 두고 쓰셔도 될만한 자들이었사옵니다.”
“그러하냐? 현천문이라..”
황제는 웃으면서 그렇다면 이대로 순서를 확정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 위쪽은 모두 두궐륭 대장군의 심복들이었지만, 무림인 중에서는 현천문이 가장 위였다.
“아마도 두정풍 장군을 고치러 다녀오지 않았다면 맨 윗줄에 적히는 건 그들의 이름이었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두궐륭 대장군과 가까운 것은 아니냐?”
“그건 아니옵니다.”
손경백은 오히려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히려 일반 병사들을 더 걱정했고, 그들과 더 가까웠습니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손경백의 말에 황제는 기뻐했다.
그렇게 토벌의 전공이 발표되었고, 진혁이 도검당주 자리에 앉게 되었다.
무림맹 수뇌부는 그렇게 결정하고 조만간 정식으로 임명할 것을 결정했다.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토벌의 전공에 따라 결정을 하겠다고 공표했으니까.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니 무효로 하자는 말도 있었다. 진혁이 너무 무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도검당의 무인들이 진혁을 당주로 인정하겠느냐면서.
하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진혁의 인기나 명성이 이번 토벌을 통해서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그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말을 꺼낸 사람은 본전도 찾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그를 잘 모르는 무인이 더 많았다.
“그러니 초반에 한 번 보여줘야 할 거다. 그래야 무인들이 인정을 할 테니까.”
온위립이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텃세가 장난이 아닐 텐니 그걸 조심하라는 충고. 하지만 진혁은 이미 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첫날 각주들과 비무를 할 생각입니다.”
도검당에서 가장 고수라고 하면 각주들이다. 이름만 올려져 있는 원로들이 있긴 했는데, 그들이야 돈만 타 먹고 잘 나오지 않으니 제외.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각주들과 비무를 하면 네 무위가 어떤지 대번에 보여줄 수 있겠어.”
“그리고 원하는 자가 있으면 전부 비무를 받아줄 생각입니다.”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무림맹에 갈 생각이었다.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어야 입지를 탄탄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앞으로 일하기가 편하지. 귀찮게 구는 놈들도 없을 테고.’
하지만 온위립은 영 불안한 모양이었다. 자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부모는 항상 걱정이라더니 그런 마음과 비슷한 듯했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말이다.”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인정은 하겠다. 하지만 틈만 보이면 바로 끌어내리겠다. 이게 놈들 생각일 거다.
게다가 소림이나 무당 쪽에서는 진혁 정도는 어떻게든 포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자주 연락을 해오고 만날 약속을 잡자는 걸 보니 말이다.
“항상 경계하거라. 무림맹에 네 편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참이었다.
무림맹주 자리는 권력의 정점이다. 무림맹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자리.
물은 지형이 낮은 쪽으로 흐르고 돈은 권력이 강한 쪽으로 흐른다. 무림맹주가 되면 그쪽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몰린다.
돈을 더 많이 가진 자들이야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다. 그래서 무림맹주가 되려고 하고, 한번 되면 계속 하려고 하는 거다.
도검당주는 그 무림맹주를 선출할 때 한 표를 던질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을 가진 자리.
“쉽게 승복하지 않을 거예요.”
제갈벽린이 우려가 된다는 듯 말했다. 제갈 세가에서는 벽린을 참모로 써달라고 했고, 진혁은 흔쾌히 수락했다.
제갈 세가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으니 그만한 일은 당연한 것. 게다가 제갈벽린의 지모야 강호에서도 유명하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아.. 걱정도 되지 않나 보네요. 하 당주님은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벽린의 말대로 진혁은 태연자약했다. 그냥 보면 어디 유람 온 사람처럼 보였다.
“승복하고 자시고 할 게 있습니까? 원칙대로 임명되는 사람인데.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든 저는 제 방식대로 일하면 됩니다.”
원리원칙대로 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진혁. 제갈벽린은 마음으로는 동의하지만,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벽린이 그러거나 말거나 진혁은 아무런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무림맹을 향해 걸어갔다. 개봉에 위치한 무림맹 총단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불러서 무슨 얘기를 할 건가요?”
“얼굴도 익히고 앞으로 어떻게 도검당을 이끌 건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진혁은 미리 연락해서 도검당의 주요 인물들을 모이라고 전했다. 임명은 며칠 뒤였지만, 이렇게 미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제갈벽린은 고개를 저었다. 과연 진혁의 뜻대로 사람들이 움직여 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하아.. 예상은 했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진혁과 제갈벽린이 마주한 건 텅 빈 공간이었다. 그래도 몇 사람이라도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건 진혁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것.
‘오호라.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러면 나야 땡큐지.’
진혁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워낙 찰나간에 벌어진 일이라 옆에 있던 제갈벽린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분명히 아직 당주로 임명받은 게 아니니까 그랬다고 할 건데, 그걸 그대로 받아주면..”
“혹시 연락이 안 되었을 수도 있으니 다시 모이라고 해야겠네요.”
진혁은 무림맹에 요청해서 다시 연락을 넣었다. 이번에는 참석 여부를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받는 방식으로 했다.
몇 명은 참석하겠다고 했고, 몇은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다시 진혁은 무림맹으로 향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