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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때가 되었나?
진혁에 대해 가장 박한 평가를 하는 건 호승렴이었다. 진혁에 대한 호승심과 경쟁심에 어지간해서는 좋은 평을 하지 않는다.
그런 호승렴까지도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진혁은 혼자서 미노타우르스와 맞서고 있었다.
“꾸어어어어엉!!”
동굴에 메아리치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미노타우르스는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휘두르는 속도가 빨랐다.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맹렬하고 흉폭한 기세. 하지만 진혁은 그런 공격을 잘 받아 넘겼다.
- 콰앙!!
도끼가 바닥을 찍자 부근이 푹 패였다. 돌가루가 허공에 날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병사들까지 그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여유 있게 공격을 피하면서 검을 내질렀다. 허공으로 떠올라 검을 휘둘렀는데, 신비로운 빛이 검에서부터 쭉 뻗어 나갔다.
- 사아앗~
온위립만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작은 소리라 근처에 있는 그조차 잘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날카로운 검기가 미노타우르스를 스치고 지나갔고 녀석의 피부가 쩍 벌어졌다.
“크우우우우어어엉~”
고통스러워하는 소리. 놈의 가슴에는 제법 기다란 상처가 났고 거기에서 녹색 피가 뭉클뭉클 나왔다.
온위립은 진혁의 실력이 자신보다 위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저렇게 할 수 없었으니까. 이미 놈과 싸워봐서 그걸 아니까.
‘녀석. 그동안은 힘을 아끼면서 병사들 구하는 데 집중을 했구나.’
온위립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수많은 괴물과 싸울 때에는 언제 어디서 위급한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니 주변을 살피면서 병사를 구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진혁의 성품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아마 사형인 원덕강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마리의 괴물을 상대할 때는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
보라.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 그 빛은 진혁 주변을 신비한 느낌으로 감쌌다. 마치 천신이 내려와 괴물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
“이거. 이러다가 나는 아무것도 못 할지도 모르겠는걸?”
온위립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계속해서 바로 부근에서 진혁과 괴물의 격렬한 싸움을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끼어들어야 하니까.
“대사형이 저 정도였다니..”
호승렴은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언제가 저 멀리 있었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싸우는 걸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저건 자신이 따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사부님보다도 더 위의 경지라고 보였다. 자신과는 까마득한 차이.
“어엇.. 위험!”
미노타우르스가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상처가 난 것에 무척 화가 난 모양. 그런데 첫 번째 공격은 피했는데, 진혁이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허공에 떠오른 진혁을 도끼가 덮쳤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검으로 도끼을 쿡 찍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휴우우~”
사방에서 한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손에 땀이 맺힐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잘 싸우고는 있었지만, 미노타우르스 또한 무지막지했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시간도 잊고 결투를 지켜보았다. 무자비하고 난폭한 괴물에 맞서는 진혁의 당당하고 강인한 모습.
“어어어...”
- 콰아앙!!
도끼가 진혁의 머리로 떨어지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진혁은 검으로 도끼를 막았다. 정면으로 받은 건 아니고 검기로 쳐내면서 힘을 비틀어 도끼가 땅을 찍게 만들었다.
이화접목의 수법. 사람들은 진혁이 안전하고 곧바로 반격하는 걸 보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사람들이 결투가 벌어진 지 두 시진이 되어 간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만큼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진혁의 검에 미노타우르스가 녹색 피를 흘렸지만, 놈의 거대한 도끼는 쉴새 없이 움직였으니까.
구경을 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땀에 흠뻑 젖었고 몸이 마른 걸 느꼈다. 격렬한 전투를 한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갔고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빨리 쿵덕거렸다.
“타아아앗!!”
그때였다. 도끼를 피해 진혁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엄청난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신비한 빛이 검에서 뻗어 나왔다.
“검강이다!”
검에서 뻗어나온 찬란한 빛. 마치 검이 열 배는 길어진 것처럼 보였다. 병사들은 저절로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압!!”
검강이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떨어졌다.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놈의 정수리를 향해서. 놈은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느꼈는지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강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미노타우르스의 왕방울만한 두 눈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검강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다.
- 쿠우웅~
진혁이 땅에 떨어지자 놈의 몸이 양쪽으로 갈라진 채 쓰러졌다.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다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아아아아!!”
“괴물이 쓰러졌다!! 괴물을 잡았어!!”
산이 떠나갈 것 같은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다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열광했다.
병사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토록 장엄하고 감명 깊은 광경은 처음 보았다. 괴물의 손바닥이 사람보다 클 거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단신으로 물리쳤다.
병사들은 목이 찢어지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진혁을 하늘에서 내려온 장수라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괜찮으냐?”
온위립의 말에 진혁은 일어나려다 약간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허어.. 네가 무아지경에서 싸운 게로구나. 큰 복이다. 큰 복이야.”
온위립은 얼른 진혁을 부축했다. 그의 주위로 현천문 사람들과 지휘관이 달려왔다. 다들 진혁의 상태를 걱정했다.
“허어. 정말 거대한 놈 아닙니까. 이놈을 황제 폐하께 올린다면 큰 상을 받을 겁니다.”
지휘관은 크게 기뻐했다. 다른 전공이야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건 다르다. 이걸 올린다면 그 누구도 현천문과 이 부대의 전공을 은폐하거나 무시하지 못할 거다.
“자. 어서 시체를 옮기거라.”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명했다. 처음에는 시체에 다가가는 걸 조금 꺼렸지만, 죽은 걸 확인하자 다들 달라붙었다.
아마도 이 경험은 평생 자랑거리가 될 거다. 놈의 덩치나 워낙 커서 그대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고, 시체를 잘라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가죽이 워낙 질겨서인지 잘 잘라 지지가 않았던 거다. 결국, 현천문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놈의 몸은 검강으로 썰어야 그나마 잘 나누어졌으니까.
“허어.. 놈의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진혁이 처음 고기를 먹자고 했을 때, 지휘관은 질색을 했다. 괴물의 고기를 먹으면 이상한 병에 걸리거나 괴물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하지만 이미 먹어보았다고 하면서 진혁이 먼저 먹었다. 그러자 다들 용기를 내서 먹었는데, 먹고 나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날 부대 전체가 미노타우르스 고기를 먹었다. 놈의 덩치가 워낙 커서 병사 전체가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수가 많아 배부르게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자신이 미노타우르스를 잡은 것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뿔이 부러진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온위립이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머리가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한쪽 뿔이 부러져 있었다. 뭐랄까. 어쩐지 모양새가 안 나오는 느낌?
“그래도 이게 어디요. 내 이미 소식을 전했소. 아마 난리가 났을 겁니다.”
지휘관은 이런 증거가 있는 이상 대장군도 야료를 부릴 수 없을 거라 말했다. 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잡지 못한 걸 해치웠고, 증거까지 완벽하니까.
“게다가 하 소협 혼자서 잡은 것이니..”
“어찌 저 혼자 잡은 거겠습니까. 모두가 같이 잡은 게지요.”
진혁은 뒤를 받쳐주고 있었기에 마음껏 싸울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모두의 공이라고 말했다. 지휘관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하 소협이 잡은 건 사실이지 않소. 그점 또한 명확하게 적어 보냈으니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지휘관은 이런 선물을 가져가려고 늦었다고 하면 황실에서도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진혁은 황제가 뭐라 생각하든 그건 상관없었다. 병사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중요했다. 황제라고 포인트가 백만 포인트씩 주고 그런 건 아니니까.
황제나 병사나 똑같은 한 사람이다. 그러니 진혁에게는 여기 병사들이 황제보다 만 배는 중요했다.
‘그렇긴 한데 너무 분위기가 뜨거워서 좀 문제네..’
병사들은 진혁만 보면 달려왔다. 진혁의 것이라면 뭐라도 하나 가져가려고 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진혁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진혁은 병사들만 보면 피해야 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옷을 다 뜯길 것 같아서였다. 막을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우러러보는 병사들을 때려눕힐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진혁은 피곤하다고 생각하면서 고기를 한 점 집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마나 폭발이 있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몸이 살짝 떨려왔다. 현천문 사람들 모두 그걸 느꼈는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이건..”
“괴물들이 또 날뛸 겁니다.”
진혁이 어리둥절해 하는 지휘관에게 깁히 말했다.
“빨리 병사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괴물들이 곧 몰려 올 겁니다.”
온위립도 거들었다. 괴물들이 난동을 부리면서 몰려올 거라고.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반신반의했겠지만, 현천문 사람들의 말이다.
지휘관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급히 명령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퇴각 준비를 하라!”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퇴각 준비를 했다. 그리고 준비가 거의 끝날 때쯤 저 멀리서부터 괴물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이놈들아. 빨리 움직여라. 빨리!”
괴물들이 미치면 어떻게 된다는 걸 겪어 보았다. 진혁은 병사들을 독려해서 재빨리 퇴각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 와중에도 중심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이 안쪽에는 소형 몬스터가 없었어. 그런데 마나 폭발이 일어나고 나면 쏟아져 나오고 있지.’
분명히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해야 괴물들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피한다고 피했지만, 괴물들이 몰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그 덕에 현천문이 속한 부대는 거의 피해 없이 대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대들은 그렇지 못했다.
현천문이 소속된 부대는 미리 대비했는데도 피해가 있었는데, 대비 못 한 부대는 어떻겠나. 괴물이 지척에 도달하고 나서야 알게 되어서 거의 몰살을 당한 부대도 있었다.
“괴물의 시체를 버린 게 정말 아깝구나..”
온위립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처음으로 잡은 거대 괴물이라 기념으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황실에 보고할 때 증거로 내세울 거였는데, 그게 없어져 버린 점도 아쉬워했다.
“나중에 찾아보죠. 괴물들 정리가 되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괴물이 계속 이럴 것도 아니고 진정이 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찾을 수 있을 거다.
놓고 온 자리도 알고 있고 괴물들이 가져갈 리도 없으니까. 뭐. 조금 망가졌을 수는 있지만.
“그런데 대장군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러게나 말이다. 대장군이 맡고 나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모든 지휘관이 소환되었다. 대장군이 직접 부른 것인데,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대장군 두궐륭이 맡고 나서 갑자기 큰 피해가 생겼다.
그러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일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거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위급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두정풍 장군의 부대가 고립되었단 말입니까?”
“그렇네. 구원 부대를 보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제장들을 소집한 것일세.”
두궐륭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는 그가 어떤 심정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의 아들인 두정풍 장군의 부대가 괴물을 사이에 괴립되어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전멸할 상황. 하지만 구원하기란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