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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는 거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서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손제형은 그건 괜찮다고 했다.
“조사를 마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전에만 가져오면 되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면 알유의 머리를 가져오면 그걸 보고 판단하기로 하겠습니다. 이견 있으십니까?”
있을 리 없다. 회의가 끝나고 진혁은 손제형과 이야기를 나눌까 했는데, 손제형이 거절했다. 지금은 여러모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조사가 모두 끝난 후에 보자는 거였다.
손제형다운 말이었다. 진혁은 바로 나왔는데, 밖에 있던 현천문과 제갈 세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느냐며 물었다.
“허어.. 정말 치졸한 자들이다. 어찌 그렇게 졸렬하고 비열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니 명문 정파의 웃어른이라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진혁은 피식 웃었다. 나이가 많다고 전부 현명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욕심에 눈이 멀어 추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명문? 정파? 그것도 웃기는 소리다. 그냥 지금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인 거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알유의 머리가 있나?”
“예. 마침 이곳에 동정상단이 있으니 그쪽에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진혁은 사주에서 장안으로 오면서 사냥을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머리만 가져오면 더 이상의 반론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진혁이 동정상단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니 다른 말을 했다.
“그런 건 저희가 알지 못합니다.”“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히 가장 먼저 잡은 걸 드렸잖습니까?”
진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동정상단 사람을 쳐다보았다. 사주에서 장안까지 동행한 동정상단의 책임자를.
하지만 책임자는 자신은 그런 건 모른다고만 말했다. 말하면서 표정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 말만 반복했다.
‘아. 이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진혁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자책했다. 동정상단은 무당과 아주 밀접한 관계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 그런 명령이 내려왔으니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쩌겠나. 다 알면서도 지금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책임자의 얼굴에 살짝 괴로워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흔적은 금방 사라졌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면 되는 것이구요.”
책임자는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하더니 자리를 떴다. 진혁은 그의 말을 들으며 안타까웠다. 조직에 속한 일부가 얼마나 무력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런 명령을 내리는 놈들이 나쁜 거지 밑에 있는 사람이야 뭔 죄냐.”
당당하게 거부하면 된다고? 그게 말처럼 쉽나.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데? 아니지. 이곳에서는 그냥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상황이니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천문상단에도 분명히 연락이 갔을 텐데..”
천문상단도 오대검파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오대검파 중 수장 격인 무당파의 심기를 거스리기는 쉽지 않은 일.
그래도 동정상단보다는 설득할 여지가 생각했다. 진혁은 곧바로 진원휘가 지금 어디 있는지 수소문했다.
천문상단의 상단주인 진원휘는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남의 개봉에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진혁이 단숨에 달려갔다.
“알유의 머리 말인가? 내가 잘 가지고 있지.”
진원휘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었다.
“내 솔직하게 말하지. 무당에서 연락이 왔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진원휘는 입맛을 다시더니 이야기했다.
“뻔한 거 아닌가. 물건을 건네주지 말라고 했지.”
그러면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었다고 했다. 원래 천문상단에게 돌아가기로 했던 물량을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융중산에서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내용이었다.
“급했나 보군요”“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데. 무당으로서야 당연한 일이지.”
진원휘의 말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오대검파의 지원을 받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
무당만이 아니라 오대검파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천문상단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을 만한 일.
하지만 진혁은 웃었다. 진원휘가 이렇게 말을 해주는 건 머리를 들고 북경으로 가겠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럴 게 아니라면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지금 어찌할지 고민 중이라네.”
진원휘는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한 번 맞춰보라는 다소 장난기 섞인 표정. 진혁은 북경에서 보게 될 것 같다는 대답을 하려 했는데, 그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현허진인이?”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진원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조금만 있다가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이거 얘기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이거 그만 끝내야 할 것 같구만.”
“아닙니다. 할 이야기는 거의 했는데요.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지. 조만간 다시 보자고.”
진혁은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진원휘의 방에서 나가니 사람이 안내를 해주었다. 현허진인과 마주치지 않게 다른 길로 안내하는 듯했다.
진혁의 예상대로 현허 진인은 다른 길을 통해 진원휘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진혁이 진원휘를 만나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급히 달려온 거였다. 혹시나 있을 변고를 사전에 막으려고.
“어쩐 일이십니까. 바쁘신 분이 이곳까지 다 오시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다소 날이 선 내용. 현허진인은 허허 웃으면서 대답했다.
“천문상단과 무당이야 가까운 사이 아닙니까.”
자리에 앉은 현허진인은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물어보았다.
“현천문의 하진혁이라는 자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왔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알유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진원휘는 꺼림칙할 수도 있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현허진인은 잠시 차를 마시는 척하면서 진원휘의 모습을 살폈다.
하지만 진원휘가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현허진인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고서는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아직 답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말해주어야겠지요.”
현허진인은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뭔가를 바라고 있는 거군. 이 기회에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겠다는 거겠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 더 양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권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았다.
“이 정도는 우리 쪽에서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이익을 싫어하는 상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인에게는 이익이 우선이지요.”
현허진인은 일이 잘 해결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원휘의 말을 듣고는 안색이 싹 변했다.
“알유의 머리를 가지고 북경으로 갈 생각입니다.”
“뭐요? 이보시오. 진 상단주. 지금 무리 무당과 척을 지겠다는 겁니까?”
현허진인은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진원휘는 태연히 받아넘겼다.
“아니. 제가 왜 무당과 척을 진단 말입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요? 지금 알유의 머리를 가지고 북경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은 현천문을 돕겠다는 거 아니냐며 현허진인은 사나운 어조로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조사를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북경에는 왜 가지고 가는 거요?”
진원휘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황제 폐하께 진상을 드리려고 가져가는 겁니다.”
현허진인은 말문이 막혔다. 기가 막힌 방법 아닌가. 황제에게 진상하는 거라고 하면 뭐라고 할 수도 없다.
황제는 무척 기뻐할 거다. 엄청나게 귀한 물건이니까. 게다가 현천문을 돕는 것도 된다. 당연히 뿔의 진위를 가리는 데 참고하라고 할 거니까.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당을 엿 먹이겠다는 거다. 그것도 트집 잡기 어려운 방식을 통해서.
“진 대인. 정녕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아니. 왜 그러십니까.”
진원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선택의 기로가 항상 있는 거지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진원휘의 말에 현허진인은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차후를 염려해야 했다. 도검당주가 현천문 사람에게 넘어가면 문제가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나중에 다시 봅시다.”
현허진인은 그 말을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거 아주 복잡해졌어..”
현재 오대검파가 가지고 있는 표가 넷이다. 부맹주인 무당의 현허진인, 총관당주인 화산의 매화일검, 전금당주인 왕표. 그리고 접객당주인 아미의 청류사태.
소림 쪽은 둘이다. 원로들의 대표인 개방의 협개와 호법대주인 소림의 무공대사.
가장 약체였던 세가 연합이 셋이 된다. 순찰당주인 남궁원청, 식약당주인 당추엽. 그리고 이번에 도검당주가 될 인물.
“하지만 현천문은 세가 연합과 꼭 같이한다고 볼 수는 없지.”
그래서 셈이 복잡한 거다. 현허진인은 현천문이 무림맹주를 선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황제는 알유의 머리를 진상 받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진상품을 바친 천문상단을 특별히 배려하라는 말까지 했다.
태후도 진원휘를 직접 불러 치하했다. 귀한 물건을 바쳐 황실의 위엄을 세워주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리고 이 사실을 안 손제형은 뿔의 진위를 가리는 데 참고하고 싶다고 했고, 황제는 기꺼이 승낙했다.
손제형은 일부러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거대한 괴물의 머리를 움직였다. 황궁에서부터 조사하는 관청까지 일부러 거리를 지나 움직였다.
“그자가 뭘 좀 아는구나.”
태후가 흡족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채 공공이 대답했다.
“니예. 아주 영민하고 황제 폐하에 대한 충심도 깊은 자입니다.”
“공공이 각별히 신경을 써주세요. 그런 충신들이 많아야 이 나라가 잘될 것 아닙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태후는 흐뭇한 표정으로 저 멀리 지나가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괴물의 머리를 가지고 가는 행렬을.
괴물의 머리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거의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이건 다른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군요. 알유의 뿔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형태나 재질이 너무나도 같지 않소이까. 게다가 크게는 이쪽이 더 큽니다.”
청광진인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증거가 워낙 명확해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거다.
그는 곧바로 나가서는 대책 회의를 했다.
“누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하겠소이까?”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현천문 사람들은 누가 되더라도 협조하지 않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으니까.
“그동안 당한 일이 있으니 우리에게 협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소림과 세가 연합이 손을 잡는다면..”
그렇게 되면 그쪽이 다섯 표다. 무림맹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소림 쪽과는 손을 잡을 수 없는 일이고..”
“그건 세가 연합도 마찬가집니다.”
그동안 세가 연합과 이런저런 악연이 좀 쌓였다. 게다가 그들이 세 표나 가지고 있으니 소림과 손을 잡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면 개별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여지가 거의 없었다. 무공대사나 협개는 절대로 포섭이 불가능한 사람들. 당추엽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약간 가능성이 있는 자가 순찰당주인 남궁원청인데, 상황이 세가연합에 좋으면 굳이 돌아서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그나마 현천문에서 하진혁이라는 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그건 왜인가?”
현허진인은 하진혁은 공명정대한 성격이라서 원리원칙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무림맹주 자리를 놓고도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질거라는 거였다.
“그럴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그 자인 것 같습니다. 손제형과 비슷한 성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진혁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물론 그 소식을 나중에 알게 된 진혁은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