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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이 높아지면 생기는 일들.
해타산은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북경 근처에 있는 산 중에서는 가장 높은 산 중 하나다.
그곳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승부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구려. 안 그렇소. 대사.”
현허진인이 무공대사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침 기회가 좋지 않습니까. 진인. 황제께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말입니다.”
무공대사도 합장을 하며 대답했다. 사실 괴물들의 공세는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았다. 황제가 급히 병력을 모아서 정말 위급한 상황인 줄 알았다.
당장에라도 북경으로 괴물이 쏟아져 들어올 그런 상황 말이다. 하지만 와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병력이 오지 않았더라도 근근이 막을 수는 있는 정도? 물론 괴물들이 폭주해서 조금 밀리기는 할 거다. 하지만 남동쪽에 있는 팔달령 장성에서 막으면 된다.
“여부가 있겠소이까. 그러면 여기서의 성과를 가지고 결정을 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미 이야기는 된 상태다. 도검당주 자리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하니 이곳을 택한 거였다.
세가 연합의 의견도 고려했다. 반대가 좀 있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무림맹의 주축인 소림과 무당이 찬성했으니까.
그런 사실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제갈 세가는 아무런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들었습니까? 아니 세가 연합은 우리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제갈중선은 펄펄 뛰었다. 아니. 제갈 세가 전체가 반발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렇게 결론이 났다는 거였다. 정당한 회의를 거쳐서.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듣고 나서는 너무 황당한 지라..”
온위립도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소림과 무당은 어마어마한 수를 보냈다면서요.”
“다른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하더이다.”
소림과 무당은 비교적 북경에서 가까이 있다. 그래서인지 수천에 이르는 무인들을 보냈다. 가깝지 않더라도 도검당주가 걸린 일이니 엄청난 전력을 보냈겠지만.
“수가 많다고 무조건 이긴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실력이 있지 않소이까.”
제갈중선이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렇게 힘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현천문 사람들은 해볼 만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제갈 세가 사람들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같은 세가끼리도 뭉치지 못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수적인 열세가 너무 심합니다.”
게다가 조금 이상한 소문도 있었다.
“괴물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니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 대인이 해준 말이니 조심해야 할 것 같기는 하더이다.”
진독평은 원래 업무로 복귀했는데, 돌아가기 전에 정보를 몇 가지 알려주었다. 그중 하나가 괴물들이 심상치 않다는 거였다.
전과는 달리 괴물을 제거한 곳에 금방 다시 괴물이 찬다고 했다. 사람들은 불안한지 웅성거렸다.
“그냥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온위립의 말에 제갈중선이 힘을 보탰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증원된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진법을 잘 활용하면서 안전하게 합시다. 그러다 결과가 좋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세가들은 소림이나 무당 쪽을 은근히 돕는 모양새였다. 중립적인 곳은 사천의 당가가 유일했다.
***
제갈 세가는 수가 워낙 적어서 병사들과 함께 싸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진독평이 손을 써 주어서 무척 호의적인 지휘관 밑으로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군이라고 모두가 동창을 적대시하는 건 아니다. 동창에 줄을 댄 장군들도 있다. 제갈 세가가 있게 된 부대의 지휘관이 바로 그런 자였다.
“말씀은 많이 들었소이다. 이미 군과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으시다니 전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겠소이까?”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따로 회의를 하도록 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도의 회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회의를 하기는 했다. 괴물 토벌 성과가 워낙 좋아서 조금 더 공세적으로 공격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회의였다.
병사들은 처음부터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전에 싸웠던 일화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갈 세가의 사람들과 싸우면 안전하면서도 손쉽게 괴물에게 이긴다는 소문을 말이다.
“키야.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구만. 어?”
“그러게 말이야. 괴물하고 싸우면서 요즘처럼 편한 건 정말 처음이야.”
경험이 좀 있는 병사들은 제갈 세가의 사람들을 칭송하기 바빴다. 그들이 가장 선두에서 괴물을 맞이했다.
본가에서 증원된 삼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오십여 명의 인원이 공격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거다.
오십 명이면 전체 병력에서는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장 괴물의 공세가 거센 곳을 그들이 깔끔하게 처리해주니 병사들은 무척 편했다.
“이 정도면 매일 싸울 수도 있을 것 같다니까?”
“어허. 쓸데없는 소리.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몰라?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누군가가 입방정을 떨자 사방에서 타박이 들어왔다. 하지만 표정은 다들 밝았다.
“진법도 진법이지만 그 하 소협 말이야. 나 이번에 정말 죽을 뻔하다가 살았네. 그려.”
“나도 봤어. 하이고.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병사 한 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을 뻔했던 당시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내가 들었는데 하 소협이 사룡이나 그런 사람들보다도 훨씬 고수라고 하더라고.”
“당연하지. 괴물하고 싸우면서도 우리들 혹시나 다칠까 살피잖어. 그게 보통 실력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함께 싸운 병사들은 제갈 세가와 현천문, 그리고 하진혁의 이름을 기억했다.
제갈세가와 현천문의 활약상이 해타산을 공략하고 있는 전 부대로 퍼져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각 부대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회의를 한다. 그간의 성과를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그걸 가지고 전략을 수정하거나 새로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제갈 세가와 현천문의 이야기가 나왔다. 제갈 세가가 속한 부대의 성적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진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뛰어납니까?”
“저도 그 원리는 잘 모르겠소이다. 병사들에게 적용을 시켰더니 분명히 효과는 있는데 말이오.”
제갈 세가가 속해있는 부대의 장군은 어깨에 힘을 주면서 이야기했다. 성과가 좋으니 당연히 힘이 들어갔다.
그는 이번에 진독평에게 단단히 사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을 보내주었으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거였다.
그렇게 회의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잡다한 여러 정보나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 그런데 누군가가 하진혁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들어보니 하진혁이란 젊은 무인이 있는데 병사들이 수호신처럼 모신다는 이야기가 있더이다.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요?”
“아. 그거 말이오.”
장군은 자신이 본 걸 그대로 말해주었다. 진혁이 어떻게 병사들을 구하면서 괴물을 상대했는지.
물론 이야기의 특성상 다소의 과장은 들어갔다. 하지만 장수들은 다들 놀랐다. 허풍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활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활약을 했다면 병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려.”
“뭐가 문제가 되겠소이까? 진짜 신으로 떠받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안전을 비는 것뿐인데..”
전장은 피와 죽음이 흥건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살 수 있다는 희망. 오늘은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
진혁을 정말 신이라고 생각하는 병사는 거의 없을 거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원하는 거다.
진혁이 그렇게 수 많은 병사들을 살린 것처럼, 자신도 살아남게 해달라고.
“혹시나 그가 세를 모으거나 그런다면야 다른 문제겠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오이다.”
장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유심히 살폈는데, 사람 됨됨이가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다면서.
물론 진독평이 잘 살피라고 해서 살핀 거였다. 그런데 정말 성품이 놀랄 정도로 훌륭했다. 병사들과 격의 없이 지냈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병사는 먼저 나서서 도왔고, 위기에 빠진 자가 있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구했다. 거만하고나 교만한 자세는 눈곱만큼도 볼 수 없었다.
보는 자신도 감동할 정도인데 같이 싸우는 병사들이야 오죽할까.
“하기야 요즘 사람들 사이에 사룡보다 그자가 몇 수는 위라는 소문이 자자하더이다.”
“어디 그자뿐입니까. 현천문의 젊은 제자들이 사룡보다 훨씬 위라고 하더이다.”
그래서 현천문의 사룡일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기존의 사룡삼봉보다 현천문의 제자들이 더 낫다는 말이었다.
“무림 방파들은 무척 싫어하겠소이다. 자존심이 강한 자들인데..”
정말로 그랬다. 특히나 사룡과 삼봉이 소속된 문파는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은 곳은 제갈 세가 밖에는 없었다.
“이게 말이 되오이까. 고작 그런 작은 문파의 제자들이 사룡과 삼봉보다 위라니요.”
무당파의 장로가 소리치고 종남의 장문인 은태명이 맞장구쳤다.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헛소리로 치부했다.
“이런 소리가 계속 나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든 해야..”
은태명이 말했지만, 다들 대답하지 못한 채 입맛만 다셨다. 현천문에서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병사들 사이에서부터 퍼진 소문이다. 그게 문제였다.
이게 강호에서 난 소문이라면 어떻게든 손을 쓸 거다. 잡아다가 죄를 묻고 처벌하고 그런다. 그러면 자연히 소문은 사라진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럴 수가 없다.
전장에서 병사들을 잡아들인다? 죽으려고 환장한 거다. 그러니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고 끙끙거릴 수밖에.
화산파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 문승강이 최근 실력이 놀랄 정도로 늘어서 이번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건 필시 제갈 세가에서 음모를 꾸미는 게다. 우리들이 도검당주를 차지하는 걸 방해하려고 퍼트린 소문일 게야.”
화산파의 장문인 을지검군 주복형이 화를 냈지만, 문승강은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 아닙니다. 그 새끼 정말 쎄요. 저는 상대도 안 됩니다. 오히려 제대로 소문이 안 난 거라니까요.’
주복형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있을 때 무림맹 총관당주인 매화일검 우영덕이 나섰다.
“장문인. 참으시지요. 지금 승강이가 생각보다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만 간다면 저희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가? 그래도 무당 쪽이 인원이 더 많아서 불리할 것 같은데..”
우영덕은 은밀히 속삭였다.
“성과야 집계해서 장계를 올리는 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비슷한 성과만 올리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말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영덕은 장계를 올릴 사람인 제독동창에게 은밀히 선을 넣고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시지요. 게다가 현천문 사람들은 세간의 평이 좋습니다. 공연히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을지검군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당에 성과가 뒤처지지 않게 단단히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문승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 새끼 그렇게 좋은 놈 아니에요. 아주 나쁜 놈입니다.’
주복형은 사람들을 향해서 단단히들 준비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사실 주복형이 이런 걸 다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장문인이면 원치 않아도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도 있는 법이다. 화산파가 무시당하고 그럴 때 장문인이 차분하면 되겠는가.
이럴 때는 일부러 화를 내면서 분위기를 정리할 필요가 있는 거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자 문승강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혁에게 계속 끌려다닐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하고 벗어날 것인지. 무공을 배우는 건 좋았지만,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이러다가 약점을 틀어쥐고 문파를 배신하는 일까지 시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고민하다 사부인 주복형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문승강은 망설이다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진혁이 사실은 양아치 같은 인물이며 가면을 쓴 인간이라고. 게다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괴상한 무공을 한다고.
그러자 주복형은 문승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냐?”
“예. 사실입니다.”
주복형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런 못난 놈.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문승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주복형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아무리 갑자기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실력으로 소문을 없앨 생각을 해야지 음해를 해?”
주복형은 진혁이 어떤 인물인지 구파일방과 세가들이 이미 다 조사를 끝냈고 이곳에서의 일도 속속들이 알아보았다고 말했다.
“비록 같은 편은 아니나 나이를 떠나 감복할 만한 자였느니라. 그런데..”
“사부님. 아닙니다. 그자는 정말로 그런 자가 아니라 협객의 탈을 쓴..”
주복형은 혀를 쯧쯧 차고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못난 놈! 꼴도 보기 싫다. 당장 나가거라!”