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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20화 (12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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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철각패도는 이번 제안이 당문에게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주에 와 있는 놈이 멍청해서 그걸 모를 뿐이지.

놈은 원보 상단과 바드 상단의 재물을 빼앗아서 나눠 갖는 것에만 눈이 벌게져 있는 거다. 멍청하게.

그래서 철각패도는 당문의 가주를 직접 만나러 당가로 향했다. 그리고 은밀히 전언을 넣었다. 당문의 문주와 독대를 하고 싶다고.

“이거 정말로 사혈련의 대장로가 올 줄은 몰랐구려.”

당문의 문주인 당원엽이 조금은 놀란 투로 말했다.

처음에 사혈련의 대장로인 철각패도가 만나자고 해서 거짓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당문에게 다시 없을 기회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거절하면 정문부터 가루로 만들면서 만나러 가겠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답장을 보냈다.

당문을 상대로 이런 내용으로 장난을 칠 사람은 없다. 당문의 복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철각패도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까지 용케 오셨구려.”

“제법 경계가 엄해서 애를 좀 먹었지.”

애를 먹은 사람치고는 너무 멀쩡했다. 당원엽은 철각패도가 진법까지도 해박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진법을 모른다면 당문의 비처인 이곳까지 이렇게 손쉽게 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가주가 머무는 전각 뒤편에 있는 정원.

당문에서도 이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할 이야기라는 건 뭡니까?”

“혹시 난주에서의 일을 알고 있나?”

표정을 보니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듯했다. 철각패도는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손을 잡지? 당문으로서도 큰 기회 아닌가.”

“글쎄요? 저는 엄청난 위기인 것 같습니다만..”

당원엽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사혈련과 당문이 손을 잡는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 잘 아실 것 같습니다만..”

“그게 무슨 말인가? 사혈련과 손을 잡다니?”

철각패도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눈을 크게 떴다.

“원보 상단과 서역의 바드 상단. 이렇게 두 상단과 손을 잡는 거지.”

“그런 눈속임을 다른 곳에서 그냥 넘어갈 것 같습니까?”

당원엽은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형인 당추엽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듯했다. 아니. 보통의 당문 사람과도 좀 달랐다.

당문 사람들은 대체로 다혈질이었다. 하지만 문주인 당원엽은 무척이나 점잖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성세를 이끈 문주다. 치밀하고 심계가 뛰어난 자.

철각패도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다 그런 거 아닌가? 소림이나 무당도 뒤로 손을 써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텐데..”

“...”

당원엽은 말없이 철각패도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걸 다른 데서 알면서도 문제 삼지 않지. 왜?”

철각패도는 당원엽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 봤자 자신들이 손해라는 걸 아니까. 문제는 그거 아닌가? 그런 판을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사혈련의 대장로는 참 재미있는 분이군요.”

당원엽은 웃었다. 철각패도의 소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자가 단순무식하고 괴팍한 성격에 무공만 강한 자라고?

어떤 병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눈앞에 있으면 죽지 않으면서 고통스럽게 하는 독을 열 가지 정도는 먹여주고 싶었다.

‘사혈련이 갑자기 세력을 키운 중심에는 이자가 있다. 단순무식? 어떤 놈이 그래?’

사실 이자의 제안은 흥미로웠다. 철각패도의 말대로 된다면 당문에게는 큰 이익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권의 변동이 생겼다? 당문이 큰 이익을 얻었다는 건 누군가는 큰 손해를 봤다는 거다. 그럼 거기에서 가만히 있을까?

공동파와 아미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철각패도는 그걸 명확하게 짚고 있었다.

“나보고 재미있다고 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군. 반갑긴 해. 내 농담을 이해하는 자가 있다니 말이야.”

철각패도는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장군 두궐륭이라면 어떤가?”

“호오.. 대장군이라면 차고도 넘치지요. 하지만 그만한 배경이 있으면 굳이 당문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혈련이 대장군 두궐륭과 가까이 지낸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다.

“대장군이 대놓고 사혈련을 봐줄 수야 있나. 적어도 그럴듯한 간판이 필요하지.”

철각패도는 원보 상단과 바드 상단은 난주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라 간판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적당한 그 지역의 상단과 손을 잡으려 했는데 이름값이 모자라니 당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정도 구색은 갖추어야 대장군도 비호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철각패도는 거기에 몇 가지를 덧붙였다.

“당문도 무림맹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사파 취급을 받지 않나? 지들이 필요할 때는 빨리 오라고 해서 부려 먹으면서 막상 문제만 해결되면 꺼림칙하게 보고 말이야.”

철각패도의 말 그대로였다. 독은 무림인이라면 다들 질색한다.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무공으로 겨루어야지 독을 쓰는 건 비겁하다고 여기고.

때문에 당문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복수하는 건지도 몰랐다. 얕잡아 보이는 것이 싫어서.

그런 사정이 있으니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각패도는 그렇게 말했고, 당원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는군요. 하지만 저희가 얻는 것에 비해서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대장군 두궐륭의 비호가 있을 거라는 건 말뿐이다. 그걸 믿고 이렇게 큰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거였다.

호오. 이놈 봐라? 어차피 당문이 꼭 필요한 거 아니냐. 그러니 배짱을 부리겠다. 이거군. 욕심이 과해. 그러니 무언가 더 보장받고 싶다? 이거 아냐?

분명히 당원엽도 이 제안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질질 끌려다닐 필요는 없지.

“그러면 그만두게. 반드시 당문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철각패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회는 안전한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기회와 위험은 항상 같은 곳에 있으니까.”

철각패도는 조만간 이곳을 떠날 거라고 하고는 몸을 날렸다. 당원엽은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철각패도의 말이 옳았다. 이건 당문에게 온 절호의 기회였다. 단숨에 공동파와 아미파를 누르고 사천 제일의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

다소의 위험이 있지만, 감수하고 진행해 볼 만했다. 아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혹시 중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어떻게든 무마할 수는 있을 거다.

당원엽은 결국 그날 밤, 철각패도에게 연락을 넣었다.

***

진혁은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난주에서의 일도 잘 진행되고 있었고, 융중산에서는 편히 쉬고 있었다.

두정풍의 치료도 순조로웠다. 내공이 정순해서인지 치료와 회복이 모두 예상보다 빨랐다. 그런데 그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아니. 가주님이 이곳에 어인 일로..”

“허허.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할 게 있어서 왔네.”

제갈 세가의 가주인 제갈중택이 진혁을 찾아왔다. 융중산에 현천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단순히 인사를 하러 온 건 아닌 듯했다.

제갈중택은 몇 가지 서책과 종이를 꺼냈다. 진혁은 종이를 펼치다가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음? 이건..”

“역시 바로 알아보는군. 진법에 조예가 깊다고 하더니..”

제갈중택이 꺼낸 건 팔진도와 합친 진법이었다. 제갈 세가에 대대로 내려오던 옛날 진법.

“나도 진법이 큰 효과를 본다고 해서 궁금하더군. 그래서 좀 찾아보았지.”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료를 찾았다고 했다.

“일단 이 진법은 세가에서도 정확한 명칭이나 유래를 아는 사람이 없었네. 그래서 자료를 더 찾다가 보니 이런 게 나오더군.”

그는 책을 보여주었다. 아주 오래된 서책이었는데, 거기에는 이 진법이 제갈 세가가 아주 오래전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서 만든 진법 중 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 훼손되거나 없어진 부분이 많아서 내용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괴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어쩐지 효과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대 몬스터 퇴치용 진법을 제갈 세가에서 만들었다는 거잖아?“

그리고 거기에는 짐작이 가는 내용도 있었다.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 ... 괴물을 상대하는 법을 같이 살폈는데... ... ... 도움을 받아 진법을 만들...

- ...의 제자들은 모두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는 고수들이었고, 그들과 힘을 합해...

- 그것들을 봉인... 모든.. 한 번에.. 그 중심은...

진혁은 예전에 현천문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올랐다.

현천문의 개파조사가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무공을 창시했다. 제자를 여럿 받아들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가 되었다.

진혁은 제갈 세가가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진법을 개발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현천문과 함께 괴물을 막았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봉인이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그 이후로는 괴물들이 사라졌으니까 봉인을 한 거야.’

예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괴물을 모두 죽여서 없앤 건 아닐 거다. 계속해서 튀어나오니까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연상이 되었다. 현천문의 무인들이 괴물들을 물리치면서 중심부까지 이동하고, 포탈을 봉인하는 그림이.

그런데 내용이 좀 부실한 것이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자세한 기록이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예를 들면 중심부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봉인을 한다. 뭐 이런 내용이라도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것 같은가?”

제갈중택은 진법을 사용하면서 있었던 일도 묻고 진법과 관련된 의견도 물었다. 자신이 생각한 내용도 이야기했고.

둘은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자료 자체가 너무 부실해서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제갈중택은 자료가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사라진 자료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자신의 사부에게 들은 말이라면서 제갈 세가의 자료들이 상당수 사라진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제갈 세가의 세력이 더 위축된 거라면서 아쉬워했다는 거였다.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은 건가?”

“이제 멀쩡합니다. 조금 피곤했던 것뿐입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제갈중택은 내일은 다른 자료를 가지고 올 테니 그걸 보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나가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아. 내가 잊을 뻔했군. 천문상단 사람들이 얼마 후에 이곳에 온다고 하더군. 자네를 꼭 보고 싶다고 하던데..”

“아. 천문상단이요. 뭐 두정풍 장군이 움직일 수 있을 떄가지는 있을 테니까 시간이 맞으면 볼 수도 있겠네요.”

진혁은 진원휘 상단주가 떠올랐다.

진원휘는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림맹의 부맹주인 현허진인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 과하지 않소이까. 우리 천문상단도 오대검파와는 오래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거늘..”

진원휘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무당을 비롯한 오대검파가 동정상단을 너무 밀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해는 한다. 동정상단의 상단주인 왕표가 무림맹의 전금당주를 맡았으니 편의를 좀 봐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도가 있는 것이지 동정상단으로만 과하게 몰아주니 천문상단으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만했다.

“허허. 지금 상황이 좀 특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정상단이 그만큼 역할을 하니 대가를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원휘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지금 말은 동정상단을 계속 밀어주겠다는 의미였다. 왕표가 무림맹주 선출을 할 때 한 표를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소리.

그렇다는 건 천문상단은 계속 찬밥이라는 거다. 진원휘는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이해는 하지만 정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돌아온 건 같은 대답이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택의 기로는 항상 있지만, 어차피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진원휘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돈독했던 사이에 금이 생겼다. 아직은 작은 것에 불과했지만, 아예 없었던 것과는 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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