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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진원휘가 융중산에 도착한 것은 진혁이 출발하기 얼마 전이었다.
“허허. 이거 이제는 같이 일하자고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구먼.”
최근 가장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혁과 현천문 사람들이었다. 황실이나 무링맹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그 이름을 알았다.
괴물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 괴물을 엄청난 실력으로 때려잡았으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게 당연했다.
“별일 없으셨죠?”
“항상 그렇지. 솔직하게 말하면 최근에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네.”
진혁은 진원휘의 기력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쇠한 것 같다고 느꼈다. 둘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는데, 진원휘는 주로 무림맹과 관련된 걸 물었다.
그는 도검당주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이냐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 현천문에서 한 명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꽤 높다는 거로군.”
“지금까지 돌아가는 걸 보면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현천문은 무당이나 소림보다 월등한 성적을 냈다. 그리고 그게 전부 황제에게 보고되었다. 그래서 무당이 두궐륭과 손을 잡았다.
두궐륭으로 책임자가 바뀌고 나서 역전을 노리겠다는 속셈. 하지만 갑자기 괴물이 이상 행동을 보여 모든 것이 틀어졌다.
“자네도 알겠지만 도검당주 자리는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이지.”
무림맹주 자리 때문에 그렇다. 도검당주도 한 표가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도검당주 자리가 현천문의 사람에게 돌아가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진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다른 데를 통해서도 충분히 들으실 수 있을 텐데 굳이 찾아오셨습니까?”
“가장 가까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말이지. 그리고 자네를 한번 보고 싶기도 했고.”
진혁은 도검당주를 선출하기 위한 각축장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사정에 관해 잘 안다.
진원휘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각 파벌의 동향을 자세하게 물었다. 진혁은 아는 대로 전부 알려주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판도가 아주 묘하게 돌아가는구먼.”
“그런데 그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을 두십니까?”
진혁은 웃으면서 물었지만, 진원휘의 표정은 심각했다.
“자네니까 하는 말이지만 천문상단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아니 4대상단의 한 곳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그건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진원휘는 씁쓸하게 웃었다.
천문상단의 가장 큰 후원자는 오대검파였다. 관부나 군부는 물론이고 여러 곳에 인맥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오대검파가 가장 든든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동정상단이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일이 틀어진 거다. 천문상단의 이권을 조금씩 침범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다 가져가려 하고 있었다.
동정상단의 상단주인 왕표가 무림맹의 전금당주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더 심해졌다. 만약 돈황에서의 이득이 없었다면 천문상단은 정말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거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겠나. 살아남으려면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서 도검당주 자리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군요.”
“그렇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대비를 할 테니까 말일세.”
진원휘는 웃으면서 현천문에서 도검당주가 나오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누가 되든 원리원칙대로 할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관계 같은 건 다들 좋아하지 않아서요.”
진원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아온 현천문 사람들의 성향상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이익을 떠나서 현천문에서 도검당주가 나왔으면 좋겠군. 그래야 무림맹도 좀 바뀔 테니까.”
“만약 우리 중에서 누구든 도검당주가 되면 불합리한 처사는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공정한 기회는 보장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거라도 보장된다면 바랄 게 없겠어.”
그동안 심하게 시달렸는지 진원휘의 말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거대 상단의 상단주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상단 사람 중 하나가 와서는 진원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진원휘의 표정이 마구 일그러졌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건 분명히 우리가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현허진인의 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어쩔 수가 없다고..”
진원휘는 눈을 감았다. 이건 경고이자 보복이었다. 상단주 주제에 무림맹 부맹주인 자신에게 와서 따진 것에 대한 응징.
진원휘는 이를 꽉 물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진혁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거 오랜만에 만나서 못난 꼴만 보였군. 그래. 다음에는 서로 좋은 얼굴로 보세.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것 같으이.”
“괜찮습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날씨가 항상 흐리기만 하겠습니까. 비가 오고 나면 무지개가 뜰 겁니다.”
“허허. 자네는 이제 스물이 조금 넘은 사람이 내 또래처럼 이야기를 하는가?”
진원휘는 잠시 웃고는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면서 나갔다. 진원휘는 다른 때보다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걸어갔다. 멀리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무척 처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
“아니. 당문의 문주와 담판을 지었단 말씀이십니까?”
핫산은 철각패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핫산은 직접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당문의 책임자를 찾아내서 손을 보거나, 관리를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하지만 철각패도는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공략해버린 거다.
‘아니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지.’
생각해보니 협상이 잘 되면 그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은 없다. 이곳 책임자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차피 당문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알고 나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핫산은 그 상황에서 철각패도와 같은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상황 판단력과 머리가 좋아야 한다. 배짱도 필요하고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당문이라는 거대 문파의 문주와 담판을 지을 수 있는 협상력도 마찬가지.
‘그걸 혼자서 해냈다. 참모나 누군가가 조언을 한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핫산은 철각패도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 뭐지?’
지금까지 놀란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가서 다 때려 부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영민하게 움직이다니.
“그러면 이제 문제가 없겠군요. 관리 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지..”
철각패도는 공동파와 아미파가 당황하겠지만, 순순히 내주지는 않을 테니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며칠 내로 혈도 임평백이 도착할 거야. 그 녀석이 도착하면 상황은 끝이지.”
철각패도는 공동파에 가서 무력시위를 할 생각이었다. 물론 상단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그냥 사혈련의 대장로로서 공동파를 방문할 거다.
가서 몇 놈 적당히 주물러주면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할 테지. 죽이거나 하면 골치 아프다. 그냥 보름에서 한달 정도 푹 쉴수 있게 해주면 된다.
그 정도면 놈들도 충분히 알아들을 거다.
“내가 그렇게 하는 사이에 혈도가 도착할 거다. 그 사이에 상회 만드는 걸 진행해서 마무리하고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도 빠르게 진행하면 된다.”
“그쪽으로 관심을 끄는 사이에 민심을 잡으라는 거군요.”
“그렇지. 일단 민심을 잡고 나면 놈들도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관리도 마찬가지고.”
백성들에게 좋은 일 한다는데 관리가 뭐라고 할 것인가. 명문 정파인 공동파와 아미파는 더 나서지 못할 거다.
“순식간에 난주를 접수하게 되겠군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혈련은 상관없는 거다. 표면적으로는.”
공식적으로는 원보 상단과 핫산의 바드 상단이 당문과 손을 잡고 자리를 잡는 형식이 된다. 철각패도는 투자자이고.
물론 그걸 가지고 시비 거는 놈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철각패도의 돈으로 하는 일이 뭔가? 낮은 이자로 돈을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일이다.
“아주 미치고 환장할걸? 확 다 뒤엎고 싶기는 한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철각패도의 말대로 공동파와 아미파는 난리가 났다. 자신들이 이권을 나눠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덩치가 큰 놈이 들어와서 난주를 낼름 먹어버렸다.
“아니. 이거 어쩝니까? 지금 우리가 뒤를 봐주던 상인들과 무관에서 난립니다. 난리!”
공동파의 장로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하소연을 했다. 상인들과 사람들이 와서는 험한 소리를 하면서 따졌기 때문이었다.
장로 신분으로 언제 그런 자들에게 욕설을 들어보았겠나. 하지만 그 사람들의 분노가 워낙 대단했다. 게다가 뭐라고 할 말도 없었고.
“끄응.. 상황을 다들 알고 있지 않소이까.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무력으로는 택도 없다. 철각패도만 없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다른 곳으로 가기만 기다렸는데, 이 치사한 놈이 먼저 찾아와서는 최고수급 서너 명을 눕혀버렸다.
그것도 대결이라는 명분을 내걸고서는 아주 교묘하게 수를 썼다. 큰 외상은 없지만 한 달 정도는 족히 기운을 다스려야 할 내상을 입힌 거다.
그런 상황이라 철각패도가 없어도 이게 쉽지 않았다. 혈도 임평백이 버티고 있으니까. 게다가 당문도 부담스러웠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고 있어요. 그게 더 문젭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입니까. 우리도 그들처럼 이자를 내리기라도 하자는 겁니까?”
철각패도는 미친놈이었다. 이자를 그렇게 싸게 하면 남는 게 없다. 돈을 빌려주는 것도 다 돈을 벌자고 하는 짓 아닌가.
인건비도 들고 유지비도 들고 이거저거 들어가는 돈이 많다. 그걸 다 제하고도 남아야 하니 어느 정도 이상의 이자는 받아야 한다.
그런데 철각패도는 그것보다도 낮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다. 이건 그냥 돈을 퍼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야 당연히 좋아한다. 싸게 돈을 빌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사업은 다 망하게 생겼다.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후우.. 이 봐요. 다들 알잖습니까. 무림맹에서 지금 이쪽으로 전력을 보낼 수 없다는 거.”
현재 무림맹의 정에는 대부분 해타산에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곳에 지원을 보내기는 어려울 거다.
무림맹주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한발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덜어지는 거다. 그러니 위험한 일에는 서로 나서지 않을 거다.
그리고 철각패도는 대단히 위험한 놈이다.
“하아.. 당했습니다. 완벽하게 당했어요.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겁니다.”
“철각패도가 정말 그랬을까요? 소문에는 상당히 과격하고 패도적인 자라고 하던데..”
장로의 말에 공동파 장문인인 영천진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문을 끌어들인 것만 봐도 모르겠습니까? 단순하게 힘만 과시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런 자가 사주를 차지하고 이곳 난주까지 움켜쥘 수 있었겠습니까?”
장문인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면서.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굳은 얼굴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무어라도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시각, 철각패도는 난주 거리를 걷고 있었다.
“뭐. 또 없을까? 사람들이 필요한 걸 해주어야 하는데.. 굶는 사람들을 위한 급식소라도 만들어?”
철각패도는 그거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당장 핫산을 찾아가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무료 급식소? 뭐 그런 걸 만들어 음식을 제공하란 거군요. 그리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원하면 허드렛일이라도 시키고 말입니다.”
“그래. 그 자금은 내가 준 금액에서 충당하도록 하게.”
핫산은 알았다고 했다. 자기 돈 쓰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게다가 상회 평판이 좋아질 테니 나쁠 것 없는 일이다.
철각패도는 그렇게 지시를 하고는 뭐가 급한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여기도 조금 지나면 동상 세워지겠군. 이거야 원. 좋은 일을 못 해서 안달이 난 사람 같지 않은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핫산은 공중을 날아가는 철각패도를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