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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하는 거다.
“아무래도 도검당주는 문주께서 하셔야..”
“아닙니다. 다 늙은 사람이 맡아서 뭘 하겠습니까. 젊은 활력을 불어넣어야지요.”
제갈중선과 온위립은 누구를 도검당주로 해야 하는지를 상의했다.
“그런데 다른 변수는 없겠습니까?”
“두궐륭 대장군이 확인해준 것인데 그럴 리가요.”
두궐륭 대장군은 적당히 선을 그었다. 무당과도 이야기한 것이 있으니 아예 모른 척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무당의 편의를 봐주기는 했는데, 대신 결과에는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묘한 일이 발생했다.
제갈 세가와 현천문이 근소하게 무당을 앞선 것이다. 다급해진 무당에서는 그 부분도 손을 좀 써달라고 청탁을 했다.
대장군은 무당과 태후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들어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두정풍과 엄경립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로 대단한 자들이라면 굳이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가까워지게 되면 좋은 일. 그래서 원래대로 확정했다.
“황실에 이미 보냈으니 끝난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문주께서는 누구를 더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단순히 실적만 보면 호승렴이 나았다. 하지만 그건 진혁이 병사들을 지키는 데 더 신경을 써서 그런 것.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서도 호승렴과 별 차이 없었다. 온위립은 고심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성적에서는 승렴이가 앞서긴 하는데.. 좀 고민스럽긴 합니다.”
둘의 사이를 잘 아는 온위립이라 더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당에서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진인의 말은 결과를 황실에서 다시 검토를 해보자? 이런 얘기인 것이죠?”
태후는 청광진인에게 되물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황제 폐하가 하시는 일이니 신중해서 나쁠 게 없지요.”
“하지만 대장군이 불쾌해 하지 않겠어요?”
청광진인은 황제가 하는 일인데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대장군만 장계를 올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독동창이 올린 것도 살피는 것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태후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황실의 두 축인 두궐륭 대장군과 채 공공. 그들의 세력은 너무 컸다. 어린 황제의 위세를 누를 정도로.
그런데 그런 두 명이 직간접으로 연관된 장계를 황제가 임명한 자가 다시 검토한다. 이건 두 사람 위에 황제가 있다는 걸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청광진인은 태후의 그런 심리를 알고 부추기는 거였고. 사실상 수렴청정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니 태후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일단 중신들과 이야기를 좀 해 봐야겠어요.”
태후는 자기 대신 이 내용을 주청할 대신이 누가 있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채 공공이나 대장군 두궐륭 쪽과도 사전에 이야기는 나눌 생각이었다.
수렴첨정을 하는 태후라고 해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황제라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
하지만 자신의 뜻이 관철될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채 공공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대장군도 굳이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흐음.. 그래. 그자라면 성격이 꼬장꼬장하니 제격이겠구나.’
태후는 곧바로 대신 중에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중신이 생각났다. 마침 그가 북경에 와 있으니 그가 제격이었다.
***
특별한 반대는 없었다. 내심 탐탁지 않게 생각은 했겠지만, 반대를 할 명분은 없었다. 세간에 말이 많아 신중을 기한다는 데 뭐라 할 것인가.
그래서 태후가 추천한 자가 담당자가 되었고, 내용을 공정하게 조사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문 역할을 하는 자 중에 청광진인이 포함되었다.
‘허어.. 이거 생각보다 쉽지가 않구나..’
어떻게든 무당을 무림 문파 중에서는 가장 위로 올려야 했다. 그래야 도검당주 자리가 무당에게 돌아오니까.
하지만 내용을 살피다 보니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워낙 꼼꼼하게 기록이 되어 있었고, 태후의 친척이라는 중신은 말이 잘 먹히지 않았다.
청광진인 입장에서야 답답했겠지만, 당연한 일이다. 태후의 목적은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거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기록의 사실 여부를 철저하게 살피라고 했다.
태후는 무당이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상관없었다. 그저 채 공공과 두궐륭 대장군의 보고를 황제가 꼼꼼하게 조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뭔가 수를 내야 할 것인데..’
이 일을 맡은 손제형은 다른 방법이 먹힐 인간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한 사람이니까.
공연히 뇌물 같은 걸 생각했다가는 오히려 치도곤을 당할 거다. 그래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밑에 있는 자 중에서 한 명이 좋은 수를 내놓았다.
“알유를 잡은 전공을 문제 삼자. 이거구나.”
“그렇습니다. 다른 거야 건드리기 어렵지만, 알유 건은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청광진인은 무릎을 탁 쳤다.
알유를 잡은 일은 제갈 세가와 현천문의 전공 중에서도 상당히 큰 부분이었다. 그걸 제외시킬 수가 있다면 무당이 현천문보다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청광진인은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한 후에 다음날 회의 때 이의를 제기했다.
“알유 건은 당사자들의 말만 있을 뿐이지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하는 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손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신뢰하기 어려운 게 맞습니다.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증거가 없다면 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청광진인은 쾌재를 불렀다. 이것으로 현천문을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게 되었다면서.
하지만 손제형은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나 참고인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렇게 까지 하실 게 있으신지.. 증거가 없으니 첨부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청광진인은 시일도 촉박하고 일도 많으니 그 공적은 빼고 넘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손제형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사안은 확인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단순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확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황제 폐하께서 큰 관심을 가진 사안이니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하겠다는 거였다. 그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청광진인은 무당 사람들과 회의를 했는데, 거기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손제형과 현천문이 잘 아는 사이라고?”
“지금 장문인의 사형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청광진인은 탄식을 했다.
“허어.. 그럼 이거 큰일 아닌가. 분명히 현천문의 편을 들 터인데.. 확인을 하고 넘어가겠다는 것도 혹시 봐주기 위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현허진인이 이야기했다.
“손제형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봐주고 그러는 관리가 아닙니다.”
그는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관리.
그래서 아는 사람의 일은 오히려 더 엄격하게 처리한다. 아는 사람의 일은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쉽다.
그러니 아예 그런 말이 나오지 못하게 아주 깐깐하고 엄하게 일처리를 한다는 거였다.
“오히려 현천문에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저들도 어쩔 수가 없을 겁니다.”
제갈 세가와 현천문은 증거가 있으면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느꼈다.
“이거 공로를 인정 안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증거는 이미 없어졌는데..”
괴물들이 난리를 칠 때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다. 일단 살고 봐야 했으니 무겁거나 부피가 큰 짐은 버렸다.
“허어.. 무당도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이 그 자리를 가져가겠다는 거군요.”
온위립은 정말 집요하고 무서운 자들이라고 말했다.
제갈중선은 그나마 무림맹의 식구인 제갈 세가이니 이 정도이지 다른 방파였으면 훨씬 더 심한 일을 겪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 되겠습니다.”
온위립은 지금까지는 누가 도검당주가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데서 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어찌될지 뻔히 보입니다. 몰랐으면 모르겠지만, 이제 알게 되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군요.”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어찌하겠소이까?”
제갈중선은 안타깝다며 말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이 나타났다.
“제가 뿔을 가지고 있소이다. 머리야 워낙 커서 가지고 오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지휘관의 말에 모두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요. 있어 보자. 내가 병사들을 시켜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병사들이 장군의 막사에서 커다란 뿔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그걸 보자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날의 치열했던 싸움. 진혁의 엄청난 활약. 그리고 고기를 먹었던 일. 나중에 뿔 하나가 부러져서 안타까워했던 것까지.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얘기를 하지 그러졌습니까?”
“하하. 이게 워낙 일이 다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나도 잊고 있었지 뭡니까.”
지휘관은 보고를 한다과 하고는 깜빡하고 있었다며 겸연쩍어했다.
사람들은 괴물의 뿔이 부러진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렇게 증거를 챙길 수가 있었으니까.
그 사실에 무당 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혁은 거대 괴물인 알유를 잡은 장본인 자격으로 소환되었다. 그가 알유를 잡은 데 가장 공이 크다고 보고서에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알유, 즉 미노타우르스를 잡은 과정을 설명했다. 자신의 활약은 적당히 넘어가고 함정을 만들고 여러 사람이 도움을 주어 겨우 잡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흐음.. 과연 엄청난 뿔이로군요. 이 정도면 증거로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면서 뿔을 보면 괴물이 얼마나 무시무시할지 짐작이 된다고 했다. 다들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청광진인은 다급했다. 이대로 가면 도검당주 자리는 현천멘에 넘어간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그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놀라운 물건임에는 틀림 없습니다만.. 이것이 알유의 뿔이라는 증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청광진인은 뿔만 커다란 다른 괴물의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청광진인에게 포섭된 사람들이 거들고 나섰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요. 이것이 알유의 뿔이라는 확증이 없는 한 전공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손제형도 사람들이 이렇게 나오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혁과 현천문의 일이니 믿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뿔은 들은 적이 없다면서 전공을 인정하면 나중에 수많은 말이 나올 거다. 그럼 오히려 현천문에 좋지 않게 될 거다.
그러니 어떤 말도 나올 수 없게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게 평소 손제형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이것이 알유의 뿔인지 아닌지를 따져봅시다.”
손제형은 진혁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게 알유의 뿔인지 증명을 할 수 있겠소?”
청광진인은 씨익 웃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맞는다고 주장하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증명할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청광진인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진혁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다.”
“뭐?”
청광진인은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급히 헛기침을 하면서 수습하기는 했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떤 방법인지 말해줄 수 있겠소?”
손제형이 묻자 사람들은 전부 진혁의 입만 쳐다보았다.
“알유의 머리가 있습니다. 온전하게 뿔까지 달려 있는 머리입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증명이 될 것 같습니다.”
진혁은 청광진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 새꺄. 내가 너 같은 새끼 꼴 보기 싫어서라도 반드시 도검당주 가져온다. 가져와서 아주 엿을 시원하게 드시게 해 줄게.
진혁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