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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13화 (1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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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때가 되었나?

온위립은 곧바로 서신을 썼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으니 부득이하게도 지금은 갈 수가 없나이다. 이런 내용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알리기는 해야 하니까. 지휘관도 사정을 잘 설명한 서신을 올렸다.

“전공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감안이 될 겁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지휘관은 온위립의 태도에 크게 놀랐다. 황명을 어기고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온위립만이 아니라 진혁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지휘관은 정말 감탄했다. 이런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그에 반해 나머지 제자들은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다. 걱정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릇이 다르구나. 다들 훌륭하지만 온 문주와 하 소협은 정말 격이 다른 인물이다.’

진혁은 이런 기세라면 팔찌를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팔찌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토번왕이 그쪽에서 무슨 짓을 한 모양이었다. 그거야 어차피 돈황으로 가서 알아보면 되는 일.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들어오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이번에 병사들로부터 들어온 포인트도 짭짤했다.

처음에는 열 칸을 언제 채우나 싶었는데, 벌써 두 번째 칸이 거의 다 차갔다.

‘이대로만 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어.’

게다가 이번 일로 문제가 될 일은 없다.

황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으니 큰 곤욕은 치르지 않을 거다. 채 공공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힘을 보탤 것이고.

만약 최악의 경우가 되면 그때는 그냥 금황보검 사용하면 된다. 역모를 제외하고 어떤 일이라도 사면이 되니까.

온 문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런 결정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거고.

‘아. 그런데 자꾸만 쟤는 왜 자꾸만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지?’

지휘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나와 온 문주만 저런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온 문주와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는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병사들의 사기가 높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하다. 괴물과 싸우는데 평소보다 훨씬 강한 힘을 냈다.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평소보다 더 분비되고 뭐 그런 게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말 효과는 만점이었다.

최근의 전투는 압살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였다. 문제는 다른 부대보다 너무 앞선다는 거였다. 이제는 진격 방향에 있는 자잘한 놈들은 거의 잡았다.

“이 앞쪽에는 어떤 괴물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소. 그러니 척후병이 돌아오는 대로 계획을 잡는 게 좋겠소이다.”

지휘관의 말에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심상치 않은 말을 꺼냈다.

“이건 비공식적인 이야기니 그냥 알고만 계셔야 합니다.”

지휘관은 이 부대의 실적이 무척이나 축소되어서 황실에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창 쪽에서 준 정보이니 틀릴 리는 없다.

“대장군 두궐륭이 수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기록이 있거늘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온위립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기록? 그런 게 있으면 뭐하나. 황제가 직접 와서 괴물 시체를 세어볼 것도 아닌데.

어차피 숫자야 조작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진혁은 슬쩍 물어보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좀 알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어디가 가장 성과를 내고 있답니까?”

“두궐륭의 아들인 두정풍 장군의 부대가 장계의 가장 위에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군부 최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염경립이 있다고 했다. 또한, 그가 이끄는 부대가 혁혁한 전과를 올린 건 사실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우리 쪽이 훨씬 더 전과가 좋다는 겁니다. 물론 장계에는 그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기록이 되지만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두궐륭의 심복들이 있는 부대의 실적을 부풀린다고 했다.

“게다가 좀 이상한 건 무당의 성적이 부풀려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진혁은 대충 정리가 되었다. 대장군 두궐륭이 무당과 손을 잡은 거다. 저번에 태후전을 움직여서 수를 내더니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서 두궐륭 장군이 이곳에 오게 되었고, 그 김에 아들과 심복들에게 전공을 몰아주고 있다. 무당도 손을 써주고.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요. 일단 이 앞쪽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온위립의 말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진혁은 철각패도가 돈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손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일단은 현천문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병사들이 호감을 보이고 있으니 대만족이야. 이대로만 가면 된다. 만약 방해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때는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그 누구라도.

다른 막사에서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티가 나게 하시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두정풍의 말에 두궐륭 대장군은 파안대소를 했다. 한참을 웃던 두궐륭은 굳은 얼굴로 일갈했다.

“무르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느냐!”

두궐륭은 그런 정신으로 세상을 살다가는 이용만 당하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가 이 아비의 후광 안에 있으니 세상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르는구나. 내가 지금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역경을 뚫어내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게 아니다. 그러니 왔을 때 끝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보는 눈도 많고 기록도 남아 있어서..”

두궐륭은 코웃음을 쳤다.

“누가 뭘 봤단 말이냐. 눈이 있어도 입이 없는 자들이다. 기록?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두궐륭은 그런 건 문제가 되어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현천문은 중심부에 가까이 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야 숫자를 다른 곳에 밀어주었다고 해도 중심부에 있는 괴물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 마리만 잡아도 엄청난 일이다. 게다가 대형 괴물은 증거가 남는다. 그러니 그건 숫자를 속일 수가 없다.

하지만 두궐륭은 슬며시 웃었다. 그는 아들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너는 그저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그런 건 이 아비가 알아서 하마.”

“하지만 아버님. 솔직히 저의 힘으로 해내고 싶습니다.”

대장군은 여전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너의 힘이다. 이제는 이런 것이 익숙해져야 하는 때다.”

대장군은 아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엄 천호는 어떻더냐.”

“정말 굉장했습니다. 과연 군부 최고수라고 할만 합니다.”

두정풍은 엄경립과 그가 이끄는 부대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소상히 말했다. 그들과 함께 싸우니 거칠 것이 없었다면서.

“그래. 네 실력에다가 그자까지 더해진다면 전공은 확실할 게다. 하지만 조심하거라. 괴물이란 놈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괴물이든 자신 있으니.”

***

철각패도는 수련을 계속해면서 돈황으로 향했다. 이게 잠깐잠깐 쉬는 시간에만 이동해야 하니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철각패도의 무공이 워낙 뛰어나 돈황까지의 거리는 쑥쑥 줄어들었다.

돈황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도 많았다. 가장 시급한 건 중급 마나 스톤을 이용해서 무기를 만드는 거였다.

토번왕으로부터 무기를 더 공급해 달라는 연락도 와 있었고, 핫산도 같은 요청을 했다. 게다가 앞으로 쓰일 데가 더 많을 것 같았다.

“어차피 돈황은 내 영역이나 마찬가지이니 아예 왕창 만들어 놔야겠어.”

중급 마나 스톤은 넉넉하게 있었다. 지금까지 괴물을 잡으면서 틈이 날 때마다 챙겨 두었으니까.

아공간에 있는 것만 전부 사용하면 앞으로 무기 공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철각패도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어서 갑자기 포인트가 많이 들어오는지 궁금했다.

“어떤 건지 알아내서 혹시 참고할 수 있으면 참고하고.”

조금이라도 포인트를 빨리 모을수록 좋다. 그러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면 다른 곳에도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달리다 보니 저 멀리 돈황의 불빛이 보였다. 불빛조차 가물가물하게 보일 정도니 이곳에서 거리는 상당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을 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동안 정말 잠을 아끼면서 왔으니까.

“오늘은 조금만 더 이동하고 쉬어야겠다. 내일 또 괴물과 싸워야 하니..”

무림인은 피로를 덜 느낀다. 일반인보다 잠을 덜 자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라는 게 있는 거다.

아예 잠을 자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오늘은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철각패도는 팔찌를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몸을 바꾸었다.

다음 날 저녁. 철각패도는 드디어 돈황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사혈련 지부였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부장을 포함한 지부의 주요 인물들이 전부 뛰어왔다.

“헤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요..”

“그래. 별일은 없었느냐..”

지부장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아이고. 일이 있을 리가가요.. 감히 누가 이곳에서 대장로님을 거역하겠습니까요..”

하기야 적어도 돈황에서는 철각패도의 이름을 거스를 자는 없지. 그런데 지부장이 묘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성흥 상단이 말입니다..”

성흥 상단은 철각패도를 몰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래서 차선책을 사용했다.

자신들과 가깝게 거래했던 상단 하나를 통해서 대신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는 거였다.

“저희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는데 다른 상단에서 연락을 주어서..”

“그런 짓을 한다 이거지?”

이해는 간다. 성흥 상단 입장에서야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을 터. 그러니 이런 편법이라도 써서 손해를 줄이겠다는 심사.

하지만 그걸 몰랐으면 모를까 알면서도 가만히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상단에 전언을 넣어라. 똑같은 꼴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 사혈련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철각패도의 기세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성흥 상단에도 단단히 일러라. 그런 꼼수 쓰지 말고 정 여기 오고 싶으면 직접 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철각패도는 그간의 잘못을 바로잡고 앞으로는 이곳의 규율에 따르겠다고 하면 받아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간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이곳에서 했던 잘못된 일들을 전부 배상하라는 거다. 당한 사람의 재물과 세월까지.”

지부장은 재물을 언급할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월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성흥 상단은 절대로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그들에게 당한 사람들과 협상을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그래 봤자 돈을 얼마나 주려고 하겠나. 뭐 돈은 대충 준다고 치자. 오래전 일도 있으니 지금 금액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는 돈도 있으니까.

하지만 세월이라는 건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고통받은 시간과 억울함이 켜켜이 쌓인 마음의 상처. 그걸 보상하라는 거였으니까.

‘이 분은 정말..’

볼 때마다 놀라웠다. 보통은 적당히 협상하다가 돈을 챙기고 받아준다. 그런데 철각패도는 그런 게 일절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챙기는 돈도 없다.

지부장이 놀라움을 삼키며 상대에게 어떻게 전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철각패도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아니다. 이건 그냥 전할 게 아니라 아예 공표를 하는 게 좋겠다.”

철각패도는 공개적으로 알리라고 이야기했다.

“이곳 사주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헛짓 거리 하는 놈들이 없을 테지.”

이곳에서 철각패도의 말은 곧 법이다. 지부장은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부장은 불수암에 한 번 가보시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곳이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면서.

“불수암?”

기억이 났다. 바위에 장력을 날려서 손자국이 난 데. 예전에도 가봤는데 뭘 또 가?

그런데 지부장은 자꾸만 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갔다. 그랬더니.

“뭐야? 이게?”

철각패도는 벙찐 표정으로 불수암 부근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철각패도의 동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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