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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진혁은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피곤하면 교대할까? 너는 괴물도 거의 잡지 못했잖느냐?”
온위립이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말을 했다. 괴물을 잡지 못해서 피곤하다니. 싸우지 않았다면 당연히 피로도가 덜해야 맞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천문 사람들에게 괴물은 영양제나 보양식 같은 거였다. 그래서 일부러 괴물들이 적당히 나오는 곳을 돌파하기도 했다. 기력 보충을 하려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온 문주도 꼭 그러라고 했다. 뭐. 아직까지는 버틸 만했다.
후우. 이게 다 1인 2역으로 살아서 생긴 폐해였다. 솔직히 두 사람으로 사는 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라고. 대부분 그냥 살아가는 데도 엄청나게 피곤하잖아. 그런데 두 사람으로 살려면 얼마나 피곤하겠냐고.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다 때려치우고 쉬고 싶을 때도 있었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게 아주 묘한 구석이 있다.
‘피곤하기는 한데 계속 신경이 쓰인다니까.’
사실 진혁으로 주로 살고 철각패도로 종종 움직인다. 그런데 철각패도가 벌려놓은 일이 계속 궁금했다.
진혁은 힘을 숨기고 협객의 삶을 살다보니 좀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철각패도는 마음껏 휘저으면서 다닌다.
게다가 철각패도가 하는 일 자체가 규모도 크고 어딘가와 갈등이 있으니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그냥 쉴까 하다가도 자꾸만 철각패도로 가서는 확인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스트레스 풀러 가는 것도 있고.’
시원시원하게 때려 부술 수가 있으니 정말 통쾌했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자들을 때려잡았다.
예전에 있던 곳으로 치면 정치인이나 재벌을 때려잡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 맛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맛. 그런 즐거움이 있으니 진혁으로 다소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버틸 수가 있는 것 같았다.
“우측에 강한 놈이 있으니 조금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진혁은 달려가다가 이야기를 했다. 바로 앞에 있는 온위립과 호승렴에게만 들릴 정도로. 그러자 선두에 있던 온위립과 호승렴이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다.
“이번에는 우측에서 대형 괴물이 나오는 건가?”
“그렇겠지.‘
맨 뒤에서 따라오던 엄경립과 손경백이 중얼거렸다. 역시나 조금 가다 보니 우측에 알유 한 마리가 사냥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거대한 소 괴물은 사람들이 지나가자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오크 사냥을 계속 했다. 거리도 너무 멀었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어서 포기하는 듯했다.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능력이야.”
“그러게나 말일세. 이건 명마의 등에 날개까지 달아준 셈 아닌가.”
두 무사는 소속은 달랐지만, 서로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원래는 서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게 맞다.
정천호 엄경립은 두궐륭의 총애를 받는 자이고, 북진무사 손경백은 채 공공과 가까운 편이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제 직속이었지만, 채 공공과도 꽤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니 친해지기 어려운 조합이다. 하지만 현천문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둘은 무척 친해졌다. 무인으로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러움, 당황, 감탄, 호승심, 한숨. 여러 가지 감정을 같이 느꼈다. 그럴수록 둘 사이는 가까워졌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저 사람들은 괴물과 싸우고도 왜 지치지 않는 거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거겠지. 지금 움직이는 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어서 그런 거 아닌가.”
둘은 아무래서 그런 것 같다고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손경백이 말했다.
“어째 출발할 때보다 점점 강해지는 것 같지 않나?”
“음.. 그렇기는 한데.. 뭐 실력을 점점 드러내는 거겠지.”
“그런가? 뭔가 좀 이상하기는 한데..”
그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는 채 진혁은 기감을 넓히고 방향을 조종하는 데 주력했다.
다른 건 신경쓸 일이 없었다. 대형 몬스터만 피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를 해주었으니까. 그냥 방향만 일러주고 달리기만 하면 끝.
뒤에 있는 두정풍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건 처음부터 워낙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중간에 정신을 차린 두정풍이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제갈벽린의 경우를 보면 시간이 아슬아슬할 것 같기는 한데..’
두정풍의 상세는 상당히 위독했다. 당추엽이 영약을 먹이고 계속 관리하지 않았다면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을 거다.
당추엽도 괴의 못지 않은 의원. 두정풍으로서는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한 가지만 빠졌더라도 이미 죽었을 테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하루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구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일찍 도착하게 되는 거다. 이게 다 그동안 사냥을 하면서 현천문 사람들의 능력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좌측에 큰놈이 있습니다.”
진혁의 말에 일행의 이동 방향이 우측으로 움직였다.
“허허.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구나.”
괴의 진부는 진맥을 하면서 천운이라고 말했다. 엄경립은 두정풍이 살 수 있다는 말에 안도하면서 크게 숨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의원님. 치료하는 데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낫는 데야 보름 정도면 되겠지. 하지만 제대로 움직이려면 한 달은 걸릴 게다.”
엄경립은 깜짝 놀랐다. 이 정도 병세면 몇 달은 족히 고생해도 낫기만 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한 달이면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다니.
‘괴의 진부는 시체도 살린다더니. 과연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그 말에 진혁도 크게 기뻐했다.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다른 사람이 보아도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게 보였다. 엄경립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자신의 상관이고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지만, 이 먼 거리를 업고 뛰라고 하라면 솔직히 자신 없었다.
게다가 병자를 메고 움직인다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엄경립은 보았다. 진혁이 얼마나 환자를 신경 쓰면서 달렸는지를.
조금이라도 환자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주 힘든 방식을 취했다. 한 걸음마다 사뿐사뿐 내딛는 경공.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무척 힘든 경공이다.
그러면서도 힘든 내색도 전혀 하지 않았다. 몸이 많이 상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한다면서 환자를 걱정했다. 그리고 지금 저렇게 기뻐하고 있다.
‘진정으로 타인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강호에서 보기 드문 협객이야.’
엄경립의 생각은 괴의 진부의 말을 듣고서는 더 굳어졌다.
“그런데 이놈 얼굴이 왜 이러냐? 쇠를 씹어먹어도 멀쩡할 것 같은 놈인데.”
아닌게 아니라 진혁의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였다. 그러자 온위립이 사정 설명을 했다. 북경 인근에서부터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쯧쯧.. 쓰러지지 않은 게 용하구나. 내가 보신을 할 거를 좀 지어 주마.”
진혁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들 먹고 푹 쉬라고 했다. 다들 진혁의 상태를 염려했으니까. 오죽하면 그 강인하던 진혁이 얼굴이 반쪽이 되었겠나.
엄경립도 감탄하면서 돌아가면 두궐륭 대장군에게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진혁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이제 철각패도 일을 마음껏 볼 수 있겠구나. 번갈아 가면서 일하느라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진혁은 살짝 연기를 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다음 날 아무래도 당분간 좀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려무나. 아무래도 무리를 했으니 충분히 쉬어야 할 게다.”
그렇게 진혁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난주에서는 철각패도의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다.
***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어느 지역이든 새로운 세력이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은 법이지. 그런데 생각보다 놈들이 머리를 굴렸다고?”
놈들도 자기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무력으로 어설프게 덤볐다가는 오히려 당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방식을 취했다.
“관부가 걸고 넘어지면 골치가 아픈데..”
“저희도 관부와는 인연이 없는지라..”
핫산도 낭패라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적당히 기름칠을 하면 넘어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파 쪽으로부터 먹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원래 관에서 훼방을 놓기 시작하면 정말 피곤한 법이다. 그렇다고 관리를 때려눕힐 수도 없는 일이고.
“관리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건 문제가 없는 건가?”
“다른 문제야 사소한 거지요. 하지만 관의 문제는 손을 쓰기가 쉽지 않아서..”
철각패도는 어떻게 관리를 구워삶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여러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시간이 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도 상대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다.
‘가능하면 빨리 해결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굳이 세 곳을 모두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철각패도의 목표는 포인트를 얻는 거다. 그러니 세 곳 중에서 한 곳 정도는 손을 잡아도 된다.
‘관리에게 약발이 먹힐 수 있는 곳. 그리고 가능하면 이곳에서 세력이 약한 곳이 좋겠지.’
철각패도는 일단 관리와의 친분 관계를 따졌다. 그런데 정파 세 곳 모두 비슷했다. 그렇다면 아미파나 당문과 손을 잡으면 된다.
공동파는 어차피 이곳이 자신들의 권역이었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제외.
“아미파와 당문 중에서 손을 잡는 건 어떤가?”
“호오.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핫산은 신기하다는 듯 철각패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기는 했다. 그냥 보면 정말 무식해 보였는데,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건 정말 계산적이었으니까.
노련하고 심계가 깊은 사람. 핫산은 이런 자가 천하를 도모한다면 황제의 자리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좀 알아본 게 있습니다. 그래도 둘 중에서는 당문이 조금 나아 보이더군요.”
“그래? 그건 어째서 그런가?”
당문은 정파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문파다. 독과 암기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파일방에 눌려서 세력이 약했다. 사천 내에서도 영향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었다. 이곳 난주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런데 최근에 조금씩 세력이 커지면서 이곳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거였다.
“그러면 일단 당문과 만나보는 게 좋겠군.”
“원보 상단을 통해서 협상을 해보겠습니다.”
핫산은 아무래도 이방인인 자신보다는 원보 상단이 협상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철각패도도 찬성했다.
자신이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자신은 엄연히 사혈련의 대장로다. 그래도 무림맹의 일원인 당문인에 사혈련과 손을 잡는 것 같은 그림이 되는 걸 받아들이겠나.
그래서 원보 상단에서 사람이 나섰다. 서로에게 이익이니 어느 정도는 말이 될 줄 알았다.
“뭐라? 사혈련 뒤나 빨아주는 주제라고 했다고?”
언제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철각패도는 중얼거렸다.
“세상은 넓고 미친 새끼는 넘쳐 나는구나.”
그는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그런데 핫산이 달려와서는 결사적으로 말렸다.
“지금 놈이 일부러 자극하는 겁니다. 문제를 일으키면 여기서 자리 잡는 일은 포기해야 합니다.”
핫산은 관에서 이쪽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자극하고 조금만 말썽을 부리면 그걸 핑계 삼아서 수작을 부릴 거라고 말했다.
“원보 상단과 바드 상단이 한 짓이라고 몰고 가서 재산을 모두 빼앗을 거라고 합니다.”
그 말을 한 놈은 이미 어디론가 도망쳤고, 잔챙이들만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니 가봐야 함정에 빠지는 거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이봐. 핫산.”
철각패도의 말에 핫산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철각패도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화를 내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핫산은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생긴 것만 보면 정말 그랬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게 보이는 사람을 꼽으라면 손가락 안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두고 봐라.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니.”
철각패도는 그 말을 하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남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