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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표사-112화 (11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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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이 뭐 별거냐.

채 공공은 자신의 의도가 먹힌 것에 만족했다. 황제가 현천문 사람들을 보고 싶게 만들었고, 자신은 토벌이 끝난 후로 미루자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도 황제가 굳이 보자고 해서 불렀다. 모양새가 좋았다. 아마도 황제가 현천문 사람들을 보면 좋아할 것이다.

모두가 무공도 높은 데다가 성품도 강직하고 훌륭했다. 게다가 이번 토벌에서 공도 크게 세우고 있으니 분명히 큰 대가를 받을 거다.

“게다가 태조를 도와 금황보검을 하사받은 유서 깊은 문파가 아닌가.”

현천문이 황도에 자리 잡는다면 자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채 공공의 숙적인 두궐륭 대장군이었다. 그는 무림인의 은밀한 내방을 받고 있었다.

“무당의 청광이라 하옵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두궐륭은 근엄한 표정을 자리에 앉았지만, 내심 청광진인을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남자 거시기도 없는 놈한테 밀려 칼 쓰는 작자들이나 만나야 하다니.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밀린 전세를 뒤집고 봐야 했다. 그러려면 자신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채 공공의 위세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까.

“이번에 해타산에서 토벌이 이루어지는 건 알고 계실겁니다.”

“크흠.. 대장군인 내가 그걸 모르겠소이까.”

청광진인은 급히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보니 너무나도 이상해서 그런 겁니다. 아니 군대가 동원되어 전투를 하는데 장계를 동창에서 올린다니요.”

두궐륭도 그건 불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황제의 명이 그런데.

“아무래도 그 자리는 대장군께서 맡아주셔야 옳은 것 같습니다.”

“크흠.. 그렇긴 하지. 그럼 그렇게 만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게요?”

청광진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사악 번졌다. 아주 은밀하고 서늘한 웃음이었다.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대장군께서 군부의 수장이신데 말입니다.”

청광진인은 일만 명분이 있으니 군부의 주요 인물에게 상소를 올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황제 폐하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게 아니오.”

“아니지요. 명은 옳지만, 방법을 약간만 바꾸자는 겁니다.”

청광진인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세심하게 주변을 살폈다.

“채 공공의 위세가 너무 커지지 않았습니까. 그걸 과연 태후전에서 좋아할까요?”

“흐음.. 그렇군.. 내가 판을 깔아 놓으면 태후전을 움직이시겠다?”

청광진인은 자신이 태후와 인연이 제법 깊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는 되지요.”

태후는 누구보다 채 공공을 믿는다. 하지만 채 공공의 권한이 강해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을 거다.

‘거기다가 군의 일이니 군부의 수장이 살피고 장계를 올리는 것이 옳다는 명분까지 더해지면..’

두궐륭은 감이 왔다. 이건 먹힌다고. 하지만 바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그는 고민하는 시늉을 하면서 상대의 속내를 물었다.

상대도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니 이런 일을 꾸미는 거 아니겠나.

“태후께서 탐탁지 않게 여기실 수도 있소이다. 채 공공에 대한 신뢰가 워낙 깊으신 분이시니..”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 아닙니까. 그러니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저희 쪽 사정을 좀 살펴주시지요.”

청광진인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무당이 무림 문파 중에서는 가장 전공이 높은 것으로 해달라고.

“가장 전공이 높은 것은 다른 분이 가져가셔도 무방합니다. 무림 방파 중에서만 가장 앞서 있으면 됩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심복들을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세력이 큰 혜택을 받는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번에 채 공공의 힘을 꺾을 수 있다. 무당은 무당대로 도검당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좋은 것이고.

“좋소이다. 그렇게 합시다.”

“그럼 저는 바로 태후전에 기별을 넣어야 해서..”

청광진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두궐륭 대장군은 급히 아들을 불렀다.

“급히 황도 근처에 있는 주요 장군들에게 상소를 올리라고 전하거라.”

“예. 아버님.”

두정풍 장군은 수하들을 풀어 근방에 있는 장군들에게 연락을 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 현천문 사람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갑자기 황궁으로 들어오라니.”

온위립은 당황스러웠다. 황궁으로 가는 것이야 큰 문제가 없는데 자신들이 빠지고 나면 전력에 큰 구멍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은 해타산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 기세를 올리며 들어왔는데, 그만큼 주변에는 강한 괴물들이 많았다.

“지금 빠지면 부대 전체가 위태롭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부대를 물리는 게 어떨까요?”

지금 상태에서 현천문만 쏙 빠지면 떼죽음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부대를 뒤로 좀 물리고 적당한 시점에 현천문이 빠지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가 황실의 노여움이라도 사면..”

제갈중선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지휘관이 나섰다.

“황궁으로 오라고만 했지 즉시 오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장수가 황명을 어길 수도 있는 것이라 했으니 이런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지휘관은 다소 문제를 삼더라도 동창과 채 공공이 알아서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혁은 뭔가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합시다.”

지휘관은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부대를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대가 후퇴를 하는 동안 황실로는 상소가 날아들고 있었다. 군대의 일을 동창이 좌우하니 저어된다는 내용이었다.

명분이 워낙 확실하니 군부의 반발을 아예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청광진인이 태후를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곧바로 태후가 움직였다.

태후 역시 최근에 채 공공의 위세가 너무 강해지고 있다고 염려하는 중이어서 그런 거였다. 아직 어린 황제는 태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타산의 책임자는 제독동창에서 두궐륭 대장군으로 바뀌었다.

***

“아니. 부대를 계획대로 나아가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휘관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대답했다.

“이번에 대장군이 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소이다. 이제 대장군이 직접 지휘하면서 명령을 하달하고 있어요.”

대장군이 계획대로 진군하라고 명했다는 거다. 명령을 받았으니 부대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천문 사람들이 빠진 상태로 전진한다는 건 너무나도 위험했다.

“이곳 상황을 잘 모르는 것 아닙니까? 이곳은 가장 위험한 곳이에요.”

“맞습니다. 제갈 세가와 현천문 분들이 없으면 무척 위험하지요. 하지만 명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이곳이 어떤 장소라는 건 사람들이 모두 안다. 해타산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그나마 진법과 현천문 사람들의 활약, 거기다가 지형지물을 활용한 전략이 더해져서 무사했던 거다.

만약 그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와르르 무너질 거다.

“하지만 황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이곳은 제가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 그만 가보시지요.”

지휘관은 비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이건 음모였다. 대장군의 음모.

두궐륭이라고 이곳에서의 일을 모를까. 채 공공이 현천문을 신경 쓴다는 사실도 다 알 거다. 그걸 알고 함정을 판 거다.

부대를 사지로 밀어 넣어서 제거한다. 현천문이 황궁으로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다. 안가면 점점 위험한 곳에 밀어 넣으면 되니까.

게다가 가지 않으면 황명을 거역한 게 된다. 만약 황궁으로 가면? 그러면 동료를 사지에 버리고 황실에 잘 보이러 간 파렴치한 놈이 되는 거다.

지휘권은 과연 두궐륭 답다는 생각을 했다.

“저희끼리 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온위립은 모두 불러 놓고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사람들이 죽어갈 걸 알면서도 어떻게 황궁으로 가겠습니까. 여기서 함께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진혁의 말에 모두가 눈빛을 빛냈다.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온위립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황명이라는 것이 걸렸다.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황명이 무겁다 한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값보다 무겁겠습니까?”

진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죄를 묻는다고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온위립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잠시나마 자신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병사들을 버릴 수는 없는 없는 거였다.

“병사를 뒤로 물리지 않는 대장군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승렴이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진혁이 말대로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꾸나. 지금은 병사들하고 같이 싸우자. 그것만 생각하자.”

현천문 사람들은 그렇게 결의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병사들도 모두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분들 황궁으로 가는 거야?”

“하이고.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하나.”

다른 부대는 훨씬 뒤에서 훨씬 약한 놈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대만 주변을 쓸어버리고 훨씬 앞쪽에 들어온 거다.

지금까지는 힘은 좀 들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갈 세가와 현천문 사람들이 함께 싸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불안감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병사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계세요? 저희가 여러분 두고 어딜 가겠어요.”

진혁이 웃으면서 병사에게 말했다.

“정말 안 가요? 정말 안 가는 겁니까?”

병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황궁으로 오라는 명을 받았다는 거 병사들이 다 안다. 정말 잘 되었다고 축하까지 해주었다.

모두들 현천문 사람들을 좋아했고, 잘 되길 바랐다. 그만큼 도움도 많이 받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아니까.

하지만 앞으로 진격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제는 다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혹시 현천문 사람들이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황명을 거역하는 일. 황명을 거역하는 건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제발 남아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일말의 희망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는단다.

“우아아아!! 남는대요. 남는대!!”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기가 퍼지면서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우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지휘관이 놀라서 뛰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가지 않기로 한 겁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큰일이 날 수 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가겠습니까. 병사들하고 등을 맞대고 싸운 날이 얼마인데..”

온위립과 진혁을 위시한 현천문 사람들은 태연하게 말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는데 당연한 일이죠. 저희는 남겠습니다.”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현천문 사람들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너무나도 기세가 험해서 장수들이 나서서 말려야 했을 정도.

진혁은 미소 지었다. 엄청난 포인트가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가슴을 두드리는 느낌이 더 좋았다.

함성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함성은 산과 계곡을 타고 번졌고, 다른 부대에서 전령을 보냈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그렇게 현천문 사람들은 병사들과 전장에 남았다. 뜨거운 함성 가득한 그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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