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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때가 되었나?
커다란 철각패도의 동상 주변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아니 저게 뭐냐?”
지부장이 이곳의 변천사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니까 대장로님이 떠나시기 전부터도 저 앞에 돌을 가져다가 놓는 사람들이 있었습죠.”
손바닥을 보면서 기원을 하고 돌을 하나씩 던졌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유행처럼 번졌단다. 돌을 던지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고 하면서.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사람이 다녀가는데 그게 쌓이니 돌이 탑처럼 쌓였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돌탑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쪽에서 온 어느 왕실의 마나님이 석상을 하나 만들었습죠. 그리고 그 앞에 작은 연못 같은 걸 만들었는데..”
거기다가 동전을 던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누가 가장 먼저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전을 던졌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동전이 연못을 가득 메우게 되었다. 간혹 동전을 훔쳐가는 사람도 생겼고.
그렇게 문제가 생기자 사혈련에서 관리하면서 동전을 따로 모았단다. 그러던 게 모이고 모이니 어마어마한 양이 되었고, 토번왕이 와서는 제안을 했다.
“이곳에 그 동전을 녹여서 동상을 만들자고 하더군요. 자신도 얼마간의 청동을 내놓겠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저 거대한 철각패도 동상이라는 거였다. 대신 동상을 세우면서 연못을 없애고 동전은 던지지 않도록 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혹시 노여우시다면 당장에라도 저걸 치우는..”
지부장은 말을하면서 철각패도의 눈치를 살폈다. 토번왕이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고 해서 세우긴 했지만, 본인의 말을 들은 건 아니다.
철각패도는 강인한 인상을 한 자신의 동상을 쳐다보았다. 높이가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동상.
‘내가 무슨 부처냐?’
하지만 기분이 묘했다. 약간 쪽팔리긴 한데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철각패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미 만들어진 건데 부수기도 그렇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두고 저희가 세심하게 관리를 하겠습니다.
참 크기는 컸다. 철각패도는 동상을 보다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무슨 동전이 그렇게 많이 모였어? 저렇게 만들려면 동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건데.”
“에이. 저걸 전부 동으로 만들었겠습니까? 속은 나무로 만들고 동을 입히기만 했죠.”
그래도 어마어마한 양이 들었단다. 그게 가능했던 건 돈황을 찾는 사람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주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돌아서 사방에서 다 찾아옵니다.”
사주에는 사기 치는 사람도 없고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다. 작은 봇짐 장사라도 제대로 된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런 소문이 돌아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면 그 사람 소문을 듣고 또 다른 사람이 오고. 좋은 물건이 많다는 말에 그걸 사려는 사람들도 몰리고. 그렇게 돈황은 예전보다 몇 배는 커졌다고 했다.
예전에도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몇 배는 더 커졌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겠나. 거기다가 토번왕이 자리를 잡은 것도 한몫했다고 했다.
“토번왕? 음..”
철각패도는 그렇지 않아도 토번왕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었다.
“아니다. 그거야 직접 만나서 물어보도록 하지.”
어차피 내일이나 며칠 내로 만날 예정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빨리 중급 마나 스톤을 녹여서 무기를 만들게 해야 한다.
철각패도는 곧바로 대장간으로 향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핫산은 웃으면서 철각패도에게 자리를 권했다. 원래는 토번왕을 먼저 만날까 했는데, 핫산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게다가 급히 만나서 상의할 게 있다고 해서 이리 온 거다. 핫산도 중요한 고객 중 한 명이니까.
“무기가 더 필요하시다고?”
철각패도는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곳에서 빨리 일을 마치고 북경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다. 무기가 성능이 아주 좋더군요.”
핫산은 자신에게 필요한 양을 말했는데, 일부는 무기로 받고 일부는 철괴로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철괴로? 이유가 뭐지?”
“저희들만 만들 수 있는 무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철괴를 가져다가 뭔가 조사를 해볼 생각인가 본데 그래 봤자다. 중급 마나 스톤을 녹일 수 없으면 소용없는 일.
“뭐. 그렇게 하지. 대신 가격은 조금 올렸으면 하는데..”
“좋습니다. 역시 대인은 화통하십니다.”
어라? 이 녀석이 가격을 올리겠다는데도 그냥 오케이를 하네? 철각패도는 이익이니 그냥 넘어가기는 했지만,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핫산은 웃으면서 차를 권했다. 그리고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이번에 난주에 자리를 좀 잡을까 하는데.. 혹시 관심이 있으십니까?”
“난주?”
이곳 돈황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먼 곳이다. 가욕관을 지나서도 한참을 가야 하고 감숙성의 중심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바로 난주다.
“난주에 자리를 잡겠다. 거긴 공동파의 세력이 강한 곳인데..”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호라. 돈은 있지만, 무력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들을 좀 보호해달라? 나쁘지는 않은데 지금은 북경으로 빨리 가야 하는데.
핫산은 철각패도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재빨리 말을 건넸다.
“난주에 자리를 잡으면 사천이나 섬서 쪽으로 뻗어 갈 수 있습니다. 정말 큰 이권이 달린 일이지요.”
핫산은 상단으로서도 큰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에는 번번이 중원의 세력에게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 돈황에서의 일에 용기를 얻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돈황과 난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돈황이야 워낙 변경에 있으니 어찌어찌 꿀꺽할 수가 있었지만, 난주 근처에는 여러 세력들이 있다.
일단 공동파가 가장 세력을 떨치고 있고, 사천의 청성파나 아미파, 당문의 세력도 미치는 곳이다.
“저는 난주도 이곳 사주처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훨씬..”
핫산의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만약 난주도 이곳처럼 만들 수 있다면 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훨씬 빨리질 것 아닌가.
철각패도는 핫산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그런데 지금 당장 실행을 할 건가?”
“그건.. 그건 아닙니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고..”
핫산은 이번에 원보 상단과 거래를 하면서 그때 같이 난주까지 갈 생각이라고 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 뒤에 출발 예정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든 가능하려나?”
철각패도가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거다.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경공 실력이 있어서 생각해보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조건 거절했을 거다.
“일단 상황을 좀 봐야겠어. 그러니 그걸 감안하고 진행하도록.”
“그건 문제 없습니다. 만약 도움을 주신다면 바로 진행을 하고, 아니면 그곳에 남아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으면 되니까요.”
아무래도 확실히 난주에 진출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철각패도는 북경 쪽에서 문제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이쪽 일이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
“일단 후퇴하세요!”
진혁의 말에 온위립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 앞쪽에는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가 씩씩대며 이쪽을 째려보고 있었다.
녀석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함정이 있는 쪽으로 오지 않았다.
“후우.. 정말 이 녀석을 잡았단 말이냐..”
온위립이 숨을 헐떡이면서 다가왔다. 그는 혼이 반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미노타우르스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처음으로 접해보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전까지는 어떤 괴물이라도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며 온위립은 치를 떨었다. 어떻게 해 볼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진혁도 생김새와 색깔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돈황에서 오면서 잡은 놈들은 약간 멍청했다. 그래서 함정에도 잘 빠졌고, 잡기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은 색깔도 훨씬 검은 빛이 났고, 덩치도 조금 더 컸다. 게다가 머리도 좋아서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사주에서 오면서 상대했던 놈은 이 녀석보다는 작고 멍청했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가 있었는데..”
“그러냐? 나는 조금 작더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공격이 얼마나 강하던지..”
도끼질 한 방에 아름드리나무가 날아가고 커다란 바위가 터져버린다. 온위립은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충격을 대부분 흘렸는데도 손목이 부러질 뻔했다.
“그렇다면 이놈보다는 다른 괴물이 어떠냐?”
여기에는 미노타우르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좌측에는 미노타우르스가 있었고, 우측으로 한참을 가면 그쪽에는 오우거가 있었다.
진혁은 차라리 미노타우르스가 더 쉽다고 생각했다. 오우거는 미노타우르스보다도 더 크고 더 강력했으니까. 괜히 숲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미노타우르스는 도끼질을 해서 커다란 나무를 부러뜨린다. 하지만 오우거는 그런 커다란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무기로 쓴다.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힘에서부터 비교가 안 되는 거다. 게다가 두꺼운 피부에 마법 저항까지 있다.
마법 저항력이 있다는 건 마나를 사용한 공격에도 저항력이 있다는 거다.
‘혹시 몰라서 해 봤는데, 역시나. 몰래 나가서 상대를 해봤는데, 전력을 다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어.’
무기가 먹혀야 싸우든 말든 한다. 마나를 정말 최대한 끌어모아야 겨우 상처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도 도울 테니 내일 다시 한 번 해보시죠. 둘이서 협공을 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호승렴을 붙이려고 했는데, 호승렴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진혁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이제는 실력을 좀 보여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착한 척만 하는 것보다는 실력을 보이면서 스타가 되는 게 더 좋겠어. 착한 척하는 걸로는 소수 밖에는 만족시키지 못하니까.’
진혁의 말에 가장 반색한 것은 온 문주였고, 득달같이 반대를 표한 건 호승렴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안심..”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부님과 호흡을 맞추는 건 내가..”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진혁은 호승렴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놈이 어떤지 직접 보지 않았느냐.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할 수 있소. 할 수 있어요!”
억지를 부렸다. 진혁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부리는 고집. 하지만 진혁이 계속 나설 필요가 없었다. 온 문주가 엄한 얼굴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허락할 수 없다!”
“사부님!”
호승렴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온위립은 완고했다.
“지금 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냐?”
온위립은 엉망진창이었다. 머리는 산발에 옷 여기저기가 다 찢어져 있었다. 얼굴과 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너희들 실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내일은 나와 진혁이가 나설 것이니 그렇게 알거라.”
쉽게 볼 수 없는 강경한 목소리. 호승렴은 뭐라고 하려다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다음 날, 진혁과 온위립은 놈을 잡기 위해서 준비를 했다. 지휘관도 이번 괴물 사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다른 곳은 전부 당강이나 그와 비슷한 놈들을 잡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두정풍의 부대는 알유가 있는 곳에 거의 가까워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진혁의 말에 지휘관은 손을 내저었다.
“가까워진 것과 상대를 하고 있는 건 천지 차이 아닌가. 제법 가까워지긴 한 모양인데 아직도 꽤 남았다고 하네.”
지휘관은 그러니 오늘은 저 놈을 꼭 잡자고 이야기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은 놈을 잡을 작정이었다.
‘그래야 사기고 오르고 내 주가도 좀 오르고 하지.’
수많은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벌이는 전투다. 진혁은 오늘 전투가 수많은 병사들의 뇌리에 각인되도록 할 생각이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모습으로.
그렇게 되면 수많은 병사들에게 소문이 날 테고, 황실에 보고도 될 거다. 이곳에서 잡은 최초로 잡는 거대 괴물이니까.
‘뭐든 최초가 중요한 거지.’
진혁은 영웅건을 질끈 매고는 말했다.
“그럼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진혁은 그 말을 남기고는 허공을 날아 미노타우르스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을 수많은 병사들이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