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7 / 0150 ----------------------------------------------
최고는 누구인가.
현천문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막사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두궐륭 장군의 심복들이었는데, 무림맹 사람들도 몇 명 눈에 띄었다.
두궐륭 장군은 아들 앞에서 침통한 표정을 한 채 앉아 있어서, 현천문 사람들은 당추엽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했다.
두궐륭 장군은 설명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어떤 상황인지는 들었으니 알고 있을 것이오.”
그는 현천문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다소 정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최대한 빨리 괴의 진부에게 가야 하는 상황이오. 가능하겠소?”
최단코스를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괴물이 바글바글한 곳을 지나야 한다. 문제는 환자를 어느 정도는 보살피면서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잘 되면 좋겠지만, 중간에 두정풍이 죽기라도 한다면 낭패. 현천문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혁이 나섰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장군.”
“어렵다? 왜? 길을 뚫는 것이 어려워서 그런가? 아니면 환자 때문에 그러한가?”
진혁은 길을 뚫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환자를 잘 돌보면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저희가 가면 그만큼 병사들의 피해가 커집니다.”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죽어가는 대장군 두궐륭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소리고 들렸다.
온위립을 비롯한 현천문 사람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두궐륭 만큼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허.. 병사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군..”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신 겁니다.”
진혁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괴물이 난동을 부렸을 때 미리 알아채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일. 제갈 세가와 현천문이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으며, 그로 인해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었는지.
“두정풍 장군의 상세는 심각합니다. 솔직히 빨리 간다고 하더라도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정풍의 목숨 만큼 병사들의 목숨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장군님의 아드님이 아니라 그냥 병사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셨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병사를 위해서 현천문의 전력을 뺄 멍청이가 어디 있겠나.
“내 아들은 병사가 아니다.”
“병사들의 목숨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장군 두궐륭은 가만히 진혁을 노려보다가 사람들을 나가게 했다. 그는 진혁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 귀가 많은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부분 내보냈다.
“황궁으로 오라는 명을 지금 어긴 상태라지? 그게 얼마나 중한 죄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두궐륭의 말에 현천문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까지는 괴물과 싸우느라 잊고 있었는데, 다시 기억이 떠오른 거였다.
두궐륭은 그 모습을 보더니 제안을 했다. 그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제독동창이 이미 자네들의 전공을 잘 적어서 올렸더군. 그러니 이번에 내가 사정을 설명하는 장계를 올리면 무어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게야.”
조정의 중신은 채 공공과 두궐륭을 따르는 두 무리로 나뉜다. 그런데 양쪽에서 모두 비호를 하면 황제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궐륭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협박이 말 뒤에 숨어있는 거다.
진혁은 그런 걸 모두 눈치챘다. 하지만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지만, 병사들의 희생이 막심할 겁니다. 괴물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의 힘이 가장 필요한 곳은 이곳입니다.”
진혁의 말에 대장군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병사들의 희생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란 말인가. 고작 병사들 때문에? 하지만 곰곰이 궁리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나 현천문 사람들의 됨됨이가 원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말 내 앞에서 이런 식으로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대적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나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주 꼬장꼬장한 학자 몇이 그랬었지만, 조용히 죽이고 난 후부터는 그러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진혁이라는 자는 진심인 것 같았다.
‘허어. 진정으로 미친놈이로고. 어찌한다.. 이런 자는 상대하기가 어려운데..’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 그런 스타일을 상대하는 건 무척 까다로웠다.
두궐륭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자신이 급한 상황이다. 지금 협박이나 다른 수를 쓸 수도 없었다. 아들의 상세가 워낙 위독했으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두궐륭은 손을 들었다. 뭐가 어떻든 일단 아들을 살리고 나서 생각해야 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되겠나?”
진혁은 그렇다고 하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두궐륭은 옆을 바라보았다.
“온 문주의 생각도 같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온 문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두궐륭은 피식 웃었다.
“좋소. 그렇게 하겠소. 그런데 내 말을 믿을 수가 있겠소?”
“아드님의 문제에 농을 하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두궐륭은 웃으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하하. 그렇지 아들의 목숨을 놓고 장난을 칠 부모는 없지. 좋소.”
두궐륭은 진혁과 현천문 사람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한두 명을 대동할 것이오. 그래도 되겠소이까?”
“그렇게 하시지요.”
온위립이 대답했다. 두궐륭은 지금 바로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진혁과 현천문 사람들은 짐을 꾸리로 자신의 막사로 움직였다.
“너무 방자한 자들 아닙니까? 어찌 대장군님께 그런 무례를..”
두궐륭의 심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다. 원래 그런 자들이니 개의치 마라. 게다가 내가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 아니냐.”
“아닙니다. 저런 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말이 나올 겁니다.”
심복은 대장군의 권위가 손상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두궐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런 일은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 수가 있느니라.”
대장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리 말하자 이 일을 다시 거론하는 자는 없었다.
짐을 꾸리고 준비를 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막사에 오니 같이 갈 사람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천호 엄경립이라고 하오.”
예상한 바였다. 그는 두궐륭의 사람. 아들인 두정풍과도 가까운 사이다. 그러니 같이 가게 될 것이라고 진혁은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추엽이었다. 이것도 예상한 바였다. 중간중간 두정풍의 병세를 확인하고 돌봐야 하니까. 그런데 마지막 사람은 뜻밖이었다.
“북진무사 손경백이오.”
손경백은 지원차 이곳에 막 도착했는데, 이번 일에 따라가겠다고 한 거였다.
그는 황제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 현천문이 불러도 오지 않자 직접 손경백을 보낸 거였다. 사정이 어떤지도 알아보고 이곳의 상황도 살피고.
그런데 현천문 사람들이 움직인다고 하자 따라가기를 자청한 거였다. 황제가 가장 관심을 보인 건 현천문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럼 가시죠.”
두정풍은 들것에 고정해서 진혁이 등에 멨다. 최대한 충격을 받지 않게 경공을 펼칠 사람으로 진혁이 지목되어서였다.
“힘에 부치면 나랑 교대하면 된다.”
온위립의 말에 진혁은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바꿀 일은 없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지치면 지쳤지, 진혁이 지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현천문의 여섯 명과 당추엽, 정천호 엄경립, 북진무사 손경백은 두정풍을 호위하면서 남쪽으로 내달렸다. 괴의 진부가 있는 융중산을 향해서.
두궐륭은 막사로 돌아와서는 황궁에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현천문 사람들이 어째서 황궁에 가지 못했으며 이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적당히 적었다.
자신이 적어 보낸 것에 크게 문제가 없는 정도에서. 그리고 이곳의 상황이 몹시 어렵지만 절대로 괴물이 황궁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도 적었다.
마지막으로 병사 한 명 한 명이 황제 폐하의 백성이니 그들을 내 자식처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작전을 펼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
“두궐륭의 아들이 다쳤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천문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괴의에게 가고 있다고 합니다.”
채 공공은 피식 웃었다. 두궐륭이 이상한 장계를 올려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정이 있어서였다.
“하기야 아들을 살려야 했을 테니 이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채 공공은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일단 현천문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두궐륭은 자신이 쓴 게 있으니 꼬투리를 잡지 못할 거고, 자신은 원래 현천문의 편이다.
그러니 황제의 명을 어기고 황궁에 오지 않았지만, 적당히 넘어갈 거다. 게다가 두궐륭의 체면이 많이 상하게 되었다.
그가 해타산을 맡자마자 일이 터졌다. 많은 희생이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그는 타격을 입은 거다.
“게다가 손경백까지 함께 있다니 다른 말은 못할 테지.”
손경백은 자신이 보고 들은 걸 그대로 황제에게 전할 거다. 그러니 현천문에게 이득이 되면 되었지 불리할 건 없다.
“그나저나 가는 길이 위험할 텐데..”
채 공공은 적은 수로 험한 길을 가는 걸 걱정스러워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어.. 위험..”
손경백과 엄경립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바로 앞에 백여 마리의 당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돌아서 갈 줄 알았다. 당강 백여 마리를 여덞 명이 상대해야 한다. 두정풍을 메고 있는 진혁은 일단 전력에서 빼야 하니까.
그러니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고 보았던 거였다. 하지만 현천문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 촤아앗~
- 파아아앗!
선두에 선 온위립과 호승렴이 동시에 검기를 날렸다. 검기에 맞은 오크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쿠워?”“크르르르!”
“쿠워어어어어!”
오크도 일행을 알아보고는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십여 마리의 목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온위립과 호승렴은 물론이고 다른 세 제자도 일검에 오크의 목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엄경립과 손경백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강을 베는 걸 무슨 허수아비 베듯 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전력을 다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그리하면서도 뛰어가는 속도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엄경립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도 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속도를 높여 앞으로 나가면서 당강을 베었다.
놀라기는 북진무사 손경백도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관심을 보여서 알아보고 오기는 했다. 대단한 자들이라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이건 괴물들이었다. 밑에 있는 제자들이 자신과 비슷해 보였고, 선두의 두 명은 자신보다 훨씬 윗줄로 보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어떻게 이런 자들이 있을 수가 있지?’
사실 둘은 모르는 것이 있어서 그랬다. 개인적으로 대결을 하면 이렇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괴물을 상대하는 건 현천문을 따를 수 없다. 마나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실력보다 훨씬 위로 보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두 사람은 현천문 사람들이 괴물로 보일 수밖에.
‘나도 질 수 없지.’
손경백도 나서서 당강을 상대했다. 그렇게 백여 마리의 당강 무리를 뚫고 지나갔는데,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손경백과 엄경립은 전투를 하고 나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 너덧 마리를 처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계속 달리다가 벌어진 전투이다 보니 조금 힘든 게 느껴졌다.
그런데 현천문 사람들은 당강을 상대하고 나더니 오히려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미친 듯이 계속 달렸다.
그렇지만 두 무사는 이를 악물고 쫓아갔다. 먼저 쉬자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살려준 건 당추엽이었다.
“아이고. 조금만 쉬었다가 갑시다. 이거 나이가 먹다보니 예전 같지 않구만..”
“그럴까요? 자. 그럼 잠시 이곳에서 쉬기로 합시다.”
그 말에 두 무사는 경공을 멈추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들은 나무 둥치에 기대서 쉬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멀쩡해 보이는 현천문 사람들을 보고는 경악을 했다.
‘뭐지? 저 인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